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영 : 수많은 오디션에 ‘얼굴이 못 생겨서’ 떨어졌다. 댄스 가수로 성공했다. 작곡을 할 줄 아는 가수가 됐다. 음반 제작자가 됐다. 밀리언셀러 그룹과 한류스타를 탄생시켰다. 윌 스미스에게 곡을 줬다. 자신의 소속 가수를 미국에 진출시키려 준비 중이다. 끊임없이 자신의 세계를 확장 시키는 그 남자의 중간 점검.
마이클 잭슨 : King of Pop. 박진영은 어린 시절 2년간 미국에서 살면서 마이클 잭슨의을 생애 첫 앨범으로 샀다. 박진영은 이 때 흑인들과 놀면서 영어를 배우고, “흑인들과 함께 있는 게 편하다”고 할 만큼 흑인 문화에 빠졌다. 또한 박진영의 부모는 그가 집안에서 무슨 말이든 할 수 있도록 해 그가 언제나 자기 생각을 말할 수 있게 했다. 그의 미국 진출은 조기교육의 힘 때문이었던 건지도.
김수철 : 1980년대 ‘나도야 간다’ 같은 히트곡부터 ‘황천길’같은 퓨전 국악까지 종횡무진 했던 뮤지션. 박진영의 데뷔 앨범 박진영과 신세대를 직접 제작, 작사, 작곡, 프로듀싱했으나 실패했다.
김형석 : 박진영의 음악 스승인 작곡가. 김형석은 김건모와 노이즈의 댄서였던 박진영이 “솔직하게 노래 부를 줄 아는” 것에 호감을 느꼈고, 박진영은 김형석의 집에서 먹고 자며 2년여 동안 작곡과 편곡을 배웠다. 박진영은 춤에 소질이 있었던 것, 어린 시절 미국에서 살았던 것과 김형석에게 음악을 배워 미국 뮤지션들과 다른 스타일의 곡을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을 미국에 진출할 수 있었던 ‘세 가지 재수 좋은 일’로 꼽는다.
이문세 : 가수 겸 방송인. 박진영은 1996년 KBS <이문세 쇼>에서 시청자 투표를 통해 ‘섬머 징글벨’과 ‘그녀는 예뻤다’ 중 한곡을 타이틀곡으로 정하는 이벤트를 벌였다. 이밖에도 박진영은 데뷔 당시 MBC <특종 TV연예>에서 스스로를 ‘연세대 명물’로 알렸고, 그룹 노을을 SK텔레콤의 모바일 서비스 ‘June’을 통해 데뷔시키는 등 홍보에 일가견을 보였다. 이는 그의 ‘대체 불가능한 인물론’과 관계가 있다. 박진영은 다른 댄스 가수들과 차별화되기 위해 음악을 배웠고, 비슷한 뮤지션들이 많아지자 시사에 대한 능력을 갖겠다며 연세대학원 정치학과에 다녀 ‘연세대 출신의, 작사 작곡 편곡을 하는, 롱런한 댄스 가수이자 정치학과 대학원생’이 됐다. 이후 박진영은 현역으로 활동하는 음반 기획사 사장이 되고, 모바일로 가수를 홍보하며, 한국 뮤지션 중 최초로 미국 메이저 뮤지션에게 곡을 줬다. 최고의 스페셜리스트보다는 남들이 가지 못한 분야에 더 많이 진출하는 최고의 제너럴리스트로서 대체 불가능한 인물이 된 것. 그래서 박진영은 계속 더 큰 판으로 나가려는 것인지도 모른다.
강풀 : 만화가. god의 <하늘 속으로>에 첨부된 만화를 담당했다. 강풀은 박진영이 털 알러지가 있음에도 자신의 집에 직접 찾아와 자신이 기르는 고양이에 대해 전혀 불편함을 드러내지 않고 앨범 콘셉트를 설명하는 모습에 참여를 약속했다. 박진영은 미국 진출 당시 레코드사의 수위에게 음료수를 건네며 친해진 것을 시작으로 회사 고위 관계자들에게 갈비와 소주를 사며 곡을 세일즈했고, 일면식도 없던 알 켈리와는 어느덧 그의 집에서 가끔 숙식을 하는 사이가 됐다. 이런 박진영의 사교성은 타고난 친화력에 어려운 일일수록 도전하는 것을 즐기는 그의 승부욕이 더해진 결과라고 할 수 있을 듯. 박진영은 농구 시합에서 왼손 레이업을 하기 위해 6개월 동안 왼손으로 밥 먹고, 양치질을 하기도 했다.
원더걸스 : ‘Tell me’–‘So hot’–‘nobody’를 연이어 히트시킨 여성 그룹. 박진영은 국내에서 원더걸스를 히트시키고, 미국에서 민, 지-소울, 임정희 등을 데뷔 준비 시키며 새로운 전기를 맞이했다. 하지만 보다 중요한 변화는 ‘작곡가 박진영’에 관한 것이다. ‘nobody’에서 누구나 쉽게 흥얼거릴 수 있는 훅(hook)은 박진영이 god 시절부터 보여준 장점이다. 하지만 ‘nobody’는 훅이 등장하기 전까지 완급을 조절하는 전개를 통해 훅에 더 폭발적인 느낌을 싣는다. ‘nobody’의 시작에 등장하는 훅과 다른 멜로디를 다 들은 뒤 나오는 훅은 그 느낌이 다르다. 또한 god의 ‘2 love’, 2AM의 ‘이 노래’는 곧바로 사람의 귀를 잡아끄는 멜로디에 대한 강박 없이 편안한 멜로디 전개로 박진영 발라드의 새로운 시대를 보여줬다. 박진영은 “미국에서 어느 정도 인정을 받은 뒤 다른 사람에게 뭔가를 보여줘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면서 곡을 쓰는 것도 편해졌다”고 말한바 있다.
박지윤 : 가수. 박진영이 박지윤에게 준 곡 ‘성인식’은 순식간에 그를 섹시 스타로 만드는 동시에, 박진영을 대중문화계 성(性) 담론의 중심에 서게 만들었다. 박진영의 섹시 콘셉트는 그가 가요계에서 특화된 위치를 가지도록 한 전략적인 측면도 있지만, 프로이드의 책을 통해 “무한한 해방감을 얻었다”는 그의 사고방식과 관련이 있다. 그는 어린 시절 가족들끼리 있을 때 부모님을 ‘누구 씨’라고 부르도록 교육 받았고, “그녀를 평생 여자친구로 두고 싶었지만 우리 사회 속에서 그렇게 살기엔 참 힘든 점이 많아 결혼을 했”으며, 한류에 대해 “우리가 우리 대중문화에 꼭 한류라는 말로 태극마크를 붙일 필요가 있을까”라고 말했다. 박진영은 특정 집단이나 규율이 주는 억압을 극도로 싫어하고, 어떤 것에도 속하지 않으려 한다. 뭐든 가리지 않고 튀어 보이려는 트러블 메이커, 혹은 욕을 먹든 칭찬을 듣든 상관없이 자기 뜻대로 살아가려는 자유인. 그렇기 때문에 그는 갈수록 더 크고 다양한 세상으로 나가 그 세계 사이를 자유롭게 오가려는 것일지도 모른다.
비 : 박진영이 스타가 되기 위한 조건으로 꼽는 네 가지 조건인 외모, 춤, 노래, 성격 네 가지 중 ‘별 셋 반’에 도달한 유일한 가수. 박진영과 비는 모두 큰 키와 타고난 춤 솜씨를 가졌고, 함께 아시아와 미국 시장에 진출한 뒤 올해는 각자 미국에서 중요한 승부를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두 사람이 가장 닮은 점은 끊임없이 자신이 지배할 수 있는 세계를 넓히려는 욕구일 것이다. 그들은 하루 3~4시간씩만 잠을 자고, 가혹할 정도로 자신의 몸을 몰아붙이면서 댄스가수에서 작곡가(박진영)/연기자(비)로, 한국에서 아시아를 거쳐 미국으로 가고 있다. 불가능한 목표를 향해 모든 것을 걸고 달려드는 워커홀릭들. 혹은 자기 능력을 1000% 믿는 확신범들.
Asian Soul : 박진영이 자신이 만든 음악에 쓰는 닉네임. 그는 한국이라는 특정 나라보다는 아시아인의 감성이라는 측면으로 미국 시장에 접근한다. 이는 그의 사고방식, 혹은 그가 지나온 길을 보여주는 것일 수도 있다. 춤 잘 추는 몸 하나로 시작했던 청년은 인기 작곡가가 됐고, JYP의 사장이 됐으며, 아시아를 거쳐 미국으로 갔다. 그 사이 그의 감성은 한국과 미국의 어딘가에 걸쳤고, 전 세계를 돌며 비즈니스를 하게 됐다. 그리고 1년에 단 6주 동안 한국 활동이 가능한 혹독한 스케줄은 그를 “삶은 사생활, 친구나 내 애인과의 시간이 인생의 절반이고 일이 절반인데 이게 99대 1로, 백이면 99대 1로 만들어놓고 사는, 그 1에서 겨우 엑기스를 추려서 곡을 쓰는” 사람으로 만들었다. 그는 시간이 흐를수록 세상 모든 곳을 자신의 땅으로 만들어 나가지만, 그럴수록 어느 곳에도 속하지 않는, 자기 자신의 ‘soul’만 남는 인생이 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99를 가졌지만 나머지 1이 외로운 인생. 혹은 1이 외롭지만 99를 가진 인생. 어느 쪽이든, 보기 드문 길을 걷고 있는 영혼.
마이클 잭슨 : King of Pop. 박진영은 어린 시절 2년간 미국에서 살면서 마이클 잭슨의
김수철 : 1980년대 ‘나도야 간다’ 같은 히트곡부터 ‘황천길’같은 퓨전 국악까지 종횡무진 했던 뮤지션. 박진영의 데뷔 앨범 박진영과 신세대를 직접 제작, 작사, 작곡, 프로듀싱했으나 실패했다.
김형석 : 박진영의 음악 스승인 작곡가. 김형석은 김건모와 노이즈의 댄서였던 박진영이 “솔직하게 노래 부를 줄 아는” 것에 호감을 느꼈고, 박진영은 김형석의 집에서 먹고 자며 2년여 동안 작곡과 편곡을 배웠다. 박진영은 춤에 소질이 있었던 것, 어린 시절 미국에서 살았던 것과 김형석에게 음악을 배워 미국 뮤지션들과 다른 스타일의 곡을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을 미국에 진출할 수 있었던 ‘세 가지 재수 좋은 일’로 꼽는다.
이문세 : 가수 겸 방송인. 박진영은 1996년 KBS <이문세 쇼>에서 시청자 투표를 통해 ‘섬머 징글벨’과 ‘그녀는 예뻤다’ 중 한곡을 타이틀곡으로 정하는 이벤트를 벌였다. 이밖에도 박진영은 데뷔 당시 MBC <특종 TV연예>에서 스스로를 ‘연세대 명물’로 알렸고, 그룹 노을을 SK텔레콤의 모바일 서비스 ‘June’을 통해 데뷔시키는 등 홍보에 일가견을 보였다. 이는 그의 ‘대체 불가능한 인물론’과 관계가 있다. 박진영은 다른 댄스 가수들과 차별화되기 위해 음악을 배웠고, 비슷한 뮤지션들이 많아지자 시사에 대한 능력을 갖겠다며 연세대학원 정치학과에 다녀 ‘연세대 출신의, 작사 작곡 편곡을 하는, 롱런한 댄스 가수이자 정치학과 대학원생’이 됐다. 이후 박진영은 현역으로 활동하는 음반 기획사 사장이 되고, 모바일로 가수를 홍보하며, 한국 뮤지션 중 최초로 미국 메이저 뮤지션에게 곡을 줬다. 최고의 스페셜리스트보다는 남들이 가지 못한 분야에 더 많이 진출하는 최고의 제너럴리스트로서 대체 불가능한 인물이 된 것. 그래서 박진영은 계속 더 큰 판으로 나가려는 것인지도 모른다.
강풀 : 만화가. god의 <하늘 속으로>에 첨부된 만화를 담당했다. 강풀은 박진영이 털 알러지가 있음에도 자신의 집에 직접 찾아와 자신이 기르는 고양이에 대해 전혀 불편함을 드러내지 않고 앨범 콘셉트를 설명하는 모습에 참여를 약속했다. 박진영은 미국 진출 당시 레코드사의 수위에게 음료수를 건네며 친해진 것을 시작으로 회사 고위 관계자들에게 갈비와 소주를 사며 곡을 세일즈했고, 일면식도 없던 알 켈리와는 어느덧 그의 집에서 가끔 숙식을 하는 사이가 됐다. 이런 박진영의 사교성은 타고난 친화력에 어려운 일일수록 도전하는 것을 즐기는 그의 승부욕이 더해진 결과라고 할 수 있을 듯. 박진영은 농구 시합에서 왼손 레이업을 하기 위해 6개월 동안 왼손으로 밥 먹고, 양치질을 하기도 했다.
원더걸스 : ‘Tell me’–‘So hot’–‘nobody’를 연이어 히트시킨 여성 그룹. 박진영은 국내에서 원더걸스를 히트시키고, 미국에서 민, 지-소울, 임정희 등을 데뷔 준비 시키며 새로운 전기를 맞이했다. 하지만 보다 중요한 변화는 ‘작곡가 박진영’에 관한 것이다. ‘nobody’에서 누구나 쉽게 흥얼거릴 수 있는 훅(hook)은 박진영이 god 시절부터 보여준 장점이다. 하지만 ‘nobody’는 훅이 등장하기 전까지 완급을 조절하는 전개를 통해 훅에 더 폭발적인 느낌을 싣는다. ‘nobody’의 시작에 등장하는 훅과 다른 멜로디를 다 들은 뒤 나오는 훅은 그 느낌이 다르다. 또한 god의 ‘2 love’, 2AM의 ‘이 노래’는 곧바로 사람의 귀를 잡아끄는 멜로디에 대한 강박 없이 편안한 멜로디 전개로 박진영 발라드의 새로운 시대를 보여줬다. 박진영은 “미국에서 어느 정도 인정을 받은 뒤 다른 사람에게 뭔가를 보여줘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면서 곡을 쓰는 것도 편해졌다”고 말한바 있다.
박지윤 : 가수. 박진영이 박지윤에게 준 곡 ‘성인식’은 순식간에 그를 섹시 스타로 만드는 동시에, 박진영을 대중문화계 성(性) 담론의 중심에 서게 만들었다. 박진영의 섹시 콘셉트는 그가 가요계에서 특화된 위치를 가지도록 한 전략적인 측면도 있지만, 프로이드의 책을 통해 “무한한 해방감을 얻었다”는 그의 사고방식과 관련이 있다. 그는 어린 시절 가족들끼리 있을 때 부모님을 ‘누구 씨’라고 부르도록 교육 받았고, “그녀를 평생 여자친구로 두고 싶었지만 우리 사회 속에서 그렇게 살기엔 참 힘든 점이 많아 결혼을 했”으며, 한류에 대해 “우리가 우리 대중문화에 꼭 한류라는 말로 태극마크를 붙일 필요가 있을까”라고 말했다. 박진영은 특정 집단이나 규율이 주는 억압을 극도로 싫어하고, 어떤 것에도 속하지 않으려 한다. 뭐든 가리지 않고 튀어 보이려는 트러블 메이커, 혹은 욕을 먹든 칭찬을 듣든 상관없이 자기 뜻대로 살아가려는 자유인. 그렇기 때문에 그는 갈수록 더 크고 다양한 세상으로 나가 그 세계 사이를 자유롭게 오가려는 것일지도 모른다.
비 : 박진영이 스타가 되기 위한 조건으로 꼽는 네 가지 조건인 외모, 춤, 노래, 성격 네 가지 중 ‘별 셋 반’에 도달한 유일한 가수. 박진영과 비는 모두 큰 키와 타고난 춤 솜씨를 가졌고, 함께 아시아와 미국 시장에 진출한 뒤 올해는 각자 미국에서 중요한 승부를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두 사람이 가장 닮은 점은 끊임없이 자신이 지배할 수 있는 세계를 넓히려는 욕구일 것이다. 그들은 하루 3~4시간씩만 잠을 자고, 가혹할 정도로 자신의 몸을 몰아붙이면서 댄스가수에서 작곡가(박진영)/연기자(비)로, 한국에서 아시아를 거쳐 미국으로 가고 있다. 불가능한 목표를 향해 모든 것을 걸고 달려드는 워커홀릭들. 혹은 자기 능력을 1000% 믿는 확신범들.
Asian Soul : 박진영이 자신이 만든 음악에 쓰는 닉네임. 그는 한국이라는 특정 나라보다는 아시아인의 감성이라는 측면으로 미국 시장에 접근한다. 이는 그의 사고방식, 혹은 그가 지나온 길을 보여주는 것일 수도 있다. 춤 잘 추는 몸 하나로 시작했던 청년은 인기 작곡가가 됐고, JYP의 사장이 됐으며, 아시아를 거쳐 미국으로 갔다. 그 사이 그의 감성은 한국과 미국의 어딘가에 걸쳤고, 전 세계를 돌며 비즈니스를 하게 됐다. 그리고 1년에 단 6주 동안 한국 활동이 가능한 혹독한 스케줄은 그를 “삶은 사생활, 친구나 내 애인과의 시간이 인생의 절반이고 일이 절반인데 이게 99대 1로, 백이면 99대 1로 만들어놓고 사는, 그 1에서 겨우 엑기스를 추려서 곡을 쓰는” 사람으로 만들었다. 그는 시간이 흐를수록 세상 모든 곳을 자신의 땅으로 만들어 나가지만, 그럴수록 어느 곳에도 속하지 않는, 자기 자신의 ‘soul’만 남는 인생이 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99를 가졌지만 나머지 1이 외로운 인생. 혹은 1이 외롭지만 99를 가진 인생. 어느 쪽이든, 보기 드문 길을 걷고 있는 영혼.
Who is next글. 강명석 (two@10asia.co.kr)
SBS 에 출연한 맹지나의 이종사촌인 김범과 애니콜 CF에 함께 출연한 손담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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