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18년” 아니 평생을 함께 갈 이 아름다운 동료들이 올해도 어김없이 함께 제 14회 부산국제영화제 (이하 PIFF)를 찾았다. 두 남자는 11살 차이가 난다. 57년생인 차이밍량과 68년생인 이강생 혹은 리캉셍. 거리에서 만난 어린 리캉셍을 처음 배우로 기용해 차이밍량은 자신의 장편 데뷔작 <청소년 나타>를 찍었고 이후 <애정만세>, <하류>, <구멍> 최근작 <얼굴>까지 차이밍량의 거의 전작에서 리캉셍은 그의 ‘페르소나’이자 ‘얼굴’이었다. 차이밍량의 작품을 지켜보는 것은 결국 배우 리캉셍의 성장 혹은 성숙을 지켜보는 것과 동의어다. 청소년 리캉셍이 중년의 남자로 깊어가는 모습은 고스란히 필름 위에 기록되었고 그것은 마치 한 사람의 일생을 건 거대한 다큐멘터리처럼 느껴질 정도다.
감독과 배우, 역할을 바꿔도 여전히 함께인 두 사람
그렇게 “선생님이기도 하고 친구이기도 하고 잔소리 많은 집안 어르신 같기도 한” 차이밍량과 함께 ‘이배우’로 작업을 이어오던 중 리캉셍이 어느 날부터 연출 공부를 시작했고 그의 감독 데뷔작 <불견>은 그 해 PIFF 뉴커런츠 대상을 받았다. 올해 부산을 찾은 옴니버스영화 <타이페이 24>의 마지막 에피소드인 ‘회상’은 리캉셍의 세 번째 작품이다. 새벽 4시부터 아침 7시까지의 타이페이가 포착한 것은 바로 시대의 무용가 루오 만 페이를 그리며 눈물을 짓는 ‘차이밍량의 얼굴’이다. 그가 배우로 등장하고 리캉셍이 연출한 ‘회상’은 <구멍>에서의 안무를 지도해주었던 인연으로 만났던 무용가 루오 만 페이가 암으로 죽고 난 후 오랜 친구였던 그녀를 기억하고 추억하기 위해 만들게 된 영화다. “지난 18년을 함께 일해 왔는데 이 정도 부탁도 못 들어 주냐”며 리캉셍은 출연을 부탁했고 결국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차이밍량은 배우의 크레딧을 달았다. “배우는 하늘이 내린 사람 같다. 나는 앞으로도 쭉 카메라 뒤에 서있고 싶다”는 ‘차배우’의 겸손한 소감에 대해 “연기에 대한 잠재력이 풍부한 배우다. 아마 많은 이들이 차이밍량이 연기하는 걸 더 보고 싶어 할 것 같다. 다만 노출 신에서는 쓰지 않겠지만 (웃음)”이라고 ‘이감독’은 재치 있게 덧붙인다.
“우리의 작품이 비슷한 것이 오히려 당연한 거 아닌가?”
차이밍량은 둥글둥글한 인상에 달변가이자 표정이 풍부한 사람이고, 리캉셍은 마른 몸에 말도 별로 없고 표정도 좀처럼 변하는 법이 없다. 그런 양각과 음각이 만들어 낸 조화의 산물이 바로 차이밍량과 리캉셍의 작품이다. “종종 리캉셍의 영화가 내 작품과 너무 비슷하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하지만 그는 용감한 사람이다. 나를 따라가기보다는 자신의 스타일을 만들어가는 예술가다. 그런데 비슷한 것이 오히려 당연한 거 아닌가? 우리가 함께 일한 지 거의 20년이 되어간다. 내가 처음 발굴한 배우였고 감독 수업도 나에게서 받았다. 지극히 정상적인 거다” 라며 차이밍량은 한 명의 감독으로 성장해 가는 자신의 적자에 대한 믿음과 존경을 드러낸다. 1992년 차이밍량의 아버지가 암으로 돌아가시고 5년 후 리캉셍의 아버지가 오랜 지병과 싸우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듬해 영화제로 가던 비행기 안에서 괴로운 표정으로 잠들어 있는 리캉셍의 얼굴에서 차이밍량은 <거기는 지금 몇 시니?>를 만들어야겠다고 결심을 했다. 그리고 마침내 완성된 이 영화의 마지막은 ‘나와 리캉셍의 아버지를 그리며’라는 말로 끝맺는다. 사람은 태어나고 자라난다. 성숙하고 그리고 늙어갈 것이다. 이 길을 평생 함께 갈 누군가가 있다는 것. 그리고 그 길이 영화라는 것은 분명 축복이다. 물론 이토록 신실한 길벗의 행로를 동시대에 지켜볼 수 있다는 것 역시 우리에게 내려진 축복임에 분명하다.
글. 부산=백은하 (one@10asia.co.kr)
사진. 부산=이진혁 (eleven@10asia.co.kr)
감독과 배우, 역할을 바꿔도 여전히 함께인 두 사람
그렇게 “선생님이기도 하고 친구이기도 하고 잔소리 많은 집안 어르신 같기도 한” 차이밍량과 함께 ‘이배우’로 작업을 이어오던 중 리캉셍이 어느 날부터 연출 공부를 시작했고 그의 감독 데뷔작 <불견>은 그 해 PIFF 뉴커런츠 대상을 받았다. 올해 부산을 찾은 옴니버스영화 <타이페이 24>의 마지막 에피소드인 ‘회상’은 리캉셍의 세 번째 작품이다. 새벽 4시부터 아침 7시까지의 타이페이가 포착한 것은 바로 시대의 무용가 루오 만 페이를 그리며 눈물을 짓는 ‘차이밍량의 얼굴’이다. 그가 배우로 등장하고 리캉셍이 연출한 ‘회상’은 <구멍>에서의 안무를 지도해주었던 인연으로 만났던 무용가 루오 만 페이가 암으로 죽고 난 후 오랜 친구였던 그녀를 기억하고 추억하기 위해 만들게 된 영화다. “지난 18년을 함께 일해 왔는데 이 정도 부탁도 못 들어 주냐”며 리캉셍은 출연을 부탁했고 결국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차이밍량은 배우의 크레딧을 달았다. “배우는 하늘이 내린 사람 같다. 나는 앞으로도 쭉 카메라 뒤에 서있고 싶다”는 ‘차배우’의 겸손한 소감에 대해 “연기에 대한 잠재력이 풍부한 배우다. 아마 많은 이들이 차이밍량이 연기하는 걸 더 보고 싶어 할 것 같다. 다만 노출 신에서는 쓰지 않겠지만 (웃음)”이라고 ‘이감독’은 재치 있게 덧붙인다.
“우리의 작품이 비슷한 것이 오히려 당연한 거 아닌가?”
차이밍량은 둥글둥글한 인상에 달변가이자 표정이 풍부한 사람이고, 리캉셍은 마른 몸에 말도 별로 없고 표정도 좀처럼 변하는 법이 없다. 그런 양각과 음각이 만들어 낸 조화의 산물이 바로 차이밍량과 리캉셍의 작품이다. “종종 리캉셍의 영화가 내 작품과 너무 비슷하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하지만 그는 용감한 사람이다. 나를 따라가기보다는 자신의 스타일을 만들어가는 예술가다. 그런데 비슷한 것이 오히려 당연한 거 아닌가? 우리가 함께 일한 지 거의 20년이 되어간다. 내가 처음 발굴한 배우였고 감독 수업도 나에게서 받았다. 지극히 정상적인 거다” 라며 차이밍량은 한 명의 감독으로 성장해 가는 자신의 적자에 대한 믿음과 존경을 드러낸다. 1992년 차이밍량의 아버지가 암으로 돌아가시고 5년 후 리캉셍의 아버지가 오랜 지병과 싸우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듬해 영화제로 가던 비행기 안에서 괴로운 표정으로 잠들어 있는 리캉셍의 얼굴에서 차이밍량은 <거기는 지금 몇 시니?>를 만들어야겠다고 결심을 했다. 그리고 마침내 완성된 이 영화의 마지막은 ‘나와 리캉셍의 아버지를 그리며’라는 말로 끝맺는다. 사람은 태어나고 자라난다. 성숙하고 그리고 늙어갈 것이다. 이 길을 평생 함께 갈 누군가가 있다는 것. 그리고 그 길이 영화라는 것은 분명 축복이다. 물론 이토록 신실한 길벗의 행로를 동시대에 지켜볼 수 있다는 것 역시 우리에게 내려진 축복임에 분명하다.
글. 부산=백은하 (one@10asia.co.kr)
사진. 부산=이진혁 (eleven@10asia.co.kr)
© 텐아시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