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척 스카이돔이 개장하기 전까지만 해도,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은 국내 최대 실내 공연장으로 위엄을 떨쳐 왔다. 그러나 공연을 목적으로 지어진 시설이 아닌 터라, 여러 핸디캡을 가진 것 또한 사실. 여기에 ‘관크(관객 크리티컬. 공연 도중 다른 관객에게 방해를 끼치는 행동)’까지 더해진다면, 그 날의 공연은 악몽이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런데 김동률의 공연은, 달랐다.
김동률 콘서트
# 라텍스 저리 가라, 김동률 표 철제 의자
김동률의 공연장에는 플라스틱 의자가 없었다. 전석이 스탠딩이냐고? 물론 아니다. 다만 김동률은 플라스틱 의자 대신 안락한 철제 의자를 준비해놓았다.
그간 많은 공연장에서 간의 의자로 플라스틱 의자를 구비하곤 했다. 편의점 야외 파라솔 아래에 놓인, 바로 그 의자 말이다. 가격이 저렴하고 배치가 간편하다는 장점이 있으나, 편안함과는 거리가 멀다. 자리는 좁고 좌석 간 간격에도 빈틈이 없다. 의자의 방향을 고치거나 의자를 앞뒤로 당기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반면 김동률의 공연장에 놓인 의자는 넓었고, 덕분에 편안했다. 엉덩이와 등이 닿는 부분에는 천이 덧대어져 있어 안락한 느낌도 들었다. 무엇보다 플라스틱에서 나는 특유의 찌그덕 거리는 소리가 없었다. 작은 부분이었지만 세심한 배려가 돋보였다.
김동률
# 오늘의 공연은 가슴으로 담아주세요
김동률의 공연장에는 카메라도 없다. 사실 대부분의 공연들이 저작권상의 이유로 촬영을 금지하고는 있으나, 대부분의 공연에서 촬영이 일어난다. 순간을 간직하고픈 마음을 어찌 이해 못하겠냐마는, 카메라 액정에서 뿜어져 나오는 환한 불빛은 공연의 집중도를 흩뜨린다. 띵동. 카메라 촬영음이 들리기라도 한다면, 벌컥 짜증이 솟아오르곤 한다.
김동률은 정중한 말로 촬영을 자제시켰다. “당부의 말씀을 드릴게요. 공연 중에 사진 촬영을 하시는 분들이 굉장히 많아요. 공연 저작권은 차치하더라도, 주변 분들에게 너무 방해가 되는 행동입니다. 그리고 저한테도 방해가 돼요. 몰입이 굉장히 깨져요. 함께 보는 관객들을 위해 조금만 양보하고, 오늘의 공연은 가슴으로 남겨주시길 바랍니다.”
야광봉도 없었다. 퍼포먼스가 주를 이루는 공연이라면, 화려한 야광봉도 공연의 일부분이 된다. 그러나 대부분의 곡들이 발라드 넘버로 채워지는 김동률의 공연에서는, 관객과 아티스트의 몰입이 최우선시 되어야 할 터. 더욱이 김동률은 조명과 무대의 앙상블에 상당한 공을 쏟는 편이다. 한 공연 관계자는 야광봉 금지 이유에 대해 “영상과 조명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배려”라고 설명했다. 덕분에 관객들은 오롯이 음악과 공연에만 빠져들 수 있었다.
김동률 콘서트
# 체조 경기장이 예술의 전당으로…
체조경기장은 ‘경기’를 위한 곳이지 ‘공연’을 위한 곳이 아니다. 때문에 대형 가수들의 공연이 열리는 곳임에도, 환경은 열악하다. 반면 김동률은 평소 무대 구성 및 음향 시설에 상당한 공을 들이는 것으로 유명한 인물. 일례로 지난 2008년 체조경기장에서 열렸던 ‘모놀로그’ 콘서트의 경우, 7억 원 가량의 금액이 투입돼 완성도를 높였다. 한 공연 관계자는 “‘모놀로그’의 사례를 바탕으로 추측해 본다면, 이번 공연의 경우 세션비를 포함해 10억에 가까운 금액이 투자됐을 것”이라고 전했다.
10년 이상 호흡을 맞춰 온 베테랑 감독들도 힘을 더했다. 이윤신 연출 감독, 김영일 음향 감독, 김지훈 조명 감독 등은 김동률의 아이디어를 물리적으로 고스란히 현실화 했다. 올해에는 뮤직비디오 감독으로 유명세를 떨치고 있는 룸펜스가 합류, 웅장한 영상으로 관객들을 압도했다.
덕분에 김동률의 이번 콘서트는 SNS 및 언론보도 외에는 홍보가 전무했음에도 불구하고, 3일간 3만 석 전석이 매진됐다. 체조경기장 관계자는 “3일간 쪽표 한 장 남기지 않고 모두 판매됐다. 근래 들어 가장 이례적인 티켓 파워였다”고 말했다. 공연 관계자들 역시 “통상적으로 티켓을 예매해놓고도 못 오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다. 그런데 이번 김동률 콘서트는 빈자리가 거의 없었다”면서 “관객들에게는 만사를 제쳐두고 와야 하는 공연으로 인식되는 모양”이라고 감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