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우절인 4월 1일 오후 7시 50분 합정동 LIG아트홀. 공연 시작 10분 전쯤에 공연장에 들어갔는데 무대 위에는 벌써 연주자들이 나와 있었다. 김오키와 동양청년, 그리고 무키무키만만수는 풀밭처럼 꾸며진 사각의 테이블에 마주보고 앉았다. 이들은 음악을 연주하지 않고 대뜸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대사를 하는 건지, 그냥 나오는 대로 지껄이는 건지 모르겠는데 갑자기 연기를 하니 당황스러웠다. 아귀가 잘 맞지 않는 대화는 마치 학예회를 보는 것 같았다.
침낭에서 자고 있던 드러머 서경수가 드럼에 앉자 슬슬 연주가 시작됐다. 무키무키만만수는 이상한 멜로디를 흐느끼기 시작했다. 김오키의 곡 ‘칼날’이었다. 모든 연주자가 악기에 손을 얹자 발광에 가까운 협연이 시작됐다. 정신이 없다. 리듬이고, 뭐고 정리가 안 된다. 완벽한 앙상블이 아니다. 아니, 앙상블이라고 말하기 힘들다. 건성으로 연주하는 것 같다. 아무리 아방가르드라고 해도, 그 안에 앙상블이 존재하는 법. 그런데 김오키와 동양청년, 무키무키만만수 사이에는 그런 게 없었다. 그냥 발광이었다.
곡이 끝나도 끝난 것 같지 않았다. 박수가 거의 나오지 않는다. 서경수가 “내가 방화범이야”를 외치자 무키무키만만수의 ‘방화범’이 이어졌다. 역시 무언가 엇나가는 음악이 이어진다. 그냥 무키무키만만수의 곡에 김오키가 오부리를 넣는 수준의 협연이다. 마치 리허설을 보는 것 같다.
곡 중간에 콩트는 계속 이어졌다. 뜬금없이 고졸 인생을 한탄하는 택시운전사(김오키)와 전도유망한 골프선수(김윤철)의 대화가 이어진다. 예쁘장한 소녀(만수)에게 ‘좋은데 가자’라고 말하는 아저씨(김오키)가 음흉해 보인다. 다시 연주가 시작되고 무키는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을 읽어대기 시작했다. 영희가 오빠에게 난쟁이 놀리는 사람 다 죽이라고 하는 바로 그 장면이다. 그런데 합주가 어색해 무키의 내레이션에 도무지 이입을 못 하겠다. 슬슬 속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이들이 관객을 속이기 위해 막 대충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의심.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겠는 가운데 공연은 슬슬 막바지에 이르렀다. 이들이 이 난장(판)을 어떻게 끝낼지 걱정이 되기도 했다. 갑자기 블루스 잼을 시작한다. 공연을 이렇게 마치려는 속셈인가? 기이한 블루스였다. 속고 있다는 기분은 더욱 거세졌다. 김오키는 “속지 말고 살자”라고 말했다. 유일하게 대사가 아닌 본심 같았다.
약 1시간 반가량의 공연이 끝난 것 같았다. 연주자들이 한 명 씩 무대 뒤로 들어갔다. 하지만 끝난 건지, 끝나지 않은 것인지 확신이 가지 않았다. 순간 공연장 앞쪽의 한 중년 남성이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약간 성난 말투로 “갑시다”라고 외쳤다. 저 사람도 연출이 아닐까? 배우를 심어둔 것이 아닐까? 의심이 들었다.
그런데 연주자들이 다시 무대 위로 나왔다. 뭔가 멋지고 대단한 무언가를 보여준다면 지금가지의 난장(판)이 용서가 될 것 같았다. 이들은 ‘나는 빠리의 택시 운전사’를 무난하게 연주했다. 무키무키만만수 평소처럼 괴성을 양껏 질렀고, 김오키는 호방하게 불어댔다. 그나마 멀쩡한 연주였다. 그걸로 공연은 끝이 났다. 허탈했다. 조금 속은 기분이 들기도 했다.
김오키에게 공연 내용을 직접 물었다. 의도한 내용은 없었다고 한다. 음악만 조금 맞춰봤을 뿐 미리 정해놓은 것은 일체 없었다. 곡 중간에 연기를 한 것도 즉흥적인 것이었다. 다만 한 가지 약속한 것은 “각자 몸이 다 다른 곳에 있고, 마음만 이곳에 모여서 연주하는 기분으로 공연하자는 것”이었다. 이러한 퍼포먼스를 통해 공연 제목 ‘우리 이제 그만 속읍시다’처럼 속고 사는 삶을 표현해보려 했다고 한다. 이런 설명을 들어도 쉽사리 이해가 가지는 않았지만, 찜찜함은 조금 가셨다. 기억에 남을 만한 만우절이 될 것 같다. “공연 내용을 미리 설명했다면 관객들이 받아들이는 게 갇힐 수 있잖아요. 항상 누군가 정해준 의미, 또는 정해져 내려오는 것들에 대해 의문을 품을 겨를 없이 그냥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 부당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김오키)
서경수, 김윤철, 만수, 무키, 김오키, 준킴(왼쪽부터)
글. 권석정 moribe@tenasia.co.kr사진제공. 김오키, LIG아트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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