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탄생 30주년이다. 1979년에 방영된 은 냉전 구도를 바탕으로 우주세기의 지구 토착민과 우주 이민자들의 전쟁을 그리고 있다. 이 작품은 30년이 지난 지금도 애니메이션의 고전으로 남아 계속해서 새로운 시리즈를 탄생시키고 있다. 무엇보다 이전까지 주류였던 아동용 거대 로봇 애니메이션을 성인 취향의 리얼 로봇 애니메이션으로 전환시켰다는 점에서 의 역사적 의의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제 14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 초대된 ‘건담의 아버지’ 토미노 요시유키 감독은 기자간담회와 팬 미팅을 통해 건담이라는 작품과 일본 애니메이션 산업에 대한 여러 생각을 밝혔다.

“애니메이션에 관료주의가 개입되면 제대로 되기 어렵다”
토미노 요시유키 감독 “영상을 위한 전쟁, 그건 전쟁이 아니라 패션이다”
토미노 요시유키 감독 “영상을 위한 전쟁, 그건 전쟁이 아니라 패션이다”
일본은 애니메이션 대국이다. 애니메이션 산업의 초창기부터 자리를 지킨 입장에서 일본 애니메이션 산업이 그렇게 큰 영향력을 미칠 수 있었던 이유는 뭐라고 생각하는가.
토미노 요시유키: 글쎄, 일본이 애니메이션 대국이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생각한다. 일본 애니메이션의 내용이나 콘셉트에 의해 세계인들의 생각이 바뀌었다면 모르지만, 유럽이나 미국의 건담 팬들만으로 그렇다고 보기는 어렵다. 무엇보다 매체로서 성공했다고 보기는 힘들다. 미국이나 유럽의 오타쿠, 팬들이 다음 시장으로 이어지는 가이드의 역할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이 점에 대해선 오히려 여러분의 의견을 듣고 싶다. 일본에만 국한된 얘기가 아니다. 미국이나 유럽, 동남아시아의 팬들이 좋아할만한 아이템이나 생활용품, 패션 등에까지 영향력을 미칠 메시지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본다. 그 점에서 애니메이션 산업이 완전히 발전하지 않았다고 본다.

일본은 국가 차원에서 애니메이션 산업을 지원하고 있다. 감독님이 이 자리에 와 있다는 것 역시 그 일환이라고 볼 수 있는데, 그 점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는가.
토미노 요시유키: 최근 몇 년 간 일본에서 애니메이션 산업에 여러 가지 지원을 하는 건 사실이지만 기대 이상의 역할을 하지 못하는 것도 사실이다. 오히려 그 부분에 있어서는 한국 정부를 모방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웃음) 한국 정부는 스튜디오 건설에도 도움을 주면서 영화나 TV에 상당히 구체적인 지원을 하는 걸로 알고 있다. 하지만 일본에서는 여러 가지 규제에 묶여서 만족할만한 실적을 못 내고 있다고 본다. 솔직히 말해 애니메이션 같은 창의적인 분야에 이런 관료주의가 개입되면 제대로 되기 어렵다고 본다. 한국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제 궤도에 오르면 관료주의가 물러나야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 가까운 예로 보자면 미야자키 하야오도 국가 지원 없이 스튜디오 지브리에서 작품에만 매진하며 성공한 경우 아닌가. 그런데 여기서 이런 말 하면 나라 돈으로 해외에 못나갈 것 같다. (웃음)

“젊은이에 대한 기대가 더 커지는 것 같다”
토미노 요시유키 감독 “영상을 위한 전쟁, 그건 전쟁이 아니라 패션이다”
토미노 요시유키 감독 “영상을 위한 전쟁, 그건 전쟁이 아니라 패션이다”
애니메이션 산업의 발전을 위해 필요한 건 뭐라고 생각하는가.
토미노 요시유키: 애니메이션은 많은 자본의 투자가 필요한 분야다. 그래서 비즈니스적인 성공은 필수적이다. 이 점에 대해선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 을 만든 이유도 제작사의 의뢰를 받았기 때문이다. 만들고 싶은 것을 자본의 투자 없이 만들 수 있다면 정말 좋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이 분야에 진출한 사람들이 상업적인 작품을 만들고 싶지 않다고 말해선 곤란하다고 생각한다. 또한 나는 스튜디오를 통해 업계에 들어왔고 나중에 독립해서 작품을 만들었는데 의식적으로 이런 식의 시스템을 다지고 싶었다. 하지만 이후 30년이 지난 지금 이런 비즈니스 모델이 자리 잡지 못했다고 본다. 아까도 말했듯이 애니메이션이 매체로서 문화적인 영향력을 미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은 특히 안타깝다.

은 ‘뉴타입’이라는 개념으로 젊은 세대들에 대한 기대를 담은 작품이었다. 아직도 그런 생각을 하는가.
토미노 요시유키: 사람이 나이가 들면 젊은이에 대한 기대가 더 커지는 것 같다. 을 만들 때 나는 어른들이 봐도 좋을 작품을 만들고 싶었다. 그런데 내가 어른이 되고 부모가 되었을 때는 아이들에게 감동적인 작품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그래야 부모들도 감동을 받는다. 여전히 젊은 세대들에 대한 기대를 품고 있는데, 나는 특히 여자들에 대한 기대를 가지고 있다. (웃음)

여자들에 대한 기대가 크다고 했는데, 사실 이나 의 경우는 철없는 소년이 어른이 되는 과정에서 많은 여자들이 희생당하는 것도 사실이다. 어떤 점에서 건담은 ‘철없는 남자애 하나 사람 만들려고 여자들이 죽어서도 케어하는 작품’이라고 볼 수도 있는데 이런 관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토미노 요시유키: 그렇게 볼 수도 있겠지만, 에 등장하는 여성 캐릭터들은 다른 여자들보다 훨씬 공격적이다. 이것은 내 여성관과도 밀접한데 나는 여자들이 훨씬 더 공격적이라고 본다. 그래서 전장에서도 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위험한 순간에도 냉정할 수 있다고 본다. 여자들에게 기대한다는 얘기는 여자들이 남자들보다 더 중요한 역할을 잘 해내리라고 믿기 때문이다. (웃음)

“애니메이션 산업은 투자자가 중요하다”
토미노 요시유키 감독 “영상을 위한 전쟁, 그건 전쟁이 아니라 패션이다”
토미노 요시유키 감독 “영상을 위한 전쟁, 그건 전쟁이 아니라 패션이다”
최근의 로봇 애니메이션이 전쟁을 너무 가볍게 다룬다는 지적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는가.
토미노 요시유키: 일본이 패전한 지 70년이 지났다. 일본에는 공식적으로 군대도 없고, 그래서 전쟁을 경험하는 수단이 영화나 애니메이션 밖에 없다. 전쟁을 모르는 세대들이 전쟁에 대해 그리고 있다는 건 사실이다. 이런 생각은 이 분야가 특히 애니메이션, 그림이기 때문에 더 강하다. 전투를 아름답게만 그리는 것은 전쟁을 영상으로만 접근하려는 태도 때문이라고 본다. 그래서 가볍게 보인다고 생각된다. 예를 들어 폭발 장면을 보면, 그 순간의 섬광이나 폭발 장면의 액션이 너무 아름답게 그려진다. 하지만 그 순간은 누군가 살인을 하는 순간이다. 얼굴에 붕대를 감고 전쟁은 고통스럽다고 말하는 작품도 마찬가지다. 그건 전쟁이 아니라 패션이다.

은 1985년의 TV판과 2005년의 극장판의 결말이 다르다. 비극적 결말에서 해피엔딩으로 바뀌었는데 그 이유는 무엇인가.
토미노 요시유키: 일단 결말이 바뀔 수 있는 건 건담 시리즈가 픽션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20여 년의 시간이 지난 지금 애니메이션이 엔터테인먼트로 바뀌었다고 생각했다. 그 점에 주목해서 TV 시리즈에 담았던 주의나 주장을 버리기로 결정했다. 각각의 작품들이 가진 완결성이나 이런 결말이 전달하는 메시지에 주목하면 좋겠다. 사실 재구성은 창작보다 힘들다. 일종의 샘플로 만들어보겠다는 생각이 강했던 것 같다.

차기작으로 의 소식이 있었는데,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궁금하다.
토미노 요시유키: 그건 진행 중이라고 말하기도 애매하고, 그렇지 않다고 하기에도 애매하다. 일단 짧은 작품들을 만들어봤는데 투자자들이 큰 관심을 보이지 않는 것 같다. 하지만 스튜디오에서는 여전히 그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니 언젠가는 빛을 볼 거라고 생각한다. 애니메이션 산업은 투자자가 그만큼 중요하다. (웃음)

글. 차우진
사진. 채기원 ten@
편집. 이지혜 se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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