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즈업된 지성의 얼굴 사진을 보고 너무 놀라진 않길 바란다. 그의 거친 입술과 눈 밑의 퀭한 다크서클 모두 MBC 에서 부상 입고 병상에 누운 김수로를 위한 분장이니까. 하지만 예상컨대, 다른 신을 촬영하는 날 인터뷰 일정을 잡았다 해도 밝고 화사한 얼굴의 지성을 볼 수 있었을 것 같진 않다. 가야국의 왕인 김수로의 신화를 다룬 이 드라마에서, 전반부라 할 현재까지를 지배하는 것은 김수로가 겪는 고난이다. 그는 자객에 의해 아버지인 조방(이종원)을 잃고, 그때서야 자신이 조방의 친아들이 아닌 걸 알게 된다. 심지어 그의 친모인 정견비(배종옥)는 그를 눈엣가시로 여기고, 그녀의 정치적 라이벌인 신귀간(유오성) 역시 김수로를 제거하고 싶어 한다. 한 회 걸러 목숨을 위협받지만 언젠가 그 모든 걸 딛고 왕이 되어야 하는 청년. 그 고난의 서사를 연기를 통해 몸과 마음으로 견뎌내야 하는 건 어떤 의미일까. 에서 출발한 이 질문은 자연스레, 과연 어떻게 연기를 해야 하느냐에 대한 연기자 지성의 고민으로 이어졌다.

오늘은 병상 신이라 그렇기도 하지만 평소에도 입술 부르튼 분장이 많더라. 이렇게 육체적으로 힘든 역할인줄 알았나.
지성 : 애초에 시놉시스를 볼 때 작가님과 감독님께 얘긴 들었다.

“연기자들은 쉴 때 더 준비를 많이 해야 한다”
지성 “아픔에 머물러 있지 않는 것, 그게 김수로”
지성 “아픔에 머물러 있지 않는 것, 그게 김수로”
그런 만큼 준비가 필요했을 텐데.
지성 : 운동은 원래 꾸준히 했다. 항간에는 노출 신을 위해 몸을 준비했느냐고 했는데 오히려 촬영 중에는 그럴 시간이 없었다. 그 외에 말 타는 신과 액션 신이 많다보니 그에 대한 준비를 많이 해야 했다.

특히 액션의 경우 힘들 뿐 아니라 상당히 위험할 수 있지 않나.
지성 : 액션 신을 찍으면서 부상을 많이 당했다. 지금 메이크업으로 가렸지만 눈 근처가 쇠꼬챙이에 찔려서 상흔이 남았고, 지금 주먹도 칼에 맞아 살점이 조금 떨어져나갔다. 그래서 좀 속상하다. (웃음) 보통 한두 명이 아니라 여러 명과 싸우니까 액션만 하면 많이 다친다. 이번 주에 방송하는 액션 신은 비오는 날 싸우는 건데 빗물 때문에 나나 액션팀이나 다들 미끄러운 거다. 그러다 넘어져서 합이 안 맞으면 실제로 칼에 맞을 수 있다. 많이 조심해야 하는 작업이다.

자기 몸을 뜻대로 움직이는 것 역시 연기력의 일부일 텐데, 그런 동작이 잘 나오는 편인가.
지성 : 원하는 대로 나올 정도는 아니다. 그래서 연기자들은 드라마나 영화를 할 때보다 쉴 때 준비를 많이 해야 한다. 배우가 한 캐릭터만 하는 게 아니니까. 무술의 달인을 할 수도 있고 댄스 드라마에서 춤을 춰야 할지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작품에 들어가며 그 때 준비하는 건 늦는 거 같다. 그래서 쉴 때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다양하게 공부하는 게 중요하다.

긴장감을 늦추지 않는 걸까.
지성 : 긴장감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더 평화로워야 하는 것 같다. 드라마에서나 있을 법한 일을 접했을 때 자연스럽게 표현할 수 있도록 스스로를 릴렉스시키고, 다양한 경험을 하는 게 필요한 것 같다.

그렇다면 SBS 와 사이에는 어떻게 지냈나.
지성 : 보통 여행 얘기를 많이 하지 않나. 견문을 넓히는 건데, 좁은 삶의 테두리를 벗어나서 다양한 걸 접하고 느끼고 그러면서 여유가 더 생기는 것 같다. 그래서 끝나고서 여행도 많이 다니고 학교도 다시 다녔다. 아직 졸업은 못했는데 올해 초에는 열심히 공부해서 중간고사도 봤다. (웃음)

그렇게 스스로를 릴렉스시키며 다양한 경우의 수에 대비한다고 했는데 수로라는 인물은 한 작품 안에서 다양한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동네 왈패로 활동하다가 갑자기 진지해지기도 하고. 또 이 작품 자체가 수로의 성장기라 계속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지성 : 지금은 혼란기인 것 같다. 방황하는 시기. 일반 사람에게 수로처럼 여러 가지 비극적 사건이 생긴다면 정말 충격적이고 힘들지 않겠나. 그래서 고민을 많이 해야 한다. 항상 똑같은 톤으로 놀라고 똑같이 아플 수 없으니까. 점점 아픔은 쌓이고, 괴로워지고. 그래도 일어나야 하고. 모든 걸 놓아버리고 싶은데 돌아보면 어머니가 잡혀가 있고, 이번 주엔 아효가 잡혀가고. 그럼 어떡해, 구해야지.

아무래도 이런 역할을 맡을 때가 더 괴롭진 않나.
지성 : 아픈 신이 많을 때는 정말 외롭고, 그래서 촬영이 끝나면 ‘와, 끝났다. 쉬어야지’라기보다는 여운이 길게 남는다. 또 여운이 촬영 중에 계속 있기 때문에 그 끈을 놓지 못하고. 그래서 사람이 우울해지는 면이 있다. 다음 작품은 어찌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로맨틱 코미디 같은 걸 하고 싶다. 크고 무거운 사건이 아닌 그런 것들.

그런 우울함에 무너지지 않기 위해서라도 자아가 건강해야 하는 직업인 것 같다.
지성 : 연기는 연기일 뿐이지 연기자 본인을 대입하면 안 될 거 같다. 자칫 감정을 너무 오버해버리면 생각지 못한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A, B 정도의 감정을 건너뛰고 C로 올려버리면 나중에 B로 낮출 수 없지 않나. 그러면 나중에 감정이 더 상승할 수밖에 없다. 그런 걸 조심해야 하는 것 같다. 작품 한두 해 하고 그만둘 게 아니라면.

“아직은 열여덟 아이처럼 가고 싶다”
지성 “아픔에 머물러 있지 않는 것, 그게 김수로”
지성 “아픔에 머물러 있지 않는 것, 그게 김수로”
그렇게 쉽게 감정 톤을 고양시키지 않는 게 종종 수로의 무심한 표정에 드러난다. 표정만 보면 비운의 주인공 같지 않다. 허황옥(서지혜)을 구하거나 경공에서 대나무를 벨 때도 날카로운 안광을 내뿜기보다는 편하게 툭툭 칼을 휘두른다.
지성 : 오히려 즐기지. 수로 캐릭터를 어떤 상황에서도 여유가 있는 인물로 잡았다. 진지하게 이 모든 상황을 하나하나 받아들이면 너무 힘들지 않겠나. 자기가 원하던 인생인 것도 아닌데. 이번 주도 보면 알겠지만 감정 표현이 달라진다. 수로가 받아들이는 감정이 달라지니까 표현하는 것도 달라진다.

아무래도 이제부턴 각성의 스토리니까.
지성 : 얘가 신탁을 받은, 하늘이 내린 왕 아닌가. 이게 자칫 유치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데 이걸 어떻게 드라마틱하게 표현할 수 있을지 고민한다.

수로가 아무리 왕의 운명을 타고났더라도 시청자가 ‘쟤는 왕이 될 만해’라고 고개를 끄덕여야 하니까.
지성 : 왕이 될 수밖에 없는 건 알게 됐지만 이제 그 이유를 보여줘야 하는데 상황에 맞춰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할 것 같다. 현재로선 신귀간(유오성)과 만나든 누구를 만나든 열여덟 아이처럼 가고 싶다. 열여덟인데 벌써 왕의 카리스마를 다 가지고 있는 건 좀 오버인 것 같다.

쫄지 않는 정도? (웃음)
지성 : 맞다. 겁이 없는 건 사실인데 모든 사람을 눈빛으로 제압한다? 그건 아닌 거 같다. 왕이 될 수밖에 없는 어떤 배경이 있구나, 이 정도만 보여주고 조금씩 나이를 넘어서야지.

그렇게 감정이나 능력을 확 드러내는 것보다 일종의 중간선을 잡는 게 더 어렵지 않나.
지성 : 힘들다, 정말. 하지만 멋을 빼고 싶었다. 그래서 대사도 가끔 느끼하게 한 번 치고 싶어도 참고. 그런 타입은 아닌 거 같다. 앞으로 또 수로가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는 대본을 받아봐야 할 거 같다. 그에 맞게 수로를 만들어가야지.

연기를 하기 어려울수록 상대 연기자, 혹은 스태프들과 소통하고 마음을 나누는 게 중요할 것 같다. 수로가 사람의 마음을 열며 자기편을 늘려가는 것처럼.
지성 : 우선 진정성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꾸미지 않는 것. 고민하는 게 있으면 고민을 상담할 줄도 알아야 하고, 내가 힘들 때는 힘들다고 말할 줄도 알아야 하고, 자신 있을 때는 자신 있다고 말할 수도 있어야 한다. 그걸 솔직하게 말하니까 많은 배우들과 스태프들이 도와준다.

그런 마음가짐은 이 일을 하며 배운 건가.
지성 : 누구나 배우지. 처음부터 다 알 수는 없으니까.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다들 자기에 맞게끔 배워나가지 않을까. 업그레이드되고, 더 나은 모습을 보여주고.

발전에 대한 욕심이 있나.
지성 : 이런 건 있다. 빙 돌아가고 싶진 않다. 지름길을 바라는 건 아니지만 최소한 정상적인 길을 가고 싶은데 사람이 판단을 잘못하면 많이 돌아갈 수도 있지 않나. 그건 너무 오래 걸리고 힘든 것 같다. 연륜이 있는 분들의 경우에는 경험이 많다보니 결과를 미리 알고 준비해서 그 폭이 줄어드는 것 같은데.

“백지를 새로운 것들로 채우고 싶었다”
지성 “아픔에 머물러 있지 않는 것, 그게 김수로”
지성 “아픔에 머물러 있지 않는 것, 그게 김수로”
그런 만큼 젊은 연기자로서 시행착오를 줄이기 위해 다른 이의 조언이 많이 필요하겠다.
지성 : 그런 분들이 있지. 조언을 해주는 사람이 꼭 배우나 연출자만은 아니다. 오히려 그런 걸 모르는 분들이 시청자 입장에서 얘기해주기 때문에 더 현실적일 때가 있다. 그래서 배우들은 귀를 많이 열어놔야 한다. 고집부리고 자기 것만 하려고 하면 안 되고 받아들이고 수용하고 내 걸 만들 줄 알아야 한다. 그래서 조언도 많이 구하고 상의도 많이 한다. 시청자 게시판에서 나에 대한 질타도 보고. 그걸 무조건 감안해 연기할 수는 없겠지만, 이런 생각도 있다는 걸 생각하며 연기 포인트를 잡아나가면 사람들이 같이 호흡해주지 않을까.

혹 그런 비판 중에 피가 되고 살이 되는 비판이 있었다면.
지성 : 너무 모르는 게 많아서… 이번이 두 번째 사극인데 젊은 배우들이 사극 회피하는 건 사실이다. 공감하기도 쉽지 않고, 톤도 다르고. 그런데 그런 만큼 공부가 되는 것도 사실이다. 이번에 를 하면서도 내가 너무 모르는구나,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모자라다 생각하며 오히려 웃고 다닌다. 백지를 새로운 것들로 채우고 싶었다. 물론 어느 작품마다 그렇겠지만 작품을 하며 하나하나 그려나가고 있다. 어느 정도냐면 반도 못 그렸겠지만. 그 공백을 채워나갈 때까지 계속 이 일을 해나갈 생각이다.

사실 그림은 눈앞에서 그릴 때보다 먼발치서 볼 때 더 잘 볼 수 있지 않나. 가령 작품이 끝나고 나서.
지성 : 그런데 지금도 전체적인 걸 보고 싶은데, 내가 모자라서 그런 걸까? 그러지 못하겠다. 그래도 전체를 보려고 해야지. 주인공이니까. 대본의 반 가까이 내가 나오는데 전체를 안 보면 내 역할을 못하는 거지. 그렇다고 전체를 보느냐고 묻느냐면 분명 완벽히는 못하고.

타이틀롤을 맡는다는 것의 의미를 더 깊게 두는 것 같다
지성 : 그래서 타이틀롤은 굉장히 부담스럽다. 또 그래서 첫 임무는 그 부담감을 없애는 거고. 부담감을 가지고 어떻게 시작하나. 그래서 수로의 어떤 모습들을 생활화 하려 한다. 검술 연습을 할 때도 만약 이 때 수로라면 어떨까, 생각하며. 물론 사극 인물이다 보니 현실에서 생활화 가기 어렵겠지만 최대한 몰입할 수 있게 노력하니 부담감이 없어지긴 하더라. 그게 나중에 어떻게 돌아올지 모르겠지만 최대한 열심히 하다 보면 사람들이 알지 않겠나. MBC 때도 보조 출연자들을 정말 환자로 생각하며 진정성 있게 하려 했는데 그게 연지가로서의 기본인 것 같다.

그렇게 노력하고 그 보답을 바라는 만큼 끝나면 아쉬움이 많을 텐데, 작품이 끝나면 아쉬움과 뿌듯함 중 무엇이 더 많이 남나.
지성 : 아쉬움이 많은 편인데 그럴수록 그 생각을 안 하려고 한다. 연기를 하다보면 욕심이 많은 만큼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고 싶은데 그걸 못한 걸 다 아쉬워하면 후회가 된다. 그러면 자신감을 떨어뜨릴 수 있기 때문에 그냥 터는 게 더 좋을 때가 있다. 지금 를 찍으면서도 뭔가를 더 하고 싶었거나 아쉬운 부분은 잠깐 쉴 때마다 털고 머릿속에서 비우려고 한다. 수로와도 상통하는 건데, 계속 어려운 일이 벌어지면 감당이 안 되지 않나. 그래서 수로를 연기할 때도 그가 겪은 고통들을 빨리 빨리 털어버리려고 한다. 극 전개도 빨라서 그 아픔, 그 고민에 계속 머무를 수가 없다. 그게 수로인 것 같다.

글. 위근우 eight@
사진. 이진혁 eleven@
편집. 이지혜 se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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