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는 아직도 모르겠다. 언젠가 갑자기 수많은 사람들이 싸이 미니홈피나 블로그에 구스타프 클림트의 <키스>와 <결혼> 같은 작품들을 올리며 클림트의 팬을 자처했던 적이 있다. 물론 클림트는 자신만의 세계를 가진 탁월한 미술가다. 화려한 여성편력 때문에 퇴폐적 천재 이미지가 강하지만 사실 그는 사실주의적 ‘재현’과 장식적인 아르누보의 ‘표현’ 모두에 정통한 인물이다. 물랑루즈의 포스터를 그렸던 아르누보의 대가 툴루즈 로트렉처럼 벽화를 비롯한 종합적 작업을 많이 했고, 시각적 쾌감을 추구했다는 점에서 그는 종종 아르누보 계열의 화가로 꼽힌다. 하지만 지나치게 장식적 요소에 천착했던 아르누보와 달리 그의 그림은 쾌락적이면서도 캔버스 안에 주제의식이나 소재가 견고하게 자리 잡고 있다.

예술의 전당 한가람 미술관에서 2월 2일부터 진행 중인 ‘클림트의 황금빛 비밀-토탈아트를 찾아서’展의 구성이 인상적인 것은 기행적 면만 부각됐던 클림트의 미술적 토대와 그 토대가 어떤 방식으로 종합되고 발전되었는지를 제법 명료하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정교한 사실주의 회화에서는 그의 숙달된 테크닉을, 그리고 공공미술 작업에서는 회화와 건축, 실내장식 등의 경계를 허물고 종합하는 그의 예술적 신념을 알 수 있다. 벽화 <베토벤 프리즈>가 회화를 통해 장식을 한 것이라면, <유디트>나 <아기>, <아담과 이브> 등은 장식적 요소를 회화에 배치하는 방식으로 장르를 삼투한다. 특히 우리나라에서 특히 인기가 많은 후자의 경우 다분히 장식적인 무늬가 세밀하게 표현된 얼굴과 몸과 조화를 이루며 순간적 쾌감을 주는데 그치지 않고 작품 자체의 존재감을 남긴다.

<클림트>
감독 라울 루이즈│2006년

워낙에 여성 편력이 심하기로 유명한 천재 미술가를 ‘동물성과 식물성의 최고봉에 선’ 배우 존 말코비치가 연기했으니 엄청나게 방탕한 천재 이야기를 기대할지도 모르겠다. 실제로 영화 속 클림트는 프랑스 영화배우 레아에게 푹 빠지며 다분히 에로틱한 욕망이 넘치는 작품을 그린다. 하지만 그보다 흥미로운 건 동료 미술가들에게 ‘장식주의자’라고 불리며 무시당하면서도 자신의 예술적 신념에 대해 말하지 않고, 오히려 말 많은 그들을 견디기 어려워하는 클림트의 모습이다. 실제로 클림트는 자의식 가득 찬 언어로 스스로를 설명하지 않았고, 자신의 그림이 자신을 보여준다고 믿었다.

<에곤 실레, 벌거벗은 영혼>
작가 구로이 센지│2003년

클림트의 영향을 받은 동시에 영원한 예술적 동지이기도 했던 에곤 실레의 삶과 예술적 성취를 다룬 책이다. 고흐와 고갱이 후기 인상주의 안에서도 서로 다른 성취를 이룬 것처럼 실레는 클림트의 영향을 많이 받으면서도 자신만의 회화 스타일을 확립했다. 다분히 에로틱한 느낌의 그림을 그린 것도 닮았는데 클림트의 그림이 짙은 화장과 아이 라인, 몽롱한 향수를 쓰는 팜므파탈의 느낌이라면 실레의 그림은 좀 더 원초적이고 동물적인 성욕의 느낌이라는 것이다. 자신이 닦은 길 위에서 비슷하지만 또 다른 길을 만들어나간 동료는 클림트에게 어떤 의미로 남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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