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어퍼이스트 사이더들? ‘가십 걸’이야. 맨해튼 상류층의 스캔들 가득한 삶을 폭로해 주는 유일한 사람이지.” 상냥한 목소리로 비밀을 털어놓는 ‘가십 걸’의 목소리를 뿌리치기란 쉽지 않다. 지금 한국에 <꽃보다 남자>가 있다면 미국에는 <가십 걸>이 있다. 뉴욕 맨해튼의 사립학교를 배경으로 상류층 십대들의 삶을 그린 이 시리즈는 높지 않은 시청률과 허황된 전개라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젊은 층을 대상으로 새로운 수익 모델을 찾아낸 TV쇼로 주목받고 있다. 그래서 <10아시아>가 <가십 걸>의 특별한 매력에 주목했다. 뉴욕에서 방금 날아온 <가십 걸>의 따끈따끈한 비하인드 스토리, 잊을 수 없는 <가십 걸>의 명장면 10, 다양한 매력을 지닌 <가십 걸>의 배우들 소식도 준비되어 있다. 참, <가십 걸> 시즌 2는 3월 1일부터 매주 일요일 밤 11시 온스타일에서 방송되니 기다렸다면 놓치지 말자.

OMFG. Oh, My *ucking God. 휴대폰 문자 메시지에 익숙한 미국 청소년들이 즐겨 쓰는 네 글자. <가십 걸>의 세계는 바로 이 OMFG로 이루어진다. 친한 친구의 남자친구와 섹스를 해 버렸다. OMFG! 함께 마약을 하던 친구가 눈앞에서 쇼크로 죽고 말았다. OMFG! 아빠는 어린 남자 모델과 사랑에 빠져 엄마를 버렸고, OMFG! 아무리 다이어트를 해도 엄마는 크루아상 대신 저지방 요구르트나 먹으라며 눈치를 주니 OMFG! 엄마와 남자친구의 아버지가 예전에 연인 사이였다는데, OMFG! 심지어 엄마의 네 번째 결혼 상대는 또 다른 남자다. OMFG! 물론 세상에서 가장 끔찍한 일은, 이번 파티의 참석자 명단에 내 이름이 빠져 있다는 사실. OMFG!

어퍼 이스트 사이드에 내던져진 브룩클린의 소년, 소녀

세실리 본 지게사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가십 걸>은 2007년 미국 CW 네트워크 채널에서 방송을 시작한 시리즈다. 그동안 미 서부를 배경으로 상류층 십대들의 모습을 그려냈던 <비벌리힐즈 아이들>이나 <디 오씨>와 달리 <가십 걸>에는 동부 뉴욕의 고급 사립학교 학생들이 등장한다. 사는 저택을 재건축하는 동안 고급 호텔에 머물고, 기사 딸린 리무진으로 등하교하며, 실연의 상처는 모나코 여행을 가서 달랠 만큼 부모의 부를 마음껏 누리는 십대들의 일상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브런치, 가장 무도회, 생일 파티, 추수감사절 파티, 사교계 데뷔 무도회 등 온갖 사교 모임과 파티다. 그리고 부와 미모와 매력을 겸비한 어퍼 이스트 사이드의 소녀 세레나(블레이크 라이블리)가 한물 간 록스타의 아들이자 브루클린의 소년 댄(펜 배드글리)을 만나며 이야기는 시작된다.

이렇듯 신분이나 계층을 뛰어넘는 러브 스토리는 틴 미드의 전형이자 <디 오씨>에 이어 <가십 걸>을 제작한 조쉬 슈워츠의 장기이지만 <가십 걸>은 서민보다는 중산층에 가까운 댄과 제니(테일러 맘슨) 남매가 최상류층 자녀들과 어울리며 느끼는 차이, 혹은 넘을 수 없는 벽을 유머러스하면서도 냉정하게 잡아낸다. 개인 계좌에 수십만 달러의 신탁 자금을 가지고 있는 학교 친구들과 달리 댄은 세레나와의 하루 데이트를 위해 어릴 때부터 모은 저금통을 깨고, 오로지 ‘친구를 얻고 싶어서’ 학교의 여왕 블레어(레이튼 미스터)의 잔심부름을 하고 친구 엄마의 드레스를 훔치는 제니는 “교복 입혀 지하철 패스를 쥐어주고 학교에 보내면 다 될 줄 알았냐”며 부모를 원망한다.

<보그>보다 강력한 10대들의 바이블이 되기까지

물론 어퍼 이스트 사이드의 소년 소녀들이라고 고민이 없을 리 없다. ‘블레어, 다트머스 대학, 로스쿨’이 인생에서 전부를 갖는 방법이라고 믿는 부모로부터 벗어나고 싶어 하는 네이트에게 자수성가한 재벌의 아들 척(에드 웨스트윅)은 “우리에겐 신탁 자금과 햄튼의 저택, 약물 중독이 있겠지만 행복해질 권리는 전혀 없어”라고 잘라 말한다. 용감하게 신탁 자금을 포기하고 가족과 인연을 끊었던 상류층 자제 카터 베이즌 역시 사기 도박판을 전전하다 집으로 돌아와 얌전히 WASP(White Anglo-Saxon Protestant)의 세계에 편입한다. 그래서 혈연과 통장 잔고로 이루어진 성채는 대를 이은 아이비리그 진학으로 보다 견고해지고, 그 우아한 세계의 이면에서 사람들은 무엇보다 타인의 시선과 평판을 두려워한다.

그리고 ‘가십 걸’ 블로그를 통해 그 모든 소문과 스캔들을 공급하고 재생산하는 주체가 바로 <가십 걸>의 내레이터 ‘가십 걸’(크리스틴 벨)이다. 그녀는 극 중에서 얼굴을 드러내지도, 어떤 사건에 영향을 끼치지도 않지만 그보다 중요한 키를 쥐고 있다. ‘가십 걸’이 누구에게 관심을 갖느냐에 따라 대중은 그를 스타로 만들기도 하고 한 순간에 내버리기도 한다. 누가 누구와 잤는가, 누구의 남자친구는 게이인가. 누가 임신을 했는가 등 맨해튼 고등학생들의 일거수일투족을 할리우드 스타의 파파라치처럼 담아내고, KBS <동물의 왕국>을 보듯 사건을 흥미진진하게 중계하는 것도 ‘가십 걸’의 역할이다. 베벌리힐즈나 오렌지카운티를 배경으로 만들어진 여타의 틴 미드와 달리 이 작품의 제목이 <맨해튼의 청춘일기>가 아니라 <가십 걸>인 데는 그만한 차이가 있다. “사람의 눈은 마음의 창이라는데 그건 휴대폰이 나오기 전의 얘기지” 라며 변화하는 문명에 가장 빠르게 적응하는 십대들이 <가십 걸>의 가장 충성스런 소비자가 된 것은 물론이다.

미친 세상의 친절하고 무서운 안내자, <가십 걸>

군소 방송사인 CW 네트워크에서 방영되었고 평균 시청률이 261만 명에 불과했던 <가십 걸>이 시즌 2를 거쳐 최근 시즌 3 방영까지 확정된 것도 마찬가지 이유다. 밤 9시에 거실 소파에 부모님과 사이좋게 앉아서 볼 만한 시리즈가 아닌 대신 <가십 걸>은 2008년 아이튠 판매순위 1위를 기록했다. 작품 자체보다 블레이크 라이블리-펜 배드글리 커플의 로맨스와 에드 웨스트윅-체이스 크로포드의 게이 루머 등 스타로 떠오른 젊은 배우들에 대한 관심과 그들의 패션만 회자되고 있다는 점에서 과대평가된 시리즈라고 비판하는 목소리도 높다.

하지만 지금 <가십 걸>이 기존과 다른 방식으로 성공한 TV 쇼의 새로운 모델을 만들고 있는 것만은 사실이다. <가십 걸>이 미국 청소년들의 욕망을 리얼하게 반영하는 대신 현실을 반영하지 않는 것 또한 엔터테인먼트의 기술이다. 그래서 어퍼 이스트 사이드에서의 기묘한 일상에 진저리를 치면서도 언제나 그 중심에 서 있는 세레나는 말한다. “알아, 여긴 미친 세상이야” 거기에 댄은 대답한다. “네 세상이기도 해” 그리고 그 세상의 안내자로 언제나 여기에 XOXO, 가십 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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