[텐아시아=우빈 기자]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킹덤’에서 조선 최고의 권력자 조학주를 연기한 배우 류승룡. / 사진제공=넷플릭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킹덤’에서 조선 최고의 권력자 조학주를 연기한 배우 류승룡. / 사진제공=넷플릭스
지난 25일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킹덤’에서 좀비가 공포와 두려움, 나아가 연민의 대상이라면 류승룡은 긴장감의 극치였다. 감정을 분출하지 않고 절제했다. 흔들림 없는 눈빛, 감정이 드러나지 않는 얼굴, 낮은 목소리만으로 ‘킹덤’의 공기를 무겁게 만들었다. 그의 절제된 연기에 시청자는 숨 죽일 수밖에 없었다.

‘킹덤’은 죽었던 왕이 되살아나자 반역자로 몰린 왕세자가 조선의 끝으로 가서 굶주림 끝에 괴물이 되어버린 이들의 비밀을 파헤치며 시작되는 미스터리 스릴러. 지난 25일 전 세계 150개국에서 동시 공개돼 국내외에서도 큰 호평을 받고 있다.

류승룡은 ‘킹덤’에서 왕도 함부로 할 수 없는 조선의 실질적인 지배자인 영의정 조학주를 맡았다. 조학주는 가장 큰 권력을 쥐고 있지만 그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어린 딸을 늙은 왕의 중전으로 만들 정도로 탐욕스러운 인물이다.

류승룡은 욕망과 야욕 같은 인간 내면의 본성을 솔직히 드러낸 조학 주가 매력적이라고 했지만, 류승룡이었기에 조학주가 매력적인 캐릭터로 재탄생했다. 악인이 아닌데도 악인으로 비치게끔 하는 설득력 있는 연기, 장면 장면을 압도하는 묵직함은 류승룡이라 가능했다. 지난 31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류승룡을 만났다.

“‘킹덤’을 세 번이나 봤어요. 드라마는 드라마인데 끊지 않고 보는 맛이 있더군요. 더빙 버전도 보고 자막으로도 봤습니다. 내 역할을 어떤 목소리로 표현했을지 궁금했거든요. 자막으로 보니 영어 공부도 되더라고요. 내 대사가 영어로는 어떻게 표현됐는지 보는 재미가 있어요.”

류승룡이 밝은 표정으로 말했다. 그럴 만도 하다. ‘K좀비’라는 별칭이 생길 정도로 ‘킹덤’의 화제성은 날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류승룡은 “내가 직접 검색을 하진 않았고, 관계자들에게 듣기만 했다”며 “앉아서 반응을 듣는 것으론 다 확인할 순 없지만 여러 나라 언어로 자막이 나가고, 더빙이 됐고, 리뷰가 쏟아진다는 건 알고 있다. 해외 매체에서 인터뷰 요청도 들어온다고 하더라”고 했다.지난해 11월 싱가포르 프로모션 때 ‘킹덤’에 대한 관심을 보고 상상 이상이라는 생각은 했지만 실제 반응은 그 이상이라는 얘기다.

“가장 한국적인 것을 시공을 떠나 여러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로 완벽하게 만들어낸 것 같습니다. 어디에나 배고픔이 있고 권력, 욕망이 있잖아요. 어떻게 보면 좀비보다 무서운 사람의 본성도 있죠. ‘킹덤’에는 점점 괴물로 변해가는 인간의 군상도 있고요. 그러한 것들을 한국적인 미학에 잘 녹여낸 것 같아요.”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킹덤’에서 조학주를 연기한 배우 류승룡. / 사진제공=넷플릭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킹덤’에서 조학주를 연기한 배우 류승룡. / 사진제공=넷플릭스
‘킹덤’ 시나리오를 읽은 후 느낀점을 묻자 류승룡은 “좀 어려웠다”고 솔직하게 대답했다. 그는 “두 번 정도 다시 정독해서 읽었다. 김은희 작가님이 복선을 깔아놓고 뒤에 회수하는 글을 잘 쓰시지 않나. 나도 ‘이건 왜 이렇지?’ ‘이건 뭐지?’하면서 앞뒤로 넘겨보면서 읽었다. 전체 맥락은 거대한데 파고들수록 섬세했다. 복선들이 다 깔려있었다”며 감탄했다. 그러면서 “전문 용어나 고유명사가 있으니 말이 어려운 것도 있었다”며 “촬영할 때 김성훈 감독님이 있는 그대로 잘 따라가게 해 줬는데 그때 ‘내가 이해력이 짧았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고 말해 웃음을 안겼다.

사실 류승룡은 이전에 김은희 작가의 작품으로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나 일정 때문에 성사되진 않았다. 그는 “배우라면 김 작가님과 작업하는 게 영광이다. 작가님의 글이 인간 본연의 내면을 잘 풀어내기 때문”이라면서 “조학주가 분량은 적을 수 있는데 작가님이 내게 왜 이 역할을 줬는지, 작품의 중심이 뭔지 등을 정확하게 알려주셨다”고 밝혔다.

시청자로서 ‘킹덤’을 본 느낌은 어떨까. 그는 “한국 고유의 아름다움, 선과 단아함과 고요함들이 잘 녹아있는 것 같다. 동남아 쪽에는 가을이 없다. 우리나라의 가을과 아름다운 단풍, 풍경과 어우러지는 우리나라 건축물과 의복 등을 제대로 고증한 게 좋다”고 했다.

“단풍이 든 조용한 비원에 나룻배를 타고 가서 시체를 수장시키는 장면이 있죠. 저는 그게 가장 ‘킹덤’스러운 장면이라고 생각합니다. 눈부시게 아름다운 한국과 한국의 고요한 정서, 그리고 그 밑에 깔린 무서움… 전세계가 공감할 수 있는 인간 내면의 군상들이죠. 이 부분은 김은희 작가님이 굉장히 잘 표현하신 것 같아요.”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킹덤’ 스틸컷. / 사진제공=넷플릭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킹덤’ 스틸컷. / 사진제공=넷플릭스
류승룡이 연기한 조학주는 왕보다 더 큰 실세다. 자신의 어린 딸과 왕세자까지 이용하면서 왕권까지 넘보는 야심 찬 인물이다. 류승룡은 “아주 옛날부터 지금까지 역사를 보면 당쟁과 세력 싸움은 왕왕 있었다. 잘못된 방법으로 권력을 평정하려는 캐릭터가 조학주다. 그의 입장에서는 옳지만 밖에서 보면 위험한 신념을 가졌다”며 “김성훈 감독님과 조학주 캐릭터에 대한 대화를 많이 나눴다”고 설명했다.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에서 연기했던 허균은 백성을 위한 나라를 꿈꾼 인물이죠. 그런 그가 폭정을 일삼는 왕을 10년 이상 섬겼을 때 ‘과연 그는 어떻게 변했을까, 괴물처럼 변했을까?’라고 가정해봤죠. 괴물로 변한, 혹은 변할 수밖에 없는 걸 상상했습니다. 너무 악역처럼 하지 않으려고 했어요. 조학주가 대란 후 유림에게 ‘유림이 한 게 뭐가 있는가’라고 하는 부분이 있는데 이런 장면들에서 조학주의 성격을 녹아내려했어요.”

김성훈 감독이 류승룡에게 주문한 것은 묵직함과 답답함이었다. 류승룡은 “감독님은 조학주의 눈빛, 대사 한 마디 한 마디를 할 때 공기 자체가 답답한 느낌이었다면 좋겠다고 했다. 그래서 힘들었다”고 고백했다. 그러면서 “조학주의 성격을 효과적으로 보이게 한 것은 감독님과 카메라, 조명이라고 생각한다”며 “어두운 곳에 앉아있던 조학주가 일어나는 첫 등장에서 그걸 느꼈다. 조학주는 별 거 없는데 앵글이나 여러 가지로 풍성하게 만들어 준 것 같다”고 김 감독의 연출을 극찬했다.

산과 들판에서 좀비들과 싸웠던 이창 역의 주지훈, 서비 역의 배두나와 달리 류승룡의 공간은 궁궐이 유일했다. 그랬기 때문에 그는 중전을 연기한 김혜준과 가장 긴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킹덤’ 공개 후 김혜준은 어색한 대사 톤과 어정쩡한 모습으로 연기력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이에 대해 류승룡은 “감독님께서 의도하는 방향에 대해 많이 들었고, 성장하는 중전, 어설프게 조학주를 따라 하려는 중전을 보여주려고 한 것 같다”면서 “시즌2에서 잠재력이 터질 것 같아 기대가 크다”고 말했다. 이어 ” 카메라 앞에서 함께 연기하는 동료 배우로서 같이 고민하고, 시즌2 시나리오를 받은 입장에서 시즌1이 의도였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준비해야 하지 않겠나”라고 설명했다.

김 감독의 디렉팅은 없었는지 묻자 류승룡은 “공개적으로 하지 않고 개인적으로 하신다. 다 감독님의 의도가 있다고 생각한다. 워낙 꼼꼼하신 분”이라며 “훌륭한 선장이고, 감독님에 대한 전적인 신뢰가 있었다. ‘다 이유가 있겠지’라고 생각했다. 나는 동료로서 격려 내지는 편안하게 해주는 게 서로 잘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본다”고 답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킹덤’에서 조학주를 연기한 배우 류승룡. / 사진제공=넷플릭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킹덤’에서 조학주를 연기한 배우 류승룡. / 사진제공=넷플릭스
‘킹덤’은 오는 11일 시즌2 촬영을 시작한다. 2월부터 6월까지 촬영 스케줄이 잡혀 있다. 류승룡은 시즌2에 대해 “기분 좋은 수확”이라고 표현했다.

“농사를 지으면 여러 가지 과정들이 있잖아요. 보이지 않지만 나중에 보면 ‘아, 그래서 이런 걸 했구나’하면서 깨닫는데 ‘킹덤’도 그래요. 시즌2 대본을 보니까 시즌1에 뿌려진 것들을 회수하는 느낌이 들어 좋았어요. 시즌1은 ‘킹덤’의 전반적인 이야기를 풀다 보니까 정보를 제공하는 시간들이 있잖아요. 시즌2는 속도감이 있어요. 저도 대본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킹덤’의 인기도 인기지만 비슷한 시기에 개봉한 영화 ‘극한직업'(감독 이병헌)도 개봉 9일 만에 관객수 480만을 돌파하면서 흥행 중이다.

두 작품의 인기에 대해 류승룡은 “영화엔 과정과 결과가 있는데, 우리가 만들 수 있는 건 과정이다. 결과는 관객의 몫이다. 행복의 반은 우리가 만들 수 있다. ‘극한직업’은 찍느라 고생한 분들과 관객들 다 행복해하는데, 그 모습을 보는 게 행복하다”고 말했다. 이어 “‘킹덤’은 긴장 속에서 공개했다. 국내외 반응이 좋으니 만든 분들이 보람을 느끼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사실 류승룡의 최근작 성적은 썩 신통치 않았다. 류승룡은 “그것(흥행) 때문에 ‘킹덤’을 한 것”이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그는 “새로운 소재나 새로운 이야기에 도전하고 싶다. 도전에 대한 배고픔, 허기 같은 게 있다”면서 “‘극한직업’의 경우 마약이나 형사 같은 많이 봐온 소재와 새로운 시도들이 연결되면서 색다른 코미디가 나온 것 같다”고 밝혔다.

류승룡은 “두 작품 속 캐릭터가 상반돼 배우로서 우려한 부분도 있지만 동시에 다른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는 것 같아 좋기도 하다”면서도 “의도치 않게 공개 시점이 겹쳤다. 보시는 분들이 피로하실까 우려가 되는데 너그럽게 봐주셨으면 좋겠다”고 요청했다.

우빈 기자 bin0604@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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