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수목드라마 ‘운명처럼 널 사랑해’(이하 운널사)가 본격적인 닻을 올린다. 모든 것을 다 가진 완벽한 남자 이건(장혁)과 평범보다 더 못 미치는 듯 답답하고 안쓰러운 여주인공 김미영(장나라)은 겨우 2회 만에 임신을 하더니 4회 만에 결혼에 골인, 빤한 신데렐라 형 스토리를 예상했던 이들에게 한 방을 먹이는 것에 성공한다.

제목만 들어서는 달콤한 운명적 사랑을 그릴 정통 로맨스의 분위기가 물씬 느껴지는데, 이 드라마는 역설적으로 두 남녀의 ‘원나잇 스탠드’와 ‘속도위반’ 임신에서 시작된다.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으나 결국 벌어지고 만 사고가 전혀 알지 못했던 두 남녀를 가족이라는 떼놓을 수 없는 강력한 끈으로 묶어버리니, 다시 생각해보면 운명이 아니고는 설명할 수 없는 일이긴 하다.

그렇게 또 다른 시각을 제시한 드라마 ‘운널사’는 초반부터 눈도장도 확실히 찍는 것에 성공한다. 파닥파닥 활어 같은 매력으로 이건을 표현하는 장혁의 변신과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캔디형 캐릭터를 능청스럽게 소화하는 장나라의 여전한 매력이 큰 공을 했다.

‘선 임신, 후 로맨스’라는 파격적인 콘셉트를 재치있고 쫀득하게 묘사한 제작진도 큰 몫을 했다. 이들은 국내 드라마 베드신 계(?)에 다시 없을 떡방아 신을 만들어내고 말았다.

이렇듯 남다른 드라마 ‘운널사’의 매력은 시청률 수치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을 듯 하다. 그래서 준비한 ‘운널사! 매력탐구’.

‘운명처럼 널 사랑해’(왼쪽)와 ‘명중주정아애니’ 포스터

‘운널사’의 제작사, 넘버쓰리픽쳐스의 김미나 대표는 어느 날 우연히 케이블채널에서 방영하던 대만 드라마 ‘명중주정아애니’를 보게 된다. 우연히 보게 된 드라마는 한국 드라마에 비해 다소 촌스러워 보이는 색감이나 영상 등에도 불구하고 묘하게도 계속 볼 수밖에 없는 매력이 있었다. 결국 김미나 대표는 1회부터 최종회까지를 다 보게 되었다. 김 대표는 이후 이 드라마를 페이지원 필름의 정재연 대표에게 추천했다. 정 대표 역시 3일 만에 이 드라마의 전편을 다 보게 됐다.

두 사람 모두 “이 드라마는 단순히 즐겁게 볼 수 있는 로맨틱코미디 물 이상의 힘이 있는 작품”이라는 것에 의견을 같이 했다. 어느 날 우연히 마주쳐 예상치 못한 하룻밤을 보내고 만 두 남녀 주인공이 덜컥 임신을 하게 되고, 또 결혼에 이르게 된 뒤에서야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드라마는 두 남녀간의 이야기 뿐 아니라 가족에 대해서도 다시 한 번 생각해볼 여지를 마련해준 작품이었다.

가족은 한국 드라마가 버리지 못하는 코드 아닌가. 원작 이상의 세련된 색감을 입히면서도 시차와 공간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공감을 얻을 수 있는 드라마를 만들 수 있겠다는 판단이 섰다.

정재연 대표는 대만의 TTV에 판권 구매 의사를 밝힌 이후의 반응을 들려줬다. “대만에서는 일본 드라마의 리메이크를 많이 하거나, 한국 드라마를 많이 방영하던 시기였던터라 우리 쪽의 제안에 꽤 놀라워하는 눈치였습니다. 그런데 동시에 작품에 대한 자부심도 대단했죠.”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이 드라마는 방영 당시 대만의 국민 드라마 반열에 오를 만큼 엄청난 인기를 구가했고, 작품성 면에서도 높은 점수를 받았던 작품이다. 그렇게 일본 드라마에 비해서는 조금 낯설었던 대만 드라마의 리메이크에 시도하게 된 ‘운널사’ 제작진. 원작이 훌륭했지만, 원작 이상의 것을 만들 자신도 있었다고 말하는 이들은 ‘명중주정아애니’를 국내화 시키는 작업에 들어간다.

그렇다면 ‘명중주정아애니’는 어떤 변화를 거쳐 ‘운명처럼 널 사랑해’가 되었을까. 전체적 줄거리는 거의 동일하지만, 캐릭터의 성향이나 일부 설정들에 변화를 줬다.

‘운널사’ 속 장혁과 ‘명중주정아애니’의 원경천(왼쪽부터)

#1. 캐릭터가 다르다, 달라도 확실히 다르다

가장 변화가 확실한 지점은 주인공 이건과 김미영의 캐릭터다. 원작 남자주인공 지춘시와 이건의 성격은 180도 다르다. 지춘시는 다소 진지하고 얌전한 성격인 반면, 장혁이 표현하는 이건은 확실한 개성을 가진 인물이다. 독특한 표정이나 다소 과장된 행동이 그의 특징. 제작진은 1회 오프닝부터 이런 이건 캐릭터를 강조하는 샴푸 광고 에피소드를 새롭게 그려넣는 등, 캐릭터의 매력을 강조하는 장치를 적극 활용했다. 과장된 이건 캐릭터의 설정은 극을 더욱 코믹스럽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 기대가 되는 대목은 마치 극 위에 떠있는 듯 다른 캐릭터에 비해 활력이 10배는 더 넘치는 이건 캐릭터가 본격적인 멜로가 진행된 뒤 보여줄 변화다.

김미영의 캐릭터는 성향이 아니라 성격에 변화를 뒀다. 원작의 천신이는 뻔뻔하게도 “돈을 빌려달라”는 요구를 아무렇지 않게 하거나 그러면서도 다른 여자에게 한 눈을 파는 등, 나쁜 남자임이 확실한 남자친구의 속임수에 속는 다소 아둔한 인물로 그려지는 반면, 한국의 김미영은 완벽하게 두 얼굴을 가진 남자친구에게 깜빡 속고마는 불운한 인물로 그려진다. 또 원작에서는 첫 여행길에서 천신이가 남자친구와의 하룻밤을 준비하기 위해 섹시한 란제리를 구입하는 모습이 그려지는 반면, 김미영은 남자친구와 함께 떠난 여행에 어색해하는 등, 순수한 모습이 강화됐다. 또 원작에서는 회사 안에서 ‘포스트잇 걸’로 불리며 다른 사람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는
맹꽁이로 그려지는 반면, 김미영은 다른 사람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는 것에 더해 길거리에서 우연히 만난 사람들마저도 다 도와줘야만 하는 착하면서도 오지랖이 넓은 캐릭터로 그려진다.

원작 ‘명중주정아애니’ 속 첫만남과 ‘운널사’의 첫 만남(왼쪽부터)

#2. 첫 만남도 달랐다

처음 만난 순간도 달랐다. 원작에서는 천신이와 지춘시는 여행을 떠나는 크루즈 안에서야 처음 얼굴을 대면하게 된다. 그것도 찰나에 그친다. 배에 오르려고 허둥대던 천신이는 지춘시를 보지 못해 부딪히게 되고 넘어지려는 천신이의 허리를 꺾어 안아 올린 것이 바로 지춘시다. 그 순간, 마치 꿈 속 왕자님이라도 본 듯 천신이는 한 눈에 반하고 말지만, 지춘시 앞에 초라한 천신이는 장애물일 뿐이다.

반면, 한국의 이건과 김미영은 여행에 오르기 전 한 쇼핑몰에서 마주치게 된다. 이건은 마침 여자친구에게 청혼을 하려고 반지를 손에 쥐고 있었고, 그러던 차 김미영과 부딪히게 되면서 반지를 잃어버리게 된다. 함께 반지를 찾아 나선 두 사람. 결국 그 반지는 기묘하게도 또 운명처럼 김미영의 손가락이 그 주인이 되고 만다.

마치 운명을 상징하는 복선과도 같은 첫만남이 한국판을 통해 그려졌다. 이와 관련, 이동윤 PD는 “두 남녀가 마카오 여행에서 하룻밤을 함께 보내게 되지만 원작에는 없는 한국에서의 운명적인 만남을 그려넣었다”며 “운명적으로 만날 수밖에 없는 사이란 걸 강조하기 위해 몇 가지 장치를 했다”고 설명했다.

‘운널사’가 떡방아로 표현한 베드신, 그리고 대만에서는 청혼까지 이르는 베드신

#3. 결정적으로 베드신의 표현도 달랐다

같은 맥락에서 베드신으로 이르는 과정도 달랐다. 원작에서는 감기에 걸린 천신이는 감기약을 먹고, 지춘시는 이상한 약을 먹은 뒤 방에 들어서게 되면서 제 정신이 아닌 상황에서 하룻밤을 보내게 되는 것으로 묘사된다. 한국의 ‘운명처럼 널 사랑해’의 경우, 둘 모두 약을 먹고 하룻밤을 보내게 되는 것으로 그려지는 것이 결정적 차이다. 여자에 대한 상대적으로 보수적인 한국의 정서를 반영한 것이다.

베드신의 표현 수위도 대만이 훨씬 세다. 대만의 경우, 두 남녀의 베드신 사이사이 로켓이 발사를 한다거나 터널 속으로 기차가 달려가는 등의 영상이 뒤섞여 있는 형태이며, 남자 주인공 지춘시가 아직 그 정체를 알 길 없는 천신이를 여자친구라 오해하고 반지를 끼어주며 청혼하는 장면이 함께 있는 것도 결정적 차이다.

또 국내버전은 베드신에 대한 묘사는 전혀 없으며 떡방아 신만이 이들의 하룻밤을 암시할 뿐이다. 반응은 그 어떤 베드신보다 더 호의적이었다. 재치있으면서도 유머러스하게 표현된 떡방아 신에 대해 네티즌의 반응이 뜨거웠고 자극적인 수위가 허락되지 않는 지상파 안방극장에도 잘 어울린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었다. 또 이 장면이 드라마 전체 홍보에도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내부적으로도 평가하고 있다.

글. 배선영 sypova@tenasia.co.kr
사진제공. ㈜넘버쓰리픽쳐스/페이지원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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