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이은호 기자]
/ 사진=JTBC ‘라이프’ 방송화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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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 원장이 죽었다. 심근경색으로 인한 추락사다. 원장은 사망 당시 부원장의 집에서 그와 술잔을 기울이다가 말다툼을 벌였다. 원장은 생전 환자를 먼저 생각하는 이상적인 의사였다. 하지만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하 심평원)의 평가지원금을 개인 계좌로 횡령한 혐의를 받았다. 그에겐, 그리고 그의 죽음엔 어떤 비밀이 있을까. JTBC 새 월화드라마 ‘라이프’는 지난 23일 이렇게 시작했다.

‘라이프’는 tvN ‘비밀의 숲’으로 입봉과 동시에 백상예술대상 TV부문 대상을 수상한 이수연 작가의 신작이다. 배우 조승우, 이동욱, 문소리, 유재명 등 쟁쟁한 인물들이 출연해 일찍부터 화제를 모았다. 구승효(조승우)가 상국대학병원 신임 사장으로 부임하면서 병원 의사들과 갈등하는 과정을 다룬다.

◆ 이동욱이 숨긴 패

이동욱이 연기한 예진우는 모난 돌 같았다. 자신이 아버지처럼 따르던 이보훈(천호진)이 수억 원에 달하는 심평원 평가지원금을 개인 계좌로 횡령했다는 얘기를 듣자 즉각 그에게 달려갔다. 이보훈이 죽자 생전 병원 운영 문제를 두고 그와 갈등하던 부원장 김태상(문성근)을 의심하다가 그에게 멱살을 집히기도 했다. 김태상은 눈엣가시 같은 예진우를 지방 병원에 파견 보낼 계획을 세웠다. 신임 사장과 보건복지부의 결정을 핑계로 대며 그를 압박했다.

이동욱은 예진우를 ‘평범한 의사’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아직은 그 자신에게도 미스터리한 구석이 많다. 우선 동생 예선우(이규형)와의 관계가 궁금증을 자아낸다. 예진우는 심리적인 갈등을 겪을 때마다 자신에게 이죽거리는 예선우의 환상을 보는데, 정작 현실 세계에서의 예선우는 하반신 장애가 있는 인물이다. 아직 밝혀지지 않은 이들 형제의 사연이 예진우와 시청자들 사이에 정서적인 거리감을 만들어 긴장감을 높였다.

/ 사진=JTBC ‘라이프’ 방송화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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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승우의 ‘한 방’

구승효는 기업가다. 화정그룹 덕분에 입신양명했고 그래서 화정그룹에 충성을 다한다. 그가 맡은 임무는 그룹이 새롭게 인수한 상국대학병원의 수익 구조를 뜯어 고치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구승효는 적자투성이인 소아청소년과, 산부인과, 응급의료과를 지방에 있는 낙산의료원에 보낼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젠틀한 것처럼 보이지만 도발적이고, 능청맞은 것 같지만 날카로웠다. 구승효의 등장은 늦었지만 그의 존재감은 대단했다. 지방 파견은 곧 축출이라며 웅성대던 의사들을 단숨에 압도했다. “오직 환자에 대한 의무를 지키겠노라 선서하신 의사 여러분께서 우리나라 소외된 곳을 몸소 가서 돕고 싶다며 모인 걸로 알고 있다”는 그의 말에 누구도 반기를 들지 못했다.

구승효를 연기한 조승우의 존재감은 더 대단했다. 입가엔 미소를 머금었지만 눈에는 싸울 태세가 끝나 있었다. 작품에 흐르던 무겁고 미스터리한 분위기를 순식간에 환기시키며 시청자를 TV 앞으로 끌어들였다.

◆ 원진아를 주목하라

이수연 작가의 전작 ‘비밀의 숲’은 박무성 살인사건의 뒤를 쫓는 추리물이었다. 하지만 이 작가는 그 과정에서 검찰 조직의 해묵은 비리를 드러내며 시스템의 약점을 지적한다. ‘라이프’에서도 이 같은 시도는 계속된다. 문소리는 방송에 앞서 열린 제작발표회에서 “가치관이 중요한 교육계에서 돈의 논리가 우선되는 상황에 개탄했다. 그런데 ‘라이프’의 대본을 보며 의료계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에 놀랐다”며 “용감하고 날카로운 이야기”라고 말했다.

그래서 눈길을 끄는 인물이 바로 원진아가 연기하는 이노을이다. 상국대학병원 소아청소년과 전문의로 예진우와 어렸을 때부터 친구사이다. 구승효의 병원 운영 방식에 많은 의사들이 반발하는 반면 그는 구승효에게 병원의 현실을 보여주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동료 의사들에게 묻는다. 환자들의 목숨을 갖고 계산기를 두드리는 건 의사들도 마찬가지 아니냐고, 그럴 권리는 의대 출신에게만 주어지는 거냐고.

예진우를 비롯한 의료진이 구승효와 갈등하는 과정에서 이노을의 존재는 걸림돌처럼 여겨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작가가 ‘비밀의 숲’ 영은수(신혜선) 검사를 통해 개인의 정의감이 얼마나 숭고한지를 보여줬듯, 이노을의 말과 행동을 통해 의사가 갖춰야 할 덕목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만들 것으로 기대된다. 1회에서의 존재감은 미미했지만 앞으로 그의 활약이 기대되는 이유다.

이은호 기자 wild37@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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