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오후 나영석 PD는 서울 마포구 모처에서 tvN ‘꽃보다 누나’ 기자간담회를 가졌다.
tvN ‘꽃보다 누나’(이하 ‘꽃누나’)는 ‘꽃보다 할배’(이하 ‘꽃할배’)에 이어 한 번 더 파란을 일으킬 수 있을까. 나영석 PD는 평균 연령 70대 할아버지들의 여행기로 신선한 바람을 불러왔던 ‘꽃할배’의 후속으로 여배우 여행기 ‘꽃누나’를 내놓았다. 전작과 같은 구성에 출연진과 여행지만 바뀌었을 뿐이지만, 그가 그려낼 여행기에 대한 대중의 호기심은 여전하다.Q. 이번에는 ‘할배’가 아니라 ‘누나’다. 이런 타이틀을 붙이게 된 이유가 있나.
전작의 혁혁한 성과에 부담을 느낄 법도 한데, 정작 오는 29일 ‘배낭여행 프로젝트’ 2편 ‘꽃누나’의 첫 방송을 앞둔 나영석 PD의 얼굴에서는 어떠한 불안도 느껴지지 않았다. 모두가 KBS2 ‘1박 2일’ 때부터 착실히 ‘여행 예능’에 대한 이미지를 쌓아온 덕분일까. 어느덧 ‘여행 예능’이라는 장르는 나 PD를 설명하는 또 하나의 단어로 자리매김했다. 그가 들려줄 여행기에서 기대감을 넘어 신뢰감마저 느껴지는 이유다.
나영석 PD: ‘누나’라는 제목은 국내에서 진행된 사전 녹화 때 결정됐다. 김희애와 이미연이 나와 나이 차가 얼마 나지 않기 때문에 ‘누나’라는 호칭으로 불렀는데 그걸 들은 윤여정과 김자옥이 “우리도 선생님이라 부르지 말고 ‘누나’라고 불러 달라”고 말하더라. 나이를 먹더라도 항상 여자는 ‘언니’이자, ‘누나’이고 싶어 한다는 것. 여자의 마음을 이토록 잘 대변한 제목이 또 있겠나. 여러 제목을 놓고 고심 중이었으나, 결국 ‘꽃보다 누나’로 가게 됐다. 프로그램 타이틀은 김자옥이 지은 것과 다름없다.
Q. ‘꽃할배’와 ‘꽃누나’ 제목 앞에 ‘배낭여행 프로젝트’라는 타이틀이 붙은 것이 눈에 띈다.
나영석 PD: 할아버지들의 여행기가 큰 호응을 얻었으나, 원래 ‘배낭여행 프로젝트’가 기획의 중심에 있었다. 섭외할 때도 “이거 찍고 나서 또 가자고 귀찮게 안 할 거다”고 말씀드렸다(웃음). 특정 인물들의 여행기로 정규 프로그램을 만들 생각이 없었다는 이유다. ‘꽃할배’가 배낭여행 프로젝트 1탄이라면, ‘꽃누나’는 2탄이다. 아마 내년쯤엔 또 다른 구성으로 여행을 떠나는 3탄도 나오지 않을까. 누가 여행을 가는지도 중요하지만, 정말 그들이 원하고 우리가 준비됐을 때 떠나는 게 더 중요하다.
tvN ‘꽃보다 누나’ 스틸
Q. 윤여정부터 김자옥, 김희애, 이미연까지. 출연진 구성이 다채롭다. 섭외 당시에 어려움은 없었나. ‘꽃할배’ 때도 힘든 점이 많지 않았나.나영석 PD: 한꺼번에 한 것이 아니라 차근차근 이야기를 나누면서 진행된 거다. ‘꽃할배’의 다음 기획을 생각하다가 ‘여배우로 가자’는 의견이 나왔고 윤여정부터 만나 섭외에 들어갔다. 직접 만나 이야기를 나눠보니 윤여정이 대뜸 “난 여행 싫어한다. 여행가면 앓아눕는다”고 답하며 난색을 표했었다. “누가 봐도 대한민국 대표 여배우들과 함께 여행을 떠난다면 좋은 추억이 되지 않겠느냐”고 설득해 겨우 확답을 받았다. 그 후 김자옥, 김희애, 이미연까지 차례대로 합류하게 됐다. ‘40대 이상으로 가자’는 내부지침은 있었다. 상대적으로 ‘할배들’에 비해 연령층은 낮지만, 여배우로서 15년 이상의 경력은 있어야 인생의 이야기가 묻어나올 것만 같더라.
Q. ‘여배우’이기 전에 ‘여자’다. 분명 할아버지들과 여행을 떠났을 때와는 많은 차이점이 있었겠다.
나영석 PD: 승기와 내가 무척 힘들었다(웃음). 할아버지들과는 달리 이분들이 어떤 부분에서 어려움을 느끼는지 처음에는 감을 잡기 어려웠다. 예를 들자면 잠자리가 바뀐다거나, 화장실을 못 간다든지, 그런 복잡하고도 디테일한 부분들이다. 할아버지들은 여행지에서 마실 술만 있다면 ‘만사 오케이’였지만, 여배우들은 다르지 않나. 감성적인 차이도 있다. 할아버지들은 100m를 간다고 하면 오직 앞만 보고 갈 뿐이지만, 여배우들은 가는 길에 물건이 100개 있으면 그 100개를 다 봐야 직성이 풀린다. 아마 나이 차 때문이라기보다는 여성과 남성의 차이에서 오는 것들 같다.
이승기와 나영석 PD는 KBS2 ’1박 2일’을 통해서 호흡을 맞춘 바 있다.
Q. 이번 여행에서는 이승기가 새 짐꾼으로 발탁돼 화제를 모았었다. ‘꽃할배’의 이서진과 ‘꽃누나’의 이승기를 비교한다면.나영석 PD: 우리는 이승기를 ‘짐승기’라고 부른다. 여기에는 ‘짐승 같다’, ‘짐 같은 승기’라는 의미가 둘 다 담겨있다(웃음). 이서진이 전문 가이드 수준이라면 이승기는 초등학생 수준이더라. 우리도 예상은 했지만, 이정도일 줄은 몰랐다. 사실 이서진은 알아서 잘하니까 따라다니면서 장난도 치고 놀리는 재미가 있었는데, 이승기는 초반에 고생을 너무 많이 해서 오히려 등 두드려 주며 달래야 했다. 이서진과 이승기는 비교 대상이 아니라는 정도로 이야기를 마무리하고 싶다(웃음).
Q. 그럼에도 이승기를 섭외한 이유가 있나. ‘1박 2일’ 때의 인연 때문인가.
나영석 PD: 물론 워낙 친분이 두텁기 때문이기도 했다. 다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고 ‘꽃누나’에 ‘이승기’라는 인간의 성장 이야기를 담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 열흘간의 여행 중 실수하고, 누나들에게 깨지면서 이승기는 점차 성장을 거듭했다. ‘성장’이라는 코드는 다른 출연진도 마찬가지다. 윤여정은 고등학교 졸업 후에, 김자옥은 중학교 때, 김희애와 이미연도 고등학교 재학 중에 연예계에 발을 들여 놓았다. 항상 누군가의 통제하에 살아왔던 이들이 스스로 무엇인가를 해본다는 것에는 여행 이상의 의미가 담겨 있음은 당연하다. 고등학교 1학년 때 ‘내 여자라니까’로 화려한 데뷔한 이승기는 말해 무엇하겠나. 다른 여배우들은 인생의 경험이라도 있지만, 이승기는 그것마저 없다. 처음에는 ‘짐’이었지만, 나중에는 ‘짐’이 아니라는 것. 그 변화 과정을 담고 싶은 욕심이 있었다.
Q. ‘꽃할배’에는 할아버지들의 청춘에 대한 그리움이 짙게 묻어있었다. ‘꽃누나’에는 어떤 메시지가 담기나.
나영석 PD: 사실 김희애나 이미연은 이제 한창이기 때문에 ‘청춘에 대한 그리움’이라고 거창하게 이야기하기는 어렵다(웃음). 다만 ‘여배우’라는 직업에 갇혀있던 사람들이 그런 이미지와 부담을 모두 접고 새로운 무언가를 해본다는 것에 대해서 더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부분이 늘어났다. 그들의 겪는 인간적인 고뇌나 여행 중에 얻게 되는 소소한 성취들은 우리의 모습과 더 닮은 구석이 많을 거다.
tvN ‘꽃보다 누나’를 연출한 나영석 PD
Q. 2007년 KBS2 ‘1박 2일’을 시작으로 어느덧 ‘여행’이라는 주제 하나로 프로그램을 만들어온 지도 7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당신에게는 ‘여행’의 의미가 남다를 것 같다.나영석 PD: 사실 방송 프로그램을 만들며 하나라도 내 것이 있어야 할 것 같아서 ‘여행’을 고집하고 있다(웃음). 여행이란 일상의 반대말이다. 똑같은 사람이라도 일상을 벗어나 여행지에 데려다 놓으면 다른 행동을 하게 된다. 어찌 보면 어떤 사람의 본질을 가장 빠르게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 여행인 셈이다. 여행에서 느낄 수 있는 설렘도 내가 좋아하는 코드 중 하나다. 리얼리티 형식의 프로그램을 만들며 짧은 시간 안에 어떤 이들의 진솔한 면모를 뽑아냄과 동시에 낯선 것에 대한 설렘을 녹일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여전히 ‘여행’이 내 마음을 빼앗는 소재라는 점이 내가 ‘여행’을 고집하는 이유라고 할 수 있다. 언젠가 소재가 떨어진다면 정말 다른 작업도 해보고 싶다. 그때까지는 이 안에서 다양한 시도를 해보려고 한다.
글. 김광국 realjuki@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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