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시창 [명사]
1. 현실은 시궁창
2. 뭐 그냥 이렇게 살아요. 마음에 안들지만 어쩌겠어요.

에미넴 주연의 2003년작 영화 <8마일>의 한 장면을 자막과 같이 캡처한 사진을 통해 많은 이들의 공감을 얻은 ‘현실은 시궁창’이라는 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조사 ‘-은’의 의미다. 차이, 대조를 나타내는 보조사로서 ‘-은/-는’은 주격, 목적격, 혹은 부사격의 자리에 쓰임으로써 먼저 제시된 정보와의 대비를 의미해 준다. ‘나는 냉면 먹을게’와 ‘나도 냉면 먹을게’라는 두 문장 중 동행이 냉면을 먹지 않는 것은 전자라는 것을 생각하면 쉽게 이해되는 일이다. 따라서 현실‘은’ 시궁창이라는 말에는 현실이 아닌 그 무엇은 시궁창과 대조되는 가치를 지녔음을 전제한다. 그리고 영화 <8마일>에서 그것은 ‘꿈은 높은데’라는 조건으로 제시 되어있다.

꿈과 현실이 일치하기 어렵다는 것은 누구나 체감하는 일이다. 그리고 그 둘 사이의 간극이 커지면 커질수록 사람들은 좌절의 깊이를 더하게 된다. 문제는 많은 현대인들이 높은 꿈을 갖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그들의 현실이 꿈에서 점점 더 멀어지고 있다는 데에 있다. 행복을 추구하고, 생존을 보장받을 가장 소박한 권리마저 위협당하는 세상에서 현실은 이상과 상관 없이 제 힘으로 시궁창을 향해 곤두박질친다. 그리고 그런 이들에게 조사 ‘-은/-는’은 주격을 그대로 설명하는 지극히 직설적인 기능어에 불과하게 된다. 참고로 이 장면의 실제 영어 대사는 “Like when you gotta stop living up here and start living down here?”이며, 이것을 해석해서 멋지게 독자들에게 소개해주고 싶은 나의 꿈은 높지만 현시창……. 눙무리.

용례[用例]
* 우리 애가 소질이 있는 것 같아! 그러나…… 현시창
* 야호! 드디어 취업에 성공했다. 그래서…… 현시창

* 오빠들 실물 쩌네염. 완전 후광이 나요. 그나저나 나는…… 현시창

* 엄마! 나 오늘 TV에 나와! 꼭 보고 녹화해줘. 하지만…… 현시창

글. 윤희성 (nine@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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