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배우들이 그런 피드백을 무대의 매력으로 많이 꼽는데, 유준상이라는 배우가 뮤지컬을 하는 가장 큰 이유는 뭔가.
유준상 : 이런 고민과 노력을 계속하게 만든다는 거. 예를 들어 어제 OST 녹음을 하는데 녹음을 하면서 내 목소리를 듣고 훈련하면 노래가 조금씩 더 좋아진다. 문득 이제부터 하는 공연은 조금 더 잘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똑같은 연습을 오십 번, 백 번 해서 아까 말한 줄을 타는 걸 내 안에 박아 놓는 거다. 그런 과정이 너무 재밌다. 공연을 하면 그걸 얻을 수 있다.
“원래 애드리브의 끼가 많이 잠재되어 있지만 자제한다” 그야말로 몸에 새기는 건데 그렇게 새긴 것들이 다른 장르로 옮겨갈 때는 방해가 되나, 플러스가 되나.
유준상 : 플러스가 되지만 분명 같진 않다. 여긴 대극장이라 동작을 크게 하지만 영화 찍을 땐 그렇게 하면 안 된다. 이 손을 크게 들어 올리는 에너지를 그대로 유지하며 동작은 작게 표현해야 하니까 힘들다. 내 동작을 버리고 정서적인 디테일로 가는 게. 그런 건 다 감독님들이 만들어주는 거다. 감독님을, 디렉션을 철저히 따른다. 무조건. 의 일차적인 목표도 연출님께서 만족하는 공연이다. 연출이 만족하는 공연은 분명히 관객도 만족한다. 그 연출이 올바르게 그려진다면.
하지만 배우란 자의식이 강한 직업일 수 있는데 스스로를 드러내고 싶은 욕구가 없나.
유준상 : 여기서 이미 연출님이 만들어줬는데 거기서 뭘 더 바라나. 내가 ‘그만~~~’ 하나 부르는 거 만들어주려고 조명팀이 노력하고 뒤에서 무대 배경을 돌리고 있는데. 물론 그런 건 있다. 연출자에 대한 역량을 미리 판단할 필요는 있지. 그런데 이번 왕용범 연출님의 경우엔 예전에 뮤지컬 하는 거 보고 정말 잘 되는 연출자가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배우를 만들어주는 연출자였다.
배우를 만들어준다는 건 어떤 의미인가.
유준상 : 가령 의 경우 강우석 감독님이 배우를 만들어주는 거다. 에너지 많은 배우들을 다 써서 하나로 융화하게 만들어 준다. 한 신 한 신 마다. 를 보면 편집에서 들어낸 신이 거의 없다. 내가 찍은 건 거의 다 나왔다. 그런데 그러기가 쉽지 않다.
강우석 감독의 경우 모든 그림을 자기 머릿속에 다 그려 넣는 타입이니까.
유준상 : 의 홍상수 감독님도 마찬가지다. 찍은 것 중 편집에서 빠진 게 거의 없다. 철저하게 계산적인 거지. 가령 지금 셋이서 말하는 신을 찍고 있으면 세 명의 합이 다 맞아야 하지 않나. 한 명은 고개를 돌리고, 한 명은 손을 테이블에 올리고, 한 명은 컵을 잡는데, 이 때 그 컵을 잡는 이유가 있어야 하는 거다. 그러다 시선을 이유 없이 돌리면 컷이 되는 거고.
애드리브는 허용을 안 하는 타입의 연출자들인 건가.
유준상 : 그렇다.
그럼 본인은 어떤 편인가.
유준상 : 원래 애드리브의 끼가 많이 잠재되어 있지만 자제한다. 예전엔 자제 못했는데, 지금은 애드리브 역시 결국 전체 작품에 속한 하나의 과정이라고 생각해서 전체 그림에 도움을 못 주면 절대 하지 않는다. 어떻게든 연출자의 느낌을 잘 전달해줄 수 있는 배우가 되고 싶다. 연출자들이 원하는 걸 하면 몰랐던 것들을 발견하게 된다. 나에게 이런 면이 있었네? 이 분이 나를 이렇게 만들어 주네? 아, 감사하다. 그렇게 뭐 하나가 생기는 거고 하나씩 쌓여가는 거다.
“연출자를 한 번 믿으면 끝까지 간다” 의 어딘가 허세 있는 지식인, 의 똑 부러진 엘리트 검사, 의 타락한 형사 모두 너무 다른 느낌인데 그 모든 변화를 연출자의 공으로 돌리는 건가.
유준상 : 정말 다 연출자가 하라는 대로 한 거다. 대신 거기까지의 과정이 중요했지. 왜 이렇게 해야 하는지 정확한 디렉션을 주니까. 그런 게 없으면 흔들린다. 이렇게 표현하고 저렇게 표현하는데 이것도 좋고 저것도 좋다고 하면 나는 다음 신을 어떻게 찍어야 하나 싶지. 그런데 연출자가 ‘이건 이거야, 미안한데 몇 컷만 더 할게’ 이러면 그런 생각이 없어지니까. 찍을 때 강우석 감독님이 그랬다. “이거 웃기는 신이야, 자장면 먹는 신.” 그래서 “어떻게 웃겨야 하나요?” 그러면 “그냥 먹어, 부담 갖지 말고. 그런데 이거 못하면 너랑 나랑 힘들어 진다.” 그래서 했는데 컷. “에이, 유준상 괜히 캐스팅 했네. 이런 거 잘하는 줄 알았는데. 액션, 컷. 야, 다음 신 준비해.” 그래서 “네?” 이러면 “내가 웃었다”고 그런다. “아니 감독님 저는 제가 뭘 했는지도 모르겠는데…” “내가 웃었다고.” 만약 관객들이 안 웃으면 그게 자기 책임이라는 말이 거기 들어있다. 그렇게 하면 어떤 걸 하던 믿을 수밖에 없는 거지. 그래서 연출자를 한 번 믿으면 끝까지 간다.
얼마 전 tvN 에 출연해 흥행 실패 이후 작품 선택이 신중해졌다고 했는데.
유준상 : 사실 누구나 타석에 들어서면 삼진을 당하고 싶지 않다.
삼진도 많이 당했나.
유준상 : 삼진 정도가 아니지. 다만 그런 생각은 있다. 아침 연속극을 하든, 주말 드라마를 하든, 를 하는 그 순간만큼은 최대한 열심히 한다. 관객이 세 명 들었던 적도 있었는데 오히려 더 열심히 했던 것 같다. 진짜 큰 작품이니 더 잘해야지, 이건 작으니까 설렁설렁해야지 이런 건 없었다. 그러다보니까 좋은 분들과도 만나게 되는 거 같다. 앞으로도 그러길 바라야지.
그런데 이 분야가 본인이 열심히 한다고 일이 들어오는 건 아니지 않나. 상업적 결과가 중요한데 그걸 보는 시야가 중요하지 않을까.
유준상 : 사실 한다고 된다는 보장도 없고, 결국 안 되는구나, 이럴 때가 많은데 그냥 또 하는 거 같다. 한 작품 하고서 역시 안 돼, 이러다가 또 부르면 네, 하면서 열심히 하고. 계속 그런 거고 앞으로도 그럴 거 같다. 그런 과정 속에서 들어온 작품이 괜찮다 싶으면 괜찮다고 끝까지 생각하고, 들어가는 과정까진 다 오케이 한다. 그러다 연습 들어가고 정말 한다는 걸 마음에서 믿게 되면 정말 괜찮네, 이러고. 하하하.
그건 그만큼 들어갈 때까진 들어가는 게 아니라는 걸 알아서겠다.
유준상 : 나만 그런 게 아닐 거다. 이 쪽 일하는 사람 모두가 그럴 거다. 연습 한 달 하다가 엎어지는 작품도 있고, 공연도 올려야 올리는 거고. 이미 너무 많은 일을 당했기 때문에 웬만해서는 흔들리지 않는다. 그냥 혼자서 또 당했네, 이러고.
그러면서 자아가 더 강해진 거 같나.
유준상 : 더 여리게 되는 것도 있고 더 튼튼해지는 것도 있고. 그런 경험들이 분명 이 악물게 하는 요소가 되기도 한다. 그런 경험들을 계속 당한다. 지금도, 재작년에도 있었고, 작년에도 있었고. 그럴수록 좌절하지 말자, 힘내자, 이러는 거지.
“40대 중후반엔 이 되어보고 싶다” 그럼 최근처럼 좋은 작품을 자주 하는 시기에도 의기양양하지 않을 거 같다.
유준상 : 그렇지. 그리고 뜬 걸로 따지면 오히려 옛날 MBC 때가 제일로 많이 떴다. 그 땐 뜬 줄도 몰랐는데 정말 많이 떴던 거 같다. 다들 반겨주시고. 그러다 훅 가라앉고. 그래도 어떻게든 버티지 않나. 지금도 내가 떴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뭐 하는지 모르는 분들도 많다. 내 인생 중 가장 바쁜 시기를 보내고 있는데 대체 몇 년 동안 뭐 했냐고 하는 분들도 있다. 하하하하. 드라마에 안 나오니까. 뮤지컬 안 보시는 분들은 모른다. 뮤지컬은 사실 마니아층이 정해진 장르고, 어쩌다 가족끼리 보러 오는 거니까. 그렇게 어쩌다 오는 분들이 많아지면 좋겠다. 지금처럼 내가 영화 찍은 걸 보고 날 보러 오는 분이 생겨도 좋고.
뮤지컬을 하다가 타 장르로 나가는 사람들에게는 그런 사명감이 있더라. 자기를 통해서 대중들이 뮤지컬을 많이 보면 좋겠다고.
유준상 : 사명감이라기보다는 편안하게 접근하면 좋겠다. 사실 나는 이쪽의 첫 세대였고, 그래서 좀 외롭고 카메라 앞에서 연기할 때 왜 춤을 추느냐는 얘기를 듣기도 했지만 지금은 다들 편안하게 하지 않나. 그러면 된 거다.
그럼 그렇게 바뀐 환경에서 본인은 무엇을 할 수 있을 거 같나.
유준상 : 버텨야지. 버텨서 나이 60에도 앤더슨을 하고. 물론 그러려면 엄청난 노력이 수반되어야 할 거다. 갈수록 가사 까먹는데 나만 그런 게 아니라 40대 배우들이 다 그런다. 하하. 그래도 버티려고 한다.
기억력의 감소가 있지만 나이를 먹어 더 좋은 게 있지 않나.
유준상 : 그럼, 무시 못 하지. 앤더슨도 20대가 하면 아무리 잘 하더라도 지금 같은 느낌이 안 나올 거다. 그 나이가 되어야 할 수 있는 게 있다. 가령 의 실제 주인공인 존 카메론 미첼도 40대 중후반인데, 나도 그 나이 언저리에 이 되어보고 싶다.
이처럼 나이를 먹는다는 건 카메라 뒤의 시간 역시 포함하는 것 아닌가. 앞서 말한 것처럼 밤늦게까지 음악을 듣고 그림을 그리는 것들이 배우로서의 유준상에게 소급하는 것 같나.
유준상 : 옛날에도 그랬다. 막연하게 이런 것들을 하는 게 연기에 도움이 되겠지. 요즘 뮤지컬을 하고 나면 끝나고 안 가고 혼자 공연장 앞 벤치에 멍하게 앉아있는 시간이 있는데, 그 쓸쓸한 순간도 어느 순간 도움이 되는 지점이 있다. 누군가는 연기 하나도 제대로 못하면서 이것저것 다 하느냐고, 한 우물을 파야 하지 않느냐고 하는데 나는 한 우물을 파기 위해 많은 걸 하는 거다.
글. 위근우 eight@
사진. 이진혁 eleven@
편집. 이지혜 seven@
유준상 : 이런 고민과 노력을 계속하게 만든다는 거. 예를 들어 어제 OST 녹음을 하는데 녹음을 하면서 내 목소리를 듣고 훈련하면 노래가 조금씩 더 좋아진다. 문득 이제부터 하는 공연은 조금 더 잘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똑같은 연습을 오십 번, 백 번 해서 아까 말한 줄을 타는 걸 내 안에 박아 놓는 거다. 그런 과정이 너무 재밌다. 공연을 하면 그걸 얻을 수 있다.
“원래 애드리브의 끼가 많이 잠재되어 있지만 자제한다” 그야말로 몸에 새기는 건데 그렇게 새긴 것들이 다른 장르로 옮겨갈 때는 방해가 되나, 플러스가 되나.
유준상 : 플러스가 되지만 분명 같진 않다. 여긴 대극장이라 동작을 크게 하지만 영화 찍을 땐 그렇게 하면 안 된다. 이 손을 크게 들어 올리는 에너지를 그대로 유지하며 동작은 작게 표현해야 하니까 힘들다. 내 동작을 버리고 정서적인 디테일로 가는 게. 그런 건 다 감독님들이 만들어주는 거다. 감독님을, 디렉션을 철저히 따른다. 무조건. 의 일차적인 목표도 연출님께서 만족하는 공연이다. 연출이 만족하는 공연은 분명히 관객도 만족한다. 그 연출이 올바르게 그려진다면.
하지만 배우란 자의식이 강한 직업일 수 있는데 스스로를 드러내고 싶은 욕구가 없나.
유준상 : 여기서 이미 연출님이 만들어줬는데 거기서 뭘 더 바라나. 내가 ‘그만~~~’ 하나 부르는 거 만들어주려고 조명팀이 노력하고 뒤에서 무대 배경을 돌리고 있는데. 물론 그런 건 있다. 연출자에 대한 역량을 미리 판단할 필요는 있지. 그런데 이번 왕용범 연출님의 경우엔 예전에 뮤지컬 하는 거 보고 정말 잘 되는 연출자가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배우를 만들어주는 연출자였다.
배우를 만들어준다는 건 어떤 의미인가.
유준상 : 가령 의 경우 강우석 감독님이 배우를 만들어주는 거다. 에너지 많은 배우들을 다 써서 하나로 융화하게 만들어 준다. 한 신 한 신 마다. 를 보면 편집에서 들어낸 신이 거의 없다. 내가 찍은 건 거의 다 나왔다. 그런데 그러기가 쉽지 않다.
강우석 감독의 경우 모든 그림을 자기 머릿속에 다 그려 넣는 타입이니까.
유준상 : 의 홍상수 감독님도 마찬가지다. 찍은 것 중 편집에서 빠진 게 거의 없다. 철저하게 계산적인 거지. 가령 지금 셋이서 말하는 신을 찍고 있으면 세 명의 합이 다 맞아야 하지 않나. 한 명은 고개를 돌리고, 한 명은 손을 테이블에 올리고, 한 명은 컵을 잡는데, 이 때 그 컵을 잡는 이유가 있어야 하는 거다. 그러다 시선을 이유 없이 돌리면 컷이 되는 거고.
애드리브는 허용을 안 하는 타입의 연출자들인 건가.
유준상 : 그렇다.
그럼 본인은 어떤 편인가.
유준상 : 원래 애드리브의 끼가 많이 잠재되어 있지만 자제한다. 예전엔 자제 못했는데, 지금은 애드리브 역시 결국 전체 작품에 속한 하나의 과정이라고 생각해서 전체 그림에 도움을 못 주면 절대 하지 않는다. 어떻게든 연출자의 느낌을 잘 전달해줄 수 있는 배우가 되고 싶다. 연출자들이 원하는 걸 하면 몰랐던 것들을 발견하게 된다. 나에게 이런 면이 있었네? 이 분이 나를 이렇게 만들어 주네? 아, 감사하다. 그렇게 뭐 하나가 생기는 거고 하나씩 쌓여가는 거다.
“연출자를 한 번 믿으면 끝까지 간다” 의 어딘가 허세 있는 지식인, 의 똑 부러진 엘리트 검사, 의 타락한 형사 모두 너무 다른 느낌인데 그 모든 변화를 연출자의 공으로 돌리는 건가.
유준상 : 정말 다 연출자가 하라는 대로 한 거다. 대신 거기까지의 과정이 중요했지. 왜 이렇게 해야 하는지 정확한 디렉션을 주니까. 그런 게 없으면 흔들린다. 이렇게 표현하고 저렇게 표현하는데 이것도 좋고 저것도 좋다고 하면 나는 다음 신을 어떻게 찍어야 하나 싶지. 그런데 연출자가 ‘이건 이거야, 미안한데 몇 컷만 더 할게’ 이러면 그런 생각이 없어지니까. 찍을 때 강우석 감독님이 그랬다. “이거 웃기는 신이야, 자장면 먹는 신.” 그래서 “어떻게 웃겨야 하나요?” 그러면 “그냥 먹어, 부담 갖지 말고. 그런데 이거 못하면 너랑 나랑 힘들어 진다.” 그래서 했는데 컷. “에이, 유준상 괜히 캐스팅 했네. 이런 거 잘하는 줄 알았는데. 액션, 컷. 야, 다음 신 준비해.” 그래서 “네?” 이러면 “내가 웃었다”고 그런다. “아니 감독님 저는 제가 뭘 했는지도 모르겠는데…” “내가 웃었다고.” 만약 관객들이 안 웃으면 그게 자기 책임이라는 말이 거기 들어있다. 그렇게 하면 어떤 걸 하던 믿을 수밖에 없는 거지. 그래서 연출자를 한 번 믿으면 끝까지 간다.
얼마 전 tvN 에 출연해 흥행 실패 이후 작품 선택이 신중해졌다고 했는데.
유준상 : 사실 누구나 타석에 들어서면 삼진을 당하고 싶지 않다.
삼진도 많이 당했나.
유준상 : 삼진 정도가 아니지. 다만 그런 생각은 있다. 아침 연속극을 하든, 주말 드라마를 하든, 를 하는 그 순간만큼은 최대한 열심히 한다. 관객이 세 명 들었던 적도 있었는데 오히려 더 열심히 했던 것 같다. 진짜 큰 작품이니 더 잘해야지, 이건 작으니까 설렁설렁해야지 이런 건 없었다. 그러다보니까 좋은 분들과도 만나게 되는 거 같다. 앞으로도 그러길 바라야지.
그런데 이 분야가 본인이 열심히 한다고 일이 들어오는 건 아니지 않나. 상업적 결과가 중요한데 그걸 보는 시야가 중요하지 않을까.
유준상 : 사실 한다고 된다는 보장도 없고, 결국 안 되는구나, 이럴 때가 많은데 그냥 또 하는 거 같다. 한 작품 하고서 역시 안 돼, 이러다가 또 부르면 네, 하면서 열심히 하고. 계속 그런 거고 앞으로도 그럴 거 같다. 그런 과정 속에서 들어온 작품이 괜찮다 싶으면 괜찮다고 끝까지 생각하고, 들어가는 과정까진 다 오케이 한다. 그러다 연습 들어가고 정말 한다는 걸 마음에서 믿게 되면 정말 괜찮네, 이러고. 하하하.
그건 그만큼 들어갈 때까진 들어가는 게 아니라는 걸 알아서겠다.
유준상 : 나만 그런 게 아닐 거다. 이 쪽 일하는 사람 모두가 그럴 거다. 연습 한 달 하다가 엎어지는 작품도 있고, 공연도 올려야 올리는 거고. 이미 너무 많은 일을 당했기 때문에 웬만해서는 흔들리지 않는다. 그냥 혼자서 또 당했네, 이러고.
그러면서 자아가 더 강해진 거 같나.
유준상 : 더 여리게 되는 것도 있고 더 튼튼해지는 것도 있고. 그런 경험들이 분명 이 악물게 하는 요소가 되기도 한다. 그런 경험들을 계속 당한다. 지금도, 재작년에도 있었고, 작년에도 있었고. 그럴수록 좌절하지 말자, 힘내자, 이러는 거지.
“40대 중후반엔 이 되어보고 싶다” 그럼 최근처럼 좋은 작품을 자주 하는 시기에도 의기양양하지 않을 거 같다.
유준상 : 그렇지. 그리고 뜬 걸로 따지면 오히려 옛날 MBC 때가 제일로 많이 떴다. 그 땐 뜬 줄도 몰랐는데 정말 많이 떴던 거 같다. 다들 반겨주시고. 그러다 훅 가라앉고. 그래도 어떻게든 버티지 않나. 지금도 내가 떴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뭐 하는지 모르는 분들도 많다. 내 인생 중 가장 바쁜 시기를 보내고 있는데 대체 몇 년 동안 뭐 했냐고 하는 분들도 있다. 하하하하. 드라마에 안 나오니까. 뮤지컬 안 보시는 분들은 모른다. 뮤지컬은 사실 마니아층이 정해진 장르고, 어쩌다 가족끼리 보러 오는 거니까. 그렇게 어쩌다 오는 분들이 많아지면 좋겠다. 지금처럼 내가 영화 찍은 걸 보고 날 보러 오는 분이 생겨도 좋고.
뮤지컬을 하다가 타 장르로 나가는 사람들에게는 그런 사명감이 있더라. 자기를 통해서 대중들이 뮤지컬을 많이 보면 좋겠다고.
유준상 : 사명감이라기보다는 편안하게 접근하면 좋겠다. 사실 나는 이쪽의 첫 세대였고, 그래서 좀 외롭고 카메라 앞에서 연기할 때 왜 춤을 추느냐는 얘기를 듣기도 했지만 지금은 다들 편안하게 하지 않나. 그러면 된 거다.
그럼 그렇게 바뀐 환경에서 본인은 무엇을 할 수 있을 거 같나.
유준상 : 버텨야지. 버텨서 나이 60에도 앤더슨을 하고. 물론 그러려면 엄청난 노력이 수반되어야 할 거다. 갈수록 가사 까먹는데 나만 그런 게 아니라 40대 배우들이 다 그런다. 하하. 그래도 버티려고 한다.
기억력의 감소가 있지만 나이를 먹어 더 좋은 게 있지 않나.
유준상 : 그럼, 무시 못 하지. 앤더슨도 20대가 하면 아무리 잘 하더라도 지금 같은 느낌이 안 나올 거다. 그 나이가 되어야 할 수 있는 게 있다. 가령 의 실제 주인공인 존 카메론 미첼도 40대 중후반인데, 나도 그 나이 언저리에 이 되어보고 싶다.
이처럼 나이를 먹는다는 건 카메라 뒤의 시간 역시 포함하는 것 아닌가. 앞서 말한 것처럼 밤늦게까지 음악을 듣고 그림을 그리는 것들이 배우로서의 유준상에게 소급하는 것 같나.
유준상 : 옛날에도 그랬다. 막연하게 이런 것들을 하는 게 연기에 도움이 되겠지. 요즘 뮤지컬을 하고 나면 끝나고 안 가고 혼자 공연장 앞 벤치에 멍하게 앉아있는 시간이 있는데, 그 쓸쓸한 순간도 어느 순간 도움이 되는 지점이 있다. 누군가는 연기 하나도 제대로 못하면서 이것저것 다 하느냐고, 한 우물을 파야 하지 않느냐고 하는데 나는 한 우물을 파기 위해 많은 걸 하는 거다.
글. 위근우 eight@
사진. 이진혁 eleven@
편집. 이지혜 se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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