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덴의 동쪽>을 하면서 연기와 다른 생활을 병행하는 걸 배웠다”

하지만 그만큼 다양한 변화를 보여주는 캐릭터를 연기하기는 쉽지 않을 텐데. 당신이 아까 말한 것처럼 연극적인 연기 톤에서 그걸 보여주기는 더 어려울 것 같다.
한지혜
: 솔직히 고민이 너무 많았다. 이런 연기는 처음 해보고, 시대극도 처음이니까. 그래서 일단 지현이가 부딪치는 모든 사람들과의 관계도를 그렸다. 나를 가운데에 놓고, 내가 바라보는 신태환과 신태환이 바라보는 나, 이런 식으로 내가 연기하는 내용 안에서 모든 사람의 관계를 그렸다. 그러다 새로 나온 대본에서 관계가 바뀌면 다시 새로운 관계도를 그렸고. 처음에는 절대 지현을 받아주지 않던 신태환이 지현을 신뢰하면 그걸 바꾸고, 어렸을 적 동욱이의 원수이기 때문에 싫어했던 명훈이와 남편이 되는 식으로. 그러다 국회장처럼 새로운 인물도 추가하고. 그런 작업을 하면서 내가 이 사람과 현재 어떤 관계이고, 어떤 역사를 가지고 있다는 걸 보다 명확하게 알게 됐다. 그러면 상대방 앞에서 어떤 감정을 잡아야할지 이해하기 편했다. 특히 지현은 한 목표를 가지고 쭉 가는 인물이 아니다. 어렸을 때와 지금이 다르고, 자살 시도 이전과 이후가 다르고, 아이를 낳기 전과 후가 다르다. 이런 부분들에 대해서 계속 목표 설정을 하고, 그 목표에 대한 이유를 적어나가면서 캐릭터를 분석했다.

무슨 수험생 공부 같은 기분으로 연기를 배워나간 것 같다. (웃음)
한지혜
: 맞다. 처음이 아니었다면 상상력을 동원해서 연기했을 텐데, 처음이니까 계속 기록하면서 남겨두고 싶었다. 개인적으로는 이 역할을 참 잘 선택했다고 믿는다.

하지만 <에덴의 동쪽>이 오랫동안 방송되면서 당신의 이미지가 바뀌는 건 걱정돼지 않나. 스타로서 당신의 이미지를 생각한다면 좀 더 젊은 층에 어필하는 역할도 필요하지 않을까.
한지혜
: 알고 있다. 지금 하는 드라마로는 20대 중반으로서의 내 모습을 보여줄 수 없다는 걸 알고 있다. 하지만 기본적인 연기력을 갖지 못한다면 스타로서의 내 모습도 없을 것 같다. 단발적인 이미지로 버티는 게 얼마나 가겠는가. 그리고 <미우나 고우나>하고 <에덴의 동쪽>을 하면서 연기에 대한 자세만 얻은 건 아니다. <미우나 고우나>나 <에덴의 동쪽>은 내가 다 이끌어가는 작품이 아니다. 그래서 촬영 스케줄도 5일은 일하고, 이틀은 쉬는 식이었다. 그러면서 연기 생활하고 다른 생활을 함께 병행하는 법을 배웠다. 직장인들은 원래 그렇게 살지만, 나는 데뷔하고 이런 생활이 처음이었다. 그런데 그게 연기에도 영향을 미치는 거다. 쉬는 이틀 동안 골프나 스노보드 같은 운동을 배웠는데, 그 운동을 하다보면 연기에 대한 생각이 났다. 내가 골프를 칠 때는 공을 칠 때까지는 굉장히 신경을 쓰다 치고 나서 마무리 동작을 신경 쓰지 않는다. 그래서 공이 휜다. 그런 나를 보니까 내가 연기에서도 임팩트를 줄 순간에서만 집중하고, 마무리는 힘이 빠진다는 걸 깨달았다. 그런 식으로 생활이 연기에 미치는 부분이 많은 것 같다.

“정체성과 스타일리쉬한 모습을 동시에 가진 배우가 되고 싶다”

근면성실한 직장인인걸. (웃음)
한지혜
: 하하. 일만 하면 사람이 각박해지니까. 내 성격이 워낙 나를 가만히 못 놔두기도 하고. 아무리 밤을 샐 때도 시간이 남으면 영화도 봐야 하고, 운동도 해야 한다. 아까 말한 것처럼 생활이 연기에 영향을 미치는 부분도 분명히 있고. 요즘 구두 디자인을 배우기 시작했는데, 그런 작업들이 연예인으로서의 내 생활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 구두라는 게 여자들의 로망이지 않나. 패션의 완성이기도 하고. 가능하면 좀 더 전문적으로 배워보고 싶은 욕심도 있는데, 내가 그런 디자인을 배우게 되면 연예인으로서의 내 삶도 또 달라질 것 같다.

그럼 당신은 연기 생활을 하면서 자기 생활을 갖는 사람이 되고 싶은 건가. 하지만 흔히 말하는 셀러브리티들은 그런 생활이 쉽지는 않다. 그런 건 상관없나?
한지혜
: 에이 설마. (웃음) 나도 많은 사람들한테 영향력이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가능하면 연기력도 인정받으면서 스타가 되면 좋겠지. 다만 그 과정에서 일단 연기자로서의 기본은 가져야 하니까 이런 선택을 한 거고. 한 단계씩 나가는 거다. 주변에서 나와 비슷한 시기에 데뷔해서 잠깐 반짝했다 비슷한 이미지의 또 다른 배우가 그 자리를 대신하는 걸 몇 번씩 봤다. 그러지 않으려면 일단 나 자신의 역량을 인정받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에덴의 동쪽>자체로 내 이미지가 갑자기 좋아진다거나 하는 건 아닐 거다. 하지만 <에덴의 동쪽>을 하고 나서 좀 더 다양한 시나리오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지금은 그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요즘에는 연기로 보여주지 못하는 부분은 다른 활동으로도 가능하니까.

한국에서 20대 여성 배우들은 30대에 접어들면서 각자의 길을 걷게 된다. 여전한 스타로 남을 수도 있고, 아이 엄마 역할만 하는 경우도 있고. 당신은 어떤 연기자가 되고 싶나.
한지혜
: 자기 정체성을 가지면서 스타일리쉬한 모습을 동시에 가진 배우가 되고 싶다. 연기자로서의 나는 다른 것보다 꾸준히 연기를 배우고 싶고, 더 잘하고 싶다. 하지만 그 외의 생활에서는 트렌디하거나 스타일리쉬한 느낌을 잃는 걸 원치 않으니까. 그런 두 가지를 조화시키고 싶다. 힘든 길이겠지만, 열심히 하면서 내 생활을 풍부하게 가꾸면 언젠가는 내 자신에게서 그런 빛이 날 수 있지도 않을까? 너무 욕심이 큰가? 하하.

스타일리스트_이보람 / 의상_스텔라 메카트니, 필로소피 / 악세서리_스와로브스키 / 구두_지니킴

글. 위근우 (eight@10asia.co.kr)
사진. 이원우 (four@10asia.co.kr)
편집. 이지혜 (seven@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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