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이들이 MBC 를 보고 올드하다고들 합니다. 예능 프로그램도 시대에 따라 진화를 해야 마땅한데 오히려 퇴보한 느낌이라 아쉽다는 반응이 태반이었어요. 그렇게 빤한 질문 밖에 못하느냐는 MC를 향한 질타도 이어졌습니다. 뿐만 아니라 아예 제작진이 교체됐다는 기사까지 나왔더군요. 불과 출발 한 달 만에 말이죠. 그런데요. 저는 가 좋습니다. 그건 아마도, 제가 올드하기 때문이겠죠? 낡은 취향이라고 나무라도 어쩔 수 없네요. 저는 초대 손님의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오롯이 귀 기울일 수 있는, 그런 편안한 시간들이 좋은 걸요.
“이런 생각을 많이 해요. 음악이란 게 뭐 워낙 무궁무진한 넓은 세상이기 때문에 사실 음악 세계를 섭렵하려면 한평생이 모자라지요. 그런데 간단한 자기표현을 하기 위해 어마어마한 음악 지식이 필요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이런 프로그램도 강한 엑기스만을 요구하고, 아주 강한 맛에 길들여져 있는 것 같아요. 솔직히 좀 느긋하게 생각 좀 해가면서 얘기 합시다. 천천히. 병진 씨 바빠요?” 네 번째 초대 손님 김창완 씨의 느닷없는 제안이었습니다. 당황한 기색의 주병진 씨는 “전화해서 친구들을 이리로 오라고 해야 되겠네요”라며 넘겼지만 만약 여느 프로그램이었다면, 요즘 유행하는 집단 MC 체재였다면 김창완 씨가 쉬엄쉬엄하자며 느릿느릿 이야기를 이어가는 동안 누군가가 말을 끊고 들어오지 않았을까요? 그러나 이 프로그램은 김창완 씨의 이야기에 집중했고 또 시청자에게 그대로 잘 전달했습니다.
김창완 씨의 이야기에 귀 기울일 수 있어 좋았습니다 무엇보다 좋았던 건 김창완 씨가 대학 시절 처음으로 교본에 따라 연주했다는 D코드가 흘러나왔을 때에요. 그 단순한 소리에 심취해 혼자 장독대 위에 앉아 기타 줄을 튕기고 또 튕기며 시간 가는 줄 모르셨다는데요. 당시 즐겨 듣던 바이올린 연주곡 지고이네르 바이젠이며 어떤 명성이 자자한 음악보다 더 감미롭게 들리시더래요. 대가의 솜씨여서일까요? D코드가 이렇게 예쁜 소리였나 싶더군요. 당장 창고에 방치해두었던 기타를 꺼내오고 싶을 정도였습니다. 그 소박한 연주는 작은 것을 소중히 여길 줄 모르는 요즘 세상을 향한 김창완 씨의 일갈이었어요. 왜 자기 자신을 바라보지 않느냐, 세상 모든 게 다 자기 안에 있는데 왜 자꾸 남과 비교하려 드느냐는 속 깊은 조언, 그야말로 폐부를 찌르더군요. 그러나 역시 다른 토크쇼였다면 그렇게 한참을 혼자 기타 줄을 튕기게 내버려두지 않았을 겁니다.
어쩌면 김창완 씨 편을 보면서도 왜 MBC ‘무릎 팍 도사’처럼 집요하게 캐질 못하느냐, 왜 흥미진진한 에피소드들을 끌어내지 못하느냐 답답해한 이들이 있을지도 모르겠어요. 그러나 저는 본래부터 김창완 씨를 좋아하는 사람이긴 하지만 이 프로그램을 통해서 존경하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과거 대시해온 연예인은 없었는지, 요즘 걸 그룹 멤버 중 누구에게 관심이 가는지, 작업을 같이 한 연기자들 중에 여자로 느껴졌던 이는 없는지 뭐 이런, 토크쇼라면 흔히 나올 법한 질문은 하나도 던져지지 않았지만 이제껏 알지 못했던 김창완 씨의 심도 깊은 면면이 드러나서 반가웠고 나아가 더 많은 이야기를 듣고 싶어지기도 했습니다. 아마 함께 했던 관객들도 저와 같은 마음이었을 거예요. 그 모든 게 들어주고 기다려줬기 때문이 아닐까요? 내가 알고 싶은 걸 파고들기 보다는 그날의 게스트가 꼭 들려주고 싶은 얘길 할 수 있게 판을 벌려준 셈이니까요.
의 미덕이 사라질까 걱정입니다 사실 우리에게 익숙한 건 마냥 들어주는 진행이 아니라 설전이 오가는 양상의 진행이죠. 그런 이유로 KBS 도 답답하다는 소리를 한동안 들었습니다. MC들이 하는 역할이 대체 무엇이냐, 흐름을 이끌 인재가 없어 게스트에게 주도권을 빼앗기는 꼴이 아니냐는 지적을 숱하게 받았으니까요. 하지만 꼬박 1년 넘게 인내심을 갖고 기다려준 결과 이제는 보란 듯 자기 색을 찾아 승승장구 중입니다. 역시나 일반인의 하소연을 들어주는 KBS 도 누군가의 얘기에 모두가 함께 귀를 기울이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했고요.
따라서 12년이라는 오랜 공백을 깨고 복귀한 주병진 씨와 뉴스를 진행하다가 바로 예능에 투입된 최현정 아나운서에게도 시간을 좀 줬으면 합니다. 변화가 시급한 건 맞지만 하다못해 밥을 지을 적에도 뜸들일 시간은 반드시 필요한 법이니까요. 분명한 건 매회 한 걸음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사실이 아닐는지요. 시청률의 압박으로 인해, 제작진의 조바심으로 인해 이 프로그램의 장점인 들어주는, 기다려주는 미덕이 증발해버릴까 그게 걱정입니다. 글. 정석희 (칼럼니스트)
편집. 이지혜 seven@
“이런 생각을 많이 해요. 음악이란 게 뭐 워낙 무궁무진한 넓은 세상이기 때문에 사실 음악 세계를 섭렵하려면 한평생이 모자라지요. 그런데 간단한 자기표현을 하기 위해 어마어마한 음악 지식이 필요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이런 프로그램도 강한 엑기스만을 요구하고, 아주 강한 맛에 길들여져 있는 것 같아요. 솔직히 좀 느긋하게 생각 좀 해가면서 얘기 합시다. 천천히. 병진 씨 바빠요?” 네 번째 초대 손님 김창완 씨의 느닷없는 제안이었습니다. 당황한 기색의 주병진 씨는 “전화해서 친구들을 이리로 오라고 해야 되겠네요”라며 넘겼지만 만약 여느 프로그램이었다면, 요즘 유행하는 집단 MC 체재였다면 김창완 씨가 쉬엄쉬엄하자며 느릿느릿 이야기를 이어가는 동안 누군가가 말을 끊고 들어오지 않았을까요? 그러나 이 프로그램은 김창완 씨의 이야기에 집중했고 또 시청자에게 그대로 잘 전달했습니다.
김창완 씨의 이야기에 귀 기울일 수 있어 좋았습니다 무엇보다 좋았던 건 김창완 씨가 대학 시절 처음으로 교본에 따라 연주했다는 D코드가 흘러나왔을 때에요. 그 단순한 소리에 심취해 혼자 장독대 위에 앉아 기타 줄을 튕기고 또 튕기며 시간 가는 줄 모르셨다는데요. 당시 즐겨 듣던 바이올린 연주곡 지고이네르 바이젠이며 어떤 명성이 자자한 음악보다 더 감미롭게 들리시더래요. 대가의 솜씨여서일까요? D코드가 이렇게 예쁜 소리였나 싶더군요. 당장 창고에 방치해두었던 기타를 꺼내오고 싶을 정도였습니다. 그 소박한 연주는 작은 것을 소중히 여길 줄 모르는 요즘 세상을 향한 김창완 씨의 일갈이었어요. 왜 자기 자신을 바라보지 않느냐, 세상 모든 게 다 자기 안에 있는데 왜 자꾸 남과 비교하려 드느냐는 속 깊은 조언, 그야말로 폐부를 찌르더군요. 그러나 역시 다른 토크쇼였다면 그렇게 한참을 혼자 기타 줄을 튕기게 내버려두지 않았을 겁니다.
어쩌면 김창완 씨 편을 보면서도 왜 MBC ‘무릎 팍 도사’처럼 집요하게 캐질 못하느냐, 왜 흥미진진한 에피소드들을 끌어내지 못하느냐 답답해한 이들이 있을지도 모르겠어요. 그러나 저는 본래부터 김창완 씨를 좋아하는 사람이긴 하지만 이 프로그램을 통해서 존경하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과거 대시해온 연예인은 없었는지, 요즘 걸 그룹 멤버 중 누구에게 관심이 가는지, 작업을 같이 한 연기자들 중에 여자로 느껴졌던 이는 없는지 뭐 이런, 토크쇼라면 흔히 나올 법한 질문은 하나도 던져지지 않았지만 이제껏 알지 못했던 김창완 씨의 심도 깊은 면면이 드러나서 반가웠고 나아가 더 많은 이야기를 듣고 싶어지기도 했습니다. 아마 함께 했던 관객들도 저와 같은 마음이었을 거예요. 그 모든 게 들어주고 기다려줬기 때문이 아닐까요? 내가 알고 싶은 걸 파고들기 보다는 그날의 게스트가 꼭 들려주고 싶은 얘길 할 수 있게 판을 벌려준 셈이니까요.
의 미덕이 사라질까 걱정입니다 사실 우리에게 익숙한 건 마냥 들어주는 진행이 아니라 설전이 오가는 양상의 진행이죠. 그런 이유로 KBS 도 답답하다는 소리를 한동안 들었습니다. MC들이 하는 역할이 대체 무엇이냐, 흐름을 이끌 인재가 없어 게스트에게 주도권을 빼앗기는 꼴이 아니냐는 지적을 숱하게 받았으니까요. 하지만 꼬박 1년 넘게 인내심을 갖고 기다려준 결과 이제는 보란 듯 자기 색을 찾아 승승장구 중입니다. 역시나 일반인의 하소연을 들어주는 KBS 도 누군가의 얘기에 모두가 함께 귀를 기울이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했고요.
따라서 12년이라는 오랜 공백을 깨고 복귀한 주병진 씨와 뉴스를 진행하다가 바로 예능에 투입된 최현정 아나운서에게도 시간을 좀 줬으면 합니다. 변화가 시급한 건 맞지만 하다못해 밥을 지을 적에도 뜸들일 시간은 반드시 필요한 법이니까요. 분명한 건 매회 한 걸음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사실이 아닐는지요. 시청률의 압박으로 인해, 제작진의 조바심으로 인해 이 프로그램의 장점인 들어주는, 기다려주는 미덕이 증발해버릴까 그게 걱정입니다. 글. 정석희 (칼럼니스트)
편집. 이지혜 se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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