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정시우 기자]
디카프리오
디카프리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오스카 트로피를 집에 가져 갈 수 있을까”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을 향해 쏟아지는 관심의 8할은 디카프리오의 수상 여부 같다. 오스카 4수생, 오스카 불운의 아이콘, 오스카의 노예…뭐라 부르든 눈물겹다.

디카프리오와 아카데미의 악연은 지난 1994년, 남우조연상 후보에 오른 ‘길버트 그레이프’가 미끄러지면서 시작됐다. ‘에비에이터’(05)로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랐을 때는 ‘레이’의 제이미 폭스에게 가로 막혔고, ‘블러드 다이아몬드’(07) 때는 ‘라스트 킹’의 포레스트 휘태커에게 발목 잡혔으며, 최상의 연기를 보여줬다 평가받았던 ‘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13)는 하필이면, 역시 인생 최고의 연기를 펼쳤다는 평가를 입은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의 매튜 맥커너히를 만나 좌절됐다. ‘타이타닉’이 아카데미상 11개 부문을 휩쓸 당시, 남우주연상 후보에 조차 오르지 못한 건 이미 유명한 일화. 아카데미는 그에게 문을 슬쩍 열어주곤, 눈앞에서 문을 쾅 닫아 버리곤 했다. 그의 아카데미 도전기는 희망고문이다.

올해엔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이미 보스턴비평가협회, 워싱턴비평가협회, 골든글로브, 크리틱스 초이스, 배우조합상, 영국 아카데미가 ‘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에서 생간도 씹어 먹는 리얼 연기를 선보인 디카프리오에게 트로피를 안겼다. 해외 유력 일간지들 역시 그의 수상을 높게 평가하는 분위기. 전세계 영화팬들까지 그의 수상을 두 손 모아 응원하는 경지에 이르렀다. 그런데 여기에서 고개를 쳐드는 생각. 오스카 수상만이 과연 해피엔딩일까. 그의 수상소감을 듣고 싶은 마음 한켠에서 고약하게도(?) 정반대의 상황을 염원하는 마음도 자란다. 그 이유를 ‘막무가내’로 생각해 봤다.

# 이유 1. 오스카 낙방이 디카프리오의 인간적 매력을 극대화 한다
고통받는 디카프리오
고통받는 디카프리오
솔직해지자. 디카프리오의 오스카 수상 실패가 양산한 수많은 패러디 물을 보면서 단 한 번이라도 웃지 않았다, 자신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그의 오스카 좌절기는 전세계 포토샵 장인들에게 패러디에 대한 영감을 불러일으켰고, 그로인해 기발한 ‘짤방’들이 탄생해 전 인류를 웃게 했다. 심지어 그의 오스카 도전을 바탕으로 한 풍자 코믹 게임이 출시될 정도. ‘레오의 레드카펫 광란(Leo’s Red Carpet Rampage)’이란 제목의 이 게임은 디카프리오가 오스카 트로피 쟁취를 위해 온갖 장애물을 피해가는 내용으로 구성돼 있는데, 보기만 해도 절절하다.

흥미로운 것은 이러한 패러디물들이 모든 것이 완벽(해 보이는)한 디카프리오의 인간적인 매력을 오히려 극대화 시키고 있는 기현상이다. 그를 향한 패러디는 단순한 희화화와는 격이 다르다. ‘아름답다’라는 단어가 여성들의 전유물이 아님을 일깨우며 은막에 등장한 디카프리오는 연기적 재능 못지않게 부단한 염문과 아카데미 굴욕의 역사로 대중의 관심 한복판에 머무르는 스타다. 금발의 톱모델들과 분기별로 염문을 뿌릴 때는 ‘반백년을 함께 하긴 무리인 남자’로 보이다가도, 아카데미에서 빈손으로 돌아가는 쓸쓸한 뒷모습으로 ‘그래도 이 남자라면 한번쯤 감싸주고 싶다’는 보호본능을 들게 한다. 이런 양가적인 심정을 심어주는 스타는 분명, 드물다 .

#이유 2. 그의 열연은 오스카 낙방으로 인해 더 깊어 질 것이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목표를 잃는 것만큼 허무한 것은 없다. 디카프리오는 최근 인터뷰에서 “상을 받기 위해 일하지는 않는다”고 했지만, 그도 욕망을 지닌 인간인 이상 오스카 트로피가 알게 모르게 그의 연기투혼에 강한 동력으로 자리하고 있지 않을까란 생각이 든다. 그가 아카데미 작품상이 빛나는 ‘버드맨’의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와 ‘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를 찍는다고 했을 때, 많은 언론이 ‘디카프리오의 과녁이 오스카를 향하고 있다’고 평가한 것은 이와 무관하지 않다.

한때 국내 SNS에는 이를 상당히 절묘하게 빗댄 웹툰작가 하양지의 글이 큰 인기를 끈 바 있는데, 하양지는 이렇게 말했다. “그냥 오스카가 상 안줬음 좋겠다. 그래서 레오가 상 받으려고 별의별 배역 다 맡으며 후보 30년으로 살았음 좋겠다. 한 30년 뒤에 레오가 가까스로 후보에 올랐는데 남우주연상은 저스틴 비버가 탔으면 좋겠다. 그리고 레오가 지팡이 던지면서 절규하는 게 전세계에 중계됐으면 좋겠다.(이하 생략)” 얼핏 보면 ‘디카프리오 능욕글’ 같지만 자세히 뜯어보면 그를 향한 깊은 애정으로도 읽힌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목표를 잃는 것만큼 허무한 것은 없다. 암묵적으로 오스카는 ‘상 중에 최고의 상’이라는 대중의 인식이 있다. 베를린·칸·베니스 등 세계 3대 영화제가 있긴 하지만, 대중과 가장 활발하게 호흡해 온 것은 오스카라는 의미다. 그랬을 때, 오스카 이후는 (상으로만 놓고 봤을 때)현상유지 혹은 내리막길이다. 디카프리오의 오스카 수상이 조금 더 유예돼서, 그가 연기에 대한 투혼을 더욱 활활 불태웠으면 하는 생각이 드는 건 이 때문이다.

# 이유 3. 극적인 반전?
에드 레드메인
에드 레드메인

이미 많은 사람들이 디카프리오의 수상을 점치는 만큼, 그의 수상은 이제 더 이상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렇다면, 오스카가 조금 더 흥미롭고 극적이기 위한 최상의 시나리오는 디카프리오가 또 한 번 미끄러지는 게 아닐까.(미안해요, 레오) 마침, 운명의 장난처럼 반전을 장식해 줄 최상의 주인공이 있다. 작년 ‘사랑에 대한 모든 것’에서 스티븐 호킹 박사 역을 탁월하게 표현하며 남우주연상을 거머쥔 에디 레드메인이 이번엔 ‘대니쉬 걸’로 또 한 번 트로피를 노린다. 잠깐의 상상. “오스카 고즈 투…에디 레드메인!”이 불리는 순간, 카메라가 디카프리오의 촉촉해진 안구를 포착하다면? 눈은 거짓말을 못한다고 했던가. 동공지진을 일으키는 디카프리오를 어쩐지, 보고 싶다.

# 그리고, 흥행이 간절한 아카데미가 과연
디카프리오 패러디
디카프리오 패러디
“아카데미가 시상식의 이슈와 시청률을 위해 레오를 또 한 번 고통스럽게 할 것이다” 우스갯소리이면서도, 뼈 있는 말이다. 아카데미 입장에서 디카프리오는 VVIP 고객일 뿐 아니라, 시청률 1등 공신이다. 그동안 아카데미가 일부러 디카프리오에게 상을 안 준 것은 아니겠으나, 우연이 한두 번 쌓이다 보니 그것이 화제가 됐고, 시상식을 향한 관심을 환기시켰고, 아카데미와 디카프리오의 (악연을 가장한)역사가 됐다. 과연 아카데미가 팽팽하게 조율된 디카프리오와의 인연을 여기에서 끝내려할까. 궁금증은 29일 오전 10시, 미국 로스앤젤레스 할리우드 돌비극장에서 열리는 시상식을 통해 확인하는 수밖에. (결과가 어떻든 디카프리오, 당신을 계속 응원할 거예요.)

정시우 기자 siwoorain@
사진. 영화 스틸, 인터넷 커뮤니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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