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수리형제 떠오른 허재X강동희
강동희 논란, 허재로 불똥 튀어
예능인 허재, 과거 미화두길
'인터뷰게임' 강동희(위)와 허재/ 사진=SBS 캡처
'인터뷰게임' 강동희(위)와 허재/ 사진=SBS 캡처
A "역시 형이야, 구하러 왔구나"…B "아니 나도 잡혔어"

앞선 대화는 만화 '독수리오형제' 주인공 켄이 다른 멤버들과 함께 잡혀서 폭탄이 설치된 감옥에 갇히는 장면에 등장하는 대사다. 누리꾼들 사이에서 인기 '짤'로 사용되는데 JTBC '뭉쳐야 쏜다'의 허재가 현재 처한 상황을 떠올리게 한다.

최근 허재는 과거 음주운전 전과와 농구 국가대표팀 감독 시절 아들 발탁 논란 등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올라 곤혹을 치루고 있다. 이는 농구계 후배 강동희가 '뭉쳐야 쏜다' 출연 논란이 불거진 뒤 더욱 거세졌다.

논란의 불씨는 '뭉쳐야 쏜다' 예고편에서 시작됐다. 제작진은 지난 27일 방송 말미 '농구대잔치' 특집 예고편을 공개했다. 해당 영상에는 기아자동차, 고려대학교, 연세대학교, 상암불낙스 등 4개 팀으로 나눠진 왕년의 농구 스타들이 대거 등장했다.

하지만 공개 직후 많은 누리꾼은 기대보다는 비판과 우려의 목소리를 보냈다. 영상 속 기아자동차 팀에는 강동희가 가장 선두로 나서는 모습이 담겼기 때문이다. 그는 2011년 프로농구 전 원주 동부 감독 시절 브로커들에게 4700만 원을 받고 정규리그 일부 경기에서 승부조작을 한 혐의로 농구계에서 퇴출된 인물이다.

비판이 쏟아지자 제작진은 지난 28일 "과거 농구대잔치 당시의 분위기를 재현하는 과정에서 대중 정서에 부합하지 못하는 섭외로 걱정을 끼쳐드린 점, 고개 숙여 사과드린다"며 강동희 출연분을 편집하겠다고 약속했다.

강동희 섭외의 주체인 제작진이 사과했음에도 대중의 분노는 가라 앉지 않았다. 일부 누리꾼은 강동희 출연 논의에는 허재가 상당한 역할을 했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지난해 방송된 SBS 시사·교양 프로그램 '인터뷰게임'에 강동희가 출연한 것도 기아자동차에서 한솥밥을 먹던 선배 허재가 도왔다는 주장이 뒷받침됐다.

당시 강동희를 양지로 끌어낸 허재는 "오랫동안 대인기피증을 겪던 강동희가 미안한 마음을 직접 전하면 좋겠다"고 했다. 이에 강동희는 허재를 만나 용서를 구했다.
전 농구감독 허재/ 사진=텐아시아DB
전 농구감독 허재/ 사진=텐아시아DB
강동희의 '뭉쳐야 쏜다' 출연 역시 감독직을 맡고 있는 허재의 입김이 작용했을 거라는 게 반응이 쏟아졌다. 또 다른 누리꾼들은 허재가 2018년 아시안게임 당시 두 아들 허훈과 허웅을 국가대표팀에 선발해 논란에 휩싸였던 일화도 함께 나열했다. 이들은 허재가 여러 방송을 통해 당시 선수 선발의 공정성을 강조한 것을 언급하며 "끊임 없이 방송의 힘을 빌려 과거를 미화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이번 논란으로 허재의 음주운전 전과도 재조명되고 있다. 허재는 농구선수로 활약하던 1993년, 1995년 음주운전 혐의가 드러났고, 1996년에는 만취상태로 뺑소니 사고를 낸 뒤 운전자 바꿔치기를 한 혐의로 적발됐다. 2003년에도 음주운전을 하다가 불법 유턴을 해 사고를 일으켰다. 하지만 허재는 예능 프로그램에서 '주당' 캐릭터로 그려지고 있으며, 금주에 도전하는 등 음주운전 전과에 대해 전혀 개의치 않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농구 대통령'으로 불리던 허재는 선수 시절부터 남다른 카리스마를 뽐냈다. 감독 시절 얻은 '불낙'이라는 애칭도 그의 불같은 성격에서 나왔다. 하지만 JTBC '뭉쳐야 찬다' 등의 예능 프로그램에서 허재는 '귀여운 아재'로 그려졌다. 현역 농구스타인 두 아들 허웅, 허훈과 함께 출연할 때는 '웃픈 가장'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렇게 허재는 과거 '오빠부대'를 끌고 다니던 시절 못지 않은 인기를 얻었다.

이 때문에 허재는 당분간 농구 코트로 돌아갈 마음이 없다. 그는 지난달 SBS '티키타CAR'에서 감독 제의를 받았으나 '지금은 방송이 좋다. 나중에 하겠다'는 뜻을 전했다고 밝힌 바 있다. 그 이유에 대해 "예능프로그램이 정말 좋다. 즐겁게 웃다 보니 젊어지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방송은 개인의 행복만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어떤 이유에서든 사유화할 수 없고, 개인의 감정이 지나치게 개입되어선 안 된다. 아들들과 행복한 모습을 보여주고 농구계 후배를 끌어주는 모습은 때에 따라 훈훈하게 비칠 수 있지만, 잘못된 과거를 미화시키려는 시도는 시청자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방송인으로서 활동을 이어가려면 농구를 대하는 마음만큼, 어쩌면 그보다 더 '프로페셔널'함을 갖춰야 한다. '농구판에서나 대통령이지 방송가에서는 아니다'라는 냉정한 평가를 가슴 깊이 새기길 바란다.

정태건 텐아시아 기자 biggun@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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