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타 디지털 임창의(왼쪽), 최종진 시니어 라이닝 테크니컬 디렉터.
영화 ‘아바타’ ‘반지의 제왕’ ‘혹성탈출’ 등은 우리에게 환상의 세계로 안내한 판타지 블록버스터다. 이 같은 판타지 블록버스터가 대중과 만나기 위해 꼭 거쳐야만 하는 관문이 있다. 바로 상상을 현실로 만들어주는 비주얼 이펙트(VFX)다. 최근 개봉된 ‘혹성탈출:반격의 서막’(이하 혹성탈출2) 역시 VFX가 없었다면, 대중들은 사실적인 유인원 시저를 만나보기 힘들었을 테다.Q. 웨타 디지털에는 어떻게 들어가게 됐나.
‘혹성탈출2’는 피터 잭슨 감독이 세운, 세계적인 스튜디오로 손꼽히는 웨타 디지털에서 탄생했다. 특히 이곳에도 한국인의 손길이 녹아 있었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혹성탈출2’ 개봉을 앞두고 고향을 찾은 웨타 디지털 속 한국인 임창의, 최종진 라이팅 테크니컬 디렉터가 그 주인공이다. 최종진 씨는 “한국 영화 시장과 위상이 할리우드에서 관심을 가질 만큼 높아졌다. 작업자 입장에서 그림들을 보여드리고 설명할 기회가 있게 돼 영광스럽다”고 말했고, 임창의 씨는 “뉴질랜드 웰링턴이란 곳에 있는데 40만의 작은 도시”라며 “서울에 오니까 시골에 있다가 온 기분이다. 고층건물 쳐다보느라 목이 아프다”고 농담 곁들인 인사말을 건넸다. (지난 6월 27일 진행된 기자회견과 인터뷰가 혼합돼 있습니다.)
임창의 : 한국에서 비주얼이펙트 10년 정도 일을 했고, 웨타 디지털에 들어가게 된 결정적 계기는 ‘아바타’ 때문이다. 영국의 더블 네가티브란 회사에 있을 때인데 ‘아바타’ 작업이 매우 하고 싶었다. 그러면서 다른 사람보다 먼저 볼 수 있으니까. 그 이유로 웨타 디지털에 지원하게 됐다. 1년 마치고 다시 더블 네가티브에 돌아갈 생각이었는데, 이 회사가 내가 찾던 꿈의 직장이 아니었을까 생각이 들었다. 작업에 대한 열정이나 모든 작업자가 영화에 대한 관심도가 가장 높았던 것 같다.
최종진 : 다른 분야 전공하고, 자동차 만드는 회사에 다녔다. 어려서부터 꿈이 컴퓨터로 그림을 그리는 거였는데, 회사에 다니면서 이건 아닌 것 같아서 과감히 회사를 그만두고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광고회사에서 경력을 쌓았고, 캘리포니아에 있는 인더스트리얼 라이트 앤 매직에서 몇 작품 하고 웨타 디지털에 지원했다. 첫 작품이 ‘혹성탈출:진화의 시작’이었다.
Q. 한국에서 10년 정도 일을 했다고 했는데, 어떤 작업에 참여했나.
임창의 : 한국에서 ‘공동경비구역 JSA’, ‘역도산’ 등에 참여했고, ‘그때 그 사람들’이 마지막 작업이었다. 영화 작업만 한 게 아니라 커머셜, 비디오게임 등도 했다.
Q. 영문으로 표기된 직책이 시니어 라이트닝 테크니컬 디렉터다. 구체적으로 어떤 일인지 궁금하다
최종진 : 한국말로 굳이 번역하면, 조명 감독쯤 된다. CG 상에서 가상 조명을 사용해 배경과 배우 등을 사실적으로 보이게 하는 역할이다. 또 CG에선 모든 게 가능하다. 가상 조명을 이용해 더 극적 효과를 낼 수 있다. 무엇보다 테크니컬 디렉터가 대부분 경력 10년 이상인데 그런 이유가 다른 부서 결과물을 다 종합해서 장면을 구성하는 거다. 문제 해결 능력이 중요하다.
임창의 : 단순히 정의하자면, 다른 부서에서 만들어진 모든 작업은 디지털 데이터로 들어온다. 그걸 렌더링해서 이미지화하는 거다.
웨타 디지털 임창의 시니어 라이팅 테크니컬 디렉터.
Q. 라이팅과 테크니컬, 두 가지를 같이 한다는 말인가.최종진 : 다른 부서들을 거쳐 작업물이 들어온다. 각 부서에서 검토하고 보냈음에도 잘못된 부분이 있다. 그랬을 때 그 부서로 다시 가면 시간이 오래 걸린다. 그래서 웬만하면 테크니컬 디렉터들이 수정하는 거다.
임창의 : 실사 영화 현장으로 따지면, 조명감독보다 촬영감독 역할에 가까운 것 같다. 라이팅 테크니컬 디텍터란 직책은 해외에서도 잘 모른다. 호주에 있을 때 직업이 뭐냐고 해서 ‘라이팅 테크니컬 디렉터’라고 했더니 나중에 전기공사하는 사람으로 직업분류가 돼 있었다.
Q. ‘혹성탈출2’에 사용된 웨타 디지털만의 차별화된 기술력은 무엇인가.
임창의 : 기술력의 핵심은 라이브 퍼포먼스 캡처 기술이다. 기존 모션 캡처와 차별성을 설명하면, 라이브 퍼포먼스 캡처는 실제 촬영 현장에서 이뤄진다. 배우들이 같이 연기하고, 한 번에 촬영이 이뤄진다는 거다.
Q. 일하는 입장에선 한결 더 쉬운 거 아닌가.
임창의 : 도움받는 부분이 많다. 라이브 퍼포먼스 캡처는 촬영 자체가 현장에서 이뤄지기 때문에 주변에 대한 정보를 더 많이 얻을 수 있다. 라이팅 감독 입장에서도, 배우 입장에서도 이득이 많다. 다만 야외에서 하는 것 자체가 제약 조건이기 때문에 기술력이 있어야 하는 거다. 그리고 어렵고 쉽고를 떠나 더 잘 만들 수 있는 거다.
최종진 : 실사와 CG를 합성할 때는 가능한 모든 정보를 가지고 있는 게 좋다. 라이브 퍼포먼스 장점이 라이팅 측면에서 보면, 같은 환경에서 배우가 연기하기 때문에 라이팅 정보를 얻을 수 있다. 그걸 토대로 유인원에 적용할 수 있다.
Q. 웨타 디지털은 ‘털’ CG로도 유명하다. 보통 사람들은 실질적으로 어느 정도로 어려운 건지 체감하긴 힘들다. 쉽게 설명해 달라.
최종진 : 털은 로봇이나 자동차처럼 일정한 규칙을 가지고 있는 게 아니라 모두 다른 방향으로, 다른 길이로 뻗어 있다. 기본적으로 사람, 식물 등 생물은 이미 만들어진 상품에 비해서 훨씬 더 예측할 수 없는 모양으로 형성돼 있다. 모양을 만들어내는 것도 어려운데, 바람 움직임에 따라 한 올 한 올 다 다르게 움직인다. 생각할 부분이 많은 거다.
임창의 : 3D 그래픽스라는 게 기본적으로 점에서 시작한다. 점을 연결해서 면을 만들고, 이 면으로 전체 모형을 만든다. 결국, 하나하나의 면적이 데이터양을 결정하게 되는데, 머리카락은 한 올 한 올이 면인 거다. 그게 한두 개가 아니라 수백만 개가 있는 거다. 데이터양이 많다 보니 그걸 계산하는데 많은 시간과 많은 메모리가 필요하다. 그러므로 전혀 다른 방식의 기술이 들어가야 하는 거다.
웨타 디지털 최종진 시니어 라이팅 테크티컬 디렉터
Q. 한국의 기술력은 어느 정도라고 보는가.임창의 : 훌륭한 기술력을 가지고 있지만, 결국 예산 차이다. 실력과 기술력 차이보다 규모에서의 차이가 더 큰 것 같다.
최종진 : 기술력으로 따지면, 웨타에서 사용하는 기술 중 한국 중소업체에서 개발한 기술도 있다. 또 웨타 디지털의 한국인 비중이 다른 나라와 비교했을 때 꽤 높은 편이기도 하다. 결국은 자본이다.
Q. 웨타 디지털의 경우 R&D 비용을 엄청나게 많이 쓴다고 들었다. 이것만 봐도 규모의 차이가 있겠다.
임창의 : 영화에 따라 다른 기술이 필요하다. 엄청난 걸 만들었다고 항상 쓰는 건 아니다. 끝내주게 털을 만들었으니까 이걸 팔자, 이런 게 아니다. 이건 이걸로 끝나는 거다. ‘혹성탈출’ 3편이 또 만들어진다면, 2편의 기술은 쓰지 않는다. 거의 일회용이라고 보면 된다.
최종진 : 여기서 일하면서 가장 힘든 부분인 것 같다. 이 영화를 하고 나면 전혀 다른 걸 배워야 한다.
Q. ‘아바타’도 당시엔 혁명이라고 했는데, 지금 ‘혹성탈출2’와 비교하면 어느 정도인가.
임창의 : ‘아바타’와 ‘혹성탈출2’의 기술력 차이를 차로 비교했을 때 마티즈와 그랜저 정도 될 것 같다. 당시엔 최신 기술이 쓰였지만, 그 이후 끊임없이 기술개발을 해 왔다. 기술력의 차이로 본다면 그 정도라고 말할 수 있다. 추가로 ‘아바타’는 외계행성에서 일어나는 이야기고, ‘혹성탈출’은 실제 지구 환경 내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다. 그래서 좀 더 실사적인 리얼리티를 요구한다. 그만큼 더 많은 기술, 노력, 인력이 투여됐다. `
Q. 앞으로 이쪽 계통을 꿈꾸는 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최종진 : 원론적인 건데 자기가 정말 좋아서 하지 않으면 힘들 것 같다. 화려해 보이지만, 일의 강도가 세다. 유학생 100명 있다면, 소수만이 취업할 수 있고, 그중 극소수만이 메이저를 갈 수 있는 현실이다. 그래서 밤샘 작업을 해도 힘들지 않다고 할 정도로 즐겁게 일을 할 수 있는지 자신한테 물어봤으면 좋겠다. 재능이 중요하지만, 노력만으로도 가능하다. 나 역시 미술전공을 하지 않았고, 26~27살 때 유학을 가게 됐다. 또 자동차 회사를 그만둘 정도로 이 일을 사랑했기 때문에 시련의 과정을 겪어 나갔던 것 같다. 재밌겠다는 생각만으로는 할 일은 아닌 것 같다.
글. 황성운 jabongdo@tenasia.co.kr
사진제공. 올댓시네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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