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지현에게 전성기를 되찾아준 영화 ‘도둑들’의 최동훈 감독은 이런 말을 했다. “영화를 한 번 본 이들은 전지현을 이야기하고, 두 번 이상 본 이들은 김혜수를 이야기한다.”
현재 방송 중인 SBS 수목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이하 별그대) 역시 마찬가지다. 드라마를 처음 본 순간 도드라져있는 것은 천송이 역의 전지현이다. ‘도둑들’ 속 예니콜과 닮은 듯 다른 그 배역은 전지현에게 날개옷이 되었다. 그런데 이 드라마를 반복해서 보면 그런 전지현이 날 수 있도록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는, 도민준 역의 김수현이라는 배우가 뿜어내는 깊이가 눈에 들어온다. 의젓하게 뒤를 받치고 있는 그의 힘은 은근하면서도 세차다.
그러나 이것은 전지현이 더 특출나다는 이야기이거나 김수현이 더 대단하다는 이야기와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전지현은 톡톡 튀어다니는 천송이라는 캐릭터에 딱 맞는 연기를 하고 있고, 김수현은 400년이라는 긴 삶을 살아낸 도민준이라는 배역의 깊이에 꼭 맞는 연기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니까. 두 배우 모두 각자의 배역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매끄럽게 소화한 프로페셔널이다.
그렇지만 우리가 잊고 있었던 것, 김수현이라는 배우가 이제 겨우 스물 여섯이라는 점을 돌이켜보면 새삼 그의 존재가 놀랍다. 배우의 크기를 나이로 재단할 수는 없지만 연기라는 것이 결국은 살아온 삶의 크기와 비례한다는 점에서 미루어본다면 아직 어린 그가 가진 내공은 놀라울 수밖에 없다. 그렇다. 도민준의 얼굴을 보고 있으면 그를 표현하는 배우가 아직 이십대 중반의 어린 배우라는 것이 새삼스럽다. 강단에 서서 강의를 하는 교수가 되었다가, 정체모를 외계인이 되어 어지러운 서울을 누볐다가, 조선시대로 훌쩍 떠나 갓을 쓰기도 하는 이 희한한 캐릭터를 그는 균형감을 갖고 표현해낸다.
김수현이 특별한 이유는 그가 가진 날카로움과 부드러움이 공존하는 견고한 개성이 이미지의 한계가 되기 보다 풍요로운 드라마를 만들어낸다는 점에서다. 그는 자신이 가진 묘한 개성(분위기)으로 호흡을 뿜어내고, 그 호흡을 다시 이야기로 만들어낼 줄 안다. 그래서 김수현은 별에서 온 외계인이나 바보를 가장한 간첩과 같은 캐릭터와 퍽 잘 어울리는 것도 같다.
김수현은 그가 가진 탁월한 재능으로 또래 배우 중에서도 독보적인 팬덤을 가지고 있다. 그는 많은 흠집이 있었던 영화 ‘은밀하게 위대하게’ 조차도 온전히 그가 연기하는 캐릭터의 힘으로 700만명에 가까운 관객을 끌어모았다. 그의 압도적인 존재감이 브라운관, 스크린의 경계를 넘어 관객에까지 온전히 전달되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토록 노련한 젊은 배우는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배부른 느낌을 알게 해준다. 앞으로 그가 더욱 크게 성장할 것에 확신이 들고, 그 모든 과정을 온전히 지켜볼 수 있기 때문이다.
글. 배선영 sypova@tenasia.co.kr
사진제공. 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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