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툰을 비롯해 화려하고 재미있는 볼거리가 넘쳐나는 시대, 네 컷으로 구성된 시사만화는 단출하기 짝이 없다. 그러나 갈수록 퍽퍽해지는 삶 때문인지, 어떤 사람들은 이 짧고 담백한만화에 기대어 현실을 마주하고 이해하기도 한다. 특히 박순찬 화백이 지난 1995년부터 지금까지 <경향신문>에 빠짐없이 연재하고 있는‘장도리’는 시사만화의 건재함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정권이 바뀌고, 어떤 사건이 벌어지더라도 네 컷 안에 매일의 사회 현안을 압축하여 그려내는 이 만화는 늘 짧지만 강한 한 방을 날린다. 그 속에는 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위트마저 들어 있다. 그래서 박순찬 화백에게 물었다. 시사만화는 무엇인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얼마만큼의 생명력을 가지고 있는지. 더불어 20년 가까이 시사만화가로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가 무엇인지도 물었다. 좀처럼 웃지 않는 얼굴로 마주 앉은 사람을 피식피식 웃게 만드는 박순찬 화백은 ‘장도리’와 많이 닮은 사람이었다.



Q. 대통령 선거가 끝난 지한 달 반 정도 됐다. ‘장도리’에 대한 반응도 그때와 지금이 다른걸느끼나.

박순찬: 우리나라에서 대선이 가장 큰 이슈 아닌가. 국민들도 돌아가는 국면이나 후보들의 면면이 궁금하니까 신문을 찾아서 보기 마련이고, 덩달아 시사만화도 보게 된다. 그런데 대선이 끝난 후엔 많은 사람들이 일상으로 돌아간 것 같다. 트위터에서의 반응을 보면 대략 알 수 있다. 예전에는 ‘장도리’가 올라오면 많은 사람들이 리트윗도 하고, 관심도 줬는데 지금은 그 수가 줄었다.

“아이템 선정 과정까지 따지면 실제 작업시간은 24시간 내내”

박순찬 화백 “짧은 순간에도 삶을 고민할 수 있는 만화였으면”
Q. 그래도 마감노동자로서 본인의 일상은 변함이 없을 텐데, 보통 하루를 어떻게 보내나.

박순찬: 일단 점심을 먹고 나면 쉬면서 구상을 한다. 사람들의 일상에서 한 발짝 떨어져서 관찰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한 거지. 평상시에 놓치기 쉬운 것들, 바라보기 어려운 것들을 관찰해서 모순점이 있거나 돌아봐야 되는 부분이 있다면 끄집어내서 그려야 하는 직업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매일 오후 5, 6시부터는 종이를 꺼내서 한 두 시간 정도 만화를 그리고, 7, 8시까지 마감을 한다. 종이신문 위주로 돌아가던 옛날엔 마감시간이 더 빨랐는데, 지금은 인터넷 위주라 부담이 덜하다. 밤이 돼야 신체활동이 원활하게 돌아가는 체질이라 마감시간이 늦을수록 좋지.



Q. 마감을 하기 싫을 때는 없나. (웃음)

박순찬: 독자와의 약속이니까 무조건 해야 한다. 어길 수는 없다. 매일 신문을 채워넣어야 하니까 내가 보기에 형편없는 만화라해도 일단은 마감을 해야 하는 거다.



Q. 매일 아이템을 정하는 것도 만만치 않은 일이겠다.

박순찬: 종이신문이나 인터넷신문을 많이 본다. 그리고 사람들이 어떤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도 살펴봐야 하기 때문에 온라인 커뮤니티를 여기저기 많이 돌아다닌다. 예를 들어 ‘엠엘비파크’나 ‘오늘의 유머’ 같은 곳들.‘일간베스트 저장소’에도 ‘장도리’가 많이 올라오기 때문에 자주 가본다. 사실 옆에서 봤을 땐 노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어떤 일이 왜 벌어지는지, 이런 사건들은 과연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생각하는 과정인 거다. 그래서 실제 작업시간을 따지면 24시간 내내 걸린다고 할 수 있다.



Q. 그렇게고안한 아이디어를 녹여내기에 네 컷이라는 형식이 지극히 제한적이라고 생각하진 않나.

박순찬: 네 컷 만화라는 건 무궁무진하고, 한계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 텍스트의 양은 적지만, 그렇게 적은 텍스트와 그림을 동원해서 굉장히 많은 뉘앙스를 집어넣을 수 있다. 그리다보면 ‘아, 이런 방식으로도 표현할 수 있구나’ 싶은 때가 많다.

Q. 그 방식이라는 게 컷의 전개 방법을 이야기하는 건가. 가령 세 컷은 약하게 가고 마지막에 반전을 준다든지, 두 컷과 두 컷이 대조를 이룬다든지 하는 방법들을 다양하게 쓰던데.

박순찬: 그런 것들은 어떻게 보면 쉬운 방법이다. 개인적으로 제일 좋은 건, 네 컷의 기승전결이 확실하고 부연 설명 없이 대사로만 메시지를 전달해주는 만화다. 그런데 이걸 매일매일 한다는 게 어렵다. 미국 만화 중에 ‘블론디’라는 게 있는데, 이 작품은 팀으로 작업하기 때문에 매일 기승전결을 갖추는 일이 가능하다. 반면, 나는 혼자 다 해야 하니까 매일 사회현안을 파악해서 스토리로 다시 전달한다는 게 쉽진 않다. 그래서 내가 추구하는 진정한 형태의 네 컷 만화는 일주일에 한 번 정도 그리는 것 같다.



Q. 예를 들면 어떤 걸까.

박순찬: 선거 기간 당시, 박근혜 당선인이 인상 쓰고 있는 모습을 마지막 컷에 넣어 그렸던 적이있다. 좀매끄럽게 구성해서 내용도 이해하기 쉽고, 보기에도 편하지 않았나 싶다.

Q. 소위 인터넷에서 유행하는 ‘짤방(사진, 그림 등을 두루 가리키는 말)’들도 참고하나보다.

박순찬: 항상 체크한다. 신문은 초등학생부터 팔십대 노인들까지 보기 때문에 처음엔독자층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다. 세대별로 문화 자체가 다른데 그들이 같이 공감할 수 있는, 누구나 무슨 이야기인지 알 수 있는 것들을 그려야 하니까. 이런 부분을 생각해야 하다 보니지금까지 시사만화는물에 물 탄 듯, 술에 술 탄 듯 특별히 재미있지도 않고 튀는 장르도 아니었다. 그런데 이제 특정세대가 봤을 때 좀 더 재미있을 수 있는 만화도 필요하다고 본다. 하정우 씨의 먹는 모습 그림을 과감하게 쓴 것도 그 때문이었다. 데스크에서 보고 “이게 뭐야. 하정우가 갑자기 왜 나와?”라고 했을 수도 있지만 나한텐 별말이 없었다. (웃음)

“풍자의 대상이 찔려도 공감할 수 있는 만화가 바람직한 만화”

“개인적으로 제일 좋은 것은 네 컷의 기승전결이 확실한 만화다. 그런데 이걸 매일매일 한다는 게 어렵다.”
“개인적으로 제일 좋은 것은 네 컷의 기승전결이 확실한 만화다. 그런데 이걸 매일매일 한다는 게 어렵다.”
Q. 데스크도 중요하지만,독자들의 반응이 가장 중요하지 않나. 뜨끔할 정도로 날카로운 피드백을 준 독자들도 있었는지 궁금하다.

박순찬: 미국 소 때문에 촛불시위가 한창일 때 관련 만화를 그린 적이 있다. 이승복 어린이가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 하니까 공산당이 때렸던 것과, 국민들이 “우리는 미국소가 싫어요”라고 하는데 전경이 밟고 때리는 행동이 비슷한 선상에 있는 거 아니냐는 식으로 그렸다. 그것 때문에 전, 의경 아들을 가진 어머님들이 항의를 많이 하셨다. 열 분 정도를 직접 뵀는데, 그 중 한 분이 화가 나서 내 오른손을 물어버리시더라. 그때 굉장히 슬프다는 생각이 들었다. 옛날 세대만 해도 무장공비라고 하면 거의 악마라고 교육을 받았으니까 ‘어떻게 내 아들과 악마를 비교할 수 있냐’ 라고 생각하셨던 거지. 내 이해심이 부족해서 상처를 건드리는 만화가 됐다. 우리나라엔민감한 문제들이 많은데, 좀 더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되겠다 싶었다.



Q. 정치적인 이슈를 다룰 때 외압은 없었나.

박순찬: 김영삼 정부와 故김대중대통령 시절까지 회유와 압력 같은 건 조금씩 있었다. 실제로 만화 수정 요구가 들어와서 약간 고친 적이 있는데, 故 노무현 대통령 때부터는 좀 없어진 것 같다. 이제 가장 신경써야 할 부분은 기업이다. 왜냐하면 신문들도 광고를 받아야하니까. 그래서 대기업 관련 만화를 그린다고 하면 광고국 쪽에서 곤란하다는 얘기를 간혹 할 때가 있었다. 지금이야 <경향신문>이 사원주주 회사라 직접적인 압력을 받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신경을 좀 쓸 수밖에 없는 거다.



Q. 이런저런 부분들을 고려하다보면 자기검열에 빠지게 될 때도 있지 않을까.

박순찬: 개인적으로도 적절한 수준이 제일 좋다고 본다. 이를 테면 정치인을 비롯해 풍자의 대상이 있는데, 어떤 만화들을 보면 그냥 거친 표현으로인신공격만 하는 경우가 많다. 당사자가 봤을 땐 공감은 못 하고 화만 나는 거지. 풍자의 대상이 되는 사람이 봤을 때도 ‘좀 찔리지만 공감할 수밖에 없다’라는 생각이 들어야 진짜 바람직하고, 수위도 높은 만화라고 생각한다. 표현은 부드러운 것 같지만 메시지 상으로는 진짜센 거다.



Q. 시사만화를 오래 그리고 있는 만큼자신도 모르게 관점이 흔들리는 것 또한 경계해야 될 것 같은데.

박순찬: 관점은 계속 바뀌는 거다. 결국은 주변 환경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것이기도 하고. 예전에는 내가 접할 수 있는 정보라곤 신문, 기자들의 이야기 등 한정된 풀 밖에 없었다. 반면 지금은 SNS나 오프라인 모임 등 좀 더 다양한 통로를 통해서 다양한 사람들의 생각을 접할 수 있다. 그래서 어떻게 보면 오히려 젊었을 때가 좀 더 보수적이었고, 지금이 약간 더 유연해지지않았나싶다.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는 시대적인 과제와 모습을 담고 싶다”
박순찬 화백 “짧은 순간에도 삶을 고민할 수 있는 만화였으면”


Q. 젊은 시절부터 사회 문제에 관심이 많아서 시사만화를 택했던 건가.

박순찬: 그렇진 않았다. 원래는 극화를 하고 싶었지만 졸업할 때쯤 여러 가지 복잡한 상황에 놓였다. 일단 취업을 해야겠다 싶었는데 <경향신문>에서 마침 공채를 열었다. 확실하게 기억나진 않지만, 시험에선 성수대교 붕괴 사건 관련 네 컷 만화와 정치상황 관련 한 컷 만화를 그렸던 것 같다.사실, 대학교 때 만화동아리 활동을 했는데 운동권 쪽이라 사회 현안에 대한 공부를 좀 할 수 있었다. 선배들 말도 많이 듣고, 합숙하면서 사회과학이나 경제서적을 통해 배우기도 한 거다. 열심히 한 편은 아니었지만 아예 접하지 않은 것보다는 뭔가 공부가 된것 같긴 하다.



Q. 동아리에서는 주로 어떤 만화를 그렸나.

박순찬: 노태우, 김영삼 정부 시절에 걸쳐서 학교를 다녔는데 노동자들의 현실이나 정치 현안에 관련된 만화를 그렸다.그런 걸 벽에 붙여서 사람들한테 보여주기도 하고.처음엔 굳이 만화동아리까지 들어가고 싶진 않았다. 혼자 그리면 되는 거고, 동아리에 들어가면 노는 거란 인식이 박혀 있었거든. 다만 미술학원에 다녀본 적이 없어서 그림동아리라면 괜찮지 않을까 싶었는데, 찾다가 없어서 우연히 만화동아리에 들어가게 됐다. 선배들이 밥도 사주고 술도 사주는 바람에 낚여서 이것저것 그린 거지.(웃음) 만화는 초등학생 시절부터 좋아했고 생활화돼 있긴 했다.특히 SF물에 관심이 많았지. 다른 어린이들과 비슷하게 과학 학습 만화, 소년물, TV 만화 등등을 보고 따라 그리기도 했다. 그 중 제일 좋아했던게 윤승운 선생의 <요철발명왕> 같은 작품이었고.



Q. 시사만화가가 될 거라곤 상상도 못했던 건데, 처음에 입사해서 지면을 채워야 한다고 생각했을 땐 막막했겠다.

박순찬: 선배도 없고,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 싶었다. 결국 다른 일간지에 실린 만화를 보는 식으로 찾아서배우는 수밖에 없었다. 가장 영향을 많이 받았던 건 정운경 화백의 ‘왈순아지매’였다. 제일 재밌게 보기도 했고, 표현방식을 보면서 감탄을 많이 하기도 했다. ‘네 컷으로도 많은 내용을 담고, 깊이와 운치가 있는 풍자를 할 수 있구나’ 하는 걸 느꼈다. 지금은 입사한 지 20년 가까이 됐지만, 시사만화에 대한 감을 완전히 잡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힘들 때도 많고, 어떤 방식이 좋은 건지 아직도 잘 모를 때가 있다.옛날 신문에 실린대선배들의 만화들을 다시 보면 ‘나는한참 더 수련이 필요하겠구나’ 싶기도 하다.



Q. 20년을 해도 아직 힘든 작업인데, 이렇게 오래할 수 있었던 이유는 뭐라고 생각하나.
박순찬: 똑같은 작업이지만 거기에 담는 내용들은 다르다. 가령 이런 것. 매년 어린이날엔 어린이 관련 만화를 그리지만, 10여 년을 그리다 보니 어린이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바뀐다. 점점 사회적 강압이 심해지고, 어린이들의 삶도 힘들어지는 문제들을 더 많이 그려야 되는 상황이 된 것 같다. 옛날보다 정도가 더 심해진 거지. 명절도 매년 동그란 달이 뜨는 건 같지만, 맞이하는 사람들의 느낌은 다르다. 그렇게 사회 환경이나 문화가 바뀌기 때문에 하루하루 변화하는 사안들을 좇다 보니 금방 시간이 흐른 것 같다.



Q. 앞으로 계속 시사만화를 그리면서 궁극적으로이루고 싶은이상향이 있을까.

박순찬: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는 시대적인 과제와 모습을 담고 싶다. 그래서 ‘잘 먹고 잘 살면 된다’가 아니라 우리가 과연 어떻게 살아야 인간다운 삶을 사는 것인지, 혹은 좋은 사회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인지 고민할 수 있으면 좋겠다. 이른 아침, 사람들이신문을보면서아주 짧은순간에도그렇게 생각할 수 있는 내용을 담는 게목표다.

Q. 이젠 활동하는 시사만화가도많이 없고, 신문도 사양산업이라는 이야기가 계속 나오는 상황인데 미래가 있다고 보나.

박순찬: 솔직히 신문을 통해 ‘장도리’를 보는 사람이 별로 없다. 거의 다 인터넷이나 모바일을 통해서 본다. 그래서 우리가 편의상 웹툰이나 극화, 잡지 만화, 시사만화 등으로 구분하고 있는 것도 무의미하다. 같은 플랫폼을 통해서보는 것이기 때문에그냥 다 만화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니 시사만화가 과연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지 생각하는 것도 별 의미가 없지. 다만 일반인들도 만평을 대신할 수 있는 이미지들을 많이 생산해내고 있기 때문에 시사만화도 경쟁력이 없어지면 도태될 것이다. 신문에 실린다고 권위를 부여받는 시대는 지났다. 같은 장 안에서 평가받는 거다.



Q. 늘 긴장할 수밖에 없겠다.

박순찬: 그래서 어디든 열심히 돌아다니면서 모니터링을 하는 거다. 그것보다 좀 더 업그레이드 된 결과물을 내놔야 하니까. 온라인에 돌아다니는 것보다 뒤떨어지는 걸 그리면 의미도 없고, 나 자신에 대한 용납도 안 된다. 작가가 재미없는만화를 그리고 싶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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