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박미영 기자]
올해도 이준익 감독은 열세 번째 연출작 ‘변산’을 들고 찾아왔다. 거의 해마다 작품을 내놓는 그는 시대를 아우르며 고단한 현실을 쓰다듬고, 그 속에 있는 사람들을 품는다. ‘황산벌’ ‘왕의 남자’ ‘라디오 스타’ ‘소원’ ‘사도’ ‘동주’ ‘박열’ 등의 필모그래피가 이를 증명한다. 이번 영화 ‘변산’은 한껏 빡쎈, 그러나 핫한 청춘들의 이야기답게 계절적으로도 착 맞는 7월 4일 개봉이다. 지난 22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이준익 감독을 만났다.
‘변산’의 줄거리는 대략 이렇다. 자칭 ‘서울 출신 고아’에 고시원 거주, 알바 천국, 6년 연속 ‘쇼미더머니’ 탈락 등 고단한 청춘인 학수(박정민)에게 동창 선미(김고은)로부터 한 통의 전화가 걸려온다. 고향인 변산의 한 병원에 있는 아버지가 위독하다는 것이다. 서울 출신도 고아도 아니었던 그는 영 내키지 않지만 변산으로 향한다. 지우고 싶은 과거의 인물들이 우르르 쏟아지는 변산에서 어이없는 사건으로 학수의 발이 묶여버린다.
10. 학수가 변산에 묶이는 상황이 해프닝에 가까운데, 배우들이 천연덕스럽게 연기하면서 관객도 동의하게 만든다. ‘이준익 매직’이랄까. 이준익 감독의 작품에 출연한 배우는 단역일지라도 충분한 사랑을 받고 마음껏 연기를 펼친다는 인상을 준다.
이준익 : 영화에 참여하는 배우들은 자신의 인생 전체를 걸고 그 일을 수행하는 것이다. 그만큼 절실하다. 열 몇 작품을 연출하면서 흥망성쇠를 다 겪었지만, 같이 작업한 사람들의 구체적인 의지를 반영하려고 노력한다. 마음껏 연기를 할 수 있도록 하는 게 나의 임무라고 생각한다.
10. 산문집을 출간했을 정도로 필력이 있는 박정민은 ‘변산’에서 직접 랩을 작사했다. 가장 좋아하는 혹은 인상적이었던 랩의 구절이 있을 것 같은데.
이준익 : 너무 많다. 주옥같았다. 굳이 꼽자면, 학수가 고향을 10년간 등지고 ‘쇼미더머니’ 무대에서 발버둥치던 그 뿌리 없는 행동이 고향에 와서 선미한테 다 들켜서, 결국에는 자각을 하는 내용이 마지막 랩에 전부 담겨있다. 그래서 어떤 부분을 콕 집기보다는 처음부터 끝까지 랩을 다 이어서 봐야 한다. 1절은 아버지와의 관계에 대한 자성, 2절은 선미와의 사연에서 우러나는 성숙이다. 학수는 아버지를 대상으로 성장하고, 선미를 대상으로 성숙했다.
10. 혹시 배우 박정민이 아니라 작가 박정민과 영화 작업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보신 적은 있는지?
이준익 : 글쎄 이미 작가로서의 기질을 학수라는 인물로, 랩 가사로 한 것이 아닌가 싶다. 나와 결국 같이 한 것이 아닌가. (웃음)
10. 감초 연기로 예측 가능했던 배역들보다 여주인공을 맡은 김고은의 연기가 더 큰 웃음을 자아냈다. 시나리오 단계부터 어느 정도 예상한 것이었나, 아니면 김고은이 확실한 색을 입힌 것인가?
이준익 : 후자다. 김고은이란 배우가 색을 왕창 입혀버린 것이다. 애드립이 거의 없는 배우다. 시나리오의 대사를 어떤 배우가 치느냐에 따라서 뉘앙스가 완전히 달라지는데, 닭살스러운 대사도 김고은이 치면 하나도 닭살스럽지 않았다. 그 배우가 갖고 있는 타고난 재능이다. 가장 어려운 생활 연기를 잘 해냈다.
10. ‘변산’은 ‘동주’ ‘박열’처럼 청춘을 다루고 있고, 시와 시를 닮은 랩이 등장한다. 그래도 전작들과 다른 점을 찾자면?
이준익 : 시대극과 현대극은 큰 차이가 있다. 시대극은 현재에 있지 않기 때문에 상당히 개념화되어 있다. 인물의 기능이 협소하게 규정되어 있고, 역사를 보는 관점 안에서만 찍을 수 있다. 그리고 그 인물의 긴 세월 동안 어떤 부분만 서머리한 것이라서 이면을 안 보여준다. 그런데 현대극은 이면을 안 보여줄 수가 없고, 일상성도 담겨야 한다. 만약 현대극이라도 장르 영화면 장르적 컨벤션 안에 딱 넣으면 되지만, 생활 드라마는 인물을 획일화시킬 수 없다. 그 입체성과 이중성, 또 다른 이중성의 대상을 만나서 형성되는 다중성 이런 것들을 다 포함해서 찍어야 하기 때문에 더 예민한 부분이 있다.
10. 그동안 시대극을 많이 했다. 조선시대가 주로 많았지만 삼국시대도 있었고. 한 번쯤 스크린으로 불러들이고 싶은 그 외의 시대도 있을 것 같다.
이준익 : 사실은 많은데 그것을 다 하지 못하는 이유는 아직까지 자료의 충분한 토대가 안 생겨서다. 통일이 안 된 까닭이 제일 크다. 조선시대는 한양(서울)이 수도이고, 많은 자료도 있다. 문화적 콘텐츠를 일본이나 프랑스가 훔쳐갔지만 성이나 궁을 가져갈 수는 없었으니까. (웃음) 그 하드웨어가 있으니까 가능하다. 고려시대를 가자니, 고려의 수도가 개경(개성)인데 고려 양식의 건축물이 이쪽에 없다. 그래도 자료가 있어야 근거 있게 시대를 영화에 담을 수 있다. 우리의 머릿속 지도가 지난 70년 동안 위가 막혀있다. 그것이 확장되면 그 안에서 더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 같다.
10. ‘변산’의 포스터에는 스마일 마크가 있다. 사실 이준익 감독하면, 금세 웃는 얼굴이 떠오른다. 그래서 영화 시상식 화면에서 카메라에 잡히는 배우보다 때로는 더 친숙하게 다가온다. 작품도 닮아가는지, 필요한 만큼 충분히 맑고 밝게 웃을 수 있는 영화가 ‘변산’이었다. 등급이 15세 관람가인 것이 살짝 의문이다.
이준익 : 12세로 넣을까 하다가 욕이 많이 나와서…. 물론 욕도 언어의 한 표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욕이라는 저속어, 비속어라는 기준으로 15세가 맞다. 사실 전라도 사투리에서 욕은 때로 살가운 친밀감의 언어적 표현이다. 영화에 사투리가 조금이라도 남아있으면 고향에 대한 진심이 남아있다는 대사가 나온다. 사투리를 강조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자기 뿌리에 대한 진심을 강조하기 위해서 사투리가 더불어 쓰이는 것이다.
10. ‘변산’은 열세 번째 영화다. 내년에 이준익 감독의 열네 번째 영화를 볼 수 있을지 궁금하다.
이준익 : 준비하고 있는데 아직 결정을 못했다. 차기작은 내 의지와 상관없이 캐스팅이라든가 투자라든가 이런 제반 여건이 형성되어야 가능하다. 빨리 하려고 노력은 한다. 여건이 안 받쳐주면 조금 늦어질 것이고. 나는 계획을 거대하게 갖지 않는다. 그냥 오늘 이 순간에 해야 할 일을 성실히 할 뿐이다.
박미영 기자 stratus@tenasia.co.kr
‘변산’의 줄거리는 대략 이렇다. 자칭 ‘서울 출신 고아’에 고시원 거주, 알바 천국, 6년 연속 ‘쇼미더머니’ 탈락 등 고단한 청춘인 학수(박정민)에게 동창 선미(김고은)로부터 한 통의 전화가 걸려온다. 고향인 변산의 한 병원에 있는 아버지가 위독하다는 것이다. 서울 출신도 고아도 아니었던 그는 영 내키지 않지만 변산으로 향한다. 지우고 싶은 과거의 인물들이 우르르 쏟아지는 변산에서 어이없는 사건으로 학수의 발이 묶여버린다.
10. 학수가 변산에 묶이는 상황이 해프닝에 가까운데, 배우들이 천연덕스럽게 연기하면서 관객도 동의하게 만든다. ‘이준익 매직’이랄까. 이준익 감독의 작품에 출연한 배우는 단역일지라도 충분한 사랑을 받고 마음껏 연기를 펼친다는 인상을 준다.
이준익 : 영화에 참여하는 배우들은 자신의 인생 전체를 걸고 그 일을 수행하는 것이다. 그만큼 절실하다. 열 몇 작품을 연출하면서 흥망성쇠를 다 겪었지만, 같이 작업한 사람들의 구체적인 의지를 반영하려고 노력한다. 마음껏 연기를 할 수 있도록 하는 게 나의 임무라고 생각한다.
10. 산문집을 출간했을 정도로 필력이 있는 박정민은 ‘변산’에서 직접 랩을 작사했다. 가장 좋아하는 혹은 인상적이었던 랩의 구절이 있을 것 같은데.
이준익 : 너무 많다. 주옥같았다. 굳이 꼽자면, 학수가 고향을 10년간 등지고 ‘쇼미더머니’ 무대에서 발버둥치던 그 뿌리 없는 행동이 고향에 와서 선미한테 다 들켜서, 결국에는 자각을 하는 내용이 마지막 랩에 전부 담겨있다. 그래서 어떤 부분을 콕 집기보다는 처음부터 끝까지 랩을 다 이어서 봐야 한다. 1절은 아버지와의 관계에 대한 자성, 2절은 선미와의 사연에서 우러나는 성숙이다. 학수는 아버지를 대상으로 성장하고, 선미를 대상으로 성숙했다.
10. 혹시 배우 박정민이 아니라 작가 박정민과 영화 작업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보신 적은 있는지?
이준익 : 글쎄 이미 작가로서의 기질을 학수라는 인물로, 랩 가사로 한 것이 아닌가 싶다. 나와 결국 같이 한 것이 아닌가. (웃음)
10. 감초 연기로 예측 가능했던 배역들보다 여주인공을 맡은 김고은의 연기가 더 큰 웃음을 자아냈다. 시나리오 단계부터 어느 정도 예상한 것이었나, 아니면 김고은이 확실한 색을 입힌 것인가?
이준익 : 후자다. 김고은이란 배우가 색을 왕창 입혀버린 것이다. 애드립이 거의 없는 배우다. 시나리오의 대사를 어떤 배우가 치느냐에 따라서 뉘앙스가 완전히 달라지는데, 닭살스러운 대사도 김고은이 치면 하나도 닭살스럽지 않았다. 그 배우가 갖고 있는 타고난 재능이다. 가장 어려운 생활 연기를 잘 해냈다.
이준익 : 시대극과 현대극은 큰 차이가 있다. 시대극은 현재에 있지 않기 때문에 상당히 개념화되어 있다. 인물의 기능이 협소하게 규정되어 있고, 역사를 보는 관점 안에서만 찍을 수 있다. 그리고 그 인물의 긴 세월 동안 어떤 부분만 서머리한 것이라서 이면을 안 보여준다. 그런데 현대극은 이면을 안 보여줄 수가 없고, 일상성도 담겨야 한다. 만약 현대극이라도 장르 영화면 장르적 컨벤션 안에 딱 넣으면 되지만, 생활 드라마는 인물을 획일화시킬 수 없다. 그 입체성과 이중성, 또 다른 이중성의 대상을 만나서 형성되는 다중성 이런 것들을 다 포함해서 찍어야 하기 때문에 더 예민한 부분이 있다.
10. 그동안 시대극을 많이 했다. 조선시대가 주로 많았지만 삼국시대도 있었고. 한 번쯤 스크린으로 불러들이고 싶은 그 외의 시대도 있을 것 같다.
이준익 : 사실은 많은데 그것을 다 하지 못하는 이유는 아직까지 자료의 충분한 토대가 안 생겨서다. 통일이 안 된 까닭이 제일 크다. 조선시대는 한양(서울)이 수도이고, 많은 자료도 있다. 문화적 콘텐츠를 일본이나 프랑스가 훔쳐갔지만 성이나 궁을 가져갈 수는 없었으니까. (웃음) 그 하드웨어가 있으니까 가능하다. 고려시대를 가자니, 고려의 수도가 개경(개성)인데 고려 양식의 건축물이 이쪽에 없다. 그래도 자료가 있어야 근거 있게 시대를 영화에 담을 수 있다. 우리의 머릿속 지도가 지난 70년 동안 위가 막혀있다. 그것이 확장되면 그 안에서 더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 같다.
10. ‘변산’의 포스터에는 스마일 마크가 있다. 사실 이준익 감독하면, 금세 웃는 얼굴이 떠오른다. 그래서 영화 시상식 화면에서 카메라에 잡히는 배우보다 때로는 더 친숙하게 다가온다. 작품도 닮아가는지, 필요한 만큼 충분히 맑고 밝게 웃을 수 있는 영화가 ‘변산’이었다. 등급이 15세 관람가인 것이 살짝 의문이다.
이준익 : 12세로 넣을까 하다가 욕이 많이 나와서…. 물론 욕도 언어의 한 표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욕이라는 저속어, 비속어라는 기준으로 15세가 맞다. 사실 전라도 사투리에서 욕은 때로 살가운 친밀감의 언어적 표현이다. 영화에 사투리가 조금이라도 남아있으면 고향에 대한 진심이 남아있다는 대사가 나온다. 사투리를 강조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자기 뿌리에 대한 진심을 강조하기 위해서 사투리가 더불어 쓰이는 것이다.
10. ‘변산’은 열세 번째 영화다. 내년에 이준익 감독의 열네 번째 영화를 볼 수 있을지 궁금하다.
이준익 : 준비하고 있는데 아직 결정을 못했다. 차기작은 내 의지와 상관없이 캐스팅이라든가 투자라든가 이런 제반 여건이 형성되어야 가능하다. 빨리 하려고 노력은 한다. 여건이 안 받쳐주면 조금 늦어질 것이고. 나는 계획을 거대하게 갖지 않는다. 그냥 오늘 이 순간에 해야 할 일을 성실히 할 뿐이다.
박미영 기자 stratus@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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