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도직입적인 질문. 당신은 낙원상가에 자리한 서울아트시네마에 가 본적이 있는가. 없다면, 이 글은 당신에게 별 관심이 없을 가능성이 99.999%일 거다. 하지만 살다보면 한번 쯤 들여다봐야 하는 것들이 있다. 그것이 우리의 관심으로 바뀔 수 있는 것이라면 더욱 그러하다. 그러니까 이 글은 당신이 별 관심은 없지만, 알았으면 하는 서울아트시네마에 관한 이야기다.

서울아트시네마는 서울 유일의 민간 비영리 시네마테크다. 시네마테크는 영화(cinema)와 도서관(bibliotheque)의 합성어다. 즉, 서울아트시네마는 영화도서관으로 기능하며 과거와 현재를 이어왔다. 이 땅위의 많은 감독들이 이곳에서 영화에 대한 꿈을 품었다. 극장주들이 수지타산이 안 맞는다며 외면한 좋은 영화들이 상영의 기회를 얻었다. 관객들은 영혼을 살찌웠다. 여기에 흘러넘친 감동의 눈물만 모아도 1.5리터 페트병 수십 개는 채울 수 있을게다.

문제라면, 이런 활동을 마음 놓고 펼칠 공간이 부재하다는 점이다. 낙후된 극장 시설 때문에 서울아트시네마는 2006년부터 문화체육관광부, 영화진흥위원회, 서울시 등에 시네마테크 지원과 상영관 마련을 꾸준히 요청했다. 하지만 반응은 뜨뜻미지근했다. 전용관 건설에 대한 논의는 몇 번 있었지만, 다른 사안(도대체 얼마나 엄청난 사안?)들에 떠밀려 번번이 무산됐다.

심지어 2010년에는 서울아트시네마의 주인을 새로 공모하겠다는 영화진흥위원회의 압박까지 있었다. 음모론! 음모론! 이를 둘러 싼 음모론으로 한바탕 시끄러웠다. 그래서였다. 서울아트시네마가 아트선재센터에서 낙원동으로 셋방살이마냥 전전한 것은. 세계적 메트로시티 서울에 번듯한 건물을 지닌 시네마테크 하나 없다는 건 부끄러운 일이다.

시네마테크 전용관 건립 기금 마련을 위해 노개런티로 CF에 출연했던 영화인들

위기의 순간마다 힘을 보탠 것은 박찬욱, 봉준호, 김지운, 류승완, 최동훈 등 ‘친구들’이었다. 고현정 원빈 소지섭 송승헌 김혜수 등 배우들도 뜻을 함께 했다. 영화감독들과 배우들은 전용관 건립기금을 마련하기 위해 노 개런티로 맥주 CF에 출연했다. 캠페인 화보도 찍었다. 그렇게 삼삼오오 모인 후원기금 덕분에 세계 유수의 아름다운 영화들이 국내에 소개될 수 있었다. 하지만 ‘친구들’이 힘써 준 기금만으로 서울아트시네마의 1년을 운영하기란 여간 빡빡한 게 아닐 수 없다. 이젠 그 기금도 거의 바닥을 드러낸 상태. 국가의 지원이 필요한 이유다.


시네마테크 건립은 하는데, 서울아트시네마 지원을 안 하겠다?

그런 서울아트시네마는 지난 2013년, 천국과 지옥을 오갔다. 먼저 찾아 온 것은 천국이었다. 지난 해 서울시는 전용관 지원 조례안에 따라 시네마테크 공간 마련에 앞장서겠다고 밝혔다.(그나마 박원순 시장은 문화에 대한 관심이 높았다.) 아, 천국의 맛.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서울시는 5,000㎡ 규모의 시네마테크 건립을 추진하겠다는 의사를 밝혔으나, 정작 서울아트시네마는 지원 대상에서 제외시켰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제.외.시.켰.다.

아무리 이해해 보려 해도 넌센스다. 10년 넘는 시간 동안, 난관에 꿋꿋이 맞서며 일궈온 전문성과 역사가 있는 서울아트시네마를 제외하겠다는 것 자체가 넌센스다. 이를 대신할 경험 있는 사업자가 있을리 만무하지만, 설령 있다 하더라고 역사의 현장을 외면한다는 게 쉽게 이해가 안 된다. 잘못 끼워진 첫 단추가 될 것이 자명하다. 아니나 다를까. 예산을 마련해 2014년 3월부터 설계 용역을 시작하겠다던 서울시의 계획은 표류중이다. 내일 모레면 3월이 지나 4월이 되는데 말이다.

서울아트시네마 지원 청원이 이루어지고 있는 서울시 홈페이지

시네마테크 건립과 관련, 서울시가 2013년에 내놓는 말은 이러하다. “시네마테크 건립 필요성, 재원 확보 방안 등 여러 과제를 신중하게 검토해 실현 가능한 방안부터 연차적으로 추진하겠다” 그렇다면 묻고 싶다. 가장 쉽게 실현가능한 방법이 눈앞에 있는데 왜 멀리 돌아가려고 하느냐고. 전용관이라는 게 1,2년 뚝딱 하고 만들어지는 게 아니다. 멋들어진 건물로 출발하다면 좋기야하겠지만, 그것이 당장 힘들다면 현재 시네마테크 임무를 잘 수행하고 있는 서울아트시네마를 먼저 돌보는 게 효율적이다. 눈앞의 재목을 두고 계속 새로운 건물 건립에만 매달리니, 예산은 예산대로 커지고 시간을 시간대로 낭비되는 실정이다. 그 사이 서울아트시네마의 살림은 심각하게 쪼들리고 있다.

문화는 축적되는 것이지 하루아침에 뚝딱 지어지는 게 아니다.

일련의 상황을 보면 정책을 행하는 자들이 영화라는 메커니즘을 과연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가 하는 의문이 안 들 수가 없다. 문화는 축적되는 것이지 하루아침에 뚝딱 지어지는 게 아니다. 영화는 영화 그대로여야지, 영화쇼가 되어서도 안 된다. 역사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고 개발논리만 앞세우는 것은 전시행정에 대한 오해의 불씨를 남기기에 충분하다.

하긴, 그러고 보니 우린 안현수가 러시아에 귀화 하도록 내벼려 둔 나라다. 그가 러시아로 귀화한 진짜 이유에 대해서는 말들이 많지만, 확실한 건 있다. 부상선수에 대한 빙상연맹의 배려가 부족했단 것과 가능성을 믿고 알아보는 지도자들의 안목이 부족했다는 것이다. 실력도 좋고 경험도 많지만, 그것을 사용할 곳이 없었던 안현수는 자신의 가치를 알아주는 러시아로 떠났다. 하지만 서울아트시네마는 떠날 곳도 없다. 안현수를 잃은 것은 인재를 잃은 것이지만, 서울아트시네마를 잃는 것은 문화 영혼을 잃는 것이다. 더 이상 늦지 않길 바란다. 그러기 위해 바로 여기, 서울시 홈페이지로 가서 서울아트시네마에 대한 지지를 보내주길 바란다. 다행히 박원순 시장은 이전 시장들 보다 들을 준비가 되어 있(다고 믿는)다.

글. 정시우 siwoorain@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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