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해철, 서태지, 노이즈가든, 브라이언 메이, 악동 뮤지션, 세인트 빈센트(왼쪽 위부터 시계방향)
지난 한 해를 돌아보니 정말 많은 일들이 있었네 다시는 돌아갈 수 없네텐아시아에서는 결산 기사를 통해 2014년 주요 흐름을 살펴봤다. 기사에서 언급된 굵직한 움직임들 외에도 여러 의미 있는 순간들이 우리의 눈과 귀를 붙잡았다. 그 어느 때보다 슬픈 일이 많았던 2014년을 떠나보내며 대중음악계 올해의 순간 10개를 선정했다. 당신은 올 한해 얼마나 많은 음악을 만났나? 음악으로 인해 얼마나 위안을 받았는가? 상상 이상의 것을 보았다 그것은 ‘퀸’ 그리고 아담 램버트
지난 한 해를 돌아보니 그대 돌아오기를 기도했네 다시는 기도하지 않네
지난 한 해를 돌아보니 나와 나의 친구는 많이 변했네 다시는 돌아갈 수 없네
하헌진 ‘지난 한해’ 中
눈앞에 퀸이 있었다. 브라이언 메이의 기타, 로저 테일러의 드럼, 거기에 최고의 기량을 보여준 아담 램버트까지. 그것은 다름 아닌 퀸이었다. 퀸은 8월 14일 서울 잠실종합운동장에서 열린 록페스티벌 ‘슈퍼소닉’을 통해 역사적인 첫 내한공연을 가졌다. 무대 뒤 영상으로 프레디 머큐리가 등장해 밴드와 함께 노래를 부를 때에는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 같았다. 그렇게 누군가를 미치게 하고, 누군가를 울게 하고, 누군가를 뮤지션으로 이끈 음악들이 삼태기로 흘러나왔다. 현장에 있던 모두는 ‘진짜’ 챔피언이 될 수밖에 없었다. 누군가에게는 생애 최고의 순간이 될 만한 공연이었다. ‘보헤미안 랩소디(Bohemian Rhapsody)’는 무대 위의 아담 램버트와 영상 속의 프레디 머큐리가 함께 불렀다. 프레디와 아담, 그리고 브라이언 메이 등의 연주는 정확하게 맞아떨어지자 관객들이 눈물을 흘렸다. 첨단과학이 이렇게 사람을 감동시킬 수 있다니. 망자와 산자의 합창은 최고의 순간을 만들었다. 수컷들의 합창 가득했던 노이즈가든, 그 5년만의 무대
“여러분 정말 감사합니다. 저의 20대 시절을 헛되이 보내지 않았다는 생각이 드네요.” 노이즈가든의 보컬 박건이 말했다. 5월 24일 홍대 브이홀에서 열린 노이즈가든의 리마스터 앨범 발매 기념 공연에 모인 팬들도 같은 생각이었을 것이다. 이날 공연장에는 약 5년 만에 무대에 오른 노이즈가든을 환영하듯, 매 곡마다 수컷들의 우레와 같은 합창이 이어졌다. 노이즈가든과 함께 활동했던 밴드들, 그리고 노이즈가든을 실제로 처음 보는 팬들이 모두 한 마음으로 노이즈가든을 연호했다. 전설로 회자되던, 어쩌면 화석처럼 메말라있던 노이즈가든이 다시금 살아나는 순간이었다. 언니네이발관 이석원은 노이즈가든 2집에서 직접 노래했던 ‘향수 Ⅱ’를 이날 불러줬고, 이어 최근 공연에서 거의 하지 않는 언니네 이발관 1집에 실린 ‘동경’ ‘팬클럽’을 연달아 노래했다. 한 관객은 “1997년에 두 밴드가 함께 마스터플랜에서 공연하던 때로 돌아간 것 같다”라고 감격스러워했다. 레이디 가가 “현아는 언제 나오니?”
지난 3월 11일(미국 현지시간) 미국 텍사스 오스틴에서 열린 ‘사우스 바이 사우스웨스트(South By Southwest, 이하 SXSW)’에 마련된 ‘케이팝 나잇 아웃’이 열린 클럽 엘리시움. 갑자기 클럽 뒷문으로 레이디 가가가 들어왔다. 처음엔 닮은 사람, 내지 코스프레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녀를 둘러싼 거구의 보디가드들을 보고 비로소 레이디 가가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레이디 가가는 이디오테잎의 공연이 끝나고 박재범의 공연이 시작하기 전인 밤 12시 반경 엘리시움에 들어왔다. 가가가 등장하자 관계자 및 관객들은 깜짝 놀라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어댔다. 가가는 관객들의 사진 촬영에 응하고 맥주를 마시는 등 여유 있는 모습을 보였다. 사람들이 붐비자 살짝 몸을 숨겼다가 다시 나타났고, 이후 박재범의 뒤를 이어 열린 현아의 공연을 끝까지 감상했다. ‘SXSW’ 관계자는 “레이디 가가가 평소 케이팝에 관심이 많았다”며 “‘케이팝 나잇 아웃’에 온다는 소문이 있었지만 진짜 올지 몰랐다”라고 말했다. 몇 달 뒤 레이디 가가는 자신의 미국 투어에 크레용팝을 오프닝 게스트로 불렀다. 세월호를 위해 노래한 뮤지션들
“안타까운 일들로 공연들이 모두 취소 혹은 연기 되고, 나에겐 수입이 없다. 음악만 해서 그렇다. 음악 외에 다른 일을 못하는 나에겐 가혹한 상황이다. 알바 사이트를 뒤져 봐야겠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났을 당시 한 음악인이 SNS에 올린 글이다. TV 음악프로그램들도 정지했고 전화를 걸면 “지금 이 분위기에 어떻게 노래를 듣느냐”는 대답이 돌아왔다. 음악이 위안이 돼줄 수 없을까라는 생각이 들 무렵 몇몇 뮤지션이 일어서기 시작했다. 5월 10일과 11일 홍대 걷고 싶은 거리와 주차장길 일대에서 뮤지션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세월호 사태와 관련한 1인 시위 및 버스킹을 연 것이다. 서울뿐 아니라 부산, 대전에서도 뮤지션들이 모여들었다. ‘모던 가야그머’ 정민아가 광화문에서 세월호 희생자들을 위해 1인 시위하는 것을 보고 버스킹을 마음먹은 ‘사이’는 “길거리에서 앰프도 없이 노래나 한다고 세상이 바뀌지는 않겠지. 하지만 뭐라도 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와 같은 생각을 가진 음악가들이 분명히 많이 있을 거라고 믿고 있다”고 페이스북에 글을 올렸고, 60~70여 팀의 뮤지션들이 모여들었다. 아이유 콘서트에서 꽈당 넘어진 악동뮤지션 찬혁
지난 5월 30일 서강대 메리홀에서 열린 아이유 소극장콘서트에 악동뮤지션이 게스트로 출연했다. 악동뮤지션과 아이유가 실제로 만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평소 아이유의 팬이라고 말해온 악동뮤지션은 처음에 다소 긴장한 표정이었지만 이내 장난기를 감추지 못했다. 아이유가 “수현 씨 너무 예쁘다”라고 수현이 하자 “언니는 참 말랐다”라고 대답하는 등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이어졌다. 악동뮤지션이 ‘200%’를 노래하자 아이유는 “너무 잘한다. 상큼해 미쳐버리겠어”라며 좋아했다. 악동뮤지션은 “몽골에 있을 때 ‘부’를 춤추며 따라했다. 정말 아이유 선배님의 팬”이라며 감격스러워했다. 신난 이찬혁은 ‘인공잔디’ 안무를 하다가 꽈당 넘어졌지만 당황하지 않고 일어나 공연을 무사히 마쳤다. 이날 이찬혁은 “누군가의 공연에 게스트로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인데 반응이 너무 좋아 감격스럽다. 어서 사장님께 콘서트 하고 싶다고 말씀드려야겠다”라고 말했고, 11월에 열린 악동뮤지션의 콘서트에는 아이유가 게스트로 나왔다. 한물 간 가수가 선사한 ‘졸빡’ 공연
10월 18일 컴백콘서트 ‘크리스말로윈’이 열린 잠실 종합운동장 올림픽주경기장에서 만난 서태지는 예전과 닮았고, 달랐다. 서태지 밴드의 위엄, 그리고 서태지의 익살스런 표정, 장난꾸러기와 같은 동작들은 여전했다. 하지만 어딘가 모르게 긴장되고 위축돼 보이는 표정, 그리고 관객에게 존댓말을 쓰는 모습 등은 조금 의외의 광경이었다. 서태지와 아이유가 마주보면서 노래를 하는 모습이 조금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더라. 첫 멘트는 “보고 싶었어요”였다. 이 한마디에서 눈물을 흘리는 팬의 모습이 카메라에 잡혔다. “너무 오랜만이죠. 오늘 5년 만에 제가 여러분 앞에 섰습니다. 많이 기다렸죠. 한자리 모인 여러분 보니까 좋네요. 그냥. 너무 좋아요. 너무 너무 좋아”라고 말하고 울먹이자 팬들은 “울지 마 울지 마”를 연호했다. 남성들의 함성이 이어지 서태지는 “남탕이야 왜. 나 남자들 되게 싫어하는데”라고 말해며 손을 내저었다. 사실 데뷔 후 최악의 상황에서 맞이한 컴백콘서트였다. 본인의 입으로 “한물 간 가수, 별 볼일 없는 가수”라고까지 말하기도 했지만, 그의 음악은 여전히 생생한 에너지를 지니고 있었다. 쉽지 않았겠지만, ‘졸라 빡세게’ 달려준 서태지가 고마웠다. 세인트 빈센트, 화성에서 온 철녀
7월 24일 홍대 무브홀에서 열린 세인트 빈센트의 공연은 그야말로 신세계였다. 1층 무대에서 노래를 하던 세인트 빈센트가 갑자기 2층 난간을 향해 손을 뻗었다. 스태프 위에 올라서더니 마치 잔 다르크처럼 씩씩하게 벽을 타고 2층 발코니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2층 발코니 바깥쪽에 한 손으로 매달린 그녀는 다른 한 손으로 기타를 연신 두들겨댔다. 이것은 어디서도 볼 수 없었던 광경이었다. 2층 관객들은 코앞으로 다가온 세인트 빈센트 때문에 놀랐고, 1층 관객들은 입을 헤벌쭉 벌리고 그 모습을 올려다 볼 수밖에 없었다. 세인트 빈센트는 추락의 두려움 따위는 머릿속에 계산하지도 않는 ‘철녀’였다. 공연 내내 아름답고, 살벌하고, 파격적인 모습을 보여준 그녀는 뭘 잡숫기에 그렇게도 아름다울까? 어떤 악조건 속에서도 최고의 순간을 만들겠다는 강박마저 있는 것 같았다. 매 곡마다 춤사위는 기타 연주만큼이나 도발적이었으며, 음악에 이르기까지 뭐 하나 창조적이지 않은 것이 없었다. 그것은 온전한 세인트 빈센트의 세상이었다. 그녀는 신세계, 새로운 세상. 노래방기계로 ‘서머타임’ 부른 ‘글래스턴베리’ 디렉터
10월 2~4일 사흘간 울산문화예술회관에서 열린 음악 마켓 ‘에이팜’에는 영국 ‘글래스톤베리’, 스페인 ‘프리마베라 사운드’, 세르비아 ‘엑시트 페스티벌’ 호주 ‘워멕스’ 등 세계적인 페스티벌 및 뮤직 마켓 디렉터 25명이 모였다. 이들은 낮에는 컨퍼런스를 통해 정보를 교환하고 밤이 되면 울산문화회관 내에서 이루어지는 공연을 함께 감상했다. 자신들의 행사에 데려갈 뮤지션들을 선택하기 위한 것이다. 심각한 이야기만 오간 것은 아니다. 가령 해외 관계자들은 쇼케이스 관람을 마치고 파티를 위해 클럽으로 이동하는 차 안에서 노래방 기계로 ‘서머타임(Summertime)’을 부르는 등 화기애애한 모습을 보였다. 노래를 한 글래스톤베리 디렉터 말콤 헤인즈가 마이크를 들고 관계자들에게 “오늘 어떤 뮤지션이 가장 좋았냐?”고 묻자 저마다 마음에 드는 뮤지션을 호명했다. 그 중 일부는 아마도 곧 해외 페스티벌에 서게 될 것이다. 말콤은 “올해에도 ‘에이팜’에서 ‘글래스턴베리’에 데려갈 팀들을 선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야생화’ 노래하다가 눈물 쏟은 박효신
12월 12일 서울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 단독 콘서트를 연 가수 박효신은 ‘야생화’를 노래하다 갑자기 펑펑 울었다. 눈물 콧물 때문에 노래를 할 수 없을 정도였다. 박효신은 옛 생각이 나서 눈물을 흘렸다고 말했다. 그 옛 생각은 바로 ‘군대 생각’이었다. 박효신은 군대에서 정재일과 함께 ‘야생화’를 만들었다. “군대에서 일과를 마치면 휴식시간이 있어요. 그때 기타를 치면서 재일이와 함께 이 노래를 만들었죠.” 박효신은 ‘야생화’의 가사를 군대 화장실에서 완성했다. “나처럼 살고 있는 외로운 사람들을 만져줄 수 있는 가사를 써보려 했어요. 그런데 며칠 동안 집중을 해도 가사가 안 써지는 거예요. 그러다가 어느 날 화장실을 갔는데 1절 가사가 술술 나왔어요. 그리고 화장실에서 혼자 울었어요.” ‘야생화’의 빅히트는 박효신에게 큰 힘이 됐다. “노래 발표하고 나서 조금 두려웠어요. 그래서 집 밖에도 안 나가고 반응을 살폈죠. 노래가 1등을 하는 걸 보고 너무 흐뭇했는데 며칠 동안은 눈물이 났어요. 제가 잘 울잖아요. 정말 행복했고, 만감이 교차했어요. ‘야생화’가 ‘눈의 꽃’과 같은 노래가 될 줄 몰랐어요.” 빈소 앞 촛불로 밤 지새운 故신해철 팬들
故 신해철의 빈소 앞에 모인 팬들이 자발적으로 촛불을 켜고 음악을 들으며 고인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장례식 마지막 날인 30일 오후 10시경 서울 풍납동 아산병원 장례식장 앞 한 켠에는 고인을 보내는 자그마한 추모행사가 벌어졌다. 촛불이 환하게 밝혀진 현장에는 신해철의 생전 활동 모습이 담긴 사진들과 넥스트, 노댄스 등의 포스터들이 마련됐다. ‘히어 아이 스탠드 포 유(Here I Stand For You)’ 등 신해철의 노래가 흐르는 가운데 약 100여 명의 팬들은 눈물을 훔치며 고인을 애도하고 있다. 조문을 마치고 나온 팬들은 발길을 떼지 못한 채 슬픔을 나눴다. 이날 빈소에는 엄청난 조문 행렬이 이어졌다. 이 시각 현재 아산병원 장례식장 2층에는 조문을 하려는 수백 명의 조문객이 에스컬레이터를 삥 둘러싸고 긴 줄을 서 있다. 줄을 서서 조문을 하기 까지 약 1시간가량이 걸리고 있다.고인과 함께 넥스트로 활약했던 기타리스트 김세황 씨는 “정말 감동적이다. 팬들이 이렇게 자발적으로 해철 형의 마지막 가는 길을 지켜줘서 너무나 감사할 따름”이라고 말했다. 이제 우리들이 남았다. 우리는 언제까지나 그의 음악을 듣고, 그를 추억할 것이다. 영원히.
아듀! 2014 대중음악 결산 ① 90년대 가수들이 준 행복, 그리고 슬픈 아픔
아듀! 2014, 대중음악 결산 ② 십센치 장기하와 얼굴들 그리고 국카스텐…스타들의 반격
아듀! 2014, 대중음악 결산 ③ ‘케이팝 한류’ 중국으로 진로를 돌리다
아듀! 2014, 대중음악 결산 ④ 초라해진 음악페스티벌
아듀! 2014, 결산 요주의 30음반, 당신의 가슴을 움직인 음반들
아듀! 2014, 결산 요주의 30음반, 당신의 가슴을 움직인 팝 음반들
R.I.P 결산, 2014년은 천국에 뮤즈가 늘어난 한해
글. 권석정 moribe@tenasia.co.kr
[SNS DRAMA][텐아시아 뉴스스탠드 바로가기]
[EVENT] 뮤지컬, 연극, 영화등 텐아시아 독자를 위해 준비한 다양한 이벤트!! 클릭!
© 텐아시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