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저는 처음부터 마지막까지의 콘티를 잡는 편이에요. 나름 치밀하게 연습장에 해놓은 다음에 옮겨 그리거든요. 그런데 묻는 분들은 콘티를 안 잡는다는 대답을 원하시더라고요.” 정말 그랬다. 세상에 고민과 노력 없는 창작이란 존재할 수 없다는 걸 알지만, 다른 누구도 아닌 이말년 작가라면 왠지 마감 전날 포토샵 창을 열고 후다닥 만화를 그려 담당자에게 넘겨줄 것만 같았다. 물론 그의 웹툰 가 대충 그린 듯한 퀄리티의 작품이라는 뜻은 아니다. 세상의 모든 신들이 학교에 모여 말썽을 부린다는 내용의 ‘올림포스 스쿨’, 선배 개그맨 장례식에서 후배들이 무리수를 두다 모두 저 세상에 가버리는 ‘웃음장례식’ 등은 공들인 작업보다는 번뜩이는 천재성의 일필휘지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특히 ‘포도밭의 여우’처럼 자신의 일상을 픽션으로 풀어낸 작품에선 스스로에게 ‘잉여’의 이미지를 덧씌우기까지 한다. 하지만 천재, 더 정확히 말해 미치광이 과학자 같은 느낌의 천재를 기대한 지점에서 이말년 작가는 오히려 직업으로서의 만화에 대해 고민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물론 그의 ‘정상적인’ 대답에 배신감을 느낄 수도 있다. “옛날에는 그리고 싶은 게 생각나면 그리면 되는데, 지금은 어떤 상황이 되든 업데이트 날짜까지 한 편이 나와야 돼요. 그러면 만족스럽지 못해도 넘겨야 되거든요. 그러면서 아, 조금 더 생각을 하고 넘길 걸, 이런 생각이 들죠.” 하지만, 돌이켜보면, 우리의 범상한 예측을 뛰어넘는 것이야말로 , 그리고 이말년의 매력이었다. 이번 플레이리스트도 마찬가지다. 무언가 ‘병맛’ 가득한 테마를 기대했던 독자들이라면 ‘가사가 좋은 노래’를 고른 이말년의 추천 목록에 잠시 허탈해해도 좋다. 1. 윤종신의
“노래는 가사 좋은 맛에 듣는 게 반 이상인 거 같아요. 그래서 윤종신, 토이 등의 노래를 많이 들어요”라며 이말년 작가가 추천한 곡은 윤종신의 ‘수목원에서’다. 역시 윤종신의 대표곡이자 특유의 디테일한 가사가 인상적인 ‘팥빙수’가 수록된 9집 앨범 에 수록된 곡으로 팬들에겐 오히려 ‘팥빙수’ 이상으로 많은 지지를 받는다. ‘오래 전 그날’처럼 옛 사랑의 추억을 오히려 기쁘게 반추하는 구성의 가사가 인상적이다. ‘우리 사진 속의 그 나무들은 많이 자랐네. 찌든 가슴 맘껏 들이마셨던 싱그러운 풀내음 여전해요’ 같은 가사를 통해 수목원이라는 공간은 의 마들렌 과자처럼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촉매제 역할을 한다. 2. 마이 앤트 메리의
“흔히 모던록이라고 부르는 스타일의 음악들을 좋아하는 편이에요. 특히 모던쥬스처럼 여자 보컬이 있는 모던록 밴드들이요. (웃음) 그렇다고 영국 밴드들의 노래를 듣는 건 아니고요. 영어 가사는 알아들을 수가 없잖아요”라며 이말년 작가가 추천한 한국 모던록은 마이 앤트 메리의 ‘골든 글러브’다. 아마 마이 앤트 메리의 곡 중 가장 대중적일 이 곡은 럼블피쉬의 ‘I Go’처럼 우리의 지친 일상을 응원하는 내용이다. 흥겨운 브라스 사운드의 지원 사격과 함께 ‘마지막 순간에 난 다시 일어서 내게 남겨진 시간을 준비하겠어. 아직도 게임은 끝나지 않았어. 뒤돌아 설 일은 없어’라는 후렴구를 들을 때면 별다른 대안이 없어도 누구라도 ‘으샤으샤’ 할 만한 곡이다. 3. 배치기의
슈프림팀에 대한 만화를 그린 적도 있지만, 이말년 작가는 힙합에 제법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는 편이다. “슈프림팀 결성할 때, 많이 기대했었어요. 사이먼 도미닉이나 이센스 둘 다 언더 힙합 신에서 주목했던 사람들이거든요.” 그런 그가 추천하는 힙합 팀은 배치기다. “배치기 2집 , 이것도 명반이죠. 이것도 버릴 곡이 없는 앨범이에요. 솔직히 개인적으로 3집은 좀 별로라서 (웃음) 두 앨범을 섞어서 반으로 나눴으면 좋겠어요.” 레이지 본의 < Blue In Green >에 이어 다시 한 번 버릴 곡이 없어 이말년 작가가 어렵사리 고른 곡은 ‘천국에서’다. 특별히 욕이나 과격한 표현은 없어도 현실의 지저분한 부분에 대한 직설, 가령 ‘하는 짓이 영락없이 최연희 같지’ (‘술’) 같은 가사 때문에 무려 7곡이 19금에 묶인 앨범 중 가장 무난하고 긍정적인 내용의 곡이다. 4. 브로콜리 너마저의
“브로콜리 너마저의 ‘커뮤니케이션의 이해’는 공감이 많이 가는 노래에요. 말 그대로 커뮤니케이션이 안 될 때를 잘 보여주는 거 같아요. 브로콜리 너마저의 특징이 다 알고 있는 이야기인데 미처 생각 못했던 걸 건드리는 거 같아요. 사실 신선한 건 없는데 빤하지 않아요.” 이말년 작가의 평가처럼 브로콜리 너마저는 소소한 일상 안에 숨은 멜랑콜리를 최대한 밀어붙여 디테일한 서정성을 획득하는 밴드다. 최근 열린 제8회 한국대중음악상에서 최우수 모던록 노래 부문을 수상한 ‘졸업’, 그리고 함께 후보에 올랐던 ‘사랑한다는 말로도 위로가 되지 않는’ 등의 곡들은 그들의 이런 방향성이 잘 드러나는데, ‘커뮤니케이션의 이해’ 역시 마찬가지다. ‘어떤 경우라도 넌 알지 못하는 진짜 마음이 닿을 수가 있게’ 같은 가사에 엄청난 성찰이 담긴 건 아니지만 우리의 일상적 고민을 정확히 관통한다. 5. 언니네 이발관의
“언니네 이발관의 ‘인생은 금물’은 그냥 그 제목 자체가 마음에 들어요. 그냥 말 그대로 인생은 금물인 거 같다는 생각? 사실 이 곡의 경우 가사를 그렇게 좋아하는 건 아니에요. 좀 횡설수설하는 감이 있어서.” 만약 의미가 명료한 가사가 좋은 가사라면 언니네 이발관 이석원의 가사는 좋은 가사가 아닐지도 모른다. ‘언젠가 우리 별이 되어 사라지겠죠. 모두의 맘이 아파올 걸 나는 알아요’ 같은 가사가 정제된 서정보단 의식의 흐름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인생은 금물, 함부로 태어나지는 마’라는 한 구절처럼, 무릎을 탁 치게 만드는 순간이 언니네 이발관의 가사에는 있다. 그것이 어떤 모호한 가사조차 설득력 있게 전달하는 이석원의 목소리와 언니네 이발관의 연주와 함께라면 더더욱. “나 , 같은 예전 에피소드 만화들을 진짜 존경하는 게, 그걸 1000회에 가깝게 연재했다는 거예요. 어떻게 아이디어를 쭉쭉 뽑아서 했을지, 참.” 매번 재밌다가도 한 회만 재미없으면 물 빠졌다는 소리를 듣는 게 개그 웹툰의 세계다. 천재가 아니지만 매번 머리를 쥐어짜 천재적인 만화를 내놓는 이말년에게도 아이디어 고갈은 언젠가 마주서야 할 난관이다. 그리고 당장의 인기에 취하지 않고 이후를 준비하는 이말년은 다시 한 번 허를 찌르는 카드를 내민다. “를 소재로 캐릭터와 스토리가 있는 장편 만화를 만들고 싶어요.” 이말년의 라니, 그의 걸작 ‘제갈공명전’을 떠올려 보건데 또 하나의 엄청난 물건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이렇게 계획만으로도 독자를 두근거리게 하다니 정말 조…좋은 만화가다.
글. 위근우 eight@
사진. 채기원 ten@
물론 그의 ‘정상적인’ 대답에 배신감을 느낄 수도 있다. “옛날에는 그리고 싶은 게 생각나면 그리면 되는데, 지금은 어떤 상황이 되든 업데이트 날짜까지 한 편이 나와야 돼요. 그러면 만족스럽지 못해도 넘겨야 되거든요. 그러면서 아, 조금 더 생각을 하고 넘길 걸, 이런 생각이 들죠.” 하지만, 돌이켜보면, 우리의 범상한 예측을 뛰어넘는 것이야말로 , 그리고 이말년의 매력이었다. 이번 플레이리스트도 마찬가지다. 무언가 ‘병맛’ 가득한 테마를 기대했던 독자들이라면 ‘가사가 좋은 노래’를 고른 이말년의 추천 목록에 잠시 허탈해해도 좋다. 1. 윤종신의
“노래는 가사 좋은 맛에 듣는 게 반 이상인 거 같아요. 그래서 윤종신, 토이 등의 노래를 많이 들어요”라며 이말년 작가가 추천한 곡은 윤종신의 ‘수목원에서’다. 역시 윤종신의 대표곡이자 특유의 디테일한 가사가 인상적인 ‘팥빙수’가 수록된 9집 앨범 에 수록된 곡으로 팬들에겐 오히려 ‘팥빙수’ 이상으로 많은 지지를 받는다. ‘오래 전 그날’처럼 옛 사랑의 추억을 오히려 기쁘게 반추하는 구성의 가사가 인상적이다. ‘우리 사진 속의 그 나무들은 많이 자랐네. 찌든 가슴 맘껏 들이마셨던 싱그러운 풀내음 여전해요’ 같은 가사를 통해 수목원이라는 공간은 의 마들렌 과자처럼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촉매제 역할을 한다. 2. 마이 앤트 메리의
“흔히 모던록이라고 부르는 스타일의 음악들을 좋아하는 편이에요. 특히 모던쥬스처럼 여자 보컬이 있는 모던록 밴드들이요. (웃음) 그렇다고 영국 밴드들의 노래를 듣는 건 아니고요. 영어 가사는 알아들을 수가 없잖아요”라며 이말년 작가가 추천한 한국 모던록은 마이 앤트 메리의 ‘골든 글러브’다. 아마 마이 앤트 메리의 곡 중 가장 대중적일 이 곡은 럼블피쉬의 ‘I Go’처럼 우리의 지친 일상을 응원하는 내용이다. 흥겨운 브라스 사운드의 지원 사격과 함께 ‘마지막 순간에 난 다시 일어서 내게 남겨진 시간을 준비하겠어. 아직도 게임은 끝나지 않았어. 뒤돌아 설 일은 없어’라는 후렴구를 들을 때면 별다른 대안이 없어도 누구라도 ‘으샤으샤’ 할 만한 곡이다. 3. 배치기의
슈프림팀에 대한 만화를 그린 적도 있지만, 이말년 작가는 힙합에 제법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는 편이다. “슈프림팀 결성할 때, 많이 기대했었어요. 사이먼 도미닉이나 이센스 둘 다 언더 힙합 신에서 주목했던 사람들이거든요.” 그런 그가 추천하는 힙합 팀은 배치기다. “배치기 2집 , 이것도 명반이죠. 이것도 버릴 곡이 없는 앨범이에요. 솔직히 개인적으로 3집은 좀 별로라서 (웃음) 두 앨범을 섞어서 반으로 나눴으면 좋겠어요.” 레이지 본의 < Blue In Green >에 이어 다시 한 번 버릴 곡이 없어 이말년 작가가 어렵사리 고른 곡은 ‘천국에서’다. 특별히 욕이나 과격한 표현은 없어도 현실의 지저분한 부분에 대한 직설, 가령 ‘하는 짓이 영락없이 최연희 같지’ (‘술’) 같은 가사 때문에 무려 7곡이 19금에 묶인 앨범 중 가장 무난하고 긍정적인 내용의 곡이다. 4. 브로콜리 너마저의
“브로콜리 너마저의 ‘커뮤니케이션의 이해’는 공감이 많이 가는 노래에요. 말 그대로 커뮤니케이션이 안 될 때를 잘 보여주는 거 같아요. 브로콜리 너마저의 특징이 다 알고 있는 이야기인데 미처 생각 못했던 걸 건드리는 거 같아요. 사실 신선한 건 없는데 빤하지 않아요.” 이말년 작가의 평가처럼 브로콜리 너마저는 소소한 일상 안에 숨은 멜랑콜리를 최대한 밀어붙여 디테일한 서정성을 획득하는 밴드다. 최근 열린 제8회 한국대중음악상에서 최우수 모던록 노래 부문을 수상한 ‘졸업’, 그리고 함께 후보에 올랐던 ‘사랑한다는 말로도 위로가 되지 않는’ 등의 곡들은 그들의 이런 방향성이 잘 드러나는데, ‘커뮤니케이션의 이해’ 역시 마찬가지다. ‘어떤 경우라도 넌 알지 못하는 진짜 마음이 닿을 수가 있게’ 같은 가사에 엄청난 성찰이 담긴 건 아니지만 우리의 일상적 고민을 정확히 관통한다. 5. 언니네 이발관의
“언니네 이발관의 ‘인생은 금물’은 그냥 그 제목 자체가 마음에 들어요. 그냥 말 그대로 인생은 금물인 거 같다는 생각? 사실 이 곡의 경우 가사를 그렇게 좋아하는 건 아니에요. 좀 횡설수설하는 감이 있어서.” 만약 의미가 명료한 가사가 좋은 가사라면 언니네 이발관 이석원의 가사는 좋은 가사가 아닐지도 모른다. ‘언젠가 우리 별이 되어 사라지겠죠. 모두의 맘이 아파올 걸 나는 알아요’ 같은 가사가 정제된 서정보단 의식의 흐름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인생은 금물, 함부로 태어나지는 마’라는 한 구절처럼, 무릎을 탁 치게 만드는 순간이 언니네 이발관의 가사에는 있다. 그것이 어떤 모호한 가사조차 설득력 있게 전달하는 이석원의 목소리와 언니네 이발관의 연주와 함께라면 더더욱. “나 , 같은 예전 에피소드 만화들을 진짜 존경하는 게, 그걸 1000회에 가깝게 연재했다는 거예요. 어떻게 아이디어를 쭉쭉 뽑아서 했을지, 참.” 매번 재밌다가도 한 회만 재미없으면 물 빠졌다는 소리를 듣는 게 개그 웹툰의 세계다. 천재가 아니지만 매번 머리를 쥐어짜 천재적인 만화를 내놓는 이말년에게도 아이디어 고갈은 언젠가 마주서야 할 난관이다. 그리고 당장의 인기에 취하지 않고 이후를 준비하는 이말년은 다시 한 번 허를 찌르는 카드를 내민다. “를 소재로 캐릭터와 스토리가 있는 장편 만화를 만들고 싶어요.” 이말년의 라니, 그의 걸작 ‘제갈공명전’을 떠올려 보건데 또 하나의 엄청난 물건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이렇게 계획만으로도 독자를 두근거리게 하다니 정말 조…좋은 만화가다.
글. 위근우 eight@
사진. 채기원 t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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