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은 신기한 관계다. 티격태격 싸우다가도 언제 그랬냐는 듯 식탁에 앉아 밥을 먹고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눈다. 남보다 못하다고 하지만 누군가에게 멸시 당하는 모습을 보면 그 이상으로 갚아주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이는 영화 ‘형’(감독 권수경)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형 고두식(조정석)은 사기 전과 10범으로 교도소 복역 중에 유도 선수인 이복동생 고두영(도경수)이 경기 도중 시각을 잃었다는 소식을 접한다. 그는 교도관에게 아픈 동생을 돌봐야 한다며 눈물의 석방 사기극을 펼쳐 가석방을 얻어낸다. 고두식은 15년 만에 집으로 돌아오고 고두영은 그런 형을 반기지 않는다. 두 사람은 욕과 상처 주는 말로 서로를 흠집 내기 바쁘다. 그렇지만 가족이란 늘 그렇듯이 목욕탕에서 등 한 번 밀어주고, 삼겹살을 구워먹으면 미움과 원망이 싹 씻겨 내리기 마련이다. 극 초반 서로를 못 잡아먹어 안달이었던 형제는 서로의 진심을 알아가고, 과거처럼 다시 끈끈한 형제로 돌아간다.
‘7번방의 선물’을 각색한 유영아가 작가가 시나리오를 썼고, ‘맨발의 기봉이’의 권수경 감독이 연출했다. 착한 영화를 선보여 왔던 이들답게 ‘형’ 역시 ‘착한 코미디’의 공식을 그대로 따른다. 고두영이 고두식을 부를 때는 욕이 대부분이지만 이것이 기분 나쁘게 들리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물론 잘 나가던 영화가 갑자기 신파극으로 흘러가는 것은 아쉽다. 극적인 전개를 위함이라도 하지만 ‘이곳에서 눈물을 흘리세요’라는 뻔한 장면들이 후반부에 가득하다.
‘형’ 스틸컷 / 사진=CJ엔터테인먼트 제공
이를 극복하는 것은 조정석과 도경수의 호연이다. 조정석은 제대로 물이 오른 듯하다. 조정석의, 조정석에 의한, 조정석을 위한 영화라는 극찬이 아깝지 않다. 입에 욕을 달고 사는 사기꾼 캐릭터를 몸에 잘 맞는 맞춤옷을 입은 듯 소화했다. 능글맞고 여유 넘치는 그의 연기를 보면 절로 웃음이 나온다. 영화의 웃음은 90% 이상 조정석이 책임진다. 그가 동생에게 연애 강의를 펼치는 모습은 그를 스타 반열에 올려놓은 영화 ‘건축학 개론’의 ‘납득이’를 연상시킨다. 조정석이 뛰어 논다면 도경수는 묵직하게 극의 중심을 잡는다. 베테랑 연기자들도 어려워한다는 시각장애 연기를 무리 없이 소화했다. 형을 향한 원망과 사랑이 뒤섞인 감정을 섬세하게 그려내는 영민함을 보인다.
갈등 없고 예측 가능한 결말을 그려내지만 ‘형’은 착한 영화에 목마른 관객들에게는 단비가 될 예정이다. 무엇보다 조정석의 물오른 코미디 연기가 궁금한 사람이라면 만족할만한 영화가 될 듯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