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기사는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지난 주 폭스 TV에서는 조스 위든의 새로운 시리즈 <돌하우스>가 첫 방송했다. 위든은 과거 TV 시리즈 <버피 더 뱀파이어 슬레이어>와 <파이어플라이>, 영화 <세레니티>, 인터넷 뮤지컬 <닥터 호러블의 싱-얼롱 블로그> 등으로 TV계에서 이미 컬트적인 존재다. 그의 TV 복귀를 축하하고, <돌하우스>의 장수를 기원하며 앞으로 3주간 <버피 더 뱀파이어 슬레이어>와 <파이어플라이>, <돌하우스> 등을 연속 소개할까 한다. 지난1997년부터 2003년까지 방영된 <버피 더 뱀파이어 슬레이어> (이하, <버피>)는 시청률이 높거나, 에미나 골든 글로브상을 싹쓸이 하던 시리즈는 아니다. 방영 당시 일부 청소년이나 오컬트 팬들이 좋아하던 컬트 시리즈라 치부 됐지만, 이제는 만인이 인정하는 잘 만든 시리즈로 꼽히고 있다. 독특한 표현 방식으로 사회학이나 스피치 커뮤니케이션, 심리학, 철학, 여성학 등 다양한 방면의 학계에서 <버피>를 소재로 한 20여 가지의 서적과 수백개의 논문이 발표됐다. 또 가 발표한 ‘올해 최고의 시리즈 50편’ 에 선정됐으며, <엠파이어 매거진>이 선정한 ‘최고의 시리즈 50’에서 2위를 차지했고, 역시 <타임 >이 발표한 ‘역대 최고의 TV 쇼 100편’에도 오른바 있다.

틴에이저 벰파이어 사냥꾼의 악몽

초창기에는 뱀파이어와 뱀파이어를 사냥하는 슬레이어라는 초자연적인 소재에 솔깃한 시청자들이 <버피>를 찾았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이들이 끝까지 자리를 지키고, 인터넷을 통해 팬픽을 쓰고, 끊임없이 블로깅을 하고, ‘버피버스’ (Buffyverse, <버피>의 눈으로 본 세상)가 생겨나기까지 지속된 힘은 위든이 창조한 캐릭터들과 이들이 쉬지 않고 뱉어내는 위트, 그리고 때로는 가슴 저리도록 현실감 느껴지는 이야기들이 아닐까. <버피>에는 수많은 캐릭터들이 나오지만, 그래도 중심은 버피(사라 미셸 겔러)와 그녀의 뒤를 끝까지 지켜주는 ‘스쿠비 갱’이다. 컴퓨터와 책 밖에 몰라 친구가 없지만 새로운 슬레이어 역할 때문에 혼란스럽고 괴로운 버피에게 가장 먼저 손을 내밀어 준 윌로우 (앨리슨 해니건), 모든 것을 섹스와 연관시키고 약간은 둔해 보이지만 강하고 따뜻한 심장 역할을 하는 젠더 (니콜라스 브렌던), 그리고 아버지처럼 버피를 감싸주는 루퍼트 자일스 (안소니 스튜어트 헤드) 등이 바로 그들이다.

<버피>는 대중적인 인기를 얻기 힘든 호러 장르지만, 많은 이들이 경험했거나 두려워하는 10대들의 심리상태를 상징적으로 또는 은유적으로 표현했다. 학자들에 따르면, ‘버피버스’에서는 청소년들이 당면한 난관이 말 그대로 괴물로 형상화돼 나타난다. 딸의 젊음을 부러워 한 어머니는 딸의 신체를 빼앗아 버리고, 엄마의 엄격한 새 남자친구는 알고 봤더니 로봇이다. 또 동성애를 느끼기 시작한 소녀는 자신이 악마에 씌었다고 두려워한다. 그리고 가장 큰 두려움은 사랑하는 남자와 하룻밤을 보낸 후 다음 날 아침 그가 전혀 다른, 차가운 남자로 변했을때다. 버피는 이런 괴물 같은 현실을 때로는 주먹과 발길질로, 때로는 재치로 이겨낸다. 인상적인 에피소드들로는 버피와 드라큘라 백작의 대결을 그린 ‘버피 대 드라큘라’, 조이스의 죽음을 사운드트랙이 전혀 없이 적막 속에서 보여준 ‘더 바디’, 여동생 던을 살리기 위해 목숨을 바친 버피를 윌로우가 되살려 내지만 지옥에 있었을 것이라는 친구들의 추측과는 달리 천국에서 평온함을 누리다가 지상으로 다시 끌려 내려왔다고 불평하는 ‘올 더 웨이’, 전무후무한 TV 뮤지컬 에피소드 ‘원스 모어, 위드 필링’, 그리고 버피에게 불가능해 보이던 미래에 대한 희망을 안겨준 시리즈 피날레 ‘초우즌’ 등이 있다.

아무도 맘놓고 미워할 수도, 사랑할 수도 없다

<버피>가 기억해야 할 시리즈인 이유는 악역도 단순히 미워할 수만은 없고, 선한 캐릭터 역시 맘놓고 칭송할 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가장 극명한 대조는 스파이크(제임스 마스터스)와 윌로우다. 빌리 아이돌 처럼 표백한 펑크족 머리에 70년대 죽인 슬레이어의 가죽 코트를 입고 폼생폼사 하던 스파이크는 시즌이 거듭될 수록 가장 버피를 이해하고, 무조건적으로 사랑하며 끝내 버피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녀를 위해 자신을 희생한다. (물론 스핀오프 시리즈 <엔젤>에서 다시 회생하긴 하지만) 버피의 가장 친한 친구 윌로우는 버피를 위해서라지만 타이밍이 어긋난 주문과 마법 때문에 버피에게 가슴 아픈 상처를 많이 안겨준다. <버피>는 TV에서 종영된 후 시리즈의 영화화나 외전을 추진한다는 소식이 간혹 들리긴 했으나, 표면화 된 것은 없어 팬들을 안타깝게 했다. 위든은 다크호스 출판사를 통해 TV 시리즈로 보여주지 못했던 시즌 8을 2007년 코믹북 시리즈로 발표한 바 있다.

© 텐아시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