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조민기를 만나본 사람들은 그가 지닌 유쾌하고 선한 분위기를 좋아한다. 기자와 인터뷰를 할 때도 그랬다. 인터뷰 콘셉트가 ‘악역 특집’인 만큼 사진 촬영중 ‘심각한 표정과 어두운 느낌’을 주문했지만 그는 갈고 닦아온(?) 댄스 실력을 과시하면서 촬영 내내 스튜디오를 웃음바다로 만들었다.Q. MBC ‘투윅스’의 문일석은 기존의 악역과는 달리 잔인하면서도 겉으로는 세련된 이미지가 강한 인물이다.
이처럼 쾌활함과 자상함을 겸비한 그가 ‘악역 전문 배우’로 불릴 만큼 특히 최근작 (MBC ‘에덴의 동쪽’ ‘욕망의 불꽃’ SBS ‘대풍수’)에서 주로 악당으로 활약해 온 점은 배우로서의 연기력을 실감할 만한 대목이기도 하다.
지난 7일 첫 방송을 시작한 MBC 수목드라마 ‘투윅스’에서도 그는 여지없이 악역을 맡았다. 그가 분한 조직폭력배 출신의 사업가 문일석은 내연녀를 죽이고 자신의 조직원인 장태산(이준기)에게 살인 누명을 뒤집어씌우는 등 악행의 끝을 보여주는 인물이다. 이쯤 되면 무척 궁금해진다. 근 5년간 쉴 틈 없이(?) 악역을 연기하면서 쌓아온 나름의 노하우나 특별한 악역 철학은 무엇일지 말이다.
조민기: 지방 출신 건달이지만 나름대로 서울에 와 기업인으로 성공하고 싶은 욕심이 많아 스스로 퀄리티를 높여가는 인물이다. 선악을 떠나 입신양명을 꿈꾸면서 나름대로 자존심도 센 인물이라는 점이 새롭고 흥미로웠다. 또 여러 악역을 해 봤지만 실제 내 손으로 사람을 해친 연기를 한 건 처음이었다.
Q. 누군가를 해치는 연기를 할 때는 상대 배우와 어떻게 호흡을 맞추나?
조민기: 아무리 연기라도 누군가에 의해 죽는 역할을 하는 건 기분이 참 좋지 않은 일이다. 특히 이번엔 상대역이 신인(임세미) 배우라 최대한 의견을 많이 물어봤다. 어떤 식으로 죽는 게 좋을 것 같은지 충분히 얘기하고 촬영에 임했었다.
Q. 외모상으로는 도회적이고 이미지가 강한데 간간히 나오는 부산 사투리가 인상적이다.
조민기: 악역은 나름대로 주어진 틀이 있어서 연기할 때 쉽게 벗어날 수 없는 지점이 있는데 사투리로 새로움을 줄 수 있는 것 같다. 사투리 연기는 난생 처음이라 후배 연기자인 오달수와 임시완에게 직접 목소리를 녹음해달라고 부탁해서 연습했다.
Q. 향후 사건이 전개되면서 문일석도 변해가는 모습을 보이나
조민기: 극중 장태산(이준기)을 계속 쫓는 것과 동시에 조서희(김혜옥) 의원과의 관계가 틀어지면서 서로를 이용하려는 모습을 보일 것 같다. 아마 둘의 관계가 달라져가는 것도 극의 재미있는 관전 포인트가 될 것 같다.
Q. 악역을 연기할 때 자신만의 노하우가 있다면?
조민기: 시놉시스를 받아들면 항상 이 인물의 ‘왜’를 먼저 생각한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돌을 던지더라도 나만의 당위성을 찾는 게 모든 악역의 숙제인 것 같다. 에를 들어 ‘투윅스’에서는 풋사과처럼 자신에게 사랑의 감정을 안겨 준 사람의 배신에 상처를 받는다는 게 키워드다. 물론 상처를 표현하는 방법 자체는 잘못됐지만, 그 인물이 그렇게 살 수 밖에 없는 이유에 대한 설득력과 명분을 주는 게 악역을 맡은 배우의 역할인 것 같다.
Q. 디테일한 감정 표현이 좀더 필요한 게 악역인 것 같다.
조민기: 맞다. 악역을 여러 번 연기하다 보니 어느 순간 내가 내 연기를 복제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가 가장 난감해지는 순간이다. 그럴 때는 화가 나고 절벽을 만나는 느낌이다. 예전의 시청자들은 대강 해도 잘 넘어가주곤 했는데 요즘은 그렇지 않다. 표정 변화, 눈썹의 움직임 하나가 어땠는지도 포착해내는 게 요즘 시청자들이다.
Q. ‘투윅스’ 속 문일석의 캐릭터에 녹아드는 모습을 보니 느와르 영화에도 잘 어울리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민기: 나이가 좀 더 많이 들어서 짙은 분장을 할 필요 없이 내 주름이 자연스레 얼굴을 덮을 때쯤 하고 싶다.
Q. 악역의 시작이 된 작품이 무엇인가
조민기: KBS ‘천사의 키스’(1998)라는 작품에서 내가 악마로, 유호정씨가 천사 역할을 맡았었다. 그때 인상이 강렬했는지 그 뒤로 악역 섭외가 줄줄이 들어오더라.(웃음)
Q. 여러 악역을 연기하면서 악역만의 매력도 많이 느꼈을 것 같다.
조민기: 사실 악역이야 말로 가장 진실한 배역이다. 우린 항상 ‘좋은 사람’이 되라고 교육받으며 자라면서 내면의 나쁜 감정을 표출하지 말라고 배운다. 그런 면에서 악역은 인간의 극단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표출하면서 카타르시스를 안겨준다.
Q. 그런 강한 성격파 악역을 거쳐오면서 연기에 자신감도 많이 붙었을 것 같다.
조민기: 평생 연기에 자신감을 가지진 못할 것 같다. 다만 테크닉적인 부분은 시간이 가면서 해결이 되는 것일 뿐. 어떤 때는 TV 속 내 연기가 너무 부끄러워서 ‘우리나라 전체가 정전이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웃음)
Q. 연달아 악역을 맡다보면 심리적으로 우울해지기도 하나.
조민기: ‘에덴의 동쪽’에서 신태환이라는 인물을 맡았었다. 당시 연예정보 프로그램에서 신태환의 죄를 합하면 300년형이 구형될 거라는 내용이 방송될 정도로 악당이었는데 드라마 후반으로 갈수록 계속 독한 연기를 하다 보니 에너지가 고갈되는 느낌이 있더라. 주변 인물들을 모두 괴롭게 하는 역할이다보니 촬영장에서도 왠지 외로웠고. 촬영이 끝나면 집에 와서 홀로 술을 마시며 헛헛한 마음을 달랬었다. 그 때 영화 ‘다크나이트’의 히스 레저가 왜 죽었는지 알겠다 싶은 마음이 들었다.(웃음)
Q. 그럴 때면 좀 외로운 마음도 많이 들겠다.
조민기: 배우라는 직업 자체가 외로운 것 같다. 뭔가 많이 만끽할 수 있는 직업같지만 한 해 한 해 배우로 살다 보니 자기 수양이 많이 필요하다는 걸 느낀다. 너무 바른생활로 살아도 안 되는 것 같고, 그렇다고 윤리를 무시하면서 갈 수도 없는 거고.(웃음) 그런 면에서 사진이 내겐 좋은 여자친구고 교과서가 된 것 같다. 배우들은 항상 보여지는 것에 길들여지다보니 어느 순간 종종 허탈해질 때가 있는 것 같다. 반대로 카메라를 들고 나서면 어떻게 볼까를 고민할 수 있다는 게 좋은 훈련이 된다.
Q. 데뷔 초 로맨스 드라마의 남자 주인공으로 출발해 이제는 다종다양한 성격파 연기를 선보이는 배우로 거듭났다. 이후 ‘배우 조민기’는 어떤 모습이었으면 좋겠나
조민기: 나이드는 게 아니라 ‘잘 익어가는’ 배우였으면 좋겠다. 바람이 있다면 가장 ‘마흔 아홉 조민기’ 같은 모습의 역할을 해 보고 싶다. 뭔가를 애써서 하지 않더라도 숨쉬듯이 ‘그래, 이런 느낌이 여기 있네’하는 감성을 줄 수 있는 연기를 해보고 싶다. 뭐, 로맨스 연기도 좋고. 하하
글. 장서윤 ciel@tenasia.co.kr
사진. 구혜정 photonine@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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