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먼저 영화 ‘역린’을 봤나. 영화의 각본가이자 원작 소설 작가의 소감을 듣고 싶다.
영화 ‘역린’은 영화가 전부가 아니다. 영화 개봉에 맞춰 ‘역린1:교룡으로 지다’, ‘역린2:용의 분노’ 등 2권의 소설로도 발간됐다. ‘역린’ 1권은 시간상 영화의 이전 이야기에 해당한다. ‘역린2′는 영화의 내용이 담겼다. 영화 ‘역린’에서 다소 생략된 허구의 인물들 히스토리가 소설 속에 빼곡히 들어차 있다. 하지만 여느 영화와 달리, ‘역린’은 소설을 토대로 만들어진 게 아니다. 영화 ‘역린’의 시나리오가 가장 먼저 집필됐고, 그다음으로 소설 1,2권이 완성됐기 때문이다. 특히 영화의 각본을 쓴 최성현 작가가 소설까지 모두 써내려갔다. 물론 영화는 영화고, 소설은 소설이다. “영화는 영화에 맞는 호흡이 있고, 소설은 소설대로의 흐름이 있다”고 설명한 최 작가는 영화와 별개로 소설 자체만으로도 온전한 가치를 지니길 기대했다. 최성현 작가와 함께 영화 ‘역린’과 소설 ‘역린’을 두고, 이야기를 나눴다.
최성현 작가 : 아내와 함께 관람했다. 개인적으로 두 번째 보는 건데 감개무량하다. 처음 볼 땐 울렁울렁했는데 두 번째 보니 시나리오보다 150% 이상 잘 나온 것 같다.
Q. 같이 관람한 아내분의 반응은 어땠나.
최성현 작가 : 언론 시사회 후 혹평이 많아서 걱정을 많이 했다. 같이 보는 데 나하고 똑같은 곳에서 울더라. 그리고 보고 나선 굉장히 만족해하더라. 그래서 여성 관객들에게 호응을 얻겠구나 싶었다. 걱정했던 부분들이 있었는데 그 부분도 그렇게 안 보는 것 같았다.
Q. 걱정했던 부분이라 하면.
최성현 작가 : 지루하다는 혹평. 우리 영화는 유머 코드가 없다. ‘광해’, ‘관상’ 등은 유연한 유머코드가 있고, 그런 영화들이 흥행하긴 한다. 그런데 한편으론 유머코드가 꼭 들어가야 하나 싶었다. 유머코드 없이도 울림을 주고, 소통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다. 감독님이 그걸 잘 읽어주셨고, 시나리오가 둔 무리수보다 훨씬 현명하게 관객들의 니즈를 잘 끌고 간 것 같다.
Q. ‘작가의 책임’인데 감독에게 혹평이 쏟아지는 것 같다고 어디선가 말한 것 같던데. 그런 의미인 건가.
최성현 작가 : 아무래도 그 생각이 가장 먼저 든다. 가장 지적받은 게 이야기의 밀집도다. 날아오는 화살은 이야기인데 그걸 이재규 감독이 막고 있으니까 정말 미안한 거다. 두 번째로 영화를 보면서 든 생각은 영화적으로 잘 찍었다는 거다. 내가 쓴 게 3시간짜리 시나리오였다면, 그걸 2시간으로 잘 압축했다. 내가 해 놓은 게 100이라면, 감독님이 150을 한 것 같다.
Q. 영화 개봉과 동시에 소설로도 발간됐다. 그러면 영화화가 먼저였나, 소설이 먼저였나.
최성현 작가 : 시나리오가 먼저였다. 이 이야기를 2010년부터 준비했다. 정유역변이란 이야기의 꼭짓점이 영화적으로 좋았다. 그리고 두 명의 청부 살수를 덧붙였고, 갑수란 인물이 만들어지게 됐다. 이렇게 두 이야기가 엮어져 팩션을 만들게 됐다. 그리고 초이스컷(‘역린’ 제작사) 최낙권 대표님이 처음으로 영화 제의를 해주셨다. 이전에도 영화를 하고 싶었는데 제안을 받지도 못했고, 무시 당하기도 했고. 하하. 영화 제의와 함께 소설도 잘 쓸 것 같다며 소설화를 해보라고 권유했다. 그래서 동시에 욕심을 냈다. ‘역린’ 2권은 영화 시나리오를 소설화했고, 1권은 소설 자체만으로도 도전이었다.
Q. 그럼 순서상 2권을 먼저 쓰고, 1권을 다음에 썼다는 말인가.
최성현 작가 : 시나리오를 가장 먼저 썼고, 그다음 소설 1권 2권 순으로 썼다. 1권은 시간상 2권의 앞 이야기고, 2권에 대한 내용은 시나리오가 먼저였다. 정유역변에 대한 시나리오를 썼는데 그것만으로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이야기가 있었다. 그걸 대표님이 건드려주셨다. 그래서 겁 없이 도전했고, 소설로서 1권을 먼저 썼다. 그리고 2권은 영화를 바탕으로 썼다. 덕분에 시간 제약 때문에 삭제했거나 남겨뒀던 이야기를 담을 수 있었다. 그리고 소설 1권은 소설 자체만으로 온전한 가치를 가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Q. 시나리오를 먼저 쓴 다음에 소설을 집필하는 과정에서 다시 시나리오를 고치고 싶은 순간이 없었나.
최성현 작가 : 고치고 싶었는데 안 고쳤다. 그러면 안 될 것 같았다. 대사 등 이런 것들에 있어 소설과 영화가 달라도 안 됐다. 그래서 싱크로율을 최대한 맞췄다. 개인적인 바람은 영화를 본 관객이나 이 책을 본 독자들이 ‘역린’이란 콘텐츠 안에서 느끼는 것들을 똑같이 공유했으면 한다. 그러면서 소설과 영화를 볼 때 느낌이 달랐으면 좋겠다.
Q. 영화나 드라마를 예전부터 하고 싶었던 건가. 필모그래프를 찾아보니 만화 스토리 작가로 데뷔했다.
최성현 작가 : 아르바이트로 시작했는데 본업이 된 경우다. ‘교무의원’이란 작품은 최초로 한일 동시 연재되기도 했고, 이현세 선생님을 만나 함께 작업도 했다. 만화 안에서 뭔가 역할이 있다는 느낌을 받기도 했다. (영화나 드라마를) 이제는 해봐야겠다고 결심할 때마다 새로운 목표지점들이 하나씩 하나씩 생겼다. 좋은 말로 하면 축복이고, 어떤 면에선 발목을 잡은 것이기도 하고. 또 뮤지컬도 한 2년 준비를 했다. 그야말로 전 장르를 다 했다. 중간중간 공모전에 지원했는데 다 떨어지기도 했고. 하하. 그러다가 2010년 즈음, 더는 미루면 안 될 것 같았다. 그러면서 ‘역린’을 만나게 됐다.
Q. 이현세 화백과 함께한 골프만화 ‘버디’ 등 기존에 해 왔던 작품들을 보면, ‘역사’와는 거리가 멀다.
최성현 작가 : 발표는 안 했지만, 실패한 작품들이 있었다. 해방 전후사, 임진왜란, 신윤복 다룬 작품 등 끊임없이 사극 준비를 했다. 이런저런 이유로 나오지 못했지만. 2010년 드라마를 준비하면서 정조와 사도세자를 만났다. 드라마 준비하는 사극은 따로 있었고, ‘역린’은 영화적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드라마 제작사에 양해를 구하고, 영화와 소설을 먼저 하게 됐다.
Q. 영화의 모티브가 정유역변이다. 미수에 그친 사건이고, 실제 사료도 많이 없는 걸로 알고 있다.
최성현 작가 : 역사라는 건 해석하는 사람의 스탠스에 따라서 변한다. 앞으로도 변할 거다. 역사학자의 생각이 들어가는 거다. 정유역변 뿐만 아니라 정조, 사도세자는 약 200년간 우리나라 역사에서 묻혀 있었다. 정유역변 사건도 묻혀있는 일화다. 그리고 정조 시대는 임팩트가 큰 사건이 워낙 많기도 하다. 정조의 죽음조차 의문스럽게 기록돼 있다. 정조의 죽음부터 올라가다 보면 보위에 오르던 정조와 사도세자를 만날 수밖에 없다. 그러면 영조까지 가게 된다. 그러면서 내가 본 정유역변은 아주 큰 사건이었다. 나름대로 찾은 자료들과 그걸로 짐작할 수 있는 역사적 행간들 등 나한테는 공부였고, 논문이었다. 그리고 소설과 영화는 그 해석에 대한 발표였다. 또 나의 그 시각을 은유화 하기 위해 픽션화된 인물이 필요했고, 갑수와 을수, 광백 등이 만들어졌다. 역사적인 관점은 얼마든지 공격받을 수 있고, 밑천이 떨어질 때까지 논쟁도 가능하다. 역사란 것은 유수한 파편 조각이고, 후세에 누군가가 연결고리를 추론할 뿐이다. ‘역린’은 사도세자와 정조 안에서 나름대로 추론하고, 검토한 거다.
Q. 정조는 드라마, 영화 등을 통해 많이 다뤄졌던 인물이다. 정조의 이야기 자체가 드라마틱한데 여기에 상상력을 더한다는 게 어떤 면에선 굉장한 모험이다. 자칫 상상력이 실제보다 못할 수도 있으니까.
최성현 작가 : 고민 많았다. 결국은 관객, 독자가 받아들일 수 있는 건 사실의 중요가 아니라 진실성이다. 재미가 동반해야 하고, 직관적으로 받아들여져야 한다. 그게 콘텐츠의 가치다. 재밌게 받아들여지기 위해 쓰는 입장에서는 끊임없이 뭔가를 직조해 낸다. 무엇보다 허구의 인물이 설득력 있어야 하고, 더 중요한 건 역사적 근거가 있느냐는 거다. 역사 콘텐츠의 힘든 점이다. 가상의 발언이나 움직임을 취할 때 근거가 있는지를 찾아봐야 하고, 만들어야 한다.
Q. 살수 집단은 어떻게 생각하게 됐나.
최성현 작가 : 실제 역사를 보면 7월 28일 존현각 암살시도가 있은 나서 궁을 옮긴다. 그리고 11일 후인가에 2차 침입을 한다. 그때 국문을 해보니 왕의 목을 벨 살수를 15냥에 샀다는 기록이 나온다. 여기에서 추정해볼 수 있다. 1냥이 100푼인데, 한 가마니가 3냥이었다. 당시 한 가마니는 144kg으로 굉장히 큰돈이다. 일반 서민에게 15냥이 있으면 인생이 바뀌는 거다. 그러면서 상상의 나래를 펼치게 됐다. 당시 흉년이었고, 사람을 잡아먹었다는 기록도 있고. 그래서 추정 가능한 상황 안에서 전국의 고아를 살수로 키우는 걸로 픽션화한 거다.
Q. 소설을 읽으면서 얼핏 든 생각이 사도세자 이야기를 했어도 참 재밌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도세자의 이야기에 상상력을 더한다면? 이런 생각이 들더라. 사실 뒤주에 갇혀 죽은 것만 알지 다른 이야기는 잘 모르지 않나.
최성현 작가 : 역사의 해석인 거다. 편파적인 해석으로 200년을 내려왔다. 바로 옆에 있는 기록조차도 어떻게 선별하고 취합하느냐에 따라서 달라진다. 사도세자도 마찬가지다. 논란의 인물이기 때문에 조심스러웠는데 추정 가능한 사실들로만 따라갔다. 간단한 일례로 유럽을 점령한 칭기즈칸은 수백 년 동안 괴물이자 식인종이었다. 서양에선 지옥의 인물로 그려졌다. 사도세자도 마찬가지다. 그동안 편파적으로 다뤄지고 있었다. 혜경궁 홍씨의 ‘한중록’이 우리가 알고 있는 사도세자의 모습인데, 그러면 혜경궁 홍씨의 스탠스를 살펴야 한다. 집안, 아버지, 정치 입장, 아들과의 관계 그리고 정조 생전과 사후에 말은 어떻게 바뀌는지까지. 그 해석은 지금도 팽팽하다. 그리고 실제 기록에 있어 사도세자 행적은 한강을 건너면서 배 위에서 백성에게 한 말, 그걸로 추론한 거다. 이선(사도세자)은 천세를 외치는 백성들을 용으로 시각화했다고 느꼈다. 그런 추정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또 소설 속 사도세자는 철저하게 실제 역사 속 동선에 맞췄다. 일정, 날짜, 만나는 인물 등 모두. 그러면서 드러나지 않은 시간에 무슨 이야기를 했을까를 추정해 나갔던 거다.
Q. 아무래도 영화와 동시기에 책이 나와서 영화와 비교를 할 수밖에 없다. 영화에 등장하는 광백, 갑수, 을수 등의 이야기가 1권에 구체적으로 서술돼 있다. 영화의 부족한 부분이 채워지는 느낌이었다.
최성혁 작가 : 시나리오에는 돼 있다. 1권에 나오는 어린 시절은 시나리오에 있던 내용인데 영화에선 빠졌다. 내가 쓴 시나리오가 길었던 거다. 갑수와 을수의 플래시백은 존현각 엔딩을 위한 추진체인데 시간적 계산이 좀 미숙했던 거다. 대신 소설은 시간적 제약이 없으니까, 그런 사연들이 들어갈 수 있게 됐다. 아이들이 잡혀 오고, 살수로 키워지고. 또 갑수가 을수를 구해내는데 그때 을수를 어떻게든 살려야 한다는 갑수의 본성과 본능 등이 그런 거다.
Q. 근데 1권에서 월혜는 등장하지 않는다. (영화 ‘역린’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한 ‘역린’ 2권은 인터뷰 후에 정식 발간됐다.). 대략 유추를 해보면 황율과 개울의 딸이 아닐까 생각했다. 소설에서 월혜는 어떻게 그려지는 건가.
최성현 작가 : (황율과 개울의 딸은) 복빙이다. 원래 시나리오에는 16살로 설정됐는데 영화에선 10살 정도로 나온다. 영화를 보고 감독님의 판단이 옳았다고 본다. 감독님하고 이야기한 적 없지만, 나이가 어린 걸로 잘 잡은 것 같다. 정유역변의 가장 큰 불쏘시개가 복빙이다. 또 복빙과 월혜의 관계과 여자판 갑수 을수이기도 하고. 그렇게 삼았던 장치다.
Q. 그렇다면 월혜는.
최성현 작가 : 2편에서는 중요한 역할이다. 을수와의 사랑이 더 많이 등장한다. 초고에서도 마찬가지다. 영화를 보면서도 느꼈지만, 역시 프로고 관객들의 니즈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계신 것 같았다. 일단 월혜도 살막 구덩이에서 자라난다. 갑수보다 1년 뒤에 궁으로 오는 인물이다. 안국래가 광백을 통해 나인으로 심은 거다. 정조 암살을 위한 살수 느낌보다는 나인으로 키워지면서 연락통 담당이다. 그러면서 서로 모르는 상태에서 을수랑 연결이 된다. 을수가 암살하러 갔던, 암살 현장에서 우연히 월혜를 만나게 되면서 인연이 싹트게 된다. 그게 정유역변과 연결고리가 있는 거다. 을수는 월혜를 데리고 도망가려고 했든데, 월혜가 잡혀가는 걸 보고 (정조 암살) 준비됐다고 하는 거다. 존현각 결투가 끝난 후 정리를 위해 존현각으로 들어간 나인들 속에 월혜도 포함돼 있었고, 거기서 을수의 시신을 발견한다. 그리고 그때 자신과 같은 살막에서 자란 살수라는 걸 알게 되는 거다.
Q. 잠깐 언급된 안국래의 존재가 영화에선 빠진 것 같다.
최성현 작가 : 소설 속에서 새로 추가된 게 안국래에 관한 부분이다. 소설은 인과율에 궁금해 하는 독자, 관객들에게 정확하게 제공되는 셈이다. 영화는 영화라는 호흡 안에서 풀어져 나가는 거다. 영화는 영화만으로도 충분한 것 같다. 다만 작가로서 더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던 거였고, 실제적인 기록들을 근거로 텍스트를 제공하고 싶은 거였다.
Q. 영화 ‘역린’과 소설 ‘역린’, 이를 통해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무엇인가.
최성현 작가 : 정조는 닥쳐오는 고난을 헤쳐나갔던 인물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정성을 다하는 갑수도 마찬가지다. 영화 속에도 나오지만 정성을 다하면 세상은 바뀐다는 게 녹아 있길 바랬다. 또 정조, 갑수, 을수는 조조, 유비, 손권처럼 삼각구도 안에서 이뤄진다. 정조가 등장하든 안하든 모든 인물들이 끊임없이 정조를 이야기하고, 존현각을 향해 가는 이야기로 짜임새를 만들었다.
Q. 앞으로 작가의 행보가 궁금하다.
최성현 작가 : 지금 작업 중인게 있다. ‘역린’을 탄생시킨 모태인데 현재로선 무리인 것 같다. ‘조선판 대부’ 같은 느낌인데 거친 세계를 정통으로 다루고 싶다. 영화로 한다면 피가 난무할 수도 있고. 그런데 지상파에서 반응은 너무 세서 신통치 않더라. 하하. 나중에 할 텐데 먼저 순수 소설로 발표하고 싶기도 하다.
‘역린’ 돋보기①영화와 소설사이, ‘역린’ 속 살수와 을혜는 같은 살막 출신인 걸 알았을까요?
‘역린’ 돋보기③이재규 감독, ‘역린’을 통해 하고 싶었던 이야기 (인터뷰)
글. 황성운 jabongdo@tenasia.co.kr
사진. 팽현준 pangpang@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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