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정시우 기자]
암살 베테랑
암살 베테랑
2004년, 천만 관객을 돌파한 두 편의 영화가 나란히 극장에 걸렸다. 강우석 감독의 ‘실미도’가 한국영화 사상 최초로 천만 관객 타이틀에 깃발을 꽂았고, 뒤이어 ‘태극기 휘말리며’가 극장가 곳곳에서 휘날렸다. 동시기에 쌍천만 영화를 극장에서 만난다는 것은 관객들에게도,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에게도, 배우들에게도 분명 진기한 경험이었다. 그래서 당시 사람들은 이렇게 말했다. ‘한국영화 르네상스가 다시 왔다!’

그 후 11년. 올 여름, 넘을 수 없는 견고한 성벽처럼 보였던 쌍천만 영화의 신화가 또 한 번 재현됐다. ‘암살’이 먼저 저격했고, ‘베테랑’이 노련하게 이어 받았다. ‘실미도’와 ‘태극기 휘날리며’가 두 달 차이를 두고 관객을 만났다면, ‘암살’과 ‘베테랑’의 개봉은 2주 간격이었다. 그만큼 ‘쌍천만’에 대한 체감느낌은 크다. 그러니까, 점심에 ‘암살’을 보며 남자A와 소개팅을 가진 여자B가, 저녁엔 ‘베테랑’으로 남자C와 다시 소개팅을 했을 수 있다는 뭐 그런 이야기.

29일 배급사 CJ엔터테인먼트에 따르면 영화 ‘베테랑’은 이날 오전 7시30분 개봉 25일 만에 천 만 관객을 돌파했다. 통산 17번째, 한국영화로는 13번째 천만 영화 대열 합류다. 지난 8월 15일 천만 관객을 찍은 ‘암살’ 역시 순항 중이다.

두 영화의 흥행에는 공통분모가 있다. 국민들의 가려운 곳을 긁어준다는 것. ‘암살’은 청산되지 않은 친일파 문제를 정반으로 다루며 관객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제공했다. ‘암살’은 영화를 본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국회에서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는 아이러니한 명장면을 제공하기도 했다.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순간. 전남방직 회장을 지낸 선친 김용주 선생의 친일행적 논란에 정치적으로 대응했다는 평가가 이어졌다.

‘베테랑’은 ‘재벌 갑질’을 소환해 시원한 한 방을 날렸다. 안하무인 재벌 3세 조태오(유아인)의 악행에서 ‘맷값 폭행사건’, ‘땅콩회항’ 등 재벌가의 막장 일기를 엿봤다는 사람들이 많다. 잘 만든 영화에는 시대의 욕망이 투영된다. 천만 관객이 이 영화에 열광한 것은 ‘영화 같은 이야기’가 지금 현재 우리 사회 곳곳에 도사리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암살’과 ‘베테랑’ 외에 역대 천만 관객을 동원한 한국영화에는 ‘명량’(1761만명), ‘국제시장’(1425만명), ‘도둑들’(1302만명), ‘괴물’(1301만명), ‘7번방의 선물’(1281만명), ‘광해’(1232만명), ‘왕의 남자’(1230만명), ‘태극기 휘날리며’(1174만명), ‘해운대’(1139만명), ‘변호인’(1137만명), ‘실미도’(1108만명)다. 신작들의 공세에도 불구하고 지칠 줄 모르는 두 영화가 흥행 판도를 어디까지 뒤집을지, 지켜 볼 일이다. ‘판은 이미 뒤집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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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시우 기자 siwoorain@
사진제공. 쇼박스, CJ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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