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창 알렉스가 ‘로맨틱 가이’라는 말을 들을 때가 있었다. 물론 그는 지금도 여전히 로맨틱한 남자라는 말을 듣는다. 그러나 MBC 가 끝난 뒤에도 그는 계속 무언가 하고 있었다. 클래지콰이는 몇 장의 앨범을 더 냈고, 그의 생활과 요리에 대해 담은 책 이 나왔으며, MBC 로 두번째 드라마도 찍었다. 그는 단번에 엄청난 변신을 하지는 않았지만, 쌓이는 시간만큼 자신의 여러 모습을 보여주면서 자신의 모습들을 몇 조각으로 나눠 보여줬다. 이 인터뷰는 그 조각 중 일부다. 그리고 좀 더 그가 자신을 드러낸 순간 중 하나일 것이다. 예능 프로그램이나 드라마의 캐릭터가 아닌 알렉스 자신이 말하는 알렉스가 여기 있다.

가 끝났다. 소감이 어떤가.
알렉스: 권석장 감독님이 를 처음 찍을 때 “걱정 하지마. 드라마 망해도 니 책임 아니니까 맘대로 해!”라고 하셨다. 솔직히 나라면 그런 말 쉽게 못했을 텐데, 그 말에 힘을 얻고 처음부터 드라마에 쉽게 빠져든 것 같다.

“시간이 지날수록 유경이가 정말로 좋아지더라”
알렉스│“소모품이라 할지라도 잘 소모되면 되는 거다” -1
알렉스│“소모품이라 할지라도 잘 소모되면 되는 거다” -1
는 유독 제작 일정이 빡빡했다고 들었다. 미니시리즈 제작 환경에 적응하기 어렵지 않았나.
알렉스: 10~11회쯤부터 거의 생방송처럼 찍었다. 그래서 원래 다 이런 건가, 이게 말이 되는 건가 했다. (웃음) 그런데 내가 화요일 오후까지 찍은 게 그 날 방송 보면 바로 나오는 거다. 내가 연기를 잘한 건 아니지만 화면은 멀쩡하게 나오고. (웃음) 그때서야 같이 연기하는 분들이 허허 웃으면서 “다 찍어, 방송 펑크 나는 일은 거의 없어”라고 한 게 이해가 됐다. 물론 사전제작이 좋긴 하겠지만, 드라마라는 게 시청자들한테 휘둘린다기보다는 시청자들이 뭘 좋아하는지 파악하면서 가는 시스템이구나 싶었다.

첫 드라마에 대한 기억이 좋은가보다.
알렉스: 너무 너무 좋았다. 3일 전에도 권석장 감독님, 서숙향 작가님, 선균이형(이선균), 효진이(공효진), 설사장님(이성민)까지 다 모여서 술을 마셨다. 선균이 형도 그렇고 효진이도 드라마 끝나고 이렇게 계속 연락하긴 힘들다고 하더라. 영화하고 다르게 드라마는 너무 급하게 찍어서 서로의 역할에 대해 의견 조율도 잘 못하고, 일이 잘 안 풀리거나 하면 분위기도 좋기 힘들고. 그런데 모르는 입장에서 봤을 때 는 감독님, 선균이형, 효진이가 신에 대해서 고민하는 걸 많이 봤다. 그런 게 당연한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고 하더라. 그런 걸 보면 내가 운이 좋은 사람인 것 같다. 운 좋게 좋은 작품을 만나서 좋은 사람들 안에서 드라마에 적응한 것 같다.

미투데이에 “안녕 김산”이라고 쓴 걸 봤다. 첫 드라마의 배역을 떠나보내는 건 어떤 기분인가.
알렉스: 를 집에서 보는데 현욱이와 유경이가 둘이서 연애를 하고 있었다. 그걸 보는데 “나 없는 동안 둘이 저런 짓을 하고 있는 거야?”란 생각이 들더라. 어느 순간부터 내가 유경이를 좋아하게 된 거다. 그 때 누군가가 쓴 글에 의해 만들어진 캐릭터를 산다는 게 이런 기분인가 싶더라. 그러고 나서 가 끝나기 몇 주 전에 내 연기 선생님이 그러시더라. 니가 김산으로 살 시간은 3주 밖에 안 남았는데 아쉽지 않냐고. 난 32년을 추헌곤으로 살았고, 7년을 알렉스로 살았고, 다시 김산으로 살게 됐는데 그게 딱 3주 남았던 거다. 그런 생각을 하기 시작하니까 잠이 안 오더라. 특히 유경이를 포기하는 내용을 연기할 때는 굉장히 힘들었다. 나는 시간이 지날수록 유경이에 대한 감정을 키웠는데 대본이 날 헤어지게 만드니까. 그래서 그 날 계속 NG를 내기도 했었고. 그러니까 효진이가 원래 그런 거라고 얘기해주더라.

처음 겪는 연기 경험인 만큼 고민도 많았겠다.
알렉스: 내가 3년 동안 여자에게 고백도 못하는 성격은 아니다. 3일이라면 몰라도. (웃음) 그것 때문에 딜레마에 빠졌었다. 왜 김산은 괴도 루팡도 아닌데 3년 동안 몰래 선인장만 줬을까. (웃음) 그리고 왜 이제야 이러는 걸까. 유경을 이성으로 보기 보다는 호기심의 대상으로 봤다가 최현욱이 나타나니까 라이벌 의식을 느낀 건가, 아니면 3년 전부터 좋아한 건가 하는 고민이 있었다. 그리고 유경이에 대한 마음이 밝혀지면서 굉장히 소심한 남자가 됐고. 처음처럼 카리스마 있게 등장해서 “싫으면 문 닫아” 하는 게 안 되는 거다. 그러다가 내가 유경을 정말 좋아하게 되니까 감정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김산과 내가 닮은 점도 꽤 있었던 것 같다”
알렉스│“소모품이라 할지라도 잘 소모되면 되는 거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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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캐릭터를 고민하는 과정에서 김산에 자신의 해석을 덧붙이게 된 것 같다. 김산은 부드러운 키다리 아저씨라기보다는 뭔가 다 알고 있고, 좀처럼 속을 안 드러내는 사람 같다.
알렉스: 처음부터 생각했다. 김산이 레스토랑 경영을 직접 할 생각을 하는 거보면 능력이 없는 사람이 아니다. 숫자에도 철저한 사람이고. 그런데 왜 김산은 설사장에게 레스토랑을 맡겼을까. 그러면 능력은 있지만 어디서 얽매이는 게 싫은 사람 아닐까. 그러면 최현욱과 대화할 때도 칼 같은 최현욱하고 다르게 좀 더 여유 있게 생각하지 않을까. 가위 바위 보를 해도 계속 서로 비기면 재미없으니까 누구 한 명은 이기거나 져야 하는데, 최현욱이 그렇게 자기 생각을 밀고 나가는 사람이라면 내가 져주거나 이겨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김산은 최현욱에게 점점 져가는 캐릭터라고 봤고. 같이 소리 지르기보다는 부드럽게 풀고, 둘 사이에 유경이도 있으니까 이 사람한테 치졸하게 굴지 않고.

그런 부분이 재밌었다. 사실 김산은 주연이 아니라 많은 부분이 설명되지 않는데, 김산은 모든 걸 다 알고 있다는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알렉스: 내가 주인공이 아니라서 자세히 설명 안 되는 부분이 있는 건 사실이다. 우리끼리 우스갯소리로 김산은 김산신령이라고 했다. (웃음) 셰프와 부주방장이 싸울 때 주방에 들어가 서 있으니까. 없어도 되는 자리에 펑하고 나타나는 것 같지 않나. “이 대사가 니 대사냐”하면서. (웃음) 그런데 그 장면들이 있어야 후에 김산이 혼자 있으면서 무언가 생각하는 부분이 설명된다. 그래서 김산의 캐릭터가 만들어지고. 그런 건 작가님의 능력인 것 같고, 나는 촬영 들어가기 전에 연기 선생님을 찾아가서 김산 수업을 받았다. 어떻게 하면 이 사람처럼 자유로운 마인드를 가질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좋아하는 사람에게 마음을 숨기고 슬쩍슬쩍 장난을 칠 수 있을까 같은 거. 김산과 내가 닮은 점도 꽤 있었던 것 같고.

가수는 무대에서 늘 주인공인데, 드라마에서 조연을 한 기분은 어떤가.
알렉스: 어떤 곳에서든 주연이 아닌 사람의 기분이 이런 거구나 싶었다. 가수는 기본적으로 무대에 서야 하기 때문에 관객들이 늘 우리에게 환호를 해주는데, 드라마에서는 내가 가장 중요한 사람은 아니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대신 나에게 맞는 역할을 하면서 잘 살 수 있구나 싶었다.

요즘에는 앨범 몇 장만 내도 식상하다고 말하고, 예능 프로그램에서 화제가 되도 어느 순간 갑자기 싫어졌다고 말하는 세상이다. 그 다음에 뭘 해야 할지에 대한 고민이 많지 않나.
알렉스: 그런 고민이 지금 제일 심할 때다. 일단 에서는 주연들에게 잘 묻어갔다. (웃음) 하지만 다음 작품이 잘 될 거라는 보장은 절대 없다. 내가 이제 한 작품 찍고 연기를 정말 잘 할 거라고 말하는 것도 웃기고. 그래서 에서도 크레딧 올라갈 때 추헌곤으로 안 바꿨다. 어차피 나는 다른 일도 계속 할 텐데 내 이름 하나만 쓰는 게 나을 거 같았다. 지금 너무 스펙트럼이 넓어졌다. 음악, 라디오 DJ, MC, 연기, 책까지. 이제 과연 뭘 하고 먹고 살아야 하나하는 생각도 한다. 어렸을 때 주의가 산만하다는 말을 많이 들었는데, 요즘에는 집중력 있게 산만한 것 같다. (웃음)

집중력 있게 산만하다는 게 당신의 지난 시간을 말해주는 것 같다. 클래지콰이, , 솔로 활동, 예능 어느 쪽이든 계속 활동하면서 나름의 성과를 거뒀다.
알렉스: 예전에 친구들이 나한테 그런 말을 했다. 얘는 사막에 떨어뜨리면 산유국 국가의 막내 왕자하고 친구 먹을 놈이라고. (웃음) 캐나다에서는 커피숍에서 일하면 바로 커피 만들고, 스시 집 가면 밥 30인분하고 그랬으니까.

“쉬면 오히려 손이 떨리는 난 워커홀릭”
알렉스│“소모품이라 할지라도 잘 소모되면 되는 거다” -1
알렉스│“소모품이라 할지라도 잘 소모되면 되는 거다” -1
왜 그런 생존 본능(웃음)을 갖게 된 건가.
알렉스: 어린 시절에 돈을 직접 벌었다. 캐나다에서 살 때 친구들이 한 달에 50불, 100불씩 용돈 받을 때 나는 한 달에 2000불씩 통장에 들어왔으니까. 그 때는 그렇게 돈 버는 재미가 너무 좋았었다. 사실 내가 술, 담배를 좀 일찍 배웠는데, 그 때 어머니가 “술, 담배가 몸에 안 좋은 거 알지?”하면서 “부모한테 몸에 안 좋은 거 하려고 손 벌리는 것만큼 우스운 게 없다는 것도 알지?”하면서 술, 담배를 하려면 나가서 벌어서 하라고 했다. 그래서 아 그러면 용돈을 벌어서 술, 담배를 해야겠구나 했다. (웃음) 사실 어머니는 피 땀 흘려 돈을 벌어봐야 제대로 돈을 쓸 수 있다고 생각해서 그러셨던 거지만. 그렇게 돈을 벌면서 친구들한테도 밥을 살 수 있고, 여자친구에게 좋은 선물을 해 줄 수 있는 게 좋았다. 그 때부터 내 주머니가 빵빵해야 사람이 허리를 펼 수 있다는 걸 알겠더라.

지금 다양한 활동을 하는 것도 그런 삶의 방식 때문일 수도 있겠다.
알렉스: 주변에서 하도 쉬라고 하길래 1주일 휴가를 낸 적이 있었다. 그런데 3일쯤 지나니까 손이 떨리더라. 난 워커홀릭이었던 거다. 그리고 TV에서 열심히 하는 친구들을 보니까 난 쟤들이 잘 때도 열심히 활동해야 하는데 지금 뭐하나 싶은 생각이 들고. 7년 동안 여행도 안 가봤다. 아마 나는 일찍 죽을 거다. (웃음) 너무 몸과 마음을 혹사시키니까. 하지만 소녀시대처럼 지금 반짝반짝 빛나는 팀도 있는데 내가 여기서 가만히 있을 수는 없지 않나. 내가 어떤 기계 전체는 안 돼도 나만의 역할을 할 수 있는 부품은 될 수 있는 거니까. 그렇게 어울리는 역할을 하면서 잘 소모되고 있다는 생각을 할 수 있으면 되는 것 같다.

하지만 당신은 그냥 소모되기 보다는 조금씩 당신의 모습들을 사람에게 알려주는 것 같다. 처음에는 목소리를 알렸고, 와 솔로 앨범에서는 로맨틱한 느낌이 있었다. 그리고 같은 책이나 에서는 당신의 사는 방식이 더 잘 드러나는 거 같고. 조금씩 알렉스라는 사람 전체를 보여주게 된 것 같다.?
알렉스: 친구들이 를 보고 그러더라. 넌 왜 돈 받고 하는 일인데 연기를 안 하냐고. (웃음) 친구들이 볼 때는 의 내 모습이 실제 내 모습하고 큰 차이가 없었다는 거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그게 참 희한한 일이다. 전까지 나는 사람들한테 “진짜 에서처럼 행동해요?”라는 질문을 받았다. 물론 나는 강남역에서 사진 찍고 발 씻어주지는 않는다. (웃음) 하지만 여자친구에게는 당연히 그럴 수 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런 것들에 대해서 몇 년 동안 궁금해 하다가 이제는 를 보고 나를 다르게 생각했다는 분들이 생긴다. 어느 것이 내 진짜 모습이냐고 하는 것 보다는 미디어를 통해 내 모습이 조금씩 드러나는 것 같다. 이런 일을 하면서 내가 내 일을 통해서 내 속살까지 끄집어내야 하나 싶고.

그렇게 자신의 모습을 조금씩 보여주면서 점점 여러 분야로 활동영역을 넓혔다. 앞으로 당신은 어떻게 이곳을 헤쳐 나갈까.
알렉스: 일단 음악은 대중이 허락할 수 있는 한 계속하고 싶다. 다만 연예인 수명이 점점 짧아진다는 생각이 든다. 한국 대중음악 시상식 MC를 보게 돼서 며칠 전 대본을 받았는데, 그게 벌써 7회더라. 우리가 이 시상식의 첫 회 신인상을 받았었는데, 그 7회의 대본이 내 앞에 있는 거다. 그걸 보니까 내가 이 바닥에서 벌써 7년이 됐구나 싶었다. 그리고 그 사이에 내가 4년째 됐을 때쯤에는 너무 바빠서 그런 생각도 했었다. 이렇게 가면 다 타고 재만 남겠구나. 지금도 그런 생각을 가끔씩 한다. 내가 지금까지 태울 게 남아있는 걸까. 하지만 그래도 지금까지는 괜찮은 것 같다. 내가 소모품일 수도 있겠지만, 난 소모품일지언정 잘 소모되고 있으니까.

글. 강명석 two@10asia.co.kr
사진. 채기원 ten@10asia.co.kr
편집. 이지혜 seven@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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