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동석 “노래를 놓는 순간 시체가 될 것 같다”
전동석 “노래를 놓는 순간 시체가 될 것 같다”
그의 목소리가 내 가슴에 들어왔다. CF 카피가 아니다. 바로 김준수, 정상윤과 함께 뮤지컬 에서 베트남 여인과 사랑에 빠지는 한국군 준을 연기하는 전동석에 대한 얘기다. 2009년 (이하 )의 음유시인 ‘그랭구아르’로 화려하게 데뷔한 그는 훤칠한 키와 고운 외모, 여린 듯 강단 있는 목소리로 소년과 남자를 오가며 1년 반 만에 4편의 뮤지컬과 1편의 연극에 출연했다. 하지만 뮤지컬 팬과 관계자들이 모두 주목하는 그의 가파른 상승곡선은 어느 날 갑자기 시작되지 않았다. 고교 시절 콩쿨을 휩쓸던 성악 소년이 뮤지컬 를 보고 “왜 이렇게 재밌냐”고 감탄하고, 해병대에서 뮤지컬 배우의 꿈을 키우는 이야기는 마치 한 편의 성장 드라마 같다. 놀랄 정도로 빠르게 많은 것을 이뤘지만, 앞으로 이룰 것이 너무나 많아 보이는 한 소년이자 청년의 성장, 그리고 꿈.

이 막바지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개막 6~7개월 전에 캐스팅이 되었다고 들었다. 어떻게 참여하게 됐나.
전동석: 일단 캐릭터의 나이대가 맞는 걸 선호하는 편인데 나이대도 잘 맞았고, 전역한 지 얼마 안 되고 해서 재밌을 것 같았다. 거기다가 프랭크 와일드혼 노래가 워낙 좋으니까. 와일드혼의 노래는 팝적인 요소가 많지 않고 클래식한 느낌이 있어 잘 맞는 것 같다. CCM을 많이 부르다 보니 그쪽으로도 맞는 것 같고.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보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웃음) 난 재밌게 하고 있다.

CCM?
전동석: 군에 있을 때 1년간 노래를 못했었다. 교회도 잘 갈 수 없었다. 그러다가 그 이후 교회에서 CCM을 많이 부르게 됐다. 쉬다 부르니 소리 자체가 많이 가벼워졌고, 군대에서는 너무 힘드니까 교회에 가기만 하면 CCM을 열심히 불렀다. 그게 행복이었다. 그러다 보니까 발성 자체도 이렇게 빠진 것 같고.

“별로 주눅 드는 성격이 아니다”
전동석 “노래를 놓는 순간 시체가 될 것 같다”
전동석 “노래를 놓는 순간 시체가 될 것 같다”
중3 때 성악을 시작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사실 노래를 시작하기에는 늦은 나이가 아니었나.
전동석: 2달 연습하고 예고에 들어갔다. 예고에 들어가는 건 생각보다 쉽다. 남자가 거의 없다 보니 무용과에 지원하는 남자들은 다리찢기만 하면 된다. 성악과도 마찬가지였다. 서울이라면 다 떨어졌겠지만 지방엔 노래하는 친구들도 많지 않았기 때문에 운 좋게 들어갔다.

그런데 ‘충북예고 강동원’으로 불리고 (웃음) 콩쿨도 휩쓸며 화려한 학창시절을 보냈더라.
전동석: 고2 때였는데 고등학생이 학교 다니기가 힘들었다. 으하하하. 부산 콩쿨을 나갔는데 100명이 쫓아와서 반주자랑 도망 다니고. 콩쿨인데 사람들이 앞에서 다 촬영을 하니까 집중이 안 돼서 3등을 했다. (웃음) 정말 그때는 콩쿨을 나가면 1등을 했다. 2학년이 3학년을 다 이겼다. 서울예고 다니던 애들을 봐도 서울에 있으면 뭐하나 싶을 정도로 자신감 충만일 때였고, 짱이다 싶었지. (웃음)

이후 한예종 입학과 뮤지컬 데뷔까지 단숨에 쑥쑥 커와서 실패가 없는 인생처럼 보이기도 한다.
전동석: 계속 콩쿨 1위를 하다가 고3 때 한양대 콩쿨을 나갔는데, 예선탈락을 했다. 그때도 혼자서 심사위원들 다 사기다, 라는 생각을 했다. 근데 엄마가 “너 연습했어?”라고 하시는데 정말 연습을 하나도 안 했더라. 계속 1등만 하다 보니 그 자리는 항상 내 것인 줄 알고 그렇게 간 거다. 그 이후 부르던 노래를 다 바꿨다. 1등을 하고 고음이 너무 잘 나오다 보니까 그동안 제일 어려운 노래들만 했었다. 베르디의 곡들은 40대가 불러야 하는 노래인데 열 몇 살짜리가 그 노래를 불렀던 거지. 일반 콩쿨에서는 심사위원들이 대단히 여겼겠지만, 대학에서 나를 가르칠 심사위원들이 볼 때는 너무 일찍 커버렸다 싶은 거고, 소리가 너무 익어서 금방 죽을 놈이라고 생각하셨던 것 같다. 그래서 그 이후 노래를 다 모차르트 곡으로 바꾸고, 고3 때부터는 레슨 없이 혼자 했다. 선생님은 그냥 베르디 노래를 하라고 했고, 나는 내 나이대에 맞지 않다고 얘기하면서 싸웠다.

그런 고집 있는 성격이나 제법 묵직한 목소리는 고운 외모에서 상상할 수 있는 이미지들을 비껴간다. 반전의 느낌도 있고. 지난번 에서도 우베 크뢰거와 함께 부른 ‘그림자는 길어지고’는 굉장히 강렬한 느낌이라서 많은 이들이 놀랐었다.
전동석: 다들 굉장히 미성에 예쁘게 노래를 부를 거라고 생각한단다. 근데 파워풀하니까, 내 입으로 파워풀하대. 으하하하. 얼굴에 비해 파워풀하다 보니 놀라는 것 같다. 그래서 해병대를 갔나? (웃음) 주눅 드는 성격도 아니고. 그래서 후기 같은 것도 잘 안 본다. 잘못된 판도라의 상자를 열다가 상처 받으니까. 할 때 ‘뭔데 무대에 서느냐’는 말을 많이 들었는데, 난 그때도 별로 느낌도 없고 그런 말이 다가오질 않았다. 굉장히 구체적으로 쓰는 후기들을 너무 신기하게 봤던 것 같다. 대단하시다 어떻게 이렇게 쓰지? 라고. (웃음)

해병대 출신이라는 것도 늘 그런 이유 때문에 따라다니는 것 같은데, 많고 많은 군대 중에 왜 해병대였나.
전동석: 항상 뭐든지 1등을 하는 게 좋다. 힘든 것도 제일 힘들고, 노는 것도 제일 재밌게 놀고. (웃음) 원래는 세 군데 중에서 선택하려고 했다. HID라 불렸던 정보사령부랑 특전사랑 해병대. 정보사령부는 과거 실미도부대 같은 건데, 훈련 자체가 200만 볼트 전기가 흐르는 곳을 뛰어넘고 그런 것들이다. 그 사람들에게는 모든 게 다 살인무기가 된다. 젓가락 탁 던져서 빡 꽂히고. (웃음) 어쨌건 지원해서 가는 곳인데 휴가가 4년간 딱 한 번 있다더라. 거기다가 아버지가 극구 반대 하신 거지. 그래서 특전사랑 해병대 중에서 선택을 해야 됐는데 막상 HID를 안 간다고 하니까 4년을 가기가 싫은 거다. (웃음) 그래서 해병대 가겠다고 했다. 그랬더니 해병대는 집에서 아무 말도 안 하시더라. (웃음)

그런 군대에서 성악이 아닌 뮤지컬을 해야겠다라고 결심했다고.
전동석: 군대에서 근무를 서다 보면 생각이 많아진다. 전역한 이후에도 성악을 쭉 하게 되면 너무 장기가 되고, 그동안 부모님이 뒷바라지 해주는 것도 한계가 있다. 유학을 가게 된다고 해도 지금 외국에 나가 있는 선배들 보면 5-6년 있다가 그냥 들어오는 형님들도 있다. 성악은 맨 위에 있는 사람이 되어야 성공하는 건데, 그 밑에 있는 사람들은 말 그대로 돈도 못 벌고 아무것도 못되고 외국 나갔다 와도 그냥 강사만 하다가 끝낸다. 군에서 볼 때 내가 원하는 건 그런 모습이 아닌 것 같았다. 전역하고 효도할 생각도 커지다보니 그것도 아닌 것 같고. 그리고 발성 자체도 녹음해서 들어봤는데도 이쪽에 더 맞더라. 1년 동안 노래를 하지 않다가 하게 되니 나도 모르게 발성이 바뀌어 있었다. 그때는 정말 신실하게 교회를 다닐 때라서 하나님의 뜻이구나, 라고 생각했지. (웃음)

그럼 그 이전엔 뮤지컬에 관심이 있었나.
전동석: 사실 아-무 생각도 없었다. 대학교 1학년 때 를 봤는데, ‘왜 이렇게 재밌냐’ 감탄하면서 나왔다. (웃음)

“내 길은 이 길이다”
전동석 “노래를 놓는 순간 시체가 될 것 같다”
전동석 “노래를 놓는 순간 시체가 될 것 같다”
전역 후 처음 본 오디션에서 큰 무리 없이 합격해 뮤지컬에 데뷔했다. 한예종 성악과의 경우엔 양준모를 제외하고는 뮤지컬을 하는 학생들이 없는데 학교의 반응은 어땠나.
전동석: (양)준모 형의 경우엔 학교를 졸업하고 뮤지컬을 한 케이스였고, 나는 학교를 다니다가 데뷔를 했으니 학교에서 선택을 하라 했다. 뮤지컬을 하겠다고 했더니 받고 있던 성악클래스에서 빠지라고 했다. 나를 응원해줄 줄 알았는데 만나기만 하면 안 좋은 얘기를 하시더라. 그런데 알고 보니까 그 교수님만 그런 거였다. 다른 선생님들은 거기서 열심히 하라고 격려를 많이 해주신다.

교수님이 많이 아끼셨나 보다.
전동석: 재밌었는데 내 길이 이 길이니까.

그런데 작년에 연극 을 한 게 의외였다. 장르 자체가 코미디이기도 했고, 뮤지컬을 좀 더 하다가 할 수도 있었을 것 같았는데.
전동석: 연극을 통해서 모든 걸 다 배웠다고 해야 되나. 연기나 자신감이나 어린 나이에 밀도를 좀 배울 수 있었던 것 같다. 공연 하루 전날까지도 어떻게 해야 되나 그 생각뿐이었다. 워낙 말이 많았으니까. 사람들이 나를 너무 힘들게 하는 거다. 나도 힘들어 죽겠는데. (웃음) 그래서 그냥 깔고 가자 했다. 연극하자고 했을 때 나도 좀 더 뮤지컬을 하고 하겠다라는 말을 했는데, 형들이나 연출님이 지금 해도 욕먹고 몇 년 뒤에 해도 욕먹는 거 어린 나이에 욕먹고 배우는 게 낫지라고 하셨는데 그 말이 다 맞았다.

길지 않은 시간 동안 대극장 공연을 주로 해왔는데, 은 소극장 공연이었다. 관객의 리액션을 즉각적으로 받는다는 건 어떤 느낌이었나.
전동석: 관객이 바로 앞에 있다는 게 너무 재밌었고 하다 보니까 아쉬워지더라. 관객들이랑 눈이 마주칠 때가 있는데 그게 참 재밌더라. (웃음) 딱 마주치면 좀 있다가 관객이 눈을 먼저 피하는데 옆 사람한테 “계속 쳐다봐 쳐다봐” 하는 소리까지 들리고. (웃음) 거기다가 연극 자체가 코미디였으니까. (김)성기 선배님이 너무 웃기셔서 둘이 눈만 마주치면 웃느라 정신이 없었다. 매 공연마다 손잡고 기도하고 올라갔다. 항상 눈을 못 마주치고 연기를 했는데 또 어깨 흔들리는 거 보면 그게 웃겨서 또 웃고. (웃음)

같이 작업하는 선배들이 굉장히 예뻐하는 것 같다. (웃음)
전동석: 무슨 면을 좋아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형님들이 항상 좋아해준다. 잘 챙겨주고 술도 많이 먹이고. (웃음)

“내가 만든 준은 신비주의였다”
전동석 “노래를 놓는 순간 시체가 될 것 같다”
전동석 “노래를 놓는 순간 시체가 될 것 같다”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은 1년 반 전에 으로 데뷔한 곳이었다. 주연으로 다시 그 무대를 밟았는데 무대에 처음 섰을 때 어떤 기분이 들던가.
전동석: 하아, 정말 떨렸다. 그 생각이 떠올라서. 첫공 때 1막이 기억이 안 난다. 처음 ‘대성당들의 시대’를 부르고 나왔는데 그냥 가만히 서 있었다. 그 이후에 뭘 뿌리는 게 있었는데 (박)은태 형이 끌고 가서 그거 쥐여주고, 뿌리라면 뿌리고, 나가라면 나가고. 유체이탈 같은 상태였다. 다행히 연습을 많이 해둬서 노래는 자동으로 했는데 너무 긴장을 많이 했다.

김준수, 정상윤과 함께 한국군 준 역을 맡았다. 두 사람에 비해 상대적으로 군생활이 아직 익숙하고, 나이대도 맞는데 전동석만의 준은 어떤 인물인가.
전동석: 음… 신비주의? (웃음) 처음에는 신비주의로 가려다가 자꾸 린만 보면 계속 흔들리는 거다. 사랑하는 여자 앞에서는 신비주의고 뭐고 없는 거지. 시크하게 있으려고 했는데 작가다 보니까 궁금증이 유발했고 과거를 듣다 보니까 만나게 된 거다. 사실 집에 바래다주는 건 군인은 다 여자를 좋아하니까. 좋아해서 그냥 쫓아간 거야. (웃음) 그런데 대단한 사람일수록 안에 뭐가 있기 마련인데 린이 그런 여자였고, 그 점에 반해서 계속 사랑하게 된 거다.

호감에서 사랑으로, 사랑에서 다시 이별로 다양한 감정을 표출해야 하는 캐릭터이기도 하다. 작품 안 준과 본인이 가장 비슷한 부분은 어떤 부분인가.
전동석: 내 성격을 많이 투영하진 않았지만, 원래 장난기가 좀 많다.

앞으로도 처럼 한 작품을 책임지는 타이틀롤을 주로 하게 될 텐데 가장 걱정인 부분은 무엇인가.
전동석: 난 노래, 연기 다 부족하다. 하나씩 채워가야 한다. 죽을 때까지 숙제일 것 같다. 그래도 자신감만큼은 세계 최강이라고 생각하는데, (신)성록이 형보다는 아닌 것 같다. (웃음)

언젠간 꼭 해보고 싶은 작품이 있나.
전동석: 랑 . 모두의 꿈인 것 같다. 의 경우 하이드는 노래나 주변 정황상 부각될수밖에 없도록 짜여진 부분이 많다 보니 누구나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지킬을 각인시켜 보고 싶다. 지킬 앤 지킬이면 더 멋있지 않을까? 그리고 무슨 작품을 하든 이 작품, 이 캐릭터는 전동석이다, 라는 걸 만들고 싶다. 몇 번의 앵콜을 해도 나를 잊지 못하게. 작품 하나하나 할 때마다 제대로 만들고 싶은 거다.

올해 소속사에 들어갔다. 뮤지컬 외적인 활동도 하겠다는 의지인가.
전동석: 연극도 뮤지컬도 그런 것처럼 연기적인 디테일이 다르니까 재밌을 것 같다. 경험을 해보고 싶다. 근데 뮤지컬은 절대 놓지 않을 거다. 노래는 꼭 해야 되니까.

노래를 하기 때문에 뮤지컬을 놓지 않겠다는 것인가.
전동석: 노래부터 시작해서 말 그대로 노래쟁이고 노래를 제일 사랑하니까. 노래를 못하면 너무 힘들다. 작년 신종플루가 유행했을 때 다행히 예방을 해서 걸리진 않았는데 고음이 안 나서 노래를 2주간 못했다. 그때 정말 죽고 싶었다. 제일 친한 친구 중 성악 하는 친구가 있는데 전화해서 노래할 수 있는 걸 감사히 여기라고 그랬다. 난 정말 노래를 못할 줄 알았다. 노래를 못하니까 내가 사는 것 같지 않았다. 그래서 그걸 놓는 순간 시체가 될 것 같다. 뮤지컬을 놓으면.

글. 장경진 three@
사진. 채기원 t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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