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환과 나는 띠동갑이다. 12년 전 이맘때인지 그보다 조금 나중인지 하여튼 1997년 1월경, 지금의 내 나이였던 이승환은 5집을 발표했다. 제목이 인 그 앨범은 “나 완전히 어른 돼버렸어요”라는 넋두리로 채워져 있었고, ‘붉은 낙타’는 그중에서도 제일 웅장하고 폼 나는 넋두리였다. 붉은색은 정열의 상징이고 낙타는 가장 생각 없어 보이는 동물이라서 제목을 그렇게 지었다던가. 아무튼 그는 “억지스런 온갖 기대와 뒤틀려진 희망들을 품고 살던 20대”에 “객기도 한 번쯤 부려보며 살았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음을 “아까워”했다. 스물한 살의 난 우습게도 이 노래를 듣고는 엄벙덤벙 넘어가버린 스무 살을 생각하며 한숨을 쉬었고, 바로 아래 학번 새내기를 맞이하는 자리에서 붉은 낙타 운운하며 20대의 첫해가 어쩌니저쩌니 열변을 토하기도 했다. 20대를 9년이나 남겨놓고도 세상 다 산 양 거드름을 피우던 그때, ‘붉은 낙타’는 내 허풍스런 잘난 척을 도와줄 수식어에 지나지 않았다.

그로부터 12년 후. 지금의 난 ‘뒤틀려진 희망’이라곤 작년에 가입했다 반 토막 난 거치식 펀드가 전부고 ‘객기 한 번’이라곤 술 먹고 호방한 척 언성 높이는 게 다인, 중년은 아니지만 청년이라기엔 상당히 부끄러운 인간이 되어버렸다. 휴학 한 번 않고 대학 졸업하자마자 들어간 첫 직장에서 안정된 회사원 신분과 매달 25일에 따박 따박 나오는 월급에 중독되어 9년을 눌러앉은 뒤에야 나는 실감한다. “은빛 사막의 붉은 낙타 한 마리”가 서른셋 언저리의 해묵은 청춘들에게 얼마나 아득하고 달콤한 꿈인지를.

김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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