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은 아내를 죽이고, 그 아내는 살아 돌아와 남편을 몰락시킨다(SBS <아내의 유혹>). 장차 사돈 지간이 될 중년의 남녀가 불륜에 빠지고(MBC <사랑해, 울지마>), 유명 앵커는 자신의 야망을 위해 계약결혼까지 불사한다(KBS <미워도 다시 한 번>). 이 악몽 같은 이야기는 시청률 상위권을 형성하고 있는 드라마들의 면면이다. 이런 상황에서 형이 동생을 사지로 모는 SBS <카인과 아벨>만이 유독 극악무도해 보이진 않는다. 오히려 이 드라마의 악덕은 다른 곳에 있다. 예고편에서 보였던 강렬함을 자랑하던 초인(소지섭)의 눈빛과 화려한 드라마의 때깔이 본방이 시작함과 동시에 감쪽같이 사라진 <카인과 아벨>의 미스테리를 조지영, 정진아 TV평론가가 풀어본다. 이 풀이의 끝에서 동생을 죽였지만 신의 용서를 받고, 에덴의 동쪽에 정착했던 카인처럼 <카인과 아벨> 또한 나름의 결실을 거둘 수 있을까. /편집자주
글. 정진아 (TV평론가)
편집. 이지혜 (seven@10asia.co.kr)
선우(신현준)는 카인이고 초인(소지섭)은 아벨이다. 카인이 아벨을 죽여놓고 모른 척 했듯, 선우도 비슷한 행로를 겪는다. 선우는 왜 초인을 죽이려고 하는가?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압축된다. 하나는 아버지 종민(장용)이 병원을 초인에게 물려줄 거라 해서고, 또 하나는 연인 서연(채정안)이 초인과 결혼할 뻔 하다가 다시 자신에게 돌아왔기 때문이다. 서연은 왜 형제 사이를 전전하는가? 그녀는 원래 선우와 사랑하는 사이였다. 그러다 갑자기 사라진 선우와 7년 동안 연락이 끊긴 사이에 초인과 연애를 시작했다. 그러다 갑자기 또 초인이 사라져서 이번엔 선우와 다시 시작하기로 결심한다. 선우는 왜 또 7년간 연락이 없었는가? 아파서 그랬다고 한다. <카인과 아벨>의 부제가 있다면 ‘도대체 왜?’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이 드라마는 물음표가 많이 떠다닌다.
앙상한 사연 위를 위태롭게 폭주하는 캐릭터
<카인과 아벨>엔 복잡한 대립관계가 얽히고 꼬여있다. 갈등과 복수심, 그리고 볼 거리를 증폭시키고자 광활한 사막도 나오고, 청부살인업자도 나오고, 탈북자들도 나오고, 뇌수술 전문의들도 나온다. 거기에 한류의 고전적 테마인 기억상실과 심장이 약한 ‘소나기’형 여주인공까지 합세한다. 그러나 복잡한 갈등구조를 떠받치고 있는 그 숱한 사연들은 볼품없이 허약하다. 나름대로 피가 안 섞인 동생을 사랑하는 듯 보였던 선우가 하루 아침에 돌변하는 순간은, 아버지가 병원을 초인에게 물려주기로 한 사실을 알게 된 후다. ‘원래 나한테 주기로 했는데 동생 준다니!’ 분노가 폭주한 나머지, 아버지의 신경 조직을 교묘하게 망가뜨린다.
심지어 어머니라는 사람은 수술 중에 아버지를 죽여버릴 것을 종용하기도 한다. 이 어머니, 혜주(김해숙)의 분노의 단계는 2단계로 나눠진다. 1단계는 초인이 병원장의 친아들일 것이라는 확신인데, 2단계, 즉 병원을 초인에게 준다는 종민의 유언장이 그 확신에 기름을 부었다. 문제는 추측에 지나지 않는 그 친자 여부로 인해 혜주는 초인의 친모 살해에도 가담했다는 점이다. 한국 드라마의 역사상 유례가 없는 공포스런 모자 지간이다. 이 거침없는 직계 존속-비속 살해 사주 및 공모가 오가는 현장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결과적으로 단순화시키자면, 선우 모자의 끝 모를 분노의 원인은 병원 상속권이며 이는 즉 부와 명예라는, 물적 가치와 다름 아니다. 선우는 아버지 사랑을 못 받아서 카인이 된 것이 아니라, 아버지에게 받기로 예정된 자산을 못 받게 돼서 전인미답의 범죄를 저지르게 된 것이다. 문제는 인물이 성격이 돌변하는데 시간이 걸리지도 않고, 살해를 결심하거나 사주하는데 별로 망설이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상황 혹은 설정이 캐릭터를 장악한다는 뜻이다.
기억이 설정되기도 전에 지워져 버린 드라마
문제는 그 뿐 만이 아니다. 사막에서 기억까지 잃고 헤매던 초인은 회가 거듭될수록 기억을 찾아가고 있고, 선우는 그럴수록 불안해하며 그 곁을 지키는 여자들(서연, 영지)의 눈길은 애달프지만 그 애절함에 공감하기가 쉽지 않은 것은, 시청자들은 대체 그들이 매번 구구절절 설명해줘야 하는 전사(前史)를 전혀 모르기 때문이다. 서연과 선우가 얼마나 사랑했는지도, 선우가 사라진 7년 동안 서연이 얼마나 힘들었는지도, 심지어 결혼 직전까지 갔었던 초인과 서연은 또 얼마나 좋아했었는지, 짐작하기가 어렵다. 서연은 매번 눈물을 뚝뚝 흘려대지만, 그 눈물에 공감하기가 어려운 것은, 그녀가 ‘동생이 죽으니 형을 취하는’ 일종의 ‘형사 취수’를 택해서가 아니라, 이야기의 시작점에서 그 사랑의 과정과 풍경이 빠져있기 때문이다.
드라마가 시작하고 3회 만에 대뜸 기억상실에 빠져드는 초인이 등장하는 것은, 그래서 안타까운 일이다. 강호는 내가 대체 누구였냐며 괴로워하는데, 사실 시청자 입장에서도 힘든 점이다. 초인이 어떤 인물인지 미처 파악하기도 전에 그의 기억이 지워졌기 때문이다. 갈등과 인물이 숙성되기도 전에 느닷없이 드라마는 달리기 시작했다. 숨막히는 설정에 쫓기듯 달리는 <카인과 아벨>은 마치 손을 묶이고 총에 맞은 채 사막을 질주하던 초인과 닮아있다.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 채로 무조건 뛰어야 했던 초인을.
글 조지영
SBS <카인과 아벨> 초반부의 카메라는 끊임없이 움직이며 인물들을 뒤쫓거나 공간을 뒤진다. 소극적으로 좌시하지 않고 능동적으로 행위를 지켜보는 카메라의 움직임은 이 드라마의 인물들이 이미 갈등을 품고 있는 상태라는 걸 눈치 채게 한다. 즉 <카인과 아벨>은 갈등을 만들어가는 드라마가 아니라 이미 곪아 있는 갈등들의 정체와 원인을 찾아가는 드라마라 할 수 있다. 이런 방식은 ‘병증을 발견한 뒤 그 원인을 찾아 치료’하는 의료행위와 유사한데, <카인과 아벨>은 방향성뿐만 아니라 작품 전반을 ‘신체’와 결부시키는 방식으로 짜나가고 있다.글. 조지영 (TV평론가)
병증을 간직한 사란들과 없애려는 사람들
이 드라마의 큰 축 중 하나는 병원 센터를 둘러싼 두 집단 간의 충돌이다. 그런데 이는 단순한 권력싸움이 아니다. ‘어떤 목적이나 이유보다도 인명구급이 우선이다’라는 보성병원 기본 이념의 변질 여부가 달린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두 집단은 각각 ‘오염’과 ‘오염을 막는 자’로 양분될 수 있으며, 그들의 충돌은 종양과 종양을 이겨내고자 하는 신체적 행위로 파악될 수 있다. 곧 병원의 이념을 지켜내는 일이 병증을 치료하는 행위인 셈이다.
주인공들의 신체 역시 시작부터 오염되어있다. 초인(소지섭)은 어렸을 적 수술 흔적, 선우(신현준)는 뇌종양, 서연(채정안)은 심장병, 영지(한지민)는 배에 흉터가 있다. 그것들은 그들의 힘든 과거이자 극복해야 할 현재이다. 초인의 수술 흔적은 부모 세대의 문제들을 응집하고 있는 상징물이다. 초인이 잃어버린 기억을 찾는 단초로 수술 흔적을 선택하는 건, 드라마 속 지배적 갈등의 시작점에 접근하는 일이기도 하다. 그에 비해 선우의 뇌종양은 갈등을 증폭시키는 역할을 한다. 동생만을 편애하는 아버지 아래서 상처 받으며 살았던 그에게 병증이란 지독한 불공평함일 수밖에 없다. ‘더 큰 걸 위해서 작은 것을 포기할 수 있다’는 선우의 비정한 수술 철학은 ‘선택 받지 못한 자’에서 ‘선택하는 자’로 옮아가고자 하는 그의 욕망을 대변한다. 회복되지 못한 그들의 오염은 초인을 병원에서 쫓겨나게 하고 선우의 신체를 뒤틀리게 한다. 이제 각자는 오염을 극복해야 한다. 그런데 그 방법이 대비를 이룬다. 선우에게 종양은 증오의 대상이기에 축출해야만 한다. 배려의 여지는 없다. 그 가치관은 자신의 앞길을 막는 모든 것에게 동일하게 적용된다. 그런데 초인은 그 스스로가 일종의 바이러스이다. 병원에서는 물론이고 중국, 한국, 북한에서도 사라져야 할 존재, 즉 소독되고 면역돼야 할 대상이다. 병을 치료하는 의사이면서 스스로 병증인 자, 그의 이름이 지닌 초월성은 그 사실을 은유 한다. 병증을 증오하는 선우와 스스로 병증인 초인의 대결은 어찌 보면 너무나 당연하다.
<카인과 아벨>은 성공적인 수술을 해낼 수 있을까
초인의 방랑은 끝나가고 있고, 선우는 더 이상 주저하지 않게 됐다. 그들은 떨어져 있는 동안 성숙해졌고 잔인해졌다. 그러므로 <카인과 아벨>의 후반부는 형제간의 대립이 더욱 강조되는 복수극이 될 것이다. 그러나 이 드라마가 궁극적으로 향하는 지점은 치료이다. 즉 곪아있는 갈등을 어떻게 추스르고 극복할 것인가, 자신의 신체를 결박하고 있는 오염과 어떻게 화해할 것인가가 더욱 중대한 문제인 셈이다. 드라마 자체가 하나의 의료행위인 <카인과 아벨>. 과연 이 드라마는 성공적인 수술을 해낼 수 있을까.
글 정진아
글. 정진아 (TV평론가)
편집. 이지혜 (seven@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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