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윤준필 기자]
김성령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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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세가 넘은 여배우들이 드라마에서 맡는 역할을 한정적이다. 주인공 엄마, 친구 엄마, 주인공의 숨은 조력자 등 극의 중심에 서기보단 주변 인물로 캐스팅되는 경우가 많다. 중년 여배우들에게 드라마의 문은 생각보다 넓지 않다. 야망으로 가득 찬 여자와 그가 버린 딸이 재회하며 벌어진 이야기를 담고 있는 MBC ‘여왕의 꽃’은 여배우들이 주축이 돼 극을 끌고 나갔다는 점에서 상당히 의미가 있는 드라마다. 그 중심에는 배우 김성령이 있었다.

김성령은 멀리 본다. 드라마 주인공이 되고 싶다는 것도, 칸 영화제에 초대받고 싶다는 것도 오래 전부터 바래왔던 소원이었다. ‘가능하겠어?’라고 묻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김성령은 죽을 만큼 노력했다. 그리고 그 소원을 모두 이뤘다. 김성령은 또 다시 멀리 내다본다. 더 큰 무대에 서 있는 자신의 모습을 떠올리고, 후배들의 든든한 버팀목으로 자리 잡은 자신을 상상한다. 김성령에게서는 나이를 가늠할 수 없는 건강한 에너지가 느껴진다.

Q. ‘여왕의 꽃’을 무사히 마쳤다.
김성령: 나뿐만 아니라 김미숙 선배, 이성경, 고우리 등 많은 배우들이 고생을 했다. 그중에서도 작가님이 제일 힘드셨을 것이다. 7개월 동안 드라마를 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여왕의 꽃’이 종영할 때까지 타 방송사에서는 다섯 작품의 드라마가 바뀌었다고 한다. 하지만 ‘여왕의 꽃’이 한 번도 그 시간대에 1위를 놓친 적이 없다. 대박까진 아니지만 어느 정도 선방한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Q. 굉장히 여유 있게 촬영을 마무리했다고 들었다.
김성령: 작가선생님이 한 번도 대본을 늦게 주신 적이 없었다. 보통 미니시리즈는 당일날 까지 촬영을 하는데 이번 작품은 일주일이나 일찍 촬영을 끝낼 수 있었다.

Q. 쪽대본이 없었으니 배우로서 캐릭터를 연구할 시간이 넉넉했겠다.
김성령: 장단점이 있는 것 같다. 대본이 미리미리 나오면 외워야 할 대사들이 엄청나게 많다. 게다가 촬영을 대본 순서대로 하지 않으니까 그 신의 감정을 기억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지난 주 대본, 이번 주 대본 총 4권을 항상 들고 다닌다. 반면 쪽대본은 실시간으로 대본이 나와서 ‘벼락치기’로 대사를 외우는 거다. 가끔은 그게 더 좋을 때도 있다. 시간을 내서 그렇게 대사를 외웠는데 막상 카메라 앞에서 안 외워지면 엄청 짜증나고 억울하거든. (웃음)

Q. 7개월 가까이 드라마를 찍다보면 지칠 때도 있었을 텐데.
김성령: 그럴 때마다 김미숙 선배님을 보면서 버텼다. 선배님께서 완벽하게 준비하시고, 지친 기색 하나 없이 촬영장에 나타나시는데 그런 모습을 보면서 큰 힘을 얻었다. 도저히 엄살을 부릴 수가 없더라. 선배님들을 생각하면서 정신을 바짝 차리고 촬영장에 갔었다. 참, 신기하다. 분명 선배님도 힘드신 순간이 있었을 텐데… 참 대단하신 분이다.

Q. 선배 연기자들을 보면서 느낀 것이 많아보인다.
김성령: 선배님들이 그렇게 멋있는 모습을 보여주시는데 나도 후배들에게 선배다운 모습을 보이려고 노력했다. 모두들 성실하시고 책임감 있는 분들이셔서 내가 많이 배웠다. 장용 선배님은 감정을 해탈하신 것 마냥, 순간적으로 집중하는 힘이 대단하시다. 여기서 설명하기 힘들 정도 훌륭하신 선배님들이 많았다.
김성령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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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레나 정을 연기하는데 어렵지는 않았나?
김성령: 나는 곧이곧대로 하는 스타일이다. ‘여우짓’을 못한다. 그런데 극중 레나는 다르지 않나. 비슷한 점을 찾자면 성실하게 살았던 것? 나와 레나 사이 다른 점들을 절충할 수 있는 부분을 찾으려고 노력했다. 내 또래의 여자들의 삶에 대해서도 많이 듣고, 그들을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Q. 무슨 의미인가?
김성령: 보통 여자들이 현실적으로 나이가 들면 현재의 삶을 그냥 받아들이고 사는데 레나는 끝까지 성공하고 행복해지겠다고 다짐하는 여자다. 그런 포기하지 않는 마음이 멋있는 여자다. 4~50대 주부들은 ‘팔자려니’ 하고 살지 마시고 좀 더 행복해지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좋은 것 같다. 그런 부분들을 주부 시청자들이 봐주신 것 같다. ‘여왕의 꽃’이 드라마긴 하지만 드라마보다 더한 세상이니까 이런 상황이 있을 수 있겠다 그러면서 했다.

Q. 여배우들이 극의 중심이 된 드라마가 별로 없다는 점에서 ‘여왕의 꽃’에 출연한 것은 상당히 의미 있게 다가올 것 같다.
김성령: 지금은 SBS ‘미세스 캅’이나 케이블채널 tvN ‘두 번째 스무살’ 같은 작품이들이 있지만 보통은 30대가 넘은 여배우을 찾는 작품들이 많지 않다. 드라마도 그렇고, 영화는 더더욱 그렇고, 연극도 마찬가지다. 그런 점에서 연극 ‘미스 프랑스’에 출연했던 것은 후배들에게 좋은 작품을 남겨준 것 같아 의미가 깊다. 후배들이 “나도 40대에 ‘미스 프랑스’를 하고 싶다”고 얘기해줄 때마다 뿌듯했다. 중년 여배우가 중심이 되는 작품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Q. 딸로 나온 이성경은 어떤 배우였나?
김성령: 성경이를 보면 나도 그 나이대로 돌아가고 싶다 . 노래를 좋아해서인지 항상 음악을 듣는다. 노래도 잘하고, 춤도 잘 춘다. MBC ‘복면가왕’에 나가보라고 얘기했었는데 진짜 ‘복면가왕’을 찍고 왔다고 하더라. 그 말을 듣고 어디에다 얘기도 못하고 힘들었다. (웃음) 성경이는 항상 밝은데 우는 연기도 참 잘한다. 드라마 출연 두 번째 만에 주인공 타이틀을 맡은 셈인데 건방지거나 자만하는 모습이 없다. 정말 사랑스럽고 예쁜 아이다.

Q. 어린 시절의 김성령은 어떤 모습이었기에 왜 그 나이대로 돌아가고 싶은 것인가?
김성령: 어린 나이에 미스코리아로 데뷔했다. 그 당시 미스코리아는 품위를 잃지 말아야 했다. 일상에서도 우아한 분위기를 유지하려고 했다. 지금 20대처럼 자유분방하게 지내질 못했다.
김성령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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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배우 김성령은 참 열심히 사는 배우 같다. 김성령의 열정을 자극하는 원동력은 무엇인가?
김성령: 30대에 일하다가 결혼하고, 부산에 내려가게 되고, 자연스럽게 일이 줄고… 그렇게 살다가 어느 날 “내가 뭐지?”란 생각이 들었다. 배우인지, 미스코리아인지 아니면 무엇도 아닌지 잘 모르겠더라. 날 움직였던 결정적인 생각은 아이한테 나중에 내가 어떤 엄마로 보일지 모르겠다는 것이었다. 아이들한테 못다 핀 연예인처럼 보이는 것이 싫었다. 뒷바라지도 좋지만 당당한 엄마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때부터 하나하나 배워갔다. 연기를 제대로 배운 적이 없으니 트레이닝도 받고, 학교에 들어가 공부도 하고. 이런 모습을 보고 뒤늦게 열정적으로 산다고 봐주시는 것 같다. 나름대로 열심히 하니까 그만큼 대가도 오는 것 같아서 또 다시 열심히 하게 된다.

Q. 그래서일까. 올해 초 MBC 예능 ‘띠동갑내기 과외하기’에서도 영어를 정말 열심히 공부하더라.
김성령: 그건 시경이가 잘 가르친 덕분이다. 성시경은 가르치는 것도 진짜 잘 가르친다. 시경이가 “누나가 열심히 하겠다고 하면 정말 더 열심히 하겠다”고 할 정도로 의욕이 넘치는 선생님이었다. 그래서 내가 “시경아, 너 바쁘잖아”하면서 말릴 정도였다. 어떤 책에서 40대에 하지 말아야 할 것들로 영어공부를 꼽던데 ‘띠동갑’을 하면서 그 이유를 알았다. 너무 스트레스 받거든. (웃음)

Q. 영어를 잘하고 싶다는 욕심이 있었으니까 출연을 결정했던 것 아닐까?
김성령: 영어는 이전부터 관심이 있었는데 어느 순간 완전히 내려놨다. 그러다 ‘띠동갑’에서 섭외가 들어와서 ‘그래, 내가 영어에 관심이 있었지. 다시 해볼까’하고 시작한 거였다. 그런데 잘 안 되더라. 영어공부 너무 어렵다. ‘띠동갑’ 끝나고도 따로 영어를 배웠다. 그런데 막상 드라마 시작하니까 계속 공부를 이어가기가 쉽지 않더라.

Q. 아이들 사진을 봤다. 아이들이 잘 생겼던데
김성령: 둘째가 잘 생겼다. 큰 애는 누구 닮았는지 모르겠다. 무지 웃기다. 그래서 내가 개그맨 하라고 꼬드기고 있다. 그러면 큰 애는 이 인물에 개그맨 하기는 그렇다고 말한다. 엄청 웃겨. 큰 애는 항상 사람들이 엄마의 진짜 모습을 알아야 한다고 협박한다. 내가 평상시에 사람들이 못 알아볼 정도로 하고 돌아다녀서 그런가. (웃음) 주변 사람들도 제발 연예인처럼 하고 다니라고 한다.

Q. 아이들에게 굉장히 친구 같은 엄마인 것 같다.
김성령: 내가 집에 있을 때는 애들을 아무데도 못 가게 한다. 애들한테 “엄마가 집에 있는데 나가야겠어?”라고 말한다. 애들도 그러면 군말 없이 집에서 같이 시간을 보낸다. 같이 앉아서 TV도 보고 치킨도 시켜먹고. 애들이 성격이 좋다. 가끔은 나가서 놀다 와도 좋다고 말하는데 내가 집에 있으면 항상 집에 있어. 엄마의 사랑이 그리운 것일 수도 있고. 어떻게 보면 짠한 거지.

Q. 김성령에게 아이들은 어떤 의미인가?
김성령: 내 또래 친구들의 아이들은 모두 대학에 갔다. 아이는 품을 떠나고, 남편은 바쁘고, 홀로 남았다는 생각에 우울증을 겪는 친구들도 있더라. 애를 늦게 낳는 것이 이런 장점이 있더라. 애들은 내가 지금도 힘을 내야 하는 이유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에게 늦둥이를 추천하고 다닌다. (웃음)
김성령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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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이렇게 일과 가정, 두 마리 토끼를 다 붙잡고 있는 김성령에게도 고민이 있을까?
김성령: 배우 김성령으로서 어떻게 나이들 것인가. 인간 김성령은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한다. 이제 내년이면 50살이다. 미래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내가 언제까지 일을 할 것인가 나름의 기준을 세워둬야 흔들리지 않을 수 있을 것 같다. 배우가 아닌 다른 일을 할 수도 있으니까. 그런 고민들을 많이 한다.

Q. 배우가 잘 어울리는데 왜 다른 일을 생각하는가?
김성령: 배우로서 신이 주신 재능을 열심히 사용하는 것도 대중에게 보답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보다 더 많은 사랑을 받고 있으니 또 다른 방법으로 큰 사랑에 보답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이 있을까 고민하는 것이다. 20대 중에선 날 롤모델로 삼는 친구들도 있으니까 (웃음) 대중들이 나를 통해 듣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 것 같다. 출판사에서 책을 내자고도 제안이 온 적도 있었는데 그것 말고도 대중들에게 다양한 방법으로 보답하는 방법을 생각하고 있다.

Q. 인스타그램도 꽤 열심히 하더라.
김성령: 내가 가수면 공연장에서 만날 수 있는데 내가 아이돌이 아니니까 팬들에게 보답할 수 있는 방법이 없더라. 팬들한테 미안해서 보답할 수 있는 방법을 찾다가 내 근황을 가볍게 알리는 방법으로 인스타그램을 하고 있다.

Q. 많은 여성들의 워너비로 꼽힌다. 워너비가 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는지 궁금하다.
김성령: 죽도록 노력한다. 그리고 많은 부분에서 희생을 감수한다.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순 없다. 나도 매순간 어디에 우선순위를 둘지 고민한다. 사람들은 먹으면서 날씬하기 바란다. 나도 먹을 땐 엄청 먹지만 필요할 땐 참는다. 안 먹고, 안 자고 그런 어려운 일들을 이겨낼 수 있었기 때문에 지금의 내가 있다. 언제나 희생은 따른다. 뭘 하나 얻으면 잃는 것도 있다.

Q. 앞으로 어떤 연기자가 되고 싶은가?
김성령: 늘 주인공을 맡고 싶은 욕심이 있었다. 이번 작품에서 처음으로 타이틀을 맡았는데, 선배님들이 다 중심을 잡아줬다. 선배님들이 주인공들의 버팀목이 되어 주고, 중심이 됐다. 연기를 하는 배우의 자세도 배웠다. 앞으로는 주인공에 욕심 부리기보다 선배님들 같은, 후배가 기댈 수 있는 부끄럽지 않은 선배가 되고 싶다.

Q. 이전에 SBS ‘힐링캠프’에 나와서 두 가지 소원을 이야기했었다. 주인공을 맡는 것과 칸느 영화제에 가는 것. ‘여왕의 꽃’과 영화 ‘표적’으로 두 가지 소원을 다 이뤘는데, 김성령의 그 다음 소원이 궁금하다.
김성령: ‘표적’으로 칸느에 갔다 왔는데 분량이 너무 적었다. 다음엔 좀 더 오래 사는 작품으로 칸느에 다시 가보고 싶다. 주인공도 맡아서 선택의 폭이 넓어졌으니까 가능하지 않을까?

윤준필 기자 yoon@
사진. 구혜정 기자 photon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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