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닥치고 패밀리>의 심지호씨에게
저만 그런가요? 가끔 한동안 애정을 쏟았던 드라마 속 캐릭터들이 지금쯤 어디서 뭘 하며 지내는지, 궁금해질 때가 있어요. 이를테면 강원도 목장 부근을 지나다가 문득 “얼마면 돼? 얼마면 되겠니?”를 부르짖던 KBS <가을동화>의 태석(원빈),이 생각난다거나 MBC <해를 품은 달>의 양명군(정일우)을 보다 보면 갑자기 MBC <거침없이 하이킥>의 윤호와 서 선생님은 그 후 어떤 사이가 됐을지 궁금해지는, 뭐 그런 식의 물음표들 말이에요. 어제는 분위기 탓인지 느닷없이tvN <응답하라 1997>의 윤태웅(송종호)이 생각나기도 했습니다. 배려를 아는 진정한 리더 윤 후보는 과연 대선 레이스를 계속해서 이어갔을까요? 이런 마음을 미리 배려해서인지 때로는 ‘몇 년 후’라는 자막과 함께 액자에 담긴 결혼사진이나 아이들 사진을 보여주며 끝을 맺는 드라마들도 있죠. SBS <시크릿 가든>이나 MBC <내 이름은 김삼순>이 그랬잖아요.
내 마음 속의 캐릭터 하나쯤은 있잖아요
에서 까칠하지만 아름다운 한태훈에게 어쩔 수 없이 끌렸죠." src="https://img.hankyung.com/photo/202001/AS10t6GqSA9vGNWE.jpg" width="555" height="185" align="top" border="0" />
그런 의미에서 KBS 청소년 드라마 <학교> 시리즈는 생각나는 인물이 참 많은 작품이에요. 일일이 손으로 꼽기조차 어려울 정도잖아요. 그 때문인지 얼마 전 다시 시작된 <학교 2013>도 초반부터 뜨거운 관심을 모으고 있는데요. 보다보니 <학교 1>의 배두나, 최강희며 <학교 2>의 하지원, 김민희 씨가 맡았던 캐릭터들처럼 색다른 매력이 있던 캐릭터들이 생각나더라구요. 그 중에서도 저는 특히 <학교 2>의 까칠했던 한태훈(심지호)이 매번 생각나더군요. 혹시 기억나는 분 계실는지 모르겠어요. “불의는 참아도 불이익은 못 참아”, 아직까지 제 머릿속을 맴도는 한태훈의 한 마디입니다. 그 아이의 성격을 제대로 대변해주는 대사였죠. 불의를 참는 것만으로도 매력 반감이거늘 거기에다가 이기적이고 소심하고, 결벽증 같은 것도 좀 있었잖아요. 한 마디로 재수 없는 타입이었는데 그럼에도 왠지 모를 묘한 끌림이 분명 있었어요.
그리고 시간이 흘러 KBS <닥치고 패밀리>에서 카페 주인 차지호(심지호)를 처음 보던 날, 한참을 혼자 실실 웃었답니다. 집주인 딸 열희봉(박희본)에게 “쓰레기든 쓰레기 비슷한 거든 빨리빨리 치우시죠”라며 까탈을 부리는 장면이었는데요. 우리의 한태훈, 그녀석이 십여 년이 지나 짠하고 그곳에 나타난 것 같았다니까요. 키도 더 커진 것 같고, 품새도 넓어진 것 같고, 말쑥한 옷차림 때문인지 훨씬 폼이 나는 한태훈이 거기 있었습니다. 서빙용 검정 앞치마가 그렇게 유용한 멋내기 아이템일 줄이야! 그러니 당연지사, 남다른 애정으로 지켜볼 수밖에요. 하지만 초반에는 사사건건 꼬투리만 잡으려드는, 말본새가 곱지 않은 청년으로만 그려지는 터라, 그래서 좀 안타까웠습니다. 마냥 편을 들어줄 수도 없는 것이 솔직히 차지호도 불의라면 눌러 참되 불이익이라면 절대 못 참을 인물이잖아요? 본래 성격은 세월도 어찌하지 못하나 보다, 하며 또 웃었죠 뭐.
업그레이된 심지호 씨 환영합니다
그런데요. 차지호는 하루하루 조금씩 사람들의 마음속으로 스며들기 시작했어요. 자신감 없는 희봉이를 ‘헤라봉레스’라느니 ‘아줌마’라느니 놀리는 척하며 슬며시 도와주고 챙겨주고, 또 누군가가 못생겼다고 뒷말이라도 할라치면 즉시 응징을 하기도 하죠. 꾸물거리는 법이 절대 없어요. 희봉이의 곱슬곱슬한 앞머리와 드러난 이마를 두고 늘 타박을 하더니만 지난주에 보니 스트레이트파마를 한 희봉이에게 그걸 다시 되돌려내라며 또 한 잔소리를 해대더라고요. 지금껏 이렇게 어울리지 않는 듯 잘 어울리는 커플은 본 적이 없는 것 같아요. 부조화 속의 조화라고 할까요. 한 치의 오차도 용납하지 못하는 차지호가 허술하기 짝이 없는, 털털한 희봉이를 좋아한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긴 하나 아마도 차지호는 내면의 반듯함을 본 걸 거예요. 그런 점들이 듬직하잖아요. 신뢰가 가고, 한층 더 정이 가고. 생각해보니 사실은 한태훈이 아니라 연기자 심지호 씨의 안위가 궁금했던 거지 싶네요. 중간에 한 번씩 드라마를 통해 만나긴 했어도 한태훈 특유의 매력이 엿보이질 않아 아쉬웠거든요. 다시 그 매력을 볼 수 있어서, 아니 몇 단계 업그레이드 시켜서 돌아 와준 심지호 씨, 두 손을 들어 환영합니다.
정석희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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