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뷔 20년, 정우성은 언제나 스타였다. 최근 몇 년간 활동이 뜸하면서 다소 주춤했지만, 일시적 현상에 불과했다. 지난해 ‘감시자들’로 화려한 귀환을 알렸고, 정확히 1년 만인 올해 ‘역시 정우성’이란 환호를 부르게 했다. 특히 1년 전보다 더 화려하고, 멋들어진 액션으로 대중의 눈을 고정시켰다. 요즘 액션 영화의 흐름에 발 맞춰(?) 탄탄한 상반신 몸매도 아낌없이 드러낸다. 또 한동안의 공백이 만들어낸 연기에 대한 갈증은 그를 계속해서 작품으로 이끌고 있다. ‘마담 뺑덕’ ‘나를 잊지 말아요’ 등이 정우성과 함께하고 있다. “공백에 대한 충족 욕구를 자신에게 주고 싶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렇게 정우성은 여전히 ‘스타’로 우리 곁에 머물렀고, 또 머무를 예정이다.

Q. ‘감시자들’이 지난해 7월 3일 개봉해 500만 흥행을 만들었다. 우연하게 ‘신의 한 수’도 7월 3일 개봉인데, 흥행도 같을 것 같나. 일단 분위기는 좋은데.
정우성 :
그때와 느낌은 다른 것 같다. ‘감시자들’은 하윤주라는 여자 캐릭터의 성장 영화고, 제임스는 성장에 장애가 되는 캐릭터다. 앞에서 짊어지고 간다는 느낌보다 받쳐준다는 느낌이었다. 이번엔 전면에 나서 태석이란 인물이 끌고 간다. 그리고 그땐 ‘당연히 잘 될 거야’ 이런 느낌이었다면, ‘신의 한 수’는 잘될 것 같기도 한데, 바둑이다 보니 뭔지 모를 불안과 초조함이 같이 있다.

Q. 장르적인 성격상 ‘감시자들’ 차기작으로 ‘신의 한 수’의 선택은 도전보다는 안전한 선택에 가까운 것 같다.
정우성 :
사실 ‘신의 한 수’를 먼저 선택했다. ‘감시자들’은 ‘신의 한 수’를 기다리는 동안 잠깐 쉬워가는 마음으로 임했다. 제임스란 캐릭터를 통해 경구 형, 하윤주 등과 함께하면 재밌겠다 싶었다. 또 액션이라기보다 심리적 드라마에 가까운 영화였다.

Q. 연이은 성공인데, 과거보다 흥행 촉이 좋아진 게 아니냐는 평가도 있다.
정우성 :
글쎄. 내가 읽고 선택했던 시나리오는 (흥행이) 나쁘지 않았던 것 같다. ‘놈놈놈’도, ‘내 머리 속에 지우개’도 주위에서 다 뜯어말렸다. 겸손해야겠지만, 예전에도 내가 시나리오 읽고 좋아했던 것은 일반 관객들도 재밌어 했던 것 같다. 반면, ‘호우시절’ 같은 경우는 조금 다르다. 흥행을 떠나 좋은 영화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선택했다.

Q. 아! 그럼 흥행 촉은 원래 좋았던 걸로.
정우성 :
촉이 좋고 안 좋고를 떠나 객관화시키려는 것 같다. 배우로서 재미와 상관없이 시도하는 작품도 있지 않나. 사실 ‘신의 한 수’는 시나리오 면에서 ‘감시자들’보다 더 읽기 쉽고 편했다. 흥행 코드도 많았다. 오랜만에 영화하는데 관객들에게 뭔가 보여주기 쉬운 게 액션이다. ‘신의 한 수’는 액션을 보여줄 수 있는 영화라 생각했다. 태석이란 인물이 루저로 시작해 액션 히어로로 탈바꿈하고, 내기 바둑이란 신선함도 있다.


Q. 그런데 바둑을 전혀 못 두는 걸로 알고 있다. 선택할 때 그건 고려 사항이 아니었나.
정우성 :
이 작품을 선택할 수 있었던 건 바둑을 전혀 모르는데도 재밌었기 때문이다. 물론 바둑을 아는 사람들은 더 재밌게 볼 수도 있겠지만, 그와 상관없이 ‘이기고 지는’ 단순한 풀이로 가고 있기 때문에 괜찮았다.

Q. 이번 작품을 하면서 바둑에 관심은 생겼나.
정우성 :
관심을 가지려고 했다. 어느 정도 기본은 알아야 하니까. 바둑을 배워보려고 상당한 고수와 미팅을 했는데, 쉽게 가르침을 받을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대신 착수만 열심히 했다.

Q. 착수(바둑판 위에 돌을 놓는 것)도 연습이 필요한 건가.
정우성 :
필요하다. ‘감시자들’ 인터뷰하면서 차기작 이야기가 나왔다. 그때 ‘신의 한 수’를 한다고 하니까 어떤 기자분이 착수가 상당히 중요할 거란 이야기를 해주셨다. 그때부터 바둑알을 넣고 다니면서 바둑알을 만지작거렸다. 고수일수록 착수의 손놀림이 다르다. 바둑 고수들도 이 영화를 볼 텐데 그 사람들에게 전달해야 하는 디테일이 있으니까.

Q. 바둑 장면에서 가장 신경 쓴 부분은 무엇인가.
정우성 :
이기고 있다, 고민하고 있다, 지고 있다 등이다. 바둑을 잘 아는 분들에겐 어떻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단순하게 전달하는 게 가장 중요한 목표였다. 사실 승패가 갈리는 게임이다. 그 안에서 수없이 많은 묘수가 있겠지만,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누가 이겼어’ 아닐까.

Q. 요즘 액션 영화에서 상반신을 보여주는 게 유행이다. 이번 영화에서도 어김없이 상반신 근육을 드러낸다.
정우성 :
전혀 의식 안 했다. 요즘 시류니까 ‘나도 보여줘야지’ 보다 태석의 변화를 보여주기 위해 당연한 거였다. 원래 시나리오에선 더 뚱뚱하게 표현됐다. 특수 분장을 하려는데, 여름 촬영이라 감당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살을 찌운 상태에서 빼면서 촬영하긴 일정상 힘들고, 그래서 초반에 수염을 선택했던 거다. 그리고 교도소에서 싸움을 배우면서 강한 사람으로 바뀌는 과정인데, 그 변화를 설명하는데 노출이 가장 쉬운 방법이다.


Q. 특히 이번에는 최진혁과 동시에 몸매 대결을 펼치지 않나. 그에 대한 부담도 있지 않을까 싶다.
정우성 :
30대 후반 어느 순간부터 운동은 생활화돼 있다. 액션 영화를 계속 할 마음이 있는 배우다 보니, 평상시 체력관리가 가장 중요한 것 같다. 그런데 냉동 창고 촬영이 근접했을 땐 오히려 운동을 안했다. 깎은 듯한 몸보다는 자연스러운 몸이고 싶었다.

Q. 평상시 관리는 어떻게 하나.
정우성 :
시간 나면 무조건 가는 게 중요하다. 촬영 있고, 바쁠 때 잠깐 짬이라도 나면 달려간다. 운동하다 보면, ‘피곤하니까 쉴래’가 아니라 그 피곤을 운동으로 풀게 된다.

Q. 액션 계속 하겠다는 말을 했는데 언제까지 할 수 있을 것 같은가.
정우성 :
할리우드 배우들은 60대도 하니까. 물론 60대에 지금처럼 몸 쓰면 부담스러울 거다. 추구하는 액션의 뉘앙스는 다르겠지만, 우리도 관리하면 분명 가능하지 않을까.

Q. 안성기는 ‘무사’ 때 호흡을 맞췄고, 이범수는 ‘태양은 없다’ ‘러브’ 등을 함께 하지 않았나. 오랜만에 만난 배우들과 호흡은 어땠는지 궁금하다.
정우성 :
주님이 맹기 두는 장면을 보는데 연기하는 모습이 아름다웠다. 주님 캐릭터가 선배님의 마음을 움직였다는 게 다행스러웠고 선배님과 오랜만에 해서 좋았고, 감사했다. 이범수 씨는 오랜만에 봤는데도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것 같다.

Q. 조범구 감독의 전작이 ‘퀵’인데, 이번에는 그것과 색깔이 많이 다르다.
정우성 :
데뷔작인 ‘뚝방전설’이나 단편 등을 보면, 80년대 후반 90년대 초 정서를 많이 지니고 있다. 그리고 자기가 원하는 장르에 대한 추구보다 장르가 원하는 걸 집약적으로 조합하려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신의 한 수’에서도 조화롭게 조립하는 작업을 한 것 같다.


Q. 오래전부터 연출에 대한 꿈을 말해왔고, 실제 몇 편의 단편 영화를 연출했다. 현장에서 자신도 모르게 연출자의 모습을 드러내는 경우도 있을 것 같다.
정우성 :
예전부터 객관화해서 말하는 편이다. 그래서 배우와 이야기하는 것 같지 않다는 말을 듣곤 했다. 액션의 경우에는 액션에 대한 아이디어들이 많으니까 그런 아이디어를 던져 놓는다. ‘아니면 말고’ 식이다. ‘신의 한 수’ 경우에는 감독님이 워낙 나를 믿어주셨다. 그런 것을 일부러 의식하기보다 일단 본분은 배우다. 현장에서 취해야 하는 애티튜드 역시 당연히 배우다. 단지 같이 작업하는 사람으로서 의견을 전하는 거다. 가령 ‘이 컷은 이렇게 못 찍겠으니까 이렇게 찍어줘’라고 말하는 건 월권이다. 대신 ‘이게 재밌지 않을까?’ ‘이건 어떻게 생각해’ 등처럼 질문을 던진다. 주로 형들과 했을 때는 좀 더 편하게 했을 텐데, 지금은 후배들이 많다 보니 조심스럽다. 쉽게 하는 말이 후배 입장에서 부담될 수 있으니까. 또 제작자로 있을 땐 감독한테 많은 걸 주려고 한다.

Q. 이번엔 어떤 아이디어를.
정우성 :
이번 작품 무술 감독이 입봉이다. 처음이다 보니 당연히 하고 싶은 게 많았을 거다. 수없이 많은, 다양하고 화려한 액션 디자인을 가져오는 거다. 그래서 과하다 싶은 걸 빼는 역할을 했다. 신에 대한 뉘앙스 등은 당연히 연출 감독과 같이 해야 하는 거고.

Q. 연출 또는 제작할 때 배우인 게 도움될 것 같은가.
정우성 :
‘나를 믿지 말아요’를 출연과 함께 제작 중인데, 신인 감독이 못하는 건 이미지의 현실화다. 그건 경험이 부족해서 그런 거다. 연기에 대한 뉘앙스는 감독이 가장 정확하다. 그리고 배우였던 게 연출할 때 더 유리할 것 같다. 가장 포인트가 되는 연기를 본능적으로 익히고 있을 것 같다.

Q. 그나저나 감독 데뷔는 언제 볼 수 있는 건가.
정우성 :
작가 손에서 시나리오는 떠났는데 제작한답시고 다시 수정할지, 그대로 갈지 아직 결정 못 하고 있다. 그리고 일단은 배우로서 4년 동안 (연기를) 못한 갈증을 얼마만큼 만족스럽게 채우느냐에 따라 시기는 달라질 것이다. 그리고 연기하는 게 캐릭터인지 정우성인지 그 판단이 어려운데, 프로듀서나 작가 등 시나리오와 캐릭터를 잘 이해하고 있는 사람이 객관적으로 그 판단을 해 줄 수 있는 상황만 만들어진다면 연출과 주연을 하려고 한다.

Q. 그러고 보니 4년 만에 ‘감시자들’을 했는데 그 이후론 작품이 연이어 있다.
정우성 :
4년의 공백이 관객에게 멀어진 시간처럼 느껴졌다. 그 공백에 대한 충족 욕구를 자신에게 주고 싶다. 그리고 공백이 있을 때 한국영화 시장이 급속도로 성장했다. 다들 열심히 하고, 저만치 간 것 같다. 나도 쫓아가야지, 그런 마음이다.


Q. 작품 활동도 좋지만, 슬슬 결혼도 생각해야 할 것 같은데.
정우성 :
한참 일해야 할, 잘할 수 있는 나이가 시작됐다는 생각이다. 결혼은 너무 늦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45살 정도면 되지 않을까.

Q. 10년 전 인터뷰 기사를 보니, 그땐 빨리 결혼하겠다는 말을 했더라.
정우성 :
사랑이 그렇게 자기 마음대로 안 되는 거더라. 그땐 연애도 진하게 하고 있었고, 당시 내 생각에는 결혼 적령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마음처럼 안되는 거니까. 그리고 내일을 위한 계획이라는 말은 어폐가 있는 것 같다. 지금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게 결과적으로 내일을 위한 게 되지 않을까.

Q. 잘할 수 있는 나이가 시작됐다는 건 무슨 의미인가.
정우성 :
30대 때는 자만했던 것 같다. 지금은 사람을 대하는 법이나 일에 대한 테크닉, 표현에 대한 유연성 등이 나아진 것 같다. 지금 배우로서 재미있게 표현할 수 있는 준비가 된 것 같다. 어릴 적에는 주어진 것을 그냥 했다면, 지금은 무엇을 해야 할지 아는 거다.

Q. ‘자네 신의 한 수를 본 적 있나. 망가진 삶을 역전시킬 수 있는 우리 인생에도 신의 한 수가 있을까’란 대사가 나온다. 이 대사처럼 인생에 ‘신의 한 수’가 있다면, 바꾸고 싶은 순간이 있나.
정우성 :
바꾸고 싶지 않다. ‘신의 한 수’는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또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들이 얼마나 아름답고 소중한지, 그걸 알아볼 수 있는 이해력과 시야가 아닐까. 인생의 ‘신의 한 수’는 지금, 오늘 최선을 다하는 거지 ‘절대 묘수’가 나타나서 내 인생을 바꿀 순 없는 거다. 바꾸고 싶다고 생각하기보다 지금, 진짜 최선을 다하는 게 얼마나 큰 바꿈이 있다는 걸 알아야 한다. 최선을 다한다면, 지금까지 바꾸고 싶었던 게 바뀌게 된다.

글. 황성운 jabongdo@tenasia.co.kr
사진제공. 호호호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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