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기웅 “<추노>의 ‘그 분’은 절대 혼자 만든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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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망주에게 가능한 길은 보통 세 가지다. 스타가 되거나 잊히거나 평범해지거나. 박기웅이라는 배우가 독특한 건, 2006년 영화 이후 아직까지도 언제 터질지 모를 포텐셜을 품은 유망주로 남아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최근 종영한 KBS 에서 노비들을 친히 형님이라 부르며 더 나은 세상에 대한 희망을 말하다가 결국 그들을 배신하는 ‘그 분’ 연기는 다시 한 번 여전히 평범하지 않은 유망주로서의 박기웅을 증명하는 기회였다. “어이, 어이, 냄새나, 가까이 오지 마.” 차갑게 웃으며 말하던 ‘그 분’이 아니었다면 막판의 반전이 그토록 충격적일 수 있었을까. 어쩌면 이제 유망주 그 너머를 향한 한 발을 내딛은 것일지도 모를 그를 만나 깜짝 스타였던 ‘그 분’에 대해, 그리고 꾸준한 노력파인 박기웅에 대해 들어보았다.

최근 인터뷰 제의가 많은 걸로 안다. 확실히 의 효과를 보는 것 같다.
박기웅 : 이전에도 전화 인터뷰 포함해서 3개 정도의 인터뷰를 했는데 가 박기웅이라는 연기자의 인생에 있어 어떤 의미인지 물어보더라. 뭔가 의미 있는 대답을 원하는 거 같은데 사실 별다른 의미가 없다. 내가 했던 작품들이 다 소중하듯 역시 열심히 해서 소중한 작품이지 시청률이 잘 나와서 더 특별할 건 없다.

“내 눈이나 만드는 사람의 눈보다 시청자의 눈이 더 정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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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연기 자체로만 따지면 KBS 에서 안경태의 틱 연기도 충분히 인상적이었다.
박기웅 : 나는 오히려 그걸 더 잘한 거 같다. 그땐 준비할 시간도 있었으니까. 이번 건 갑자기 들어가게 되어서 준비 시간이 부족했다. 특별히 오디션 없이 의상과 헤어, 분장까지만 해보고 감독님께 보여드렸는데 촬영 하루 전인가 이틀 전에 결정이 된 거다. 를 약 한 달 반 정도 촬영했는데 처음 들어갈 때보다 지금 4㎏ 정도 빠졌다. 마지막 반전 부분에서 더 못돼 보이려고. 그런데 만약 준비할 기간이 좀 더 있었다면 미리 살을 빼고 들어갔겠지.

그런 면에서 연기 자체는 말 그대로 다를 게 없을 수 있다. 다만 대중의 리액션이 다르다는 건 확실히 느꼈을 거 같은데.
박기웅 : 느꼈다. 나는 인터넷을 많이 안 하는 편이라 체감은 덜하지만, 일단 주변에서 전화도 많이 오고 부모님도 주변에서 인사 많이 받는다고 그러신다.

그런 면에서 에서의 연기가 갖는 의미가 아닌, 이런 대중의 리액션 안에서 연기자로서 느끼게 된 것이 무엇인지 궁금한 거다.
박기웅 : 어쨌든 이 일은 시청자와 소통하는 거니까 항상 연기를 하면서 대중의 시선을 맞추려고 노력한다. 그게 되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캐릭터를 계속 연구하고 집중하고 파고 들다보면 삐뚤어지고 엇나간다. 몰입을 하다 보니 전체적인 그림에서 엇나가게끔 연기할 때가 있다. 그 부분을 조심하려고 한다. 항상 생각하는 게, 내 눈이나 만드는 사람의 눈보다 시청자의 눈이 더 정확하다는 거다.

그럼 이번 에서는 어떤 방식으로 시청자의 눈에 들고 싶었나.
박기웅 : 작품 들어갈 때 대본이 다 나온 상태는 아니었지만 언질은 있었다. 노비를 선동하고 이끄는 인물인데 나중에 알고 보면 좌의정의 수하였다고. 그런 면에서 굉장히 믿고 싶은 사람으로 보였어야 했다. 말이나 행동을 통해 노비들도 나를 믿게끔 하고 시청자도 나를 믿게끔 해야 하고. 그러면서도 뭔가 미심쩍은 느낌이 들기도 해야 해서 그게 좀 애매했다.

사실 스토리 전개상 반전을 예상 못한 건 아니지만 ‘그 분’이 노비들에게 형님이라고 하거나 선혜청 습격 전 연설을 할 때, 말 그대로 믿음이 갔다. 그 땐 그들을 속인다는 마음으로 연기한 건가, 아니면 진심으로 연설하는 기분으로 연기한 건가.
박기웅 : 사실 노비들과 대화를 나누는 부분에서는 항상 ‘이 사람들을 속인다’는 심정으로 연기했다. 하지만 연설하는 장면은 굉장히 진심을 담아 연기했다. 거기에 시청자들이 속아준 것 같고, 덕분에 마지막 반전이 더 셌던 것 같다. 그 반전을 위해 양반 옷을 입고 좌의정 이경식(김응수)을 만나는 신에서는 무덤덤하게 연기했다. 그 장면이 최종 반전은 아니니까.

“얼굴 근육 움직이는 연습한 덕을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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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덤덤한 걸 넘어 좌의정과 거의 동등한 느낌이었다.
박기웅 : 일부러 나 스스로 좌의정 밑에 있는 인물이 아니라는 느낌으로 연기했다. 이 인물은 복합적이지 않고 굉장히 직선적인 인물이라고 봤다. 배운 게 많고 무예가 뛰어나지만 불도저처럼 밀어붙이는 인물이라고. 좌의정 앞에서 예의상 고개를 숙이고 절을 하지만 좌의정을 언젠가는 뛰어넘고 이용하겠다는 생각으로 연기했다. 그런 야망을 담아 중간 중간 좌의정을 노려보는 리액션을 조금씩 넣었다.

그것 때문에 정말 ‘그 분’이 좌의정의 심복인지 의심스러웠다.
박기웅 : 그런 느낌을 주고 싶었다. 시청자에게 끝까지 희망의 끈을 놓지 않게 하고 싶었다. 내가 좌의정 심복이지만 왠지 뒤통수를 칠 것 같기도 하고, 필요에 따라 좌의정을 이용할 거 같다는 식으로. 그런 의도와 내가 잡은 야망 큰 청년의 캐릭터가 잘 맞아떨어졌다.

그러다 결국 시청자의 뒤통수를 친다.
박기웅 : 사실 마지막 반전은 시니컬하게 연기할까 생각했다. 내가 보여줬던 연기는 어떤 면에서 좀 오버스러운 게 있지 않나. 그런데 많은 분들이 예상할 수 있던 반전이었기 때문에 좀 더 충격을 줄 수 있는 연기를 해야 했고, 고민하다가 시니컬하다기보다는 사이코패스가 사람을 죽이면 이런 식이겠구나 싶게끔 섬뜩하게 대놓고 연기했다.

혀를 날름거린 건 애드리브인 건가?
박기웅 : 그렇다. 사실 걱정을 했다. 오버한 걸로 보이지 않을까. 다행히 큰 무리 없이 오케이 해주셔서 그렇게 나갈 수 있었던 것 같다.

오버라고 하지만 안경태 역도 그렇고 극적인 연기를 더 잘한다는 느낌이다.
박기웅 : 정말 겸손이 아니라 그런 게 되게 돋보이기 쉬운 역할이다. ‘그 분’도 그렇고 안경태도 그렇고 그런 극적인 역할은 무난하게 힘을 줘서 가는 역할보다 테크닉에 의존할 수 있고, 연기했을 때 관객들의 반응도 더 많이 얻을 수 있다. 날로 먹는 거지. 하하하.

더 반응을 얻을 수 있는 인물일 수는 있지만 결국 그런 극적인 캐릭터를 살려야 그런 반응을 얻을 수 있는 거 아닌가.
박기웅 : 모든 배우들이 하는 거겠지만 얼굴 근육 움직이는 연습을 되게 많이 한다. 그래서 남들이 못하는 얼굴 근육 움직임을 보여줄 수 있다. 눈알도 따로 따로 굴려서 사시처럼 보일 수도 있다. 다 연습을 하는 거다. 이번에 잔꾀를 많이 부렸는데, 사람이 왼쪽 얼굴 근육을 쓰며 연기할 때와 오른쪽 얼굴을 쓰며 연기할 때 인상이 굉장히 다르다. 에서 내가 오른쪽 얼굴을 쓴 장면이 세 개인데, 오포교를 만났을 때와 좌의정을 만나 웃으며 말할 때, 그리고 마지막에 노비들을 벨 때다. 그 외 가식적인 대사를 할 때는 왼쪽 얼굴 근육을 많이 썼고. 그러면 느낌이 많이 다르다. 에 들어가면서 생각한 건 아니고 운 좋게 연습해온 걸 써먹을 수 있었다.

“연기는 서비스업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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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적인 트레이닝인 건가.
박기웅 : 그렇다. 연극하는 선배에게 배웠다. 그런 연극하는 분들의 연기를 좋아한다. 특히 이번에 같이 연기한 조희봉 선배의 팬이다. 2003년에 조희봉 선배가 연기한 이라는 연극을 보고서 사람이 저렇게 연기를 잘할 수 있다는 것에 충격을 받았다. 그 때 나도 나중에 연기자가 되면 저렇게 연기 잘하는 배우가 될 수 있을까 싶었는데 언젠가부터 그분과 같이 출연하는 작품이 많아지는 거다. 같이 붙는 신이 없을 때도 있지만 같은 작품에 출연한 걸로만 따지면 단막극 포함 다섯 작품 째다. 사실 이번 ‘그 분’의 배신도 조희봉 선배의 뛰어난 리액션 덕분에 살 수 있었다. 거기에 업복이와 초복이 커플 신과의 교차 편집도 정말 잘 되었고. 아까 말한 것처럼 한 거에 비해 날로 먹었다.

저번 인터뷰 때도 느꼈지만 겸손이 몸에 밴 것 같다.
박기웅 : 작품을 내가 만들어가는 게 아니니까. 물론 내가 연기하는 부분도 있지만 후반 작업의 힘이 엄청나지 않나. ‘그 분’의 연기 역시 다른 배우들의 리액션이 있고, 조명이 내 얼굴을 기괴하게 비춰주고 그걸 촬영감독님이 잘 잡아주고 마지막에 편집을 통해 내가 한 것 중 필요 없는 걸 쳐내고 쓸모 있는 건 잘 붙여줘서 돋보이는 거다. 항상 생각한다. 연기는 절대 혼자 하는 게 아니라고. 상대 배우와의 호흡, 스태프와의 호흡, 한 발 더 나아가면 관객과의 호흡이다. 나는 연기를 서비스업이라고 보는데, 제3자의 눈에 비춰졌을 때를 염두에 두고 객관적인 연기를 하려고 노력한다. 그건 내게 도움이 많이 된다. 내가 굉장히 많은 작품을 한 배우는 아니지만 처음 이쪽 일을 시작하면서부터 배우고 구축된 태도라 스스로 대견할 때도 있다.

이번 처럼 순간순간 놀랄만한 가능성을 보여주는데, 그게 럭키펀치가 아닌 오랜 시간 쌓아놓은 것들이 발현되는 것 같다. 하지만 그만큼 그걸 다 내보이고 싶은 조급함도 있을 것 같은데.
박기웅 : 그런 조급증을 느낀 적도 분명히 있는데 생각했던 것만큼 좋은 자극제가 되진 않더라. 오히려 연기를 하는데 있어서 마이너스가 된다는 걸 많이 느꼈다. 조급해봤자 결과가 달라지지 않으니까. 물론 잘 되면 좋지. 잘 되고 싶고.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으면 하고 싶은 배역을 선택할 수 있는 폭이 넓어지지 않나. 솔직히 지금 내가 저 작품을 하고 싶다고 해서 연출자가 써주는 상황은 아니다. 아직까지 믿음을 주지 못한 거고, 많은 사람에게 믿음을 주는 상황이 되면 선택의 폭도 넓어질 거라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주연에 대한 욕심은 있을 것 같다. 이미 에서 주연을 맡았었는데.
박기웅 : 맡겨주면 잘할 수 있다. 실망 안 시킬 자신 있다. 사실 때에는 겁이 났다. 긴 조연 생활 없이 운이 좋아서 갑자기 주연을 턱 맡았으니. 하지만 지금 타이틀롤을 맡게 된다면 절대 쉽게 무너지지 않을 자신이 있다. 작품 하나를 이끌어가고 싶은 욕심은 분명히 있고 그러기 위해 계속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주연급이 되면 작품을 고르는 폭이 넓어지는 반면 덩치가 커져서 오히려 움직이기 어려워지는 지점도 있을 텐데.
박기웅 : 안 겪어봐서 모르지만 분명히 있겠지. 하지만 더 자유롭게 배역을 맡을 수 있다는 면에서 적어도 지금보다는 자유로울 거라 생각한다. 그리고 주, 조연이나 작품의 제작비에 얽매이는 배우가 되고 싶지는 않다. 만약 의 권상우 선배 같은 톱스타가 된다고 해도 단막극은 계속 하고 싶다. 이번에 단막극 부활하지 않나. 하는 것도 좋아하고 보는 것도 좋아하는데, 하고 싶은 것만큼은 유연하게 하고 싶다. 사실 연기자라는 게 대중들에게 얼굴이 알려지면 밖에서 섞여 생활하기 불편할 때가 있다. 나도 그런데 톱스타들은 오죽하겠나. 하지만 그것 때문에 자기 걸 포기하기 시작하면 끝이 없는 것 같다. 지금 나에게 여자친구가 생겨도 손잡고 롯데월드에 갈 거 같다. 우리도 인간이고 연기자는 직업일 뿐이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앞으로도 그 생각을 지키고 싶나.
박기웅 : 모르지. 이 생각이 틀릴 수도 있지 않나. 아직 생각이 짧고 많이 어려서 나중에 나이 조금 더 먹고 경험을 쌓은 후에야 내 생각이 틀린 걸 알게 될 수도 있으니까. 다만 연기자가 아닌 사람 박기웅으로서는 초연하게 살고 싶다. 컴퓨터 책상 옆 액자에 자처초연(自處超然)이란 말을 적어놓았는데 말 그대로 매사에 좀 초연하고 비울 줄 아는 사람이고 싶다. 난 사람보다 된 사람이.

글. 위근우 eight@10asia.co.kr
사진. 이진혁 eleven@10asia.co.kr
편집. 이지혜 seven@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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