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홍철과의 인터뷰에 제목을 붙인다면 뭐라고 해야할지 계속 생각했다. 그의 인터뷰는 한 사람이 한시간여 동안 말했다고 믿기엔 너무 방대해서 정리 자체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가 어떻게 지금의 노홍철이 됐는가에 대한 인생역정을 들려준 ‘노홍철 비긴즈’ 같기도 했고, 누군가의 마음을 사로잡는 법을 알려주는 ‘노홍철 특강 : ’ 같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 마음에 드는 건 ‘위인 노홍철’이었다. 그가 지금의 노홍철이 되기까지의 과정이나 지금 그가 살아가는 방식, 그리고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모습은 한 권의 위인전과 다르지 않다. 인터뷰를 읽기 전 마음의 준비를 하길 바란다. 자칫하면 그가 지은 노래 ‘노홍철 찬가’를 따라 부르며 ‘노호오오오오옹철~ 너무 좋아요~’를 외치게 될 테니.차를 직접 운전한다고 해서 도착 전 주차 문제 때문에 연락을 줄 줄 알았는데 바로 문 앞까지 와서 노크를 해서 깜짝 놀랐어요. (웃음)
노홍철 : 누구를 기다리게 하거나 시간 허비하는 걸 제일 싫어하거든요. 같이 다니는 동생(매니저)도 지금 어디서 놀고 있을 거예요. 끝나면 전화해서 내려간다고 하구요. 대기하게 하고 그런 거 너무 너무 싫어해요.
“나와 어울리는 방송 환경은 내 인생에 도움이 되는 것” 녹화 때도 대기하거나 가만히 있는 걸 별로 안 좋아하는 거 같았어요. (웃음)
노홍철 : 그렇죠 그렇죠! 이거 하다 딴 거 더 좋은 거 있으면 좋은 거 해야지, 억지로 끝까지 가는 거 되게 싫어해요. 무조건 도움 되는 거 해야죠.
방송도 하기 싫으면 안 하잖아요? (웃음)
노홍철 : 네, 그대로에요, 그대로 그대로. 그대~로! 제가 에너지가 다른 사람보다 막 넘치는 사람도 아니고, 사람들은 다 똑같아요. 하고 싶은 거 할 때는 막 업 되고 하기 싫은 거 할 때는 다운되고. ‘영웅호걸’처럼 착하고 귀엽고 예쁘고 이런 친구들이랑 있으면 누굴 갖다놔도 힘이 넘칠 거예요. 제 의지가 아니라 환경이 정말 괜찮아서 방송을 하게 돼요.
어울리는 환경이란 어떤 건가요?
노홍철 : 무조건 하나에요. 솔직히 방송의 재미나 시청률은 크게 중요하지는 않고, 내 인생에 도움이 돼야 해요.
어떤 도움이요?
노홍철 : 여러 경험을 해봤는데 방송이 제일 재밌더라구요. 제가 을 좋아하는 이유가, 다~ 가르쳐줘요 다! 춤이면 춤, 노래면 노래. 매주 촬영을 하러 가면 정말 재밌는 사람들을 세팅해 주고 심지어 돈도 주잖아요. 저는 방송 하고 나서 비즈니스 클래스도 처음 타봤거든요. 그런데 막 태워주고. 이런 장점들이 너무 너무 많아요. 그렇게 내 인생을 풍요롭고 값지게 살찌울 수 있는 게 제일 좋아요.
하고 싶은 걸 하려면 다른 사람들 요구에도 맞춰야 하기도 하잖아요? 노홍철 씨는 개성이 강해서 그런 걸 맞추기가 쉽진 않았을 거 같아요.
노홍철 : 맞아요. 사실 제가 제 요구조건 같은 걸 처음부터 굉장히 강하게 어필했어요. 제가 저를 굉장히 잘 알기 때문에 “나는 내가 재밌어야 할 수 있다”는 걸 강력하게 스태프 분들에게 계속 얘길 해요. 그래서 다른 분들이 제 이런 모습에 오해가 덜해요.
Mnet에서 데뷔를 했는데, Mnet에서는 캐스팅하면서 뭐라고 하던가요?
노홍철 : 처음엔 그 때 하던 여행사(홍철투어) 사업 때문에 출연하려고 했었어요. 광고비가 비싸니까, 엠넷이면 우리 여행사 고객으로 라인을 하나 걸쳐놓으면 정말 큰 시장이다. (웃음) 그리고 채널을 가졌으니까 내가 노출되면 우리 홍철 투어가 정말 어마어마한 이득이다. 그래서 엠넷에서 같이 하게 된 PD형한테도 만나자마자 “어우, 형님~ 형님은 취미가 뭐에요? 여행 좋아해요?”이러고, 방송 얘기하려고 하면 “아, 잠깐만요. 그런 거 말고, 형님 여행 좋아해요? 저한테 정말 잘 보이면 50%로 여행, 그리고 정말 제가 감동을 느낄 정도로 잘 해주면 공짜로 여행 보내드릴게요” 이랬어요.
으하하. 캐스팅하러 온 사람한테 영업을!
노홍철 : 그래서 그 형하고 같이 방송하면서 제 여행사를 통해서 중국 여행을 가는 걸 찍었는데 다 좋았어요. 그 형도 좋고, 나도 좋고.
“AFKN을 본 순간, 해탈했던 거 같다” 대학 시절에도 학교에서 의사 가운을 입고 상담을 해줬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사람을 설득하고 대화하는 걸 참 좋아했나 봐요.
노홍철 : 제가 말은 잘 하는 편이 아닌데 얘기하는 걸 너무 너무 좋아해서 어렸을 때 다양한 사람들한테 낯가리지 않고 얘기를 막 했어요. 중국 음식점에서 음식 시켜먹다가도 종업원 분이랑 얘기를 많이 하고, 경비 아저씨랑도 앉아서 이런저런 얘기를 오래 하고.
어떤 부분이 그렇게 즐겁던가요?
노홍철 : 이렇게 말하면 안 되지만, 제가 체험하지 못한 인생에 대해 손에 물 한 방울 안 묻히고 들을 수 있다는 게 (일동 폭소) 너무 너무 흥미진진하더라구요. 대학교 와서 그게 절정이었는데, 저는 공대였지만 경영학과 애들하고 친해지니까 얘들이 미시 경제가 어떻고 거시 경제가 어떻고 얘기해요. 사실 잘 모르는 데 계속 얘기를 들으면 머리에 남잖아요. 그러면 그 쪽 관련된 사람을 만나면 “제가 뭐, 깊게는 모릅니다만 미시 경제랑 거시 경제, 그리고 앨빈 토플러의 은 정말 의미가…” (웃음) 방송에서는 그게 사기꾼 캐릭터지만 사람 만날 때는 상대방에 대한 예의인 것 같아요. 낯선 사람 만나서 그런 얘기를 하면 대화의 물꼬도 금방 터지잖아요.
정말 방송에 타고난 사람이었던 거죠. (웃음)
노홍철 : 정말! (웃음)
그런 설득의 힘은 어디서 나오는 것 같아요?
노홍철 : 그걸 보여주면 돼요. “얘는 나한테 요만큼도 뭘 원하는 게 없고 나는 얘한테 도움되는 게 없어. 근데 내가 쟤한테 도움 받을 게 조금이라도 있으면 있지 도움 줄 건 없어” 그런 걸 조금 심어주면 돼요. 그런데 이게 의외로 굉장히 간단한 것 같아요. (일동 폭소) 오해하실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전 정말 사기꾼이 아니라구요! (웃음) 사기치려고 공부한 적도 없고. 캐릭텁니다 캐릭터! (웃음)
아쉬운 게 없다는 건 본인에 대한 자기 긍정이나 자신감에서 나오잖아요. 우리나라에서는 부모님이나 학교에서 마음대로 살라고 하지는 않는 편인데 어떻게 그게 가능했죠?
노홍철 : 많은 경험들을 통해서 “아, 이게 맞구나” 라는 걸 깨닫게 된 건데, 저도 처음에는 다를 바 없었죠. 부모님이 원하는 착하고 공부 잘 하는 아들이 되고 싶었어요. 그런데 살아 보니까 그게 의지처럼 쉽게 되지 않더라구요. (웃음) 착한 것까진 하겠는데, 성적이 안 나오니까 당황스럽더라구요. 공부를 아무리 안 해도 성적의 마지노선이라는 게 있는데 그 선을 막 파괴시키고 그러니까 (웃음) 그러다 중학교 때 정말 큰일 날 점수를 받은 적이 있어요.
대체 어떤 점수길래. (웃음)
노홍철 : 정말 큰일 날 점수요. 초등학교 때 부모님이 “중학교 때는 너 정말 초등학교 때랑 다르다. 중학교 가면 네가 좋아하는 친구들조차도 너를 멀리 할 수도 있다.” (일동 폭소) 이런 얘기를 해도 별 생각 없었어요. 부모님이 굉장히 따뜻하게 말씀 해 주셨거든요. 그런데 점수가 이렇게 나왔잖아요. 부모님한테 어떻게 보여드리지 하다 일단 엄마한테 보여드리고 조마조마하고 있는데, 그 때 AFKN을 틀었어요.
거기서 뭘 봤나요?
노홍철 : 그걸 보는데 내 주위 사람들은 다 우울하고 저도 점수 때문에 힘든데, 거기에 제 또래 애가 나온 거예요. 그런데 막 입이 귀에 걸려 있고 “와우~” 이런 감탄사 연발하고 이름도 막 토닌가? 되게 좋은 이름인 거에요. (웃음) 그 때, 점수가 아무 것도 아니란 걸 알게 됐어요. 쟤도 내가 맘만 먹으면 비행기 한 열 시간만 타고 가면 만날 수 있는 앤데 쟤는 아무렇지도 않구나. 심지어 쟤는 내가 자길 봐서 기분 좋다는 것도 모르잖아요. 그러면서 뭔가 “짜잔-! ”한 거예요. 딱 해탈한 거예요. 그 때부터는 시험에 대해 전-혀! 스트레스라던가 하는 게 없어졌어요. 그냥 내가 하고 싶은 거 하고, 하지만 피해 주면 안 되니까 부모님한테는 그냥 독서실 갔다 온다고 하고. 흐흐흐.
“재석이 형은 너무 배울 점이 많은 사람” 부모님 입장에서는 받아들이기 힘들었을 거 같은데. (웃음)
노홍철 : 어떤 부모님이나 다 그러시겠지만 “하고 싶은 대로 다 해도 되지만 남한테 절대 피해 주면 안 된다”는 말을 많이 하셨어요. 그리고 부모님이 자식이 공부 열심히 하고 바르게 사는 걸 좋아하지 막 “으아아아~! 우어어어~!”이러면 부담스럽잖아요. (웃음) 그래서 학교에서는 엄청 개구쟁인데, 집에서는 조용히 위장하고 있었죠. 아직도 저희 할머니는 저한테 “사람 조심해라. 차 조심해라. 우리 강아지 어떡하냐” 그러세요.
부모님을 상대로 사기를! (웃음) 하지만 형한테까지 사기가 통하진 않았을 텐데요. 나이 차이도 많이 안 나서 노홍철 씨의 사기에 대해 다 알고 있지 않았나요?
노홍철 : 형은 공부를 아주 잘했고, 저는 뭐 처음부터 쭉….(손으로 하향곡선을 그리며) 그랬고. (웃음) 그래서 형은 밥 먹을 때도 책을 보니까 부모님이 “밥 먹을 때는 밥만 먹는 게 좋은 거야. 성철아”이러고, 저는 책을 너무 너무 안 봐서 아버지가 어느 날 만화책을 사오시면서 “이거라도 봐 주면 안 되겠니” 하셨어요. 그리고 형은 착해서 아버지가 이공계를 가길 바라고 어머니도 “성철아, 아버지가 장남이고 넌 우리 집안 장손인데 그래도 원하는 쪽으로 가야 하지 않겠니”이러시니까 그 쪽으로 진로를 결정하고. 대신 형은 저한테 하고 싶은 걸 하라고 했어요.
정말 좋은 형이었네요.
노홍철 : 제가 수능 100일 남았을 때 형이 초콜릿을 예쁘게 포장해서 저한테 선물해 주면서 “나는 내가 하고 싶은 걸 조금 삭히고, 또 이쪽 공부가 힘들거나 하지 않아서 하면 하겠는데, 너만큼은 꼭 네가 지금까지 해온 것처럼 절대 흔들리지 말고 너가 하고 싶은 걸 해라” 이러는 거예요. 정말 너무 너무 기뻤어요. 나는 무조건 하고 싶은 걸 하자. 사실 저도 방송하면서 고민은 돼요. 사람들이 나에게 바라는 게 있으니까 적정한 타협점 같은 걸들을 찾아야 하는데, 결국 하고 싶은 걸 하자는 결론을 내요.
그렇게 살아오다 방송을 시작하니까 어떻던가요? 대학시절까지와는 또 다른 유형의 사람들을 만나게 됐을텐데.
노홍철 : 전 “방송을 해야지”가 아니라 “방송 재밌어. 와~우~” 하는 사람인데, 방송 시작해서 처음 만난 게 재석이 형이었어요. 그래서 저한테 유재석이란 사람의 의미는 다른 방송인들하고 달랐죠. 난 이걸 하려고 했던 사람이 아니라 놀이터에 온 거니까 꼭 연예인 보는 것 같았어요. 그런데 재석이형 보고 느낀 게 그거였어요. 어? 이 사람은 배울 점이 많겠다. 그래서 같이 다녀봤죠. 그런데 진짜 너무 배울 점이 많은 사람인 거예요.
어떤 점이 그렇던가요?
노홍철 : 그 때 재석이형은 < X맨 >하고 그래서 이미 정점에 있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그 위치를 유지하느라 너무 피곤했을 거예요. 정말 관리가 필요한 위친데, 이 형이 방송 쉴 때마다 저한테 계속 말을 거는 거예요. 그 때는 왜 이러지 싶었는데 사실 절 챙겨준 거죠. 그리고 이동하면 딴 사람들은 자기 차에 타는데, 이 형은 자꾸 제 차로 오는 거예요. 내 차를 막 운전하고. 처음엔 “뭐야? 운전하는 거 되게 좋아하네?” 이랬어요. 어린 마음에 “연예인들은 하나씩 어디에 꽂힌다더니 운전에 꽂혀서 이렇게 스트레스를 푸는구나”했어요.
하하. 정말 어린 마음이었군요!
노홍철 : 흐흐. 제가 그 때 코디나 매니저가 없어서 차도 운전하고 옷도 챙겨야 하는데 방송에서 같은 옷만 입을 수 없으니까 옷을 빌렸어요. 그러면 녹화 시간이 있고 운전하는 시간이 있고 옷을 빌리고 돌려주는 시간이 있으니까 잠 잘 시간도 없어요. 그런데 하루는 녹화가 되게 늦게 끝났는데 형이 같이 가재요. 그래서 옷 반납해야 한다고 하니까 형이 제 차를 운전하겠대요. 형이 너무 피곤한 걸 알아서 말리는데도 절 태우고 자기가 운전하더라구요. 도착해서 형님 가보시라고 해도 안 간대요. 옷 돌려주고 나오래요. 형은 그 때도 완전 최고였는데, 제가 위에서 옷 다 반납할 때까지 기다렸다 집에 데려다줬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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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글. 강명석 two@
인터뷰. 최지은 five@
사진. 이진혁 eleven@
편집. 이지혜 se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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