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전자음악단]밴드사진
[서울전자음악단]밴드사진
재결성된 서울전자음악단을 인터뷰하기 위해 새 앨범을 미리 들어봤다. 미리 싱글로 공개된 ‘꿈이라면 좋을까’의 몽환적인 분위기는 예전 서울전자음악단과 닮아 있었다. “역시”라고 되뇌며 안도의 한 숨을 쉬려고 하는데 낯선 음악들이 하나둘 흐르기 시작했다. “변신을 하려 했나보다”라고 생각했는데, 계속 들어보니 이건 ‘변신’ 수준이 아닌 아예 다른 음악이었다. 신윤철(기타, 보컬), 손경호(드럼), 이봉준(베이스)가 새로 뭉친 서울전자음악단의 새 앨범 ‘꿈이라면 좋을까’에는 총 7곡이 담겼다. 이중 세 곡이 연주곡이고, 다른 곡들도 노래보다는 연주가 중심이 됐다. 연주 곡들은 테마 멜로디가 확실치 않고, 즉흥 연주가 중심을 이루고 있다. 마치 에릭 클랩튼의 크림, 또는 지미 헨드릭스 익스피어리언스와 같은 60년대 3인조 록밴드의 라이브 부틀렉을 듣는 느낌이었다. 뭐, 다 좋다. 그런데 이게 서울전자음악단이 맞아?

# 단순해지자! 그런데 왜 이런 음악을?
19일 망원동 연습실에서 만난 신윤철은 “기존에 내가 해온 음악들과 다르게 가고 싶었다”라고 말했다. “담백해지고 싶었어요. 예전 서울전자음악단에서는 프로듀서의 관점에서 곡 하나의 완성도, 편곡을 하는데 중점을 뒀죠. 이번에는 그냥 밴드의 기타리스트로서 연주가 살아있는 앨범을 만들고 싶었어요. 지미 헨드릭스, 크림과 같은 연주 말이죠.”(신윤철)

신윤철
신윤철
신윤철

과거 서울전자음악단의 1~2집과 음악이 사뭇 다르다. ‘꿈에 들어와’와 같은 곡을 기대한 팬은 실망할 수도 있겠다. 팀 이름도 원래는 다른 걸 쓰려 했다. ‘신윤철 밴드’ ‘신윤철과 시기상조’ 등이 물망에 올랐고, 로고까지 만들었다. 하지만 생각해보니 서울전자음악단으로 가는 게 맞는 것 같았다.

“팀 이름은 아무래도 좋을 것 같았어요. 그런데 사실 손경호, 이봉준 이 친구들은 서울전자음악단의 원년멤버가 될 뻔 했던 사람들이거든요. 그래서 서울전자음악단으로 가도 괜찮다고 생각했죠.”(신윤철)

사연이 있다. 2002년에 신윤철은 조동희, 손경호와 3인조 체제로 원더버드 2집 ‘콜드 문(Cold Moon)’을 발표했다. 신윤철은 원래 이 앨범을 서울전자음악단의 이름으로 출시할 계획이었지만 이 음반은 음반사와 계약관계 때문에 원더버드의 이름으로 나오게 됐다. 이봉준은 이 앨범에 베이스로 참여할 계획이었다. 즉, 계획대로라면 ‘콜드 문’은 신윤철, 조동희, 손경호, 이봉준의 4인조로 이루어진 서울전자음악단의 1집이 됐을 것이다.

“형이 저에게 준 데모CD에는 서울전자음악단이라고 써져 있었어요 그런데 회사에서는 원더버드의 앨범으로 하자고 했죠.”(이봉준)

손경호
손경호
손경호

# 마침내 모인 3인조
신윤철, 손경호, 박현준, 오태호 등이 고등학교 때 결성한 밴드 ‘리자드’는 전설적인 스쿨밴드로 회자된다. 신윤철과 손경호는 중학교 때부터 함께 밴드를 했다. 손경호는 신윤철을 처음 만난 순간을 기억하고 있었다.

“친구네 집에 갔는데 초인종을 누르자 ‘렛 잇 비(Let It Be)’ 기타 솔로 소리가 점점 가까워지는 거예요. 윤철이가 기타 연주를 하면서 문을 열어주려고 걸어나온 거예요. 기타를 메고 옆에다는 미니앰프를 달고. 그게 중학교 때죠.”(손경호)

이후 손경호는 집에다가 6만 원짜리 드럼세트를 설치했고 신윤철이 놀러와 딥 퍼플의 ‘스모크 온 어 워터(Smoke on The Water)’, 그랜드 펑크 레일로드의 ‘인사이드 루킹 아웃(Inside Looking Out)’과 같은 곡을 합주했다.

이봉준은 1995년 블루데빌에서 만났다. 당시 신윤철은 ‘복숭아’라는 밴드로 유앤미블루, 황보령, 그리고 자우림 등과 공연을 했다. 이봉준은 블루데빌에 놀러왔다가 신윤철과 친해졌다. 신중현의 광팬인 이봉준은 1996년에 신중현 트리뷰트 앨범에 퀘스천스란 팀으로 참가해 ‘즐거워’를 커버했다.

셋은 재작년부터 합주를 시작했다. 딱히 팀을 결성하려던 것은 아니었다. 셋이서 즉흥 잼을 하고 그걸 녹음하는 과정이 반복되면서 자연스레 앨범에 대한 그림이 그려졌다. “잼을 하고 녹음해 들어보는 걸 1년 정도 했어요. 그게 일상이 되면서 셋의 앙상블이 점점 발전되기 시작했죠. 처음엔 재미삼아 스마트폰에 녹음을 했다가 레코더에 녹음하고, 나중에는 진공관 프리앰프 등의 장비를 갖추기 시작했죠.”(이봉준)

이봉준
이봉준
이봉준

# 즉흥 잼세션 앨범
새 앨범은 과거에 만들어놓은 곡인 ‘꿈이라면 좋을까’와 ‘디지털 레볼루션’ 두 곡을 제외하고 잼세션(즉흥 합주) 형식으로 녹음됐다. 셋 다 이런 방식의 앨범은 처음이다. “즉흥 연주가 중심이 된 앨범을 만들려 했어요. 원래는 보컬도 아예 넣지 않으려 했죠. 한 번 연주를 시작하면 보통 20분이 넘어갔어요. 너무 길면 앨범에 수록하기 힘들어서 점점 곡 길이를 줄여나갔죠.”(신윤철)

이렇게 즉흥연주가 중심이 될 경우 매번 공연을 할 때마다 연주가 바뀌기 마련이다. 재즈가 그렇다. “우리끼리는 완성된 곡을 연주하는 것보다 잼으로 자연스럽게 곡을 만들어가는 게 더 어울렸어요. 레드 제플린이 2집을 만들 때 이런 방식으로 만들었다고 해요. 전부터 이런 작업을 꼭 해보고 싶었죠.”(신윤철) “우리 서로를 알아가는 데 큰 도움이 됐어요. 사실 굉장한 숙제의 연속이었어요. 잼을 하면서 극한의 상황에 몰리기도 하고, 하지만 꼭 필요한 작업이었죠.”(손경호)

이들은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연주를 했고, 그 중에서 골라낸 트랙들로 앨범을 채웠다. 곡을 고른 기준은 뭘까? 손경호가 “윤철이가 얌전한 연주들로 고른 것 같다”라고 말하자 신윤철은 특유의 어눌한 말투로 “어… 난 그냥 내가 기타 잘 친 걸 고른 것인데”라고 대답했다. 이 대목에서 손경호는 속은 표정으로 벽을 잡고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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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중현
이들의 연주에서는 언뜻 신중현과 엽전들의 체취도 느껴진다. 신윤철은 화려한 기타 이펙팅 및 오버더빙을 선보인 과거 서울전자음악단 때와 달리 기타 앰프의 소리를 잘 살려 담백하게 연주한다. 손경호 역시 화려한 연주보다는 흐름을 중요시한다. 이봉준의 라인은 신중현 음악을 떠올리게 한다.

이봉준은 신윤철의 권유로 신중현 그룹의 베이시스트로 활동했다. “전 워낙에 어렸을 때부터 신중현 선생님의 음악을 듣고 자랐어요. 자연스럽게 이남이(신중현과 함께 한 베이스 연주자)의 흉내를 많이 냈죠 윤철 형이 저를 신중현 그룹으로 보낸 것이 왠지 이번 작업을 위한 훈련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철저한 계획 하에(웃음).

신윤철은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 신중현과 형 신대철, 동생 신석철과 함께 잼(즉흥 합주)을 했다. 로열패밀리이기에 가능한 것. “전 중학교 때부터 가족들과 함께 블루스 잼을 했어요. 아버지와 형이 기타를 쳐서 전 피아노나 베이스를 쳐야 했죠. 석철이가 드럼을 쳤고요.” 새로운 서울전자음악단으로는 한층 숙성된 연주를 들려줄 예정이다. 이들의 음악을 제대로 느껴보려면 음반보다는 라이브를 직접 봐야 할 것 같다.

글. 권석정 moribe@tenasia.co.kr
사진제공. 휴먼엔터테인먼트, CJ문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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