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블 채널 터너 클래식 무비스 (이하, TCM)는 AMC 채널처럼 고전 할리우드 영화를 주로 방영한다. 그러나 최근 AMC 채널이 <매드 멘>과 <브레이킹 배드> 등 오리지널 시리즈로 주목을 받으면서, TCM도 기존 메이저 방송사가 시도하기 힘든 시리즈를 선보이고 있다. 이 중 하나가 배우나 감독을 초대해 자신이 영향을 받았던 영화들과 연기에 대해 이야기 하는 인터뷰 쇼 <엘비스 밋첼: 언더 더 인플루언스> (이하 EMUI)다. AMC가 영화나 시리즈 방영 중 유료채널을 제외한 타 방송국 처럼 광고를 방송해야 하는 반면, 타임워너의 소속 채널인 TCM은 프로그램 진행 중 광고 방송이 없으며, 프로그램 사이에도 웹사이트에서 판매하는 상품이 간단히 등장하는 정도다. 든든한 모회사를 가지고 있기에 가능하지 않을까. 이 덕분에 AMC가 상업성 있는 드라마 시리즈를 제작하는 반면, TCM은 여전히 고전 할리우드 영화를 중점으로 한 채널 이미지에 충실한 프로그램을 제작하고 있다.

빌 머레이, 에드워드 노튼, 리처드 기어, 타란티노… 초호화 캐스팅

광고 없이 30분간 방영되는 의 진행자 엘비스 밋첼은 <뉴욕타임스>에서 영화 평론가로 활동했다. 현재는 내셔널 퍼블릭 라디오에서 인터뷰 프로그램 <더 트리트먼트>를 진행하고, 하버드 대학에서 강사로도 활동하고 있는 저명한 저널리스트다. 그렇다고 밋첼이 근엄하거나 잘난 척하는 진행자는 절대로 아니다. 그의 영화평을 읽어 본 독자는 아시겠지만, 로저 이버트 만큼이나 솔직하고, 영화에 대한 사랑을 진솔하게 드러내 팬들이 많다. 1대 1 인터뷰 방식인 에서도 밋첼의 강직함과 진실함을 느낄 수 있다. 유사한 방송인 브라보 채널의 <인사이드 액터스 스튜디오>의 진행자 제임스 립튼이 과시적인 태도로 눈총을 받는 것과는 상반된다.

이번 시즌에는 인터뷰 안 하기로 유명한 빌 머레이, 연기파 배우 로렌스 피시번, 박식한 영화 지식을 가진 이단아 감독 쿠엔틴 타란티노, 에드워드 노튼, 리처드 기어 등이 나왔다. 이들은 감명 받았던 옛 영화 부터 인상적인 장면, 배우 그리고 잘 알려지지 않았던 에피소드까지 두런 두런 이야기를 나눈다. 그럼 TCM은 방송 중 출연자가 언급했던 클래식 영화를 인터뷰 방송이 끝난 후 연달아 두 편씩 자상하게 방영해 준다. 흑백 영화에 알레르기 반응이 있는 시청자라도 를 본 후라면 그냥 넘기기 힘든 유혹이다.

특히 는 얼마 전 암으로 사망한 감독 시드니 폴락과의 인터뷰로 첫 방송을 시작해 눈길을 끌었다. 폴락은 원래 뉴욕 시어터 출신의 연극 배우였다. 그러던 그가 감독으로 들어서게 된 것은 순전히 버트 랭카스터의 전화 한 통 때문이었다고 한다. 그를 지켜보던 선배 랭카스터가 그를 개인적으로 알던 유니버셜 영화사 관계자에게 추천을 한 것이 그의 감독 생활의 출발이었다. 재미있는 것은 폴락은 처음에 무척 기분이 나빴다고 한다. 랭카스터가 자신을 “배우로 성공하기에는 너무 못생겼다고 생각해서” 감독 권유를 했다고 지레짐작을 했단다. 그리고 이 후 감독으로 성공을 거뒀던 그를 다시 연기자로 끌어들인 것은 다름 아닌 더스틴 호프만 이었다고 한다. 그는 영화 <투씨>에서 폴락이 자신의 매니저로 출연해야 한다는 호프만의 고집 때문에 다시 카메라 앞에 서게 됐다.

단순하지만 진실된 오아시스 같은 이야기들

노튼은 어느 영화나 감독에게 영향을 받았다는 말을 이렇게 해석했다. “단순히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속에 있는 프리즘을 통해 굴절시켜 새롭게 소화하는 것.” 이처럼 클래식 영화에 지대한 영향을 받은 출연진들은 밋첼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일반 잡지나 TV 인터뷰에서는 속 깊은 연기 이야기도 털어 놓는다. 체조 선수 출신이라는 기어는 모든 캐릭터를 음악의 장르처럼 접근한다고. 또 노튼은 영화 <래리 플린트>에서 밀로스 포만 감독이 배우들에게 즉흥연기를 권장하고, 몇 달 뒤 이를 편집해 전혀 새로운 장면으로 만들어내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가장 좋은 공부”를 했다고 한다. 타란티노는 B급 영화를 유치하다고 치부하지 않고, 진정 즐길 수 있을 때 느끼는 쾌감에 대해 열변을 토했다. 머레이는 막스 브라더스의 육체적인 코미디를 즐긴다는 고백과 함께, 88년작 <스크루지드>에서 로버트 밋첨과 함께 연기했던 경험을 들려줬다.

한편 피시번은 늘 ‘스윙’의 경지에 오르고 싶어한다고 밝혔다. ‘스윙’이 무엇을 뜻하냐는 밋첼의 질문에 재즈 음악가 델로니어스 몽크를 예로 들었다. “몽크는 다른 뮤지션과 연주를 하다가 모든 것이 완벽하게 맞아 들어갈때 연주를 멈추고 춤을 추기 시작한다. 너무 완벽하기 때문에 더 이상 노력할 필요가 없다는 거지. 그 순간을 즐기는 것 밖에는.” 피시번은 연기에서도 이런 ‘스윙’의 경지를 도달하기 위해 끊임 없이 도전한다고 한다. 그는 딱 맞아 떨어 질 때는 드물지만, 그렇다고 포기는 절대 할 수 없다며 연기에 대한 식지 않는 열정을 보여줬다.

가 신선한 이유는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만나 영화에 대해서만 이야기 하기 때문이다. 요즘 처럼 타블로이드 잡지와 프로그램이 판을 치는 세상에서, 이렇게 단순하지만 진실된 포멧의 방송은 오아시스처럼 다가온다. 폴락의 말처럼 TV나 멀티플랙스가 없던 시절, 그래서 영화가 ‘성전’처럼 귀하고 신성하게 여겨졌던 시절이 그립다.

© 텐아시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