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개가 죽었을 때 사흘을 앓아누웠다. 나흘 째 되는 날에는 뭐라도 해야만 살 것 같았다. 마음을 추스르기 위해 필요한 건 마음을 정화시켜줄 영화였다. (내가 왜 이 직종에서 일하고 있는지 이쯤되면 다들 이해하실게다) 그래서 <월·E>를 봤다. 잘못된 선택이었다. 2시간 내내 울었다. 자그마한 로봇이 멈추어버리는 순간 꺼이꺼이 통곡을 했다. 극장을 나왔다. 눈이 벌게진 채 비틀비틀 걸어 나오는 나를 향해 미친개 한 마리가 뛰어왔다. 말라뮤트였다. 누군가 버리고 간 게 틀림없었다. 왜냐면 그 녀석은 목줄을 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극심한 털갈이로 상태가 엉망이었다. 시나리오는 간단했다. 주인새끼는 TV에 나오는 말라뮤트를 보면서 듬직한 대형견에 대한 꿈을 꿨겠지. 근데 사료값과 관리비도 만만찮고 좁은 아파트에서 갑갑해하는 녀석을 매일매일 산책시켜주기도 고통스러웠겠지. 게다가 털갈이를 시작하니 깔끔한 새 아파트가 엉망이 되기 시작했겠지. 그래서 버렸던 거다. 나는 침을 질질 흘리는 녀석을 1시간 동안 길에다 붙잡아놓고 전화를 했다.

동물보호센터는 전화를 받지 않았고 구청은 소방서에 전화하라고 했으며 소방서는 구청에 연락하라 했다. 소리를 질렀다. “이보쇼. 누구든지 좀 오라구요!” 구청 말단 직원이 왔다. 거대한 푸대를 들고 왔다. “그건 왜 가져 오셨죠?” “여기 넣어서 가야죠.” 그는 동물보호센터 직원도 아니고 귀찮은 일을 맡은 말단 직원일 따름이다. 하지만 화가 났다. “고발하기 전에 자동차 앞자리에 태우고 가시죠. 정말 고발할 겁니다.” 그는 재수 없다는 표정으로 개를 자동차 뒷자리에 구겨 넣고는 명함 한 장을 주고 떠났다. 나는 명함에 적힌 전화번호로 다시는 전화하지 못했다. 말라뮤트의 마지막이 뻔했기 때문이다. 길 잃은 개들은 보호센터에서 열흘간 갇혀 있다가 안락사된다. 그렇게 죽어가는 개의 숫자는 남한에서만 1년에 10만 마리다. 주인을 기다리다 고깃덩이처럼 한데 묶여 불태워진 10만 강아지의 연기를 우리는 매년 들이마시며 살아간다.

© 텐아시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