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엔 즐기고, 30대엔 지혜로워지고, 40대엔 술이나 사고…….” 영화 <섹스&시티>의 캐리(사라 제시카 파커)의 이 대사에 공감한 이들이 많다지만, 나이 쉰인 나는 옆에 앉은 친구와 이런 귀엣말을 나누었다. “그럼 50대엔 뭘 하면 돼?” 주인공 캐리는 40대랍시고 50대는 아예 언급조차 하지 않았고, 극중 동갑이라는 사만다(킴 캐트럴)의 당당한 자신감은 서둘러 집안 일 해놓고 조조할인으로 영화를 보는 우리를 오히려 위축시켰을 뿐이었다. 그래도 50번째 생일을 맞아 자신을 좀 더 사랑하기 위해 싱글의 길을 택한 사만다에게 고무된 우리는 그녀처럼 대단한 열정은 아니어도, 기념 삼아 평생 해보지 못했던 일 몇 가지를 해보고 이 해를 넘기자는 다짐을 했었다. 그러면 50대엔 뭘 하면 좋을지 답을 얻을 수도 있지 않겠느냐며. 그리고 나는 2008년의 끝자락에 일산 킨텍스에서 열린 SBS <가요대전>을 보러 갈 마음을 먹게 됐다. 50세의 대미를 장식할 사건이 고작 공개방송 방청이라니, 뉴요커 사만다가 들으면 미친 듯 비웃겠지만 소심한 한국 아줌마가 밤 1시에 파하는, 그것도 십대 위주의 공개방송에 참석한다는 것 자체가 나름대로 큰 결심이라는 걸 알아주길 바란다. 함께 간 딸아이가 “엄마가 제일 연장자인 걸”이라고 말하기는 했지만.(이것아!!!!!!)

‘발카메라’, 안전요원, ‘직캠’팬들까지 모두 이해가 되더라

그런데 거기서 제일 나이 많음 직한 이 아줌마가 일산까지 가서 보니, 직접 보는 가요 프로그램의 무대는 TV로 보던 것과는 많이 달랐다. 말 그대로 ‘현장견학’이 최고인 느낌이랄까. 우선 평소 팬들이 직접 찍은 영상에 비해 방송국 카메라의 영상이 왜 그리 부실한 것인지 의문이었는데, 내 앞자리에 앉은 몇몇 팬이 마치 첩보 영화의 한 장면처럼 아슬아슬 촬영하는 화면을 훔쳐보니 그 연유를 알 것 같았다. 팬들은 노래와 춤을 처음부터 끝까지 완벽히 외우고 있는지라 동선을 따라가며 찍으니 절묘한 표정이나 동작을 하난들 놓칠 리 없지만, 방송국 카메라는 가수 개개인의 매력을 일일이 알 수 없으니 그저 전체적인 조화에 치중해 찍을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몇몇 카메라의 위치는 3층은 족히 될 만치 높은 자리였는데 한번 올라가면 대여섯 시간 동안 꼼짝 못하고 고생하거늘, ‘발카메라’라는 비난까지 받으니 카메라PD로서는 서글플 수도 있겠다.

그러나 팬 입장에서야 숨이 막힐 장면이 무대에서 펼쳐지고 있는데 정작 영상은 객석이나 비추고 있으니 허탈하지 않겠나. 또한 이런 아쉬움 때문인지 애당초 촬영금지가 공지 됐어도 한 컷이라도 더 남기려는 관객들과 촬영을 저지하려는 안전요원들과의 신경전도 대단했는데, 이 역시 양쪽 입장이 두루 이해가 갔다. 처음에는 굳이 하지 말라는 걸 저렇게까지 전전긍긍 눈치를 보며 촬영을 할 게 무언가 싶었다. 하지만 개인 소장용이기보다는 그 자리에 오지 못한 팬클럽 회원들을 위해 결사적으로 촬영을 하는 그들의 열정도 인정 안할 수 없었다. 무엇보다 가슴 저렸던 건 녹화가 끝났음에도 아쉬움에 자리를 뜨지 못하는 뒷자리의 중학생으로 보이는 어린 팬들이었다. 그들의 좌석에서는 ‘오빠’가 대추씨만도 못 하게 잘 안 보이리라는 걸 익히 알고 있으면서도, 단지 무대에 선 ‘오빠’들에게 좀 더 큰 환호를 들려주고자 추운 날씨에 먼 거리를 불사하고 달려온 아이들이 아닌가.

“50대엔 뭘 하면 될까?”의 해답

예전 같으면 “그 시간에 문제를 하나 더 풀지”하고 혀를 찼겠지만 그날은 왜 그리 내 자식처럼 죄다 안쓰럽던지. 주차장을 빠져나오며 또 한 번 놀란 건 마치 수능시험 현장처럼 자식들을 데리러 온 길고 긴 차량의 행렬이었다. 이제 아이돌 팬 문화는 예전처럼 십대 팬들에게만 국한 된 게 아니라 가족의 협조 하에 비약적인 발전을 이룩하고 있는 모양이다.

솔직히 이번에 활동을 접는 동방신기를 보러 <가요대전>에 간 아줌마지만 정작 나에게 감동을 준건 아이돌의 팬들이었다. 정말 그들이 좋아하는 아이돌 가수들에게 “너희들, 팬들의 마음 소홀히 하면 천벌 받는다”라고 말하고 싶어졌달까. 그리고 집으로 돌아오는 자유로에서 생각했다. “50대엔 뭘 하면 될까?” 내가 얻은 답은 “이해를 하고……”다. 지적하는 이들은 차고 넘치는 세상이니 50대들은 이제부터 이해‘만’ 맡으면 어떨까 싶다. SBS <가요대전> 현장에서 나는 그때까지 이해하지 못했던 많은 것들을 이해하게 되었으니.

정석희
이지혜 seven@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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