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의 한국사회에서는 꿈과 신념을 무엇이라 부르고 있을까. 가까운 미래, “꿈과 신념을 어린애들 장난”이라 부르는 한 섬의 정치수용소에 두 남자가 수감되어 있다. 수감자 존과 윈스턴을 통해 현재의 우리 사회를 돌아보게 만드는 연극 <아일랜드>의 프레스콜이 2월 17일 대학로 SM아트홀에서 열렸다. <아일랜드>는 1974년 “흑인은 별도의 죄명이 필요치 않았”을 정도로 비인간적이었던 남아프리카연방의 인종차별을 다룬 작품으로, 1977년 한국 초연 당시 진실을 옹호했다는 이유로 감옥살이를 해야 했던 역설적인 시대상황과 맞물려 큰 호응을 얻었다. 그 후 30년이 지난 2009년, 지난해 뮤지컬 <이블데드>를 통해 호흡을 맞췄던 연출가 임철형, 배우 조정석, 양준모가 모여 새로운 버전의 <아일랜드>를 선보인다.

국민 화합을 외치지만, 언론과 집회의 자유가 사라진 가까운 미래. 차디찬 이글루 같은 감옥에서 두 죄수는 카메라 ‘지니’와 팔목에 수갑 대신 채워진 센서에 의해 24시간 통제당하고 있다. 원작 속 두 죄수가 수용되어 있는 감옥은 실제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넬슨 만델라 대통령이 17년간 복역했던 것으로 유명한 정치수용소이다. 초연 이후 30년이 지난 2009년의 <아일랜드>에서는 섬이라는 공간과 가까운 미래라는 점을 부각하기 위해 차가운 느낌의 이글루를 감옥으로, 감옥의 창살 대신 무대 앞 붉은 실을 레이저로 설정했다. 연출가 임철형은 “30년이 지난 지금의 관객들에게 나라, 민족, 자유, 법이라는 소재가 얼마나 호응을 얻을지 모르겠지만, 작품을 통해 사회적인 메시지를 곱씹어볼 수 있으면 좋겠다”는 의도를 밝혔다. 지난 14일부터 공연을 시작한 연극 <아일랜드>는 4월 5일까지 대학로 SM아트홀에서 계속될 예정이다.

영특하고 대의가 강한 ‘존’, 조정석
그동안 뮤지컬 <헤드윅>, <펌프보이즈>, <이블데드> 등에서 특유의 위트와 센스를 잃지 않았던 조정석은 연극 <아일랜드>에서 정치색이 분명한 죄수 존을 연기한다. 작품 속에서 존은 죄명이 특별히 거명되지 않지만 자신만의 확고한 정치신념을 가진 인물이다. “캐릭터를 어떻게 설정하고 연기하느냐에 중점을 뒀다. 존은 정치적 색깔이 확실하게 드러나는 인물인데 반해 개인적으로는 정치에 큰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진정성을 추구하는 부분이 어려웠고, 많이 노력중이다.”

순진하고 평범한 ‘윈스턴’, 양준모
성악과 출신의 좋은 목소리로 스펙트럼이 넓은 캐릭터들을 연기했던 양준모는 “시위에 아내를 데리러 갔을 뿐인데 종신형을 선고 받은” 윈스턴을 맡았다. 다혈질에 지극히 평범한 윈스턴은 존과 함께 감옥에서 <안티고네>(antigone)라는 극을 선보이며 자신을 돌아보게 되는 계기를 마련한다. “음악이나 춤 등 기타 요소를 제외하고 온전히 텍스트 안에서 의미와 가치를 찾는 점들이 나에게 큰 도움이 되고 있다. 나중에 뮤지컬로 다시 돌아갔을 때 새로운 모습들을 보여줄 수 있을 것 같다.”

관전 포인트
배우 양준모의 말처럼 “연기에 대한 깊은 갈망”은 최근 많은 뮤지컬 배우들이 연극무대를 찾는 이유이며, <아일랜드>는 그런 뮤지컬 배우들의 정극 데뷔만으로도 많은 이들의 기대를 받고 있는 작품이다. “많은 팬을 가진 두 배우들인 만큼, 이들을 통해 연극을 다시 접하고 뮤지컬에서 느끼지 못했던 감동을 받을 수 있다면 보람이 될 것 같다”는 연출가 임철형의 바람대로 관객동원에는 큰 어려움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연극인들조차 어려워한다”는 작품인 만큼 연기를 통해 추상적이기까지도 한 작품에 대한 설명과 이해가 충분히 진행될 수 있을지가 최대 관건이다. “집회의 자유, 언론의 자유를 제한시켜 국민화합의 목적을 최우선으로 한다”는 설정이 더 이상 설정 같아 보이지 않는 이 때, 연극이 끝나고 난 후 관객들은 자신에게 둘러싸인 붉은 실을 스스로 끊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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