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 2분이면 된다. 간단한 인사만 나눠도 그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내는 것은 쉬운 일이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단 1%도 남김없이, 김보강은 남자다. 우렁우렁한 중저음의 목소리, 이목구비가 뚜렷한 생김새, 수영을 비롯한 각종 운동으로 다져진 체격과 넓은 어깨, 그리고 순탄치만은 않았던 성장기를 대변하듯 많은 이야기가 마디마다 숨어있는 투박한 손까지, 그는 온 몸으로 자신이 순도 높은 남자임을 말하고 있다. 질문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팔을 뻗고, 노래를 부르며 답변을 시작할 만큼 에너지 넘치는 이 남자가 KBS <미워도 다시 한 번>에서 아버지(주현)에게 늘 쥐어 박히면서도 야심 많은 누나(박예진)를 가슴 깊이 걱정하는 건실하고 순박한 최재상을 연기하고 있다는 사실은 그래서 더욱 흥미롭다.

“잠시도 가만히 있질 못해요”

“잠시도 가만히 있질 못해요. 집에 있을 때는 청소라도 해야 직성이 풀립니다”라고 할 정도로 김보강의 모든 순간은 다이내믹하지만, 그 에너지는 때로 그를 곤란한 상황으로 이끌기도 한다. 온 몸으로 연주하는 리듬악기를 워낙 좋아하는 탓 집에서 봉고를 연주하다 이웃의 항의를 받기도 했고, 100일 등산 계획을 세워놓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관악산을 질주하다가 46일 만에 아킬레스건을 다쳐 재활 치료에 돌입한 경험도 있다. 그러나 어떤 사고도 그의 기세를 꺾지는 못했는지 “장비를 갖추고 시작하기 보다는, 일단 시작해 놓고 필요를 느껴야 도구들을 마련하는 성격이라서 부상이 생각보다 컸어요. 그래도 아직 포기한 건 아닙니다. 다시 도전해서 꼭 100일 채울 겁니다”라고 말하는 그의 눈빛에는 여전히 꿈틀거리는 도전의식이 생생하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베이스 연주하시는 분이 연세가 쉰은 되셨던” 밴드에 합류했을 때도, 새로운 음악에 밀려 설자리를 잃은 밴드를 떠나 배우가 되기로 결심했을 때도, 무명의 처지에 덜컥 뮤지컬 <마리아 마리아>의 예수로 캐스팅 되었을 때도 아마 그의 눈빛은 꼭 이런 모양으로 빛나고 있었을 것이다.

드라마, 뮤지컬, 연극, 영화, 자신만의 배우를 만들어가는 과정

도전을 결실로 만들기 위해 필요한 것은 눈빛 이상이었다. 예수를 이해하기 위해 생전 처음으로 교회에 나가 목사님의 총애 속에서 성경 공부를 했고, 가슴까지 머리카락과 수염을 기르고 다니며 “서른일곱 살이냐”는 질문을 받을 정도로 극한까지 스스로를 몰아붙이기도 했다. 심지어 “남성적이고 무게 있는 배우가 되고 싶다는 생각”에 미성에 가까웠던 목소리를 지금의 굵직한 ‘동굴 목소리’로 바꾸었다는 고백은 믿기 어려울 정도로 드라마틱하다. “부단한 노력과 연습 끝에 만든 목소리에요. 그러니까 여기 있던 소리를 가슴으로 끌고 내려온 거죠.” 그의 손이 콧등을 스쳐 흉곽으로 내려오는 동안, 가볍고 납작했던 그의 목소리에는 깊고 풍성한 울림이 더해진다. 그리고 마술 같은 순간의 여운이 채 끝나기도 전에 김보강의 얼굴에는 장난기가 번진다. “이렇게 소리를 끌어 올렸다가 내리면 바비 킴 성대모사가 가능해 지거든요. 오늘도~ 술로 밤을… 하하하. 참, 윤문식 선생님도 가능한데, 이런 싸가지!”

듬직한 청년에서 해맑게 웃는 소년까지. 김보강이 가진 얼굴들은 조금씩 농도를 달리하고는 있지만 언제나 기운 넘치는 남자의 것들이다. 그리고 그 모든 얼굴을 조합해 김보강이 되듯, 그는 모든 연기를 경험해 자신만의 ‘배우’를 만들고 싶어 한다. “MBC <누구세요>를 찍고 다시 <마리아 마리아>를 공연 했는데, 조금 더 연기가 디테일 해지는 것을 느끼겠더라구요. 영화는 더 섬세한 연기가 필요한 거고, 연극은 모든 연기의 기본이잖아요. 다 해보고 싶어요. 제가 좀 욕심이 많거든요.” 경험이 늘어갈수록 조금씩 달라질 자신의 모습을 예고하듯, 욕심을 자랑하는 목소리에는 기대감이 충만하다. 그런 그에게 절대 변하지 않을 한 가지를 묻자 드물게 짧은 침묵이 흐른다. “나의 신념이요. 내가 살아가는 방식.” 왼쪽 가슴을 스스로 다독이는 그의 손이 말한다. 이것이야말로 사나이의 진심이라고.

글. 윤희성 (nine@10asia.co.kr)
사진. 채기원 (ten@10asia.co.kr)
편집. 이지혜 (seven@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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