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사랑에 올인하는 로미오와 줄리엣은 드라마에 늘 있어왔다. MBC <사랑한다면>의 영희(심은하)와 동휘(박신양)는 종교적인 차이 때문에, MBC <아현동 마님>의 시향(왕희지)과 길라(김민성)는 나이 차이 때문에 결혼에 이르기까지 시련을 겪었다. 이외에도 경제적인 이유는 더 비일비재하다. 여기에 SBS <가문의 영광>은 가풍의 차이까지 더했다. 바람둥이 사업가와 고지식한 민속학자의 만남이 만만치 않았던 것처럼 강석(박시후)과 단아(윤정희)의 집안, 졸부와 종갓집의 만남도 요란한 파열음을 내고 있다. 당연히 주석처럼 시어머니의 몸을 아끼지 않는 거센 반대도 뒤따랐다. 그러나 그들은 무사히 결혼에 골인할 것이고, 달콤한 종반을 향한 여정도 얼마 남지 않았다. 로미오와 줄리엣의 사랑 얘기 사이에 주변 인물들과 가족에 대한 세심한 시선도 거두지 않고 있는 드라마 <가문의 영광>을 김선영, 김교석 TV평론가가 꼼꼼하게 관찰했다. /편집자주

SBS <가문의 영광>은 아버지와 함께 잃어버린 종택을 바라보는 어린 하만기(신구)의 회상 신으로 시작한다. 회상이 끝나고 현재 시점으로 오면 그 아버지가 이제 막 세상을 떠난 참이다. 그리고 장례를 치르자마자 이번엔 종부인 큰손자며느리와 작은 손자며느리가 동시에 이혼을 선언한다. <가문의 영광>은 그렇게 수백 년 동안 이어져 온 종가 문화의 전통이 서서히 위협 받고 해체되는 순간을 보여주며 시작된다.

하씨 종가는 어쩌다 위기에 봉착했나

하씨 종가의 위기는 크게 두 가지 요인에서 비롯된다. 첫째는 이미 오래전부터 종가 문화 내부에 잠재되어왔던 문제점 때문이다. 수영(전노민)의 이혼은 결국 종손으로서의 책임과 부담감 때문에 자신의 욕망은 억누르고 수동적으로 살아왔던 그의 삶에 원인이 있었으며, 태영(김성민)의 이혼 역시 어린 시절부터 반듯하고 종손다웠던 형과의 비교 때문에 미숙함이 더 두드러지고만 성격 탓이 크다. 석호(서인석)가 종부감과는 거리가 멀고 복잡한 과거를 지닌 영인(나영희)과 사랑에 빠져 집안에 한바탕 갈등을 불러온 일도 그 근본적 원인에는 종가의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살아왔던 그가 자신과 정반대인 자유분방한 영인에게 매력을 느끼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점들은 새로운 가족 구성원들이 들어오면서 맞이하게 되는 변화와 함께 서서히 개선된다. 영인은 종가 문화에 순응하는 것이 아니라 ‘구습은 버려야 한다’고 주장하며 남녀가 따로 식사하는 문제부터 변화시켜나간다. 또한 수영에게도 자신의 감정에 충실하라고 조언해준다. 영인 역시 하만기의 현명함과 어른다움, 단아(윤정희)의 예의바른 여성다움 등 종가 문화 특유의 깊은 미덕에 강한 영향을 받는다. 드라마는 가족 구성원들의 개인적 욕망과 종가 문화의 관례들이 서로 충돌하면서도 대화로서 타협점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가족애에 중점을 두면서 갈등을 무겁지 않고 따뜻하게 그려내고 있다.

가족 해체 시대의 홈드라마가 잊지 말아야 할 것

하씨 종가 위기의 두 번째 요인은 외부로부터 오는 위협이다. 가족적이고 공동체적인 마인드를 우선시하는 그들의 사업을 적대적인 자본의 힘이 압박하는 것이다. 이는 실제로 극중에서 하씨 종가 문화가 대표하는 전통적이고 공동체적인 미덕들이 빠르고 공격적인 개발의 속도에 점점 위협당하고 있는 현실과도 무관하지 않다. 물론 드라마는 그러한 문제를 심각하게 끌고 가지는 않는다. 대신 무엇이든 속성으로 처리해야 하고 실용적인 가치에만 관심을 두는 이천갑(연규진) 회장 일가와 진중한 느림과 배려의 미덕을 보여주는 하씨 종가의 대비를 통해 후자 쪽에 슬며시 더 힘을 실어준다.

그리하여 하씨 종가의 위기 극복 과정은 <가문의 영광>이 가족 해체 시대의 인상적인 홈드라마가 될 수 있었던 이유와 연결되기도 한다. 최근의 홈드라마들이 가족 해체 시대의 징후를 병리적으로 드러내며 막장으로 가거나 혹은 지나치게 이상적인 가족상으로 현실을 봉합하려는 경향이 있다면, 이 드라마는 오늘의 핵가족 문화와 정반대편에 위치해 있는 종가를 소재로 하여 억압적이지만 동시에 공동체적 미덕도 있는 가족 이데올로기의 양면적 속성과 가치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그것은 결코 무겁지 않지만 지난해의 KBS <엄마가 뿔났다> 정도를 제외하면 최근의 홈드라마들이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질문이기도 하다.
글 김선영

SBS <가문의 영광> OST ‘너 하나면 돼’ 의 첫 소절 ‘너만 내게 오면 돼’에는 이 드라마의 모든 것이 담겨 있다. 혹시 이 드라마의 배경이 명문가문이라고, 종손이자 집안의 큰 어른인 하만기(신구)가 등장한다고 전통과 가족의 소중함에 대한 드라마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그것은 예전 이영아가 SBS <황금신부>에서 베트남 국적으로 등장한 것을 두고 다문화 가정에 관한 이야기를, 구혜선이 KBS <열아홉 순정>에서 연변처자로 분한 것을 두고 조선족 동포의 삶을 반영했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이 드라마는 하씨종가 사람들의 연애사 열전이다. 그 멜로정서가 또 너무나 무거워 매회 극중 인물이 사랑에 아파하며 흘리는 눈물을 모으면 한 바가지가 족히 채워질 정도다.

막드 제1공식, 모든 남녀인물들이 커플이 된다!

그런 한편으로 <가문의 영광>은 갈등과 웃음과 울음을 한 손으로 주물럭거리는 일일드라마식의 패턴을 지닌 익숙한 드라마다. 갈등을 미리 알려주는 배경음악, ㄷ자 형태로 놓인 소파와 탁자가 있는 거실 세트는 그 어떤 일일드라마와도 호환 가능하다. 한옥에 사는 점잖고 착한 가족, 양옥에 사는 천박한 졸부 가족, 빈부 격차, 고부갈등이란 뻔한 이항대립구조의 세계로 또다시 초대한다. 그런데 흥미로운 지점은 ‘드라마에 고부갈등이 괜히 나오는 줄 아냐’는 자기고백적인 극중 대사에 있다. 뭘 하고 하지 말아야 하는지 이들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것이다.

요즘 노래에 훅이 강해야 한다면, 요즘 드라마에는 막장이라 불릴만한 독한 무엇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가문의 영광>은 ‘커플 물량’을 택했다. 등장하는 모든 남녀 등장인물이 한꺼번에 모두 커플로 맺어지는 전개가 휘몰아친다. 하만기의 아들이자 집안의 가장인 하석호(서인석)는 늦은 나이에 회사 간부였던 후배와 아이를 가져 결혼을 한다. 얼마 후 이혼했던 그 두 아들은 룸메이트였던 진아(신다은)와 말순(마야)을 각각 아내로 맞이하고 합동결혼식을 올린다. 메인 플롯의 주인공 단아(윤정희)는 자기 집안을 집어삼키려던 ‘전갈의 천성을 닮은 외로운 남자’ 이강석(박시후)의 동생을 위해 그와 계약연애를 한다. 이 무리수를 둔 설정 덕에 “날 해독제로 이용해 보는 건 어때?”라는 당황스런 대사들이 튀어나와 적잖게 당황케 한다. 또, 이강석의 연약한 여동생 혜주(전혜진)는 단아를 짝사랑하던 대학생 정현규(이현진)와 연결된다. 심지어 1회에 출연했던 진아의 옛 애인을 하씨종가의 회사에서 마주칠 정도로 등장인물 하나하나 낭비 없이 얽혀 있다. 여기까지 듣다보면 명문종가 살리기보다 쪽대본이나 막장코드에 가깝게 느껴진다.

가족 판타지의 넓고 유연한 미덕

<가문의 영광>은 유교적 관습과 막장이 서로 극과 극에서 자력을 뿜어내며 따뜻한 에너지를 낸다. 갈등은 있지만 적이 없다. 갈등은 나이차 많은 커플, 재혼, 집안 반대 등 유교적 관습에서 조금씩 벗어나면서 생긴다. 그때 막장이라는 단어를 턱밑에서 끌어내리는 것이 가풍 있는 집안 어른과 열녀다. 결혼을 반대하는 남자친구의 부모님께 “저에게 소중한 저 사람을 이 세상에 내놓아주신 부모님께 그럴 수는 없는 일입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의 아내로 살아가는 일도 없을 겁니다”라고 똑 소리 나게 말하는 단아. 그녀는 참하고, 순종적이고, 똑똑하다. 첫 회에서 고조할아버지의 임종을 보기 위해 서울로 돌아가려던 모습은 심봉사를 위해 인당수에 몸을 던지는 심청의 오마주와 같으며 게다가 신혼여행에서 남편을 잃고 10년을 독수공방했던 열녀다.

아직도 많은 시청자들은 한 남자만 바라보는 열녀에게 마음을 연다. 집안 어른은 항상 지혜로우며 절대적인데서 평화로움을 느낀다. 화목한 가정의 중심에 종손이 있는 것을 이상향으로 생각한다. 그런데 이 보수적인 정서 속에서 콩가루가 된 명문종가를 다시 봉합하는데, 그 방식이 폭력적이지 않다. 다양한 형태의 혼인과 연애를 지혜로운 집안 어른의 너른 품으로 감싸 안는다. 일반적이지 않은 관계와 설정을 새롭게 재해석해서 유연하게 받아들인다. 그래서 이 드라마는 막장과 웰메이드의 줄다리기가 참 교묘하다. 어쩌면, 지지고 볶는 연애 한가운데서 현대의 가족상과 전통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했다는 미덕을 찾을 수도 있으니까.
글 김교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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