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블링 링’ 스틸
엠마는 더 이상 호그와트의 꼬마 숙녀가 아니다. 성장통 영화 ‘월플라워’와 ‘블링 링’으로 이미 성인 신고식도 끝냈으니, 이제 자신의 날개를 펼칠 때가 왔다.영화 ‘월 플라워’ 스틸
“단 하루라도 우린 왕이 될 수 있지” 엠마 왓슨이란 이름을 들으면, 데이빗 보위의 명곡 ‘히어로즈(heroes)’가 떠오르리라 상상해 본 적은 없었다. ‘월플라워’의 엠마에게 마법 지팡이는 필요하지 않았다. 대신 데이빗 보위의 1977년산 에스코트가 있었다. 그녀는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보위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노래에 흠뻑 빠진다. 바로 달리는 트럭 위에서 두 팔을 벌리고 선다. ‘타이타닉’에서 유명해진 그 포즈였다. 온몸으로 바람을 맞으며 터널을 통과하는 이 장면은 청춘의 통과의례이자, 엠마의 성인신고식이나 다름없었다. 적어도 그 순간 엠마는 ‘해리 포터’의 히로인도, 패셔니스타도, 구설수에 휘말린 할리우드 스타도 아니었다. 그녀는 배우였다. 1990년 파리에서 태어난 엠마는 다섯 살에 부모가 이혼하면서 영국 옥스퍼드셔로 이주했고, 여섯 살부터 배우가 되기를 꿈꿨다. 누구나 알다시피, 1999년에 ‘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에 캐스팅이 되면서, 일약 아역 스타로 발돋움했다. 그렇게 너무나 빨리 만인의 헤르미온느가 되었다. 개인적으로는 쉽게 소비되는 프랜차이즈 영화의 아역 스타를 좋아하지 않는다. 지나치게 일찍 성공을 맛본 탓에 생명력도 짧고, 그런 스타의 좌절이나 노쇠화는 어딘가 인생의 무상함을 상기시키기 때문이다. 그래서 ‘해리 포터’시리즈를 최종회까지 마스터하지 않았다. 어쩌면 엠마를 헤르미온느라는 족쇄로 잡아두고 싶지 않은 마음에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이유야 어쨌든, 호그와트의 교복을 벗는 순간만을 기다렸다.영화 ‘마릴린 먼로와 함께 한 일주일’ 스틸
지금 할리우드엔 1990년에 태어난 세 명의 걸출한 여배우가 있다. 크리스틴 스튜어트, 제니퍼 로렌스 그리고 엠마 왓슨이다. 굳이 ‘트로이카 시대’라고 말할 필요는 없겠지만, 이 세 명의 배우는 향후 10년은 비교될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제니퍼가 ‘실버라이닝 플레이북’으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받았고, ‘헝거게임’의 캣니스로 블록버스터 배우가 된 걸 고려하면, 현시점에서는 가장 앞선다고 볼 수 있다. 사실 가장 불안한 것은 엠마였다. 그녀의 인기는 지금도 하늘을 찌르지만, 그저 스타로 머무는 것이 아니라 성인 배우로서의 입지를 가질 수 있는지가 중요했다. 그래서 ‘해리 포터’ 이후의 네 작품을 유심히 살펴봤다. 첫 영화가 ‘마릴린 먼로와 함께한 일주일’이었다. 미셸 윌리엄스에게 참 미안한 이야기지만, 그녀의 마릴린 연기는 구토가 일어날 정도로 따분했다. 정말 최악의 연기를 보면서 정신줄을 놓고 있을 때, 그나마 위안을 준 것은 루시로 나온 엠마였다. 도도하면서도 귀여운 그녀는 콜린 역의 에디 레드메인에게 “내겐 룰이 있지. 배우는 쳐다보지 않고, 조감독과는 데이트하지 않는다”고 꽤 멋지게 대사를 날린다. 그녀는 졸업파티를 손꼽아 기다리는 여고생처럼 참 조신한 패션을 선보였지만, 적어도 미모에 있어 전성기가 지난 미셸보다는 매력적이었다. 엠마의 출연은 겨우 10분이 넘었지만, 미셸과 함께한 90분보다 더 설?다.영화 ‘디스 이즈 디 엔드’ 스틸
‘완득이’처럼 미국 청소년들의 성장통을 위로해 준 ‘월플라워’에서 엠마는 자신의 가치를 잘 알지 못하는 샘으로 등장한다. 월플라워는 파티에서 파트너가 없어서 춤을 추지 못하는 사람을 뜻한다. 즉 따돌림을 당하는 사람이다. 그녀는 외로운 주인공 찰리(로건 레먼)에게 “부적응자들의 섬에 온 걸 환영해”라고 외친다. 로건은 “그녀는 참 아름답다”고 칭송하며 터널에서 키스한다. 물론,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후루야 미노루 만화에 나오는 여주인공처럼 기괴하게 찐따들을 사랑한다. 사실 샘은 수컷들의 로망을 대변하는 캐릭터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래서 ‘블링 링’의 도발적이고 불온한 니키가 훨씬 좋았다. 어차피 엠마가 하이틴 무비를 고수한다면 잇템에 집착하는 ‘일탈녀’도 괜찮다. 케이티 창이 주연이라서 엠마는 도우미 수준이지만, 소피아 코폴라 감독이 마지막 엔딩 신을 그녀에게 준 것은 의미심장하다. 이미 최고의 스타면서 스타가 되고 싶어서 난리치는 모습을 연기한다. 엠마에겐 그런 역설적인 상황이 잘 어울렸다. 린제이 로한처럼 난동을 치고 싶다면, 그것은 스크린 밖이 아니라 안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세스 로건과 조나 힐이 뭉친 시시껄렁한 코미디 ‘디스 이즈 디 엔드’에 잠깐 우정출연하기도 했다. 엠마는 도끼로 문을 부수고 제임스 프랭코의 집에 들어왔다가, 남자들이 자신을 강간하는 것으로 오해한 나머지 음료수만 갖고 도망간다. 그들이 “오, 헤르미온느!”를 외치는 장면에서 허탈한 웃음을 선사하기도 했다. SNL에나 나올만한 명장면이다. 현재 대런 아로노프스키 감독의 판타지 드라마 ‘노아’의 촬영을 마친 상태다. 그녀가 또 다른 모습을 보여주기 전까지, ‘히어로즈’를 무한 반복해 듣는 수밖에 없다. 그녀의 환호를 떠올리면 결코 지루하지 않다.글. 전종혁 대중문화평론가 hubul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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