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나도 F4처럼 교복을 입고 다니던 시절엔 “학생은 교복 입고 있을 때가 제일 예뻐”라던 어른들 말씀이 말도 안 되는 ‘뻥’이라고 생각했다. 옷 사주기 싫어서, 또는 옷에 신경 못 쓰게 하기 위해서 그냥 하는 소리 말이다. 그런데 KBS <꽃보다 남자>를 보니 그게 진심에서 우러난 진실이었다는 것을 알겠다. 그렇다고는 해도, 세상 많이 좋아졌다. 우리 때 교복은 디테일이라고는 오히려 교복의 전체적인 느낌을 더욱 촌스럽게 만드는 허리 절개선 뿐이었는데…. <꽃보다 남자>에 나오는 애들이 입고 다니는 교복은 톰 브라운이 디자인하는 브룩스 브라더스의 블랙 플리스 라인 못지 않게 멋지다.

I. 신화고의 악녀 3인방에게 고함

블랙 플리스는 그가 브룩스 브라더스를 위해 디자인하는 프리미엄 라인으로 브룩스 브라더스가 추구하는 정통 프레피 룩에 톰 브라운의 재기발랄함이 더해진 옷들로 구성된다. ‘프레피 룩이 이렇게 귀엽고 새로울 수 있구나’ 무릎을 치게 만들 만큼 멋진 아이템들도 많은데, 솔직히 ‘드럽게’ 비싸다. 여자는 흰색, 남자는 회색 바이어스 테이프로 깃과 전체 가장자리를 감싼 재킷은 산뜻하고, 베이지 색 바지는 멋스럽다. 거기에 검정색이나 베이지색 벨트가 아닌 흰색 벨트를 더한 센스라니! 어디 파는 데가 있다면 나도 한 벌 사 입고 싶을 정도다.

교복 입던 시절을 떠올릴 때면, 지금까지도 후회가 되는 일이 몇 가지 있다. 왜 교복을 입을 때 신발에 그토록 관심을 쏟지 않았을까. 지금 같았다면 빚을 내서라도 미우미우의 로퍼를 사서 신고 다녔을 거다. 왜 예쁘지도 않은 카디건이나 터틀넥 스웨터를 더 껴입어 가뜩이나 멋지지 않은 교복을 더 촌스럽게 만들었을까. 그냥 학교에서 입으라는 데로 입을 것을… 다리가 훤히 비치는 어른용 스타킹보다 두툼한 타이즈를 신는 게 훨씬 예쁜데 왜 학생 주임 선생님 눈을 피해 비둘기색 2호를 신고 다녔을까(그땐 그게 섹시한 줄 알았다)…. 신화고의 악녀 3인방에게 쪽지라도 보내고 싶다. 얘들아, 언니도 좀 놀아봤는데 말이야 그건 아니야….

II. 윤지후에게 고함

어느 유명한 디자이너는 ‘사람들에게 스타일리시한 사람으로 평가 받기란 아주 쉽다. 같은 디자인의 검정색 옷을 3개월만 입고 다니면 된다’라고 했다는데, 이제야 그게 괜한 헛소리가 아니었음을 알겠다. 옷을 잘 입는 사람이란 다양한 스타일의 옷을 옷장에 구비하고 있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일관성 안에서 상황에 따라 그것을 조금씩 변주해내는 감각에서 비롯되는 걸 게다. 한마디로 이것저것 탐내지 않고, 이 디테일 저 스타일 아무 것에나 탐닉하지 않고, 자기에게 어울리는 옷이 무엇인지 안다는 것일 게다. 케이프처럼 소매가 트여 있는 코트를 입었다가, 어쩐지 ‘에쵸티’ 시절이 생각나게 하는 라임색 코트도 입었다가…. 멋이란 멋은 다 부리는 것 같은데 일관성이라고는 없는 윤지후보다 구준표가 더 멋져 보이는 건 그래서일 게다.

아! 윤지후에게도 일관성은 있다. 늘 남들보다 과하다는 것. F4가 턱시도를 입을 땐 혼자만 흰색을 입고, 너무 풍성해서 뭉게 구름처럼 보이는 터틀넥을 입고, 디테일이 왕창 들어간 모닝 코트를 즐기는 식으로. 물론, 그게 순정만화 주인공적 캐릭터를 만드는데 도움은 되겠지만, 현실에서 저런 남자를 만난다면 딱 이런 심정이겠지. “저 X은 또 뭥미?”

III. 소이정과 구준표에게 고함

헬무트 랭과 에디 슬리먼은 아티스트가 되고 ‘클래식한 옷차림’이 대세인 시점이어서일까. 손가락 두 개의 두께보다 폭이 좁은 ‘범이’와 준표의 넥타이가 자꾸 눈에 거슬린다. 셔츠 깃이라도 좀 좁은 걸 고를 것이지….

(좀 무책임한 말이지만)그럼에도 언제나 사람이 갖고 있는 자체적 ‘발광’은 옷의 아우라를 넘어선다. 사실 윤지후(얜 윤지후!)보다 준표(구준표는 ‘주운~표’)가 더 멋지다고 썼지만 준표가 입은 옷에 대해 말하라면 딱히 할 말이 없다. 사람들은 준표가 입고 다니는 검은색 롱코트가 남자답고 멋지다고 하는데, 지후의 ‘이 코트 저 코트’에 비해 멋지긴 해도, 아쉬움이 남는다. 벨트가 없는 대신 전체적으로 몸에 좀더 타이트하게 피트되는 실루엣이었다면 훨씬 멋졌을 것이다. 게다가 준표가 좋아하는 투톤 스트라이프 슈트는 변두리 스타일의 전형이고, 개인적으로 난 검은색 슈트에 검은색 셔츠 입는 사람 딱 질색이다(준표는 주로 그렇게 입는다). 그래도 준표는 멋있다. 공항 근처에서 잔디를 차에 밀친 다음, “사!귀!자!”라고 말할 땐 너무 귀여워서 까무러칠 뻔 했다. 키도 크고, 수영 빼곤 못하는 게 없는 팔방미인에, 부…부자! 구준표! 밀가루 반죽처럼 허옇기만 한 금잔디 말고 나랑 사!귀!자! 내일 오후 세 시! 여의도역 4번 출구로 나와! (이렇게 또 정신줄을 놓는다)

심정희
이지혜 seven@10asia.co.kr

© 텐아시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