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큰롤라디오 피쳐사진 2013년 서교동20
로큰롤라디오 피쳐사진 2013년 서교동20
(part1에서 이어짐) 아현직업학교(현 아현정보산업학교)는 실용음악과에 한해 타 인문계 고등학교 2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2년제 위탁교육 시스템이 있다. 2학년 때는 한 달에 한 번, 3학년 때는 일주일에 한 번 모교로 출석해 수업을 받고 시험까지 치르는 흥미로운 제도다. 4기생인 최민규, 이민우, 김진규는 이 위탁교육을 통해 고교시절의 방황을 극복해 뮤지션으로 성장한 성공적 사례다. 일본 록을 좋아했던 최민규, 이민우와 영미권 음악에 관심이 많은 김진규는 서로 음악 취향이 달랐지만 수업을 위한 밴드 활동을 통해 친해졌다.

로큰롤라디오에게 YB(윤도현밴드) 테크니션 활동은 일종의 인큐베이터 역할을 했다. 김진규가 고2 때 가장 먼저 테크니션으로 들어갔다. “2년 정도 YB 테크니션을 했던 형의 소개로 들어갔습니다. 고3 여름에 YB측에서 팀을 만들어보라고 해 친하게 지냈던 학교친구 5명을 소개해 함께 일했습니다. 테크니션은 공연 전에 악기들을 들어주고 기타 줄을 튜닝하고 교체해 주는 헬퍼라 보시면 됩니다. YB 멤버들이 방송출연 때도 미리 악기를 세팅해 편하게 연주하도록 도와주다 보니 저희들의 음악 실력도 부쩍 늘더군요.”(김진규)

YB 테크니션 시절 공연 후 단체 사진
YB 테크니션 시절 공연 후 단체 사진
YB 테크니션 시절 공연 후 단체 사진

공연 횟수에 따라 수고비를 받았던 이들은 하루 세 번 씩 서울과 지방을 도는 강행군을 통해 밴드 합을 맞췄다. 김진규, 최민규, 기타 박석호, 건반 손유미와 밴드 그루브에 있던 이민우는 혼성 5인조 김진규밴드를 결성했다. 처음 밴드 이름을 듣자마자 빵 터졌다. 재미난 스쿨밴드들의 이름을 숱하게 접했지만 당돌하게 멤버의 이름을 넣은 고교 스쿨밴드는 처음이었기 때문. “김진규밴드는 졸업 작품을 위해 결성했습니다. 윤도현밴드 영향을 받아서인가 진규 이름으로 밴드를 만드는 것이 재미있어 반대하지 않았습니다.”(최민규)

김진규밴드는 4인조 밴드 프리즌(감옥), 고고비트, 로큰롤라디오의 모태가 되었다. 2003년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들은 여성 건반주자가 빠진 4인조 밴드 프리즌으로 거듭났다. 2004년 군 입대와 진학 등 복합적인 이유로 최민규와 이민우가 YB 테크니션을 그만두었고 밴드 프리즌은 기타 박석호에 이어 2005년 나머지 멤버들의 군 입대로 활동을 중단했다. “지인을 통해 YB 테크니션에 빈자리가 생겼다는 소식을 듣고 2년 정도 일했습니다. 그때 진규형과 멤버들을 처음 만났지만 친하게 지내지는 않았습니다.”(김내현)

김내현 초등학교 시절 동생과 노래방에서, 취학 전 음악학원 발표회에서 바이올린 독주 및 합주 모습, 일산 중산고 시절 연합밴드 비아그라 리드보컬 공연 모습(왼쪽 위부터 시계방향)
김내현 초등학교 시절 동생과 노래방에서, 취학 전 음악학원 발표회에서 바이올린 독주 및 합주 모습, 일산 중산고 시절 연합밴드 비아그라 리드보컬 공연 모습(왼쪽 위부터 시계방향)
김내현 초등학교 시절 동생과 노래방에서, 취학 전 음악학원 발표회에서 바이올린 독주 및 합주 모습, 일산 중산고 시절 연합밴드 비아그라 리드보컬 공연 모습(왼쪽 위부터 시계방향)

김내현은 서울 화곡동에서 교육자 집안의 2남 중 장남으로 1986년 9월 29일 태어났다. 통기타를 좋아했던 아버지를 따라 어린 시절부터 공연장에 따라다녔던 그는 자유롭게 음악을 접할 수 있는 환경에서 성장했다. “없는 살림에도 불구하고 부모님은 저에게 악기 하나 정도는 만지게 해주시려 노력하셨던 것 같아요. 취학 전에는 동네 음악학원에서 바이올린을 초등학교 때는 첼로를 배웠는데 정작 저는 별 흥미가 없어 지금은 만질 줄도 모릅니다.(웃음)”(김내현) 어린 시절 유독 겁이 많아 집 밖으로는 나가지도 않았던 그가 활동적으로 변한 것은 안양 박달초등학교 입학 이후 광적으로 축구에 빠져들면서부터. “제 꿈은 원래 축구선수였어요. 반대하셨던 엄마 몰래 엄청 연습했었죠. 공격수인 윙을 하고 싶었는데 감독님이 달리기가 느리다는 이유로 수비만 시켜 그만두었습니다.”(김내현)

초등학교 당시 김내현은 당시 주가를 올리던 서태지와 아이들의 노래를 주로 듣던 또래들과 달리 특이하게도 강산에의 음반을 즐겨 들었다. “96년 연세대 노천강당에서 열렸던 사전검열 폐지를 위한 공연 ‘자유’에 갔었는데 넥스트, 시나위 같은 록밴드 무대를 처음 보았습니다. 그때 김세황씨가 웃통을 벗고 날아다니는 걸 보면서 TV에 나오는 가요보다 밴드가 훨씬 멋있다는 걸 알게 되었죠.”(김내현) 일산 오마초등학교 6학년 때 집에서 아버지가 듣고 있던 너바나의 ‘네버마인드’ 앨범을 보았다. 물속에서 수영하는 벌거벗은 아기의 커버가 너무 재미있어 혼자서 듣곤 했다. 밴드음악에 관심이 지대해진 그도 선생 혼자 모든 악기를 가르쳐준 골방 같았던 동네 음악학원에서 통기타를 배웠다.
로큰롤라디오 피쳐사진 2013년 서교동25
로큰롤라디오 피쳐사진 2013년 서교동25
1999년 오마중 2학년 때, 영화 메트릭스 1편을 보다 엔딩 크레딧과 함께 흘러나오는 밴드 RATM(Rage Against The Machine)의 노래 ‘웨이크 업(Wake Up)’을 듣고 처음으로 밴드를 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 노래를 기타로 쳐보고 싶었지만 학원선생은 노사연의 ‘만남’ 같은 가요 주법만 알려주어 때려치웠다. 이후 아버지에게 기타를 조금 배운 후, PC통신 나우누리 기타 동호회에서 악보를 다운받아 독학으로 기타를 익혔다. “아버지가 학교시험에서 평균 90점이 넘으면 일렉트릭 기타를 사주겠다고 미끼를 던지시더군요. 살면서 처음으로 코피가 터져가며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결국 90점을 넘겨 가와사미 일렉트릭 기타를 선물로 받아 뿌듯했었습니다.”(김내현) 친구들과 이름도 없는 밴드를 만든 그는 닥터코어 911, 콘 같은 당시 유행하던 하드코어 음악을 카피하며 합주를 시작했다.

2000년 중3이 된 김내현은 아버지를 따라 영국 런던 인근의 콜체스터에서 1년 간 거주했다. 고1 여름에 귀국할 때까지 현지 친구들과 어울리며 록의 본고장 음악을 접했다. 2003년 일산 중산고 졸업반이 된 그는 중학교 때 함께 밴드를 했던 친구들과 일산 고교 연합 5인조 밴드 비아그라를 결성해 일산지역 고교 축제무대에 올랐다. “슬래쉬 메탈 같은 강력한 음악을 하고 싶었지만 발라드 하는 아이들 밖에 없어 처음으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김내현) 밴드 비아그라는 멤버들의 입시준비로 흐지부지되었지만 중앙대 청소년학과 수시 1차에 합격했던 김내현은 YB 테크니션으로 들어가 음악활동을 이어갔다.

최민규 군악대 시절 어린이 관련 풍선 행사 길거리 행진. 오른쪽은 아버지(좌), 4인조 밴드 프리즌 시절 최민규 이민우
최민규 군악대 시절 어린이 관련 풍선 행사 길거리 행진. 오른쪽은 아버지(좌), 4인조 밴드 프리즌 시절 최민규 이민우
최민규 군악대 시절 어린이 관련 풍선 행사 길거리 행진. 오른쪽은 아버지(좌), 4인조 밴드 프리즌 시절 최민규 이민우

대학진학을 위해 YB 테크니션을 그만 둔 최민규는 삼수 끝에 2005년 여주대학 실용음악과에 입학한 후 1학기 마치고 육군 특전사 사령부 군악대에 들어갔다. “의식행사나 다양한 군 유흥행사에서 대고, 심벌, 스네어 세트 드럼 등 다양한 타악기를 경험할 수 있어 재미있었습니다. 이등병 때 대고를 메고 행사를 나갔다가 지휘자가 장군에게 경례를 하는 스타마치를 할 때 북을 쳐버리는 큰 실수를 해 군악대가 뒤집어 졌던 기억이 납니다.(웃음)”(최민규) 군 복무를 마친 최민규, 김진규, 이민우는 2008년 3월 밴드 고고비트를 결성해 홍대 클럽 FF와 사운드홀릭에서 활동을 시작했다.

2006년 휴학하고 군에 간 김내현은 2008년 말 제대해 복학해 5인조 밴드 앙티로망의 리드보컬로 들어갔다. 몇 달 후 기타 치는 멤버와 트러블이 생겨 밴드에서 나온 시점에 고고비트도 해산했다. “YB 시절에 친하게 지냈던 진규형이 휴가 나왔을 때 밴드가 깨지면 꼭 같이 해보자고 작당했었는데 진짜 거짓말처럼 두 밴드가 다 깨져버렸습니다.”(김내현) 고고비트는 멤버 간에 트러블이 생겨 2009년 8월에 해체했다. 카리스마를 지닌 리더겸 보컬 김진규가 밴드에서 쫓겨나는 사태가 발생했던 것. “당시 독단적인 진규에게 멤버들이 반기를 들었죠. 서로 대화로 풀어야 했데 어긋났습니다. 그 후 기타 쳤던 친구도 탈퇴해 밴드가 깨져버렸습니다.”(최민규) “제가 보컬인데 몸매 같은 비주얼 관리를 전혀 하지 않아 멤버들이 싫어했습니다.”(김진규) 밴드에서 쫓겨나 큰 상처를 받았던 김진규는 반년동안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이래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1년 정도하면서 마음을 잡았습니다. 그때 음악을 많이 들었던 것 같습니다.”(김진규)

5인조 혼성 김진규밴드 아현직업학교 시절 공연 사진
5인조 혼성 김진규밴드 아현직업학교 시절 공연 사진
5인조 혼성 김진규밴드 아현직업학교 시절 공연 사진

1년 6개월의 시간이 흐른 2011년 3월 아현직업학교 동기인 디어 클라우드 드럼 김광석의 결혼식장에서 멤버들은 다시 만났다. “결혼식장에 갔는데 진규가 있더군요. 뻘쭘하고 껄끄러웠지만 담배 한 대 피면서 서로 평생 안볼 걸로 생각했던 마음이 누그러졌습니다.”(최민규) 당시 김내현은 밴드 앙티로망에서 나온 후 연락을 하며 지냈던 김진규와 2인조 밴드 버닝 플라워스를 결성해 1년 동안 데모 작업했었다. CD를 여기저기 돌려봤는데 아무 반응이 없어 좌절하고 있던 찰라 결혼식에서 멤버들과 다시 만났던 것.

“꿈에 애들이 나와서 연락이 올 것 같았다”고 말하는 최민규는 예식장에서 데모를 받아 들어본 후 김진규에게 연락해 밴드 재결성 의사를 밝혔다. 김진규는 “일단 만나서 이야기해보자.”고 했다. 김내현은 “고고비트 해산 과정을 봤던지라 왠지 합치자고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저는 상관없었어요.”라고 당시를 기억한다. 처음 밴드 재결성 이야기가 나왔을 때, 이민우가 반대했지만 최민규가 밀어 붙었다. “데모 음반에 정규앨범 마지막 곡 눈동자가 있었는데 느낌이 참 좋았습니다. 진규에게 곡을 쓸 자신이 있냐고 했더니 있다고 했고 실제로 내현이가 노래를 잘하는 걸 알기에 밀어붙였죠.”(최민규)
로큰롤라디오 피쳐사진 2013년 10월 24일 2
로큰롤라디오 피쳐사진 2013년 10월 24일 2
이후 6개월 동안 멤버들은 아르바이트로 돈을 모아 기타, 앰프, 드럼을 구입해 9월 말쯤 고고비트 때 싱글 곡 ‘로큰롤라디오’란 이름으로 뭉쳤다. 사실 밴드 결성 후 이들은 수많은 오디션 프로그램에 지원을 했지만 음원심사도 통과하지 못했다. “음원심사에 탈락하면 일주일에 5일은 기본으로 밴드 연습과 곡의 구성을 새롭게 편곡했고, 4일 정도는 클럽공연에서 편곡한 곡들의 반응을 살펴봤습니다.”(이민우) “시행착오 과정을 거치며 자연스럽게 우리만의 스타일을 찾은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 정도로 많은 분들의 관심을 받게 될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습니다.”(최민규)(part3으로 계속)

글, 사진. 최규성 대중문화평론가 oopldh@naver.com
사진제공.로큰롤라디오
편집. 권석정 moribe@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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