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오
혁오
혁오

[텐아시아=이은호 기자] 밴드 혁오의 첫인상은 상당히 독특했다. ‘빡빡머리’ 보컬 오혁을 비롯해 드러머 이인우는 만화 주인공처럼 하늘로 솟은 머리, 베이시스트 임동건은 오대오 앞머리를 하고 등장했다. 제법 댄디한 외모의 기타리스트 임현제는 짧은 반바지 패션을 선보이며 동공지진을 유발했다.

혁오는 외모만큼이나 독특한 음악 색을 지니고 있다. 사운드는 영미 밴드들에 비견되지만 보컬은 흑인 톤에 가깝다. 가사는 대부분이 영어인데다 내용 또한 제법 심각하다. 지난달 28일 발매된 두 번째 EP ‘22’에도 마찬가지다. 혁오는 관계망의 오작동과 그로 인한 외로움, 허무함 등을 심도 깊은 가사로 살려냈다. 동시에 과장된 리버브와 이펙트를 과감히 덜어내고 오혁의 보컬을 섬세하게 살려내 청자들에게 보다 가깝게 다가간다.

혁오의 가장 큰 특이성은 나이에 있다. 혁오의 네 멤버들은 모두 93년생으로 이제 겨우 스물세 살이다. 밴드가 결성된 지도 이제 겨우 1년 여. 이 정도 경력으로 이만큼의 ‘때깔’을 낼 수 있는 팀은, 단언컨대 얼마 되지 않는다. 아직 어리지만 이들이 지내온 시간은 공으로 쌓인 게 아니었다.

Q. 먼저 앨범 소개를 부탁한다.
오혁 : 두 번째 EP ‘22’라는 앨범이다. 첫 앨범보다는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졌다. 첫 앨범은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까지의 여러 가지 감정을 담았는데 이번 앨범에서는 그 이후에 생긴 내외부적인 변화와 거기에 대한 생각을 다뤘다. 전작보다 좀 더 간소화되고 담담해진 뉘앙스로 표현하려고 했다.

Q. 어떤 변화가 있었나?
오혁 : 변화 자체는 다양하고 그 영역도 넓었는데 이번 앨범에서는 주로 인간관계에 대해 곡을 썼다.

Q. 인간관계에 대해 달리 느낀 점이 있나?
오혁 : 일차적으로 회의가 들었다. 나와 다른 사람들의 생각이 어긋날 수 있다는 생각, 또 뭔가를 수용할 때에도 너무 직접적으로 받아들이면 안 되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현제 : ‘후카(Hooka)’ 같은 경우는, 우리가 잘 되고 난 뒤에 평소에 그냥 그랬던 사람들이 친한 척 아는 척을 하게 된 경험을 썼다.

Q. 지난 앨범 반응이 워낙 ‘핫’해서 새로운 사람들을 많이 만났겠다.
현제 : 아무래도 사람들의 관심을 받다보니 변화가 생기는 건 자연스러운 건데, 좀 갑작스럽게 느껴졌다. 우리 성향자체가 사교활동이나 친구들을 사귀는 것에 익숙지 않기도 하고.
오혁 : 낯설지만 부정적인 낯섦은 아니고 재미있다.

Q. 밴드 결성은 어떻게 이루어졌나?
현제 : 혁이 밴드를 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었다. 그래서 원맨밴드로 활동하며 ‘20’이라는 앨범의 녹음을 다 해놓은 상태였다. 당시 인우가 드럼을 치고 전에 밴드를 하던 형이 기타 녹음을 해놨던 상태였다. 그 와중에 고등학교 동기인 인우한테 연락이 와서 합류하게 됐다. 동건이는 혁이가 중국에 있을 때 알던 누나와 교제 중이었다. 음악을 한다고 해서 함께 밴드를 해보자고 제안했다.

Q. 오혁은 솔로 보컬리스트를 해도 될 것 같은데, 밴드를 결성한 이유가 있나?
오혁 : 우선 나는 남들이 다 하는 걸 별로 안 좋아한다. 흥미가 잘 안 생긴다. 솔로 보컬리스트도 하려면 할 수 있었겠지만, 매력을 크게 못 느꼈다. 대학교 1학년 때 학교 친구들과 프로젝트 식으로 밴드를 한 적이 있다. 원맨밴드도 해봤고. 그런데 재미가 다르더라. 밴드로서 끝까지 간다는 게 되게 어렵다는 걸 알고 있다. 전 세계 대부분의 밴드들이 해체의 수순을 밟기도 했고. 나는 그걸 깨보고 싶었다. 어려운 만큼의 재미가 있다.

Q. 다른 멤버들도 혁오 전에 음악 활동 경험이 있다고 들었다.
현제 : 특별한 건 없다. 밴드를 하는 것도 혁오가 처음이다. 다만 준비 과정이 있었다. 나 같은 경우는 학교에서 기타를 전공했다. 대학 시절, 휴학을 하고 프로듀싱 공부를 한 적이 있는데 그 때 인우를 통해 밴드 결성 제안이 들어왔다.
인우 : 어릴 때부터 음악을 해왔다. 클래식 음악도 했고 힙합에 심취한 시기도 있었다. 드럼도 꾸준히 했는데 중간에 회의감이 들어서 2년 정도 쉬면서 프로듀싱 공부를 했다. 그러다 혁을 만나서 밴드를 하게 됐고.
동건 : 원래는 베이스가 아니라 기타를 쳤다. 밴드도 한두 개 했는데 주로 세션으로 활동을 했다. 한영애 선생님과 작업한 적도 있고 Mnet ‘머스트’에도 나갔다.

Q.오혁은 대학에서 예술학을 전공한다. 음악과 관련된 학과로 진학하지 않은 이유는?
오혁 : 학문을 배우는 것에 관심이 많았다. 패션이나 미술을 좋아하기도 했고. 사실 실용음악과를 가기 싫었다. 굳이 거길 안 가도 음악을 할 텐데, 배워가면서까지 할 필요가 있나 싶었다.

Q. 예술학을 전공해서인지, 앨범 아트워크에도 공을 들였다. 어떤 콘셉트인가?
오혁 : 첫 앨범을 내고 다음 앨범을 구상하는 과정에서 아이디어를 발전시키다가 지금과 같은 아트워크가 나왔다. 첫 앨범이 굉장히 긴 이미지로 되어 있다. 이번 앨범과 첫 앨범이 서로 연결되는데, 그게 시간의 속성을 상징하는 것 같다. 그래서 앨범명도 ‘20’에서 숫자를 더한 ‘22’로 간 것이다. 이게 장기간의 아카이브가 될 수 있다. 우리 앨범 무드가 콘셉트를 잡아서 진행되는 게 아니라 앨범을 준비하면서 느낀 것들, 특정한 시간대에 느꼈던 것들을 쏟아서 담았기 때문에 상징적인 표현들을 넣으려고 했다.

Q. 다른 멤버들은 미술 분야와의 작업이 어땠나?
현제 : 큰 틀에서 혁이나 작가님이 아이디어를 제시했고 거기에 크게 의문을 갖거나 반감을 느낀 적은 없었다. 모두 동의하기 때문에 진행됐다. 사실 아트워크는 여러 작가님들과 콜라보레이션 개념이라 어떤 캐릭터를 그려달라거나 하는 디렉팅을 내리진 않았다.

혁오
혁오
혁오

Q. 앨범 타이틀을 보면 나이에 포커스를 많이 두는 것 같다. 이유가 있나?
오혁 : 지금은 지나가면 돌아오지 않는 시간이지 않나. 매 순간을 담다보면 그게 쌓여서 결국 내가 어떻게 살아왔고 어떤 생각을 했는지 보여주는 결과물이 될 것이다. ‘나이’라는 바운더리로 묶으면 여러 가지 생각을 포괄적으로 담을 수 있다. ‘이 순간에는 이런 걸 경험했다’라는.

Q. 지금은 이십대 중반이 되어 가는데, 어른이 된다는 걸 느끼나?
현제 : 책임감이 많아지는 것 같다. 팀의 부피가 커지고 그걸 실제적으로 체감하게 되니까, 거기에 대한 책임감도 느껴지고 다음앨범에 대한 책임감도 느껴진다.
오혁 : 사실 우리가 이십대 초반의 또래들과는 다른 경험을 하고 있지 않나. 우린 학생 신분도 아니고 보호 장치도 없다. 사회에 던져진 거다. 여러 경험을 하고 커리어를 쌓고 그 와중에 감사하게도 많은 관심을 받기도 하고. 그래서 또래 친구들처럼 어른이 되어간다는 걸 체감한다기보다는 그냥 지금 느끼는 것들에 좀 더 자세히 지켜보려고 한다. 그리고 사실 이 필드에 우리 또래가 거의 없다. 친한 밴드 멤버들이 적어도 열댓 살 정도 차이가 난다. 그 분들을 만나면 나이 드는 걸 체감 못하더라. ‘엊그제 스무 살이었는데 어느 순간 돌아보니 나이를 먹어 있다’고 얘기하신다. 그래서 우리도 어른이 되어가는 걸 느낀다기보다는 그냥 우리가 가지고 있는 생각을 표현하려고 한다.

Q. 또래 친구들뿐만 웬만한 사람들과도 다른 경험을 하고 있다. 그런데도 어떻게 혁오의 노래가 사람들의 공감을 얻을 수 있었을까?
현제 : 혁의 가사나 노래가 특별한 경험에 대해 쓰는 게 아니다. 외로움처럼, 기본적으로 관계를 맺고 있으면 겪는 감정에 대한 노래들이기 때문에 그런 것 같다.
오혁 : 겪는 이슈들이 다른 거지 느끼는 감정들은 다 비슷한 것 같다.

Q. 타이틀곡 ‘와리가리’는 무슨 뜻인가?
오혁 : 초등학생 때 하던 놀이다. 양 쪽 사이드에는 공을 던지는 애들이 있고 가운데 술래가 공을 빼앗아야 한다. 술래는 공을 잡을 때까지 뛰어 다니는 거다. ‘와리가리’라는 놀이 이름 안에 ‘왔다 갔다’한다는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다. 첫 앨범 내고 나서 관계들에 있어서 변화가 생겼다. 필터링이 안 되는 상황 속에서 새로운 사람들이 다가오고 많은 것들이 유입되니까 회의가 생겼다. 익숙해지려고 하면 떠나가 버리고 또 그러다가도 누가 다가오고 다시 떠나고. 그 때의 감정을 ‘와리가리’에 담았다.

Q. 허무와 회의를 노래하는데, 가사에는 ‘play’라는 표현을 쓰고 곡도 신나는 분위기다. 역설적인 표현을 좋아하나?
오혁 : 딱히 반전을 제시하려는 의도보다 우리가 살고 있는 모습이 그런 것 같다. 사람들이 평소에 힘들어도 힘들다고 얘기하지 않고 웃는 모습만 보여주려고 하지 않나. 음악도 마찬가지다.

Q. ‘와리가리’를 포함해서, 앨범 전반적으로 ‘외로움’ ‘허무함’이 주된 키워드다. 실제로 그런 감정을 많이 느끼나?
동건 : 이렇게 같이 있으면 재밌지만 (일동 : 그럼 집에 가지마) 아니, 그래도 집에는 가야하고. 잘 모르겠다. 왜 외로운지.
현제 : 개인적으로는 외로운 사람이 있고 외로워지고 싶은 사람이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후자다. 혼자 있는 걸 좋아하고 그런 게 필요하다. 그런데 또 혼자 있는 것에 계속 노출이 되면 힘들다.
오혁 : 나도 그렇다.
인우 : 난 외롭고 싶지 않은데.
현제 : 외향적인 사람들은 같이 있어야 에너지를 얻으니까. 나는 외로움이라는 키워드는 누구에게나 있다고 생각한다. 나한테도 외로움이 중요한 키워드다. 그렇지만 ‘나 외롭다’고 노골적으로 표현하는 건 좋은 방향이 아닌 것 같다. 그래서 곡을 만들 때에는 그러지 않으려고 한다.

Q. 전에는 영어 가사를 주로 썼다.
오혁 : 어렸을 때부터 영미권 음악을 들어서 작업물을 만들 때에도 자연스럽게 영어로 접근하게 되더라. 한국어로 쓰면 가사를 잘 써야 한다는 부담감 같은 게 있었다. 나중에 더 준비가 됐을 때 시도해보려고 했다.

Q. 이번 앨범에서는 한글 가사가 늘어났는데, 준비가 됐다고 느낀 건가?
오혁 : 프라이머리랑 ‘럭키 유(Lucky You!)’ 앨범 작업을 했을 때 한국어로 가사를 썼다. 그런데 거기에 대한 좋은 피드백이 와서 좀 용기를 얻었다.

Q. 잘 써야 한다는 부담은 내용의 측면에서 오는 것인가, 아니면 표현력에 대한 건가?
오혁 : 둘 다 그렇다. 가사에는 아무래도 개인적인 부분을 담게 되지 않나. 그걸 다듬어지지 않은 상태로 쓰다보면 벌겨 벗겨진다는 느낌이 든다.

혁오
혁오
혁오

Q. 마니아층에서 입소문이 시작돼 뮤지션들의 칭찬도 자자하고 이젠 대중적인 인지도도 높아지고 있다. 예상했나?
오혁 : 했다. ‘음원 차트 (상위권에)갈 것 같은데’라는 생각은 아니고 음악에 대한 신뢰가 있었다.
현제 : 대중한테 사랑을 받게 될 수 있겠다는 믿음이 있었던 건, 우리 음악이 너무 마니악하거나 이해 못 할 형태가 아니기 때문이다. 낯설지만 그 낯섦이 표현 방식에 있어서의 낯섦일 거라고 생각했고 대중적인 느낌은 충분히 품고 있다고 느꼈다

Q. 곡 작업은 어떻게 진행하나?
현제 : 작사는 거의 혁이 써서 보여주고 같이 공유한다. 노래를 하는 사람이 쓰는 게 맞는 것 같다. 작곡의 경우, 곡의 뼈대나 테마는 합주하다가 나온다. 그걸 같이 편곡하는 과정에서 멜로디 구성을 거의 혁이가 한다.

Q. 의견 조율은 잘 되나?
현제 : 그런 편이다. 한 명이 하자고 주도하는 경우는 몇 번 있었다. (오혁 : 내가 그랬다. 죄송하다) 그런 것들도 많이 없어지고 있고. 처음에는 밴드가 모이고서 취향도 다르기 때문에 합치시키는 과정이 필요했다. 그 때마다 레퍼런스 제시는 혁이 했다. 초반에는 의견합치가 안 된 상황에서 진행된 적도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나쁘다고만은 할 수 없다.

Q. 참여 비중을 높이고 싶지 않나? 가사는 오혁의 비중이 크다.
현제 : 시간의 문제인 것 같다. 밴드로서 더 성숙한 단계가 되면 우리도 참여하게 되지 않을까. 아직은 노래하는 사람이 작사를 하고 자기가 쓴 가사에 집중해 노래를 하는 게 안정적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밴드를 결성한지 얼마 안 됐다. 작사의 영역에 쉽게 생각하고 접근하면 밴드의 방향성에 문제가 생길 것 같다. 정규 앨범도 나오고 우리 끼리 더 가까워지고 음악적으로도 공통의 방향성이 나오면 같이 만들 수 있을 것이다.

Q. 작업을 하다보면 서로 깊은 곳을 보여야 할 것도 같다.
현제 : 개인적으로는 그런 것도 필요하다고는 생각하지만 꼭 그래야 하는 것도 아니다. 혁이도 100퍼센트 깊은 곳을 보여준 것 같지는 않고 또 그럴 필요도 없는 것 같다.
오혁 : 접근의 방식인 것 같다. 물론 가사나 무드를 풀어낼 때에는 당시에 느꼈던 것들을 깊은 곳에서 끌어오긴 한다. 그렇지만 아무래도 음악을 하는 사람, 콘텐츠를 만든다는 생각으로 작업을 하다 보니 개인적인 부분을 직접 노출하기는 어려운 것 같다.

Q. 가령 ‘이런 일이 있었고 이런 생각을 해서 이런 곡을 썼어’ 같은 얘기는 잘 안 하나?
현제 : 그런 게 있으면 얘기한다. 그렇다고 촛불 하나씩 들고서 하는 건 아니고. 하하.
동건 : 한 번 해보자. 재밌을 것 같다.
현제 : 그렇게 구체적인 자리를 갖지는 않지만, 서로 얘기를 하면 충분히 받아들여준다. 서로에 대한 믿음이 있다.

Q. 이번 앨범 어떤 활동을 계획하고 있는지. 공연이나 방송 계획도 있나?
오혁 : 있어야한다. 많아야한다. 우린 음악을 하는 사람이니까 음악을 소개할 기회가 있다면 방송이 됐던, 무대가 됐던 관계없다. 결과적으로 하고 싶은 것, 재밌고 멋있을 수 있다면 할 것이다.

이은호 기자 wild37@
사진. 두루두루amc

© 텐아시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